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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avioral Economics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무지’를 선택하는 이유

곽승욱 | 366호 (2023년 04월 Issue 1)
Based on “The Good, Bad and Ugly of Information (Un)Processing; Homo Economicus, Homo Heuristicus and Homo Ignorans,” (2023) by G. Tingho..g, K. Barrafrem, and D. Vastfja..ll in Journal of Economic Psychology, 94(2):1-6.



무엇을, 왜 연구했나?


대부분 인간은 언제 죽을지, 치명적인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는지, 신용카드 연체 수수료가 얼마인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능이나 재능을 저평가하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자신이 한 선택에 부합되지 않는 정보를 못 본 체하고 선택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모른 체하는 경우도 흔하다. 더 나아가 자신의 신념과 충돌하는 팩트를 왜곡하고 자신의 믿음이나 바람에 부응하는 결론에 이르도록 갖가지 원인과 이유를 짜깁기한다. 스웨덴 린셰핑대 팅회그 교수 연구팀은 인간의 유형을 정보처리 방식에 따라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직관적 인간(Homo Heuristicus), 무지한 인간(Homo Ignorans)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각 인간 유형이 정보를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비교·분석했다.

무엇을 발견했나?


경제적 인간, 직관적 인간, 무지한 인간은 모두 정보처리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정보를 회피·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그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경제적 인간은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가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보를 고의로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사례가 드물다. 유일한 예외는 정보를 얻는 데 드는 유무형의 비용이 정보의 획득으로부터 창출되는 이익보다 높다고 간주할 때다.

하지만 경제적 인간의 정보처리 방식은 대부분 개인의 일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또한 정보 회피·무시 현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의 뇌는 수많은, 크고 작은, 어렵고 쉬운 의사결정을 쉴 틈 없이 내린다. 명확한 인지적 한계를 지닌 뇌가 이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러한 정신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뇌가 사용하는 기제가 휴리스틱(Heuristic)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의 난이도에 상관없이 문제를 어림짐작1 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의 오래된 습관이요, 심리적 에너지를 절약하고 제한된 인지 능력을 극복하는 판단 방식이다.2

휴리스틱을 정보처리의 주된 도구로 사용하는 유형의 인간을 직관적 인간이라고 한다. 직관적 인간은 의사결정과 관련된 정보의 장단점이나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측면을 고려하기보다는 어림짐작에 따라 성급한 결정을 내린다. 따라서 직관적 인간은 고의로 정보를 회피·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보를 처리하는 데 드는 심리적 비용이 그로부터 발생하는 심리적 이익보다 크다고 판단되면 직관적 인간은 정보 회피나 무시를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정보처리 모형으로서 경제적 인간과 직관적 인간은 정보 회피·무시 성향을 설명하는 데 충분치 않다. 사람들은 정보 취득 및 처리와 관련된 비용이 잠재적 수익보다 낮을 때조차도 정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무시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의도적인 정보 회피·무시 행위가 이성과 직관을 수시로 넘나든다. 세 번째 정보처리 모형으로서 무지한 인간이 탄생한 배경이다.

많은 이가 자기 행동 방식, 생각, 도덕성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고, 더 옳다고 믿는다. 또한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어리석거나 제정신이 아니라고 치부하기 일쑤다. 무지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생각과 행동의 근본적 이유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본능이 꼽힌다. 정체성 보호 본능은 무지한 인간의 인지적 엔진과 같아서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정보를 접하면 이를 주저 없이 거부한다.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3 에서 무지한 인간이 정보를 거부하는 형태는 정보 회피, 정보 무시, 정보 왜곡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정보 회피는 잠재적으로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경향으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의사결정 전 정보 회피(사전 정보 회피)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결정 후 정보 회피(사후 정보 회피)이다.

사전 정보 회피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위협적인 정보를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행위다. 예를 들면, 상황 자체를 피하거나 정보 자체에 접근하지 않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사후 정보 회피는 의사결정이 내려진 후 적극적으로 정보를 회피하는 행위다. 예를 들면, 할인 행사 중 TV를 구매한 후 TV가 더 저렴하게 판매될 것을 꺼려 광고를 보지 않는 것, DNA 친자 확인 검사를 받고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왔을까 두려워 그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 것,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운 기억을 망각하는 것 등이다.

정보 무시는 주의를 기울여 적절한 가중치를 부여하고 분석하면 의사결정을 개선하거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저평가하는 행위다. 특정 의사결정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다른 경쟁 특성을 부각하려는 행위가 여기 해당한다. 합리화가 쉬운 특성을 고평가하는 경향(사전 정보 무시)이나 의사결정을 한 후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용한 정보를 망각하는 경향(사후 정보 무시)으로 나타난다.

정보 왜곡은 정체성과 일치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정체성 위협을 최소화할 목적으로 정보를 능동적으로 조작하는 행위다. 사전 정보 왜곡은 의사결정 전 정체성에 부합하는 정보 및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고 사후 정보 왜곡은 선택한 옵션에 긍정적인 속성을 부여하거나 포기한 옵션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행위다.

요약하면, 경제적 인간, 직관적 인간, 무지한 인간은 모두 알기(Knowledge)를 거부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무지(無知)를 선택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경제적 인간은 정보 취득 비용이 너무 높을 때, 직관적 인간은 정보처리의 심리적 비용이 너무 높을 때, 무지한 인간은 새로 접하는 정보로 인해 정체성(예: 가치관, 믿음, 신념)을 포기해야 하는 감정적 비용4 이 너무 높을 때 무지의 상태를 선호한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무지한 인간은 경제적 인간과 직관적 인간의 원치 않는 형제 또는 자매라 할 수 있다.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을 정보처리 능력의 질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경제적 인간은 좋은 인간, 직관적 인간은 나쁜 인간, 무지한 인간은 이상한 혹은 추한 인간이다. 무지한 인간이 정치적 양극화와 관련된 혐오, 폭력, 차별 등 사회적 문제를 확대하고 잘못된 정보, 불신 및 심오한 헛소리의 온상인 현실을 고려하면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이익 집단, 정치인, 정당 및 정책 결정자는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지한 인간의 정체성 보호 본능을 이용하고 증폭시켜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한 정보가 도처에 있는 세상, 정체성이 정치·사회적 환경을 정의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의도적인 무지가 언제,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 제대로 이해해야 우리가 향하는 세상을 알 수 있고 바라는 세상을 설계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는 것을 선(善), 모르는 것(무지)을 악(惡)이라 칭했다. “무지한 것이 반만 아는 것보다 낫다”라는 외국 속담도 있다.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설프게 아는 건 모르는 것만 못할 때도 많다. 안전하고 현명한 선택은 확실히 아는 것이다.
  • 곽승욱 곽승욱 |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필자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와 텍사스공과대에서 정치학 석사와 경영통계학 석사, 테네시대에서 재무관리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타주립대 재무관리 교수로 11년간 근무한 후 현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행동재무학/경제학, 기업가치평가, 투자, 금융시장과 규제 등이다.
    swkwag@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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