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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Interview: 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

비건, 유산균, 글루텐 프리, Non GMO 김치
글로벌 건강 기준에 맞추니 “원더풀” 화답

김윤진 | 338호 (2022년 0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한국의 식품 스타트업이 만든 ‘서울시스터즈 김치 시즈닝’이 미국 아마존 칠리파우더 부문 베스트셀러로 선정되고 출시 6개월 만에 카테고리 킬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김치=건강’을 동일시하는 전 세계 소비자들의 인식의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비건(채식),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글루텐 프리(밀가루 없음), Non-GMO(비유전자 변형 식품) 등 건강이나 환경 등의 키워드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거의 모든 기준을 충족했다. 회사가 처음부터 미국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 ‘홀푸드마켓’ 입점을 목표로 식물성 대체육 대표 제조사인 ‘비욘드미트’ 및 ‘임파서블푸드’와의 협업을 목표로 건강식품을 기획했기 때문이다. 현지 고객을 철저히 조사하고, 이들의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면 생산 단계의 난관에 굴하지 않았던 것이 서울시스터즈가 빠르게 해외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국내에서도 생소하고 해외에서는 더 생소한 뿌려 먹는 김치 가루로 미국 아마존의 칠리파우더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서울시스터즈 김치 시즈닝’은 최근 K-푸드의 해외 진출 성공의 대명사로서 많은 식품 창업가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영세한 한국 스타트업의 제품이 2020년 11월 미국 아마존에 입점한 지 7개월 만에 일본 ‘시치미’ 등 유수의 기성 제품과 대기업 제품을 제치고 ‘카테고리 킬러’에 올랐기 때문이다. 시즈닝은 ‘향신료와 허브 등을 첨가해 향과 맛을 더욱 높여주는 양념’이란 뜻이며 서울시스터즈의 김치 시즈닝은 완성된 식품에 뿌려 김치의 풍미를 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더욱이 제품이 반짝 인기로 그친 것이 아니라 1년여간 판매 1위 자리를 꾸준히 지키며 누적 판매량 12만 개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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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을 개발한 푸드컬쳐랩의 안태양 대표(37)는 이에 대해 “일반 식품과 건강 기능 식품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는 흐름을 잘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김치 시즈닝이 단기간에 미국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이 결코 한류 콘텐츠 열풍이나 인플루언서 ‘먹방’ 등에 힘입은 K-푸드의 인기, 자극적인 매운맛에 대한 호기심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찰나의 인기는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세계 시장이 우호적으로 반응한 것은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김치=건강’을 동일시하는 인식의 연결고리를 강조한 결과였다. 건강식품과 관련된 모든 시장 트렌드를 빠짐없이 제품에 녹여낸 것이 김치를 찾는 잠재 고객의 니즈와 맞아떨어지면서 구매로 연결됐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철저한 시장 조사와 제품 개발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코로나19 시기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면역력 증강이라는 김치의 효능이 주목받는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서울시스터즈 김치 시즈닝의 성분을 들여다보면 ‘비건(채식)’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글루텐 프리(밀가루 없음)’1 ‘Non-GMO(비유전자 변형 식품)’ 등 건강이나 환경 등의 키워드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거의 모든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들도 먹을 수 있도록 젓갈 성분을 전부 뺐고 젓갈이 내는 감칠맛을 살리기 위해 재료 하나하나를 분쇄한 뒤 다시 발효, 숙성을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시즈닝에 살아 있는 유산균을 넣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안 대표는 “사람들이 갈수록 편리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건강 기능 식품을 따로 챙겨 먹기보다는 한 끼에 온전하게 영양을 다 담으면서도 몸에 안 좋은 성분은 최소화한 완전식품을 찾는 추세”라면서 “김치 시즈닝의 선전은 식료품 하나를 고를 때도 깐깐하게 성분을 따지는 잠재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결과”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나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전 세계 에어비앤비를 전전하며 몇 개월씩 투숙하면서 현지 식료품 슈퍼마켓과 가정집 주방을 그 누구보다 속속들이 들여다봤다고 자부하는 안 대표를 DBR가 만났다. 그리고 토종 한국인이 설립한 작은 회사가 어떻게 국산 제품으로 글로벌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 서울시스터즈의 식품 개발, 생산 및 유통 전략을 들어봤다.

