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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채식 인구의 불편함을 비즈니스화

매끼 채식 안 되면 간헐적 실천이라도
‘플렉시테리언’ 진입 문턱 낮추는 플랫폼

박상진 | 338호 (2022년 0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채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채식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채식이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등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 동물 권리와 복지에 대한 고민, 과도한 고기 및 가공육 섭취에 따른 질환의 예방 및 건강 관리 등 채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채식을 한다는 것은 1) 식당의 메뉴 부재 2) 식재료 구매의 어려움 3) 인프라 부족에 따른 사회생활의 어려움 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채식 비즈니스의 지향점은 이 불편함을 해소하고 누구나 채식이라는 수단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것이 돼야 한다. 많은 사람이 채식을 하나의 ‘선택지’로 인지하고 간헐적으로라도 채식을 실천하는 플렉시테리언이 될 수 있게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



채식 시장의 성장 배경: 환경, 동물, 건강

왜 사람들은 채식을 선택하는가? 채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반드시 채식주의자가 돼 매 끼니를 모두 풀만 먹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단 한 끼의 식사라도 육식을 대체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그 역시 채식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채식을 선택하고 있는 이유는 채식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채식이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단’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공감을 하길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식을 시작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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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환경 이슈다.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사람들을 채식으로 이끌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 뉴스를 접하면서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힘을 합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구온난화와 직결된 것이 바로 탄소배출량이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화두가 되면서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의 기업까지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탄소배출량 감축 노력에 힘을 더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기관을 넘어 개인 차원에서 탄소배출량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채식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다. 수치는 연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한 끼의 식사를 일반식에서 채식으로 바꾸면 1회당 약 3∼4kg만큼의 탄소배출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전 세계인이 채식을 선택하면 인류의 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두 번째는 동물 이슈다.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동물 소비를 거부하는 의사표시의 하나로 채식을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동물에 대한 관심이 채식을 촉발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반감이다.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한국에서 넷플릭스 이용이 증가함에 따라 공장식 축산에 대한 이해도가 같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필자의 회사가 운영하는 ‘채식한끼’ 앱 커뮤니티에서는 가입자에게 어떤 계기로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를 항상 질문하는데 공장식 가축 사육 시스템을 비판하는 각종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들을 보고 인식이 바뀌었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넷플릭스를 자주 이용하는 MZ세대의 가입이 눈에 띄게 활발해진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또 다른 하나는 ‘반려동물 부양 인구 증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1년 발표한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의 비율은 2020년 기준 전체의 약 27.7%인 638만 가구(1530만 명)에 달한다. 이런 인구 가운데 ‘왜 개나 고양이는 가족처럼 아끼면서 소, 돼지, 닭은 먹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주로 채식을 선택하고 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 박사가 본인의 저서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에서 설명하듯이 가정에서 시작된 동물에 대한 애정이 다른 동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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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건강 이슈다. 무엇이 건강한 음식인가에 대한 해답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런 의미에서 채식이 육식보다 과연 더 건강한지를 두고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현대사회에서는 ‘풍요병’으로 인한 건강 문제가 심각하고 지나친 고기나 가공육 섭취에 따른 비만, 당뇨,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이 만연해 있다는 데는 어떤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렇듯 과도함을 경계하다 보니 자연히 가벼운 채소나 과일 위주의 채식 식단이 ‘건강식’의 대명사로 떠오르고 있다. 채식주의자가 더 건강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한 끼 혹은 두 끼는 채소와 과일로 대체하는 ‘선택적 채식’이 현대인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임은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채식한끼 커뮤니티에서 가입자를 대상으로 가장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중복 투표를 받은 결과 앞서 언급한 요인들이 환경(3만3125명), 동물(3만491명), 건강(2만7403명) 순으로 개인의 채식 선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채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겪는 ‘불편함’

한국에서 채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채식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한들 아직 전체 인구 대비로는 소수이기 때문에 채식을 위한 사회적인 인프라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식당의 채식 메뉴 부재’다. 고기와 야채가 섞여 있는 메뉴는 많지만 오롯이 채식으로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대부분의 국물 요리는 고기 육수 기반으로 돼 있고 많은 경우 반찬에 젓갈이 들어간다. 그리고 소위 메인 메뉴에는 항상 고기나 어류가 포함된다. 그래서 채식을 선택하려면 ‘맞춤 메뉴’를 요청해야 한다. 우선 메뉴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를 파악해서 그것을 빼고 만들어줄 수 있는지 일일이 요청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모든 재료를 파악할 수도, 모든 메뉴를 맞춤으로 만들 수도 없기 때문에 크고 중요한 재료만 빼게 되는 ‘절충안’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비덩’ 채식이 이런 경우다. 비덩 채식이란 큼지막한 ‘육류의 덩어리’만 제외한 메뉴를 선택하는 것을 가리킨다. 육수처럼 동물성 성분이 포함돼