김치 시즈닝을 비건 제품으로 개발한 이유가 있나.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소스나 양념을 전 세계에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안고 2017∼2019년 미국이나 유럽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비건이 식품업계 최대 화두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슈퍼마켓 어딜 가도 비건 제품이 진열대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관련 잡지를 뒤져봐도 ‘핫 키워드’ ‘핫 소스’ ‘핫 트렌드’ 등의 이름의 코너에는 빠짐없이 비건 제품이 등장했고 유기농 식료품 전문 슈퍼마켓 체인인 미국 홀푸드(Whole Foods)에서 발간하는 연간 리포트를 살펴봐도 2015부터 빠짐없이 비건 열풍을 비중 있게 다뤘다. 잠깐 스쳐 가는 트렌드가 아니라 식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큰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제품을 개발하든지 간에 이 흐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제품 개발 전 비건 시장의 크기가 아무래도
한정적이라는 점을 우려했을 듯한데.

당연히 고민이 많았다. 특히 한국의 경우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이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한데 이런 한정된 소비층을 겨냥해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던 중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미국 기업 임파서블버거의 최고전략책임자(CSO)가 한국을 방문했고 1대1로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비건보다 비건이 아닌 인구가 더 많은데 어떻게 임파서블버거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의 타깃 고객은 육식주의자’라 답한 것이다. 그는 임파서블버거가 ‘육식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 육류 소비를 줄이려는 사람’을 핵심 고객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전 세계 인구의 80%가 이 잠재 고객군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화를 계기로 그동안 시장을 잘못 바라본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비건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 ‘비건도 아우를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강경한 채식주의자가 타깃이 아니라면
굳이 김치에서 젓갈을 뺄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가?

사실 비건이란 용어는 어디에나 갖다 붙일 수 있고 누구든지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식품 비즈니스에서는 공신력 있는 ‘인증’의 유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작은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쉽지 않은데 미국 시장에서 한국 스타트업은 보이지 않는 ‘점’과 다를 바 없었다. 소비자들이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먹거리는 안전성이나 위생 문제에 민감하기 때문에 대중은 인지도 있는 대기업 식품 브랜드를 선호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회사도 아니고 이름 없는 한국 회사의 제품을 믿고 구매하게 하려면 안전성을 입증하고 신뢰를 줄 만한 신호를 전달하는 게 관건이다. 김치에서 젓갈을 빼고 시즈닝의 기본 원료뿐 아니라 원료의 원료인 2차, 3차 원료에서까지 모든 동물성의 흔적을 지운 것도 공인된 비건 인증을 받아 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비건 인증을 받기가 그렇게 까다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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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시즈닝으로 한국 비건 인증을 통과하기까지 심사에서 7번 떨어졌고, 3차 원료에 관한 내용까지 넣느라 100장이 넘는 서류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다시마 농축액에 다시마만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분을 쪼개고 쪼개다 보면 동물성 원료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3차 원료의 원산지가 이스라엘, 인도, 스리랑카 등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인증 서류를 작성하려면 원료 공급사에 일일이 연락해 법적 동의와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100% 식물성 원료를 사용했더라도 동물 실험을 했으면 비건 인증을 받을 수 없다. 동물성 원료와의 교차 오염 위험이 있는 공장에서 생산된 것도 결격 사유다. 실제로 서울시스터즈 고추장 핫소스에 들어간 치커리 파우더가 100% 치커리 성분이라 통과될 것이라고 마음 놓고 있다가 뒤늦게 동물 실험을 한 게 밝혀져 심사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제조사를 찾는 데도 애를 먹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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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 생산 방식이다 보니 국내에서 이런 까다로운 요구를 들어줄 제조사를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 국내 식품 제조사들은 최소 주문 수량(MOQ, Minimum Order Quality)이 많기 때문에 실패했을 때 상당한 위험이 동반된다. 비용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식품 재고는 유통기한이 짧아 처치도 곤란하다. 이런 위험을 알고 있는 제조사들도 지급 불능 등의 위험을 고려해 성공 확률이 희박한 제품 개발에는 선뜻 나서지 않는다. 김치 시즈닝은 개념부터 생소하다 보니 당연히 문전 박대도 많이 당했다. 비건 관련 상담을 한 제조사들만 족히 10곳은 넘는다. 더욱이 해썹(HACCP) 같은 국내 식품 위생 인증의 경우 제조사들이 관련 경험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고 절차나 준비 서류에 해박해 문제가 없지만 비건 인증과 미국 수출을 위한 FDA 공장 등록을 목표로 식품을 개발해본 제조사는 국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개발 도중에 포기한 곳들도 많았고 24가지 샘플 테스트 과정을 끝까지 함께한 제조사도 중간에 질렸다고 말할 정도로 개발에 난항을 겪었다.

이렇게 비건 제품을 고집하는 게
판매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나?

비건 인증 기준이 까다롭다는 것을 아는 고객들에게는 제품의 확실한 차별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일례로 할랄(Halal) 국가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두바이 등 동물성 원료를 자제하는 국가들에서 김치 시즈닝을 수입하겠다는 문의가 적지 않게 들어왔다.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고객들은 원래도 김치에 관심은 있었지만 젓갈류가 섞여 있어 구입할 엄두를 못 내다가 비건 김치 시즈닝을 보고 연락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미국이나 유럽은 확실히 비건으로 전향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고 식물성 고기 패러다임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 가는 추세라 비건 포지셔닝이 많은 도움이 된다. 미국 20∼30대 여성 고객들은 김치 시즈닝을 주로 샐러드에 뿌려 먹는다. 또한 식물성 단백질에서 추출한 대체육은 실제 고기 같은 맛(flavor)이 존재하지 않는 식품이라 풍미를 더하기 위해 비건 시즈닝을 곁들이려는 수요는 계속해서 더 많아질 것이다. 최근 비욘드미트나 임파서블버거 등 대형 대체육 제조사들이 바비큐 맛, 스리라차 맛 등이 가미된(flavored) 소시지나 패티를 출시하는 추세인 만큼 김치 시즈닝을 뿌린 김치 맛 소시지 등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건 제품 중에서도
하필 시즈닝을 만들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원래 서울시스터즈 창업 당시에는 식물성 고기를 직접 생산해볼 생각도 했다. 2015년 미국 LA에서 임파서블버거를 접하고 너무 맛있어서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이미 해외에는 30개 이상의 경쟁 브랜드가 존재하던 상태였고 보유 기술도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식물성 고기는 냉동 컨테이너에 실어 수출하는 과정에서 육즙의 역할을 하는 코코넛오일이 빠져나가면서 맛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현지에서 생산해 파는 게 가장 맛있기 때문에 기술도 없고 물류비용을 감당할 자본도 없는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을 넘보기는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 해외에서도 통하는 한국 제품을 만들고 싶었기에 식물성 고기 사업은 과감히 포기하고 그 대신 고기에 가미할 수 있는 시즈닝을 만듦으로써 세계인이 먹는 제품이 되겠다는 쪽으로 목표를 변형했다. 미국의 경우 비욘드미트를 넣은 버거가 불티나게 팔릴 정도로 시장이 커지고 있고 제품군이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비건, 글루텐 프리, non-GMO 등 필요한 스펙을 갖춰 놓았던 것도 처음부터 비욘드미트 등과의 협업을 염두에 두고 제조사의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계기로 김치 시즈닝을 개발하게 됐나?

2010년 필리핀에 작은 떡볶이 가게를 열고 이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키워가는 동안 해외에서 사용되는 한국 소스류가 너무 없고 사용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빨간색 통에 담긴 고추장은 연중 내내 냉장고에 처박혀 있고 양념 하나 만들려면 고추장 외에도 미림, 매실 진액 등 함께 섞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타바스코 핫소스나 스리라차 소스 등은 전 세계 사람이 언제, 어디에나 간편하게 뿌려 먹는데 왜 이렇게 한국 소스는 쓰기 불편하고 대중화된 게 없는지 불만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해외여행을 다니다가 김치 제품들에 대한 수요를 발견했다. 영국엔 김치 주스와 김치 케첩이, 미국 트레이더 조스(Trader’s Joe)에는 PB 제품인 김치 과자가, 베트남에는 김치 김이 있는데 막상 한국이나 해외의 한인 슈퍼마켓에는 배추김치와 깍두기밖에 없다는 데 주목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라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김치를 먹는 형태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이에 세계적으로 팔리는 김치 소스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안고 김치 시즈닝을 기획하게 됐다.

실제로 해외에선 김치 관련 제품의 수요가 많았나?

맞다. 한국이 지리적으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K-콘텐츠를 접한 적조차 없는 사람도 한국의 김치는 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우마미(Umami)’, 즉 입에 당기는 오묘한 감칠맛에 한번 적응한 사람들은 계속 김치를 찾는다. 예를 들어, 김치 주스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은 기겁하지만 영국인들은 이를 레몬 디톡스 주스처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다이어트 효과로 잘 알려진 레몬 디톡스 주스를 제조할 때 카옌페퍼를 넣듯이 음료에 고춧가루를 첨가함으로써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효능을 기대하는 것이다.

또한 외국 사람들은 김치에 ‘유산균’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외국에서 시작돼 국내로까지 인기가 번지고 있는 콤부차도 설탕이 든 차에 유산균을 넣어 발효시킨 음료다. 해외의 콤부차 열풍만 봐도 소비자들이 얼마나 음식과 음료를 통해 유산균을 섭취하는 것을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밀을 주식으로 소비하는데 이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글루텐 프리 식품을 먹거나 유산균을 찾는다. 한국인들이 속이 더부룩할 때 동치미 국물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밀이 손발을 차갑게 하는 성질이 있으니 고춧가루로 열을 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유산균을 섭취해 장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렇듯 김치 제품이 팔리는 걸 보면서 유산균이 있는 김치 제품을 만든다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비자들이 유산균까지 확인하면서 제품을 구매할 정도로 똑똑할까? 개발 단계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애초에 유산균을 목적으로 김치를 찾는 해외 소비자가 많다. 사람들이 점점 편리함과 효율을 추구하기 때문에 건강을 따지는 고객들은 ‘1회 제공(one serving)’당 성분을 본다. 한 번에 모든 영양을 섭취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1회 제공당 유산균을 가장 많이 함유한 대표적인 음식으로 인도의 천연 정제 버터인 ‘기(Ghee) 버터’와 한국의 김치가 꼽힌다. 그래서 김치 제품에 유산균이 들어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다면 소비자들이 더 높은 가격도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 예상했다. 해외에선 5∼6년 전부터 유산균을 따지는 똑똑한 소비자가 많아졌고 이 트렌드가 점점 한국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유산균을 살아 있는 채로 보존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 주로 포 형태의 필름 포장재에 담긴 것도 유산균이 빛과 열에 취약해 잘 죽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산균은 대개 우유 등 동물성 재료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비건’이 아니다. 비건 김치에서 추출한 비건 유산균을 사용하되 이 유산균이 투명 통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빛이나 열을 잘 견디게 하고 유산균의 잔존 여부를 개체 수로 확인해 기재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이었다.

왜 이런 비건이나 유산균 트렌드를 겨냥한
한국 소스가 지금까지 없었을까?

일단 비즈니스 관점에서 대기업들이 뛰어들기에는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소스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위험 대비 기대되는 수익이 낮다. 한국 소비자들이 소위 ‘양념’에 지불하는 평균 가격대가 정해져 있는데 비건 제품들은 원료부터 수배하기 어렵고 비싸다. 무작정 판매가를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생산 단가가 높은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등 장류와 소스류 대부분을 ㎏ 단위 벌크(대용량)로 매우 싸게 구매한다. 이에 따라 대량 생산을 하는 대기업 입장에선 굳이 비건, 그것도 비건 유산균 제품을 비싸게 생산해 싸게 팔아야 할 유인이 없다. 이에 반해 우리는 스타트업이니까 이런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는 틈새시장에서 기회를 노리되 시즈닝 등 가루에 훨씬 익숙한 해외 시장부터 겨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이나 일본 시장에는 작고 예쁜 디자인의 소용량 시즈닝 상품이 많을 뿐만 아니라 가격대의 스펙트럼도 넓다. 이때 프리미엄대의 가격을 정당화하려면 비건, 유산균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처음부터 미국에 진출한 이유는
시장이 성숙했기 때문인가?

앞서 말했듯이 시즈닝 시장이 더 컸기 때문도 있지만 영세한 스타트업으로서 대기업이 건드리지 않는 틈새를 찾으면서도 혹시 모를 유사(copy) 상품의 등장에 대비하려면 확실히 브랜드를 각인하고 노출을 극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식품 시장의 경우 아이디어를 베낀 미투(me-too) 제품의 출연이 잦고, 아무도 ‘최초’라는 이유로 제품을 사거나 기억해주지 않는다. 자본이 풍부하고 TV 광고에 물량을 쏟아부을 수 있는 대기업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후발주자의 추격을 방어하려면 활동 무대 자체를 국내로 한정 짓기보다는 최대한 큰 시장에 진출해 많은 대중과 호흡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국내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다. 신제품이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아마존에서 ‘카테고리 킬러’가 될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비록 칠리파우더라는 작은 카테고리이긴 하지만 ‘아마존 판매 1위’를 앞세워 마케팅을 했더니 미디어의 관심을 받고 한국 대중의 반응도 빠르게 유도할 수 있었다.

수많은 제품이 경쟁하는 아마존을 뚫은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단 사는 사람의 입장을 많이 고려했다. 건강 때문에 김치를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성분을 중요시했을 뿐만 아니라 맛이나 용기 포장, 디자인을 정할 때도 해외 고객의 니즈를 반영했다. 디자인에 있어서도 미국인들은 작은 용기의 소스를 주로 구매하면서 배낭이나 트렁크에 넣고 다닌다는 점에 착안해 ‘휴대하기 좋은’ 100g 사이즈로 만들었다. 한국 소스 용기는 대부분 크다 보니 “왜 이렇게 어려운 길만 가냐”는 제조사들의 불만과 만류가 있었지만 오직 고객만 생각했다. 맛도 해외 소비자 위주로 고려했다. 한국인들은 아침, 점심, 저녁에 김치를 반찬으로 먹기 때문에 다른 음식에서 신맛을 찾지 않는 데 반해 서양에는 신맛이 들어간 음식이 별로 없어 외국인들은 소스류에서 이를 보충한다. 케첩, 바비큐 소스, 머스타드 등을 떠올리면 다 산미가 있다. 그래서 김치 시즈닝도 소스류이니 신맛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스위트칠리나 스리라차 등 유사 카테고리 제품과 차별화하고 기억에 남게 하려면 매운맛도 강해야 했다. 이 맛의 균형을 잡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코로나19 사태가 기회가 됐나?

확실히 코로나19 시기 수혜를 입은 것은 맞다. 한국인의 면역력이 관심을 받고 김치 유산균의 효용이 각광을 받으면서 해외 사이트에서 김치 검색량 자체가 늘었고 김치로 검색해 유입된 소비자들이 많다. 더욱이 전 세계 많은 김치 공장이 셧다운되고 수출길도 막히면서 김치 시즈닝이 대체재로써 선택을 받았다. 김치는 빠르게 배송이 안 되면 쉬어 버리는데 외국인들은 쉰 김치에 대한 이해가 없고 묵은지와 상한 김치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매가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시즈닝은 외국인들이 원하는 김치의 성분과 맛을 다 담고 있으면서 배송도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었다. 또한 사람들이 코로나19로 매일 집안에 갇혀 있다 보니 냉동식품이나 비슷비슷한 식품에 질린 상황에서 어디에나 뿌려 먹으며 입맛을 살릴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부각됐다.

이렇게 시장 수요가 확인된 이상 유사 상품의 등장을 피할 수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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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실 김치 시즈닝이란 용어도 우리가 오랜 고민 끝에 만들었는데 요새는 고유명사처럼 유사 상품에 적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잠깐 공유 오피스에서 지내면서 공동 휴게공간에 김치 파우더란 라벨을 붙인 우리의 시제품을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제품을 선뜻 집지를 않더라. 사람들에게 이유를 수소문하다가 ‘파우더’란 용어 자체가 조리된 음식에 뿌려 먹는 양념보다는 설탕, 소금, 밀가루처럼 조리 단계에서 쓰는 음식의 재료로 인식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적합한 용어를 찾은 끝에 ‘시즈닝’을 발견했다. 당시 이미 김치 파우더란 이름으로 포장재 몇만 개를 생산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폐기하고 김치 시즈닝이란 라벨을 붙여 전부 재생산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이 어디서나 통용되고 유사 이름의 상품이 양산되는 것을 보면서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차별화와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브랜딩’이 관건이라는 걸 되새기게 됐다.

해외에선 아마존 등 온라인으로만 유통하나?

궁극적으로는 아마존을 넘어 미국 ‘홀푸드’ 매장 입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월마트도 아니고, 타깃도 아니고 건강한 먹거리란 상징성이 있는 홀푸드에 진열되고 싶다. 고추장의 경우 이미 홀푸드가 PB 제품을 만들고 있다. 2년 전 뉴욕에 갔을 때 이 제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방대한 미국 고객 데이터를 보유한 슈퍼마켓 체인이 이런 PB 고추장을 생산한다는 것은 확실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막상 한국 브랜드의 제품은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제품을 구매해보니 한국식 고추장보다 묽어서 요리할 때 사용하기도 간편하고 용기까지 더 작고 귀여웠다. 이런 제품이 사랑받게 된다면 고추장이 알려지더라도 한국 기업이나 브랜드가 성장할 수 없고 현지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반영한 미국 제품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때의 충격을 발판 삼아 철저하게 시장 조사를 해온 만큼 홀푸드 입점 기준에 부응하는 건강한 소스로 진열대를 차지해 현지인의 일상에 자리 잡고 싶다.

국내에서는 어떤 채널로 판매할 계획인가?

수익성만 따지면 수수료도 없고 이윤이 많이 남는 온라인 자사 몰이 가장 효율적인 판매 채널이다. 하지만 브랜드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오프라인 접점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오프라인만큼 빠르게 대중과 만나서 소통하고 브랜드를 인지하게 할 수 있는 경로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사 몰 운영은 대기업이 훨씬 잘한다. 이에 우리는 올리브영이나 편의점, 마트, 슈퍼마켓 등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가 자주 찾는 매장에 침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최근 올리브영을 살펴보면 식품 카테고리가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지는 추세다. MZ세대는 올리브영 매장이나 온라인몰을 찾은 김에 화장품뿐만 아니라 식품, 잡화도 거리낌 없이 구매한다. 이런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게 목표다. 어차피 40∼50대는 김치 자체를 그 형태 그대로 먹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김치 시즈닝을 찾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고객 데이터상으로도 혼자 사는 20∼30대 1인 가구나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는 캠핑족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들을 타깃층으로 설정하고 이들과의 소통을 극대화하는 유통 마케팅에 계속 주력할 계획이다.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만든 제품인데 한국 시장에도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미국의 푸드 트렌드가 한국 시장으로 확산되기까지 2∼3년 이상의 간격이 존재한다. 하지만 분명 트렌드는 이식된다. 콤부차도 시큼한 맛 때문에 거부감을 유발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빠르게 한국 시장에 안착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치 시즈닝도 자리 잡기까지 2∼3년의 시간은 소요될 것이다. 이렇게 국내 고객들과 호흡하고 김치 시즈닝의 맛과 브랜드를 익숙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CGV와 함께 김치팝콘을 론칭하고 다양한 간편식을 CU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것도 대중에게 친숙한 제형과 형태로 김치 시즈닝을 노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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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MZ세대를 중심으로 환경, 동물, 건강 등 다양한 이유로 비건 식품을 선호하는 고객이 늘고 있고 자기 목소리를 많이 내는 이들 소비자층의 의견을 듣다 보면 육식을 아예 끊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줄이려는 경향이 확실히 보인다. 한국인의 경우 고기를 소비하고 조리하는 형태가 스테이크, 햄버거처럼 정형화돼 있지 않고 제육, 불고기, 보쌈, 족발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고기가 들어간 국물이나 반찬도 많기 때문에 사실 100% 비건으로 전환하거나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일상에서 식물성 고기나 첨가물의 이용 빈도는 점차 늘어날 것이고 비건 제품의 설 자리는 점점 커질 것이라 보고 있다.

식품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이제는 푸드와 테크가 떨어질 수 없는 시대에 살게 된 것 같다. 일반 식품과 영양보조제 같은 건강 기능 식품의 간극이 줄어들수록 이를 좁히기 위해 바이오나 테크를 공부하는 게 필수가 됐다. 사람들이 음식에서 단순히 싸고, 맛있고, 배부른 것 이상을 기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치 시즈닝이 코로나19로 운 좋게 기회를 잡은 것도 맞지만 이런 사태가 다시 오지 않으리라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만약 저가 상품을 내놓고 가격 경쟁력으로만 승부를 보려고 했다면 국가 간 봉쇄 상황에서 비행기에 제품을 실어 보내는 물류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을 앞세우기보다는 최신의 식품 트렌드를 연구하면서 비건이든, 유산균이든, 글루텐 프리든, non-GMO든 가격에 걸맞은 가치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또한 제품을 만들기 전에 어떤 고객을 타깃으로 할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K-푸드의 세계화를 꿈꾸는 많은 이는 현지 고객의 취향이나 소비 패턴을 반영하기보다는 원형을 고수하려 한다. 한식에 대한 자부심이 높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구입하는 사람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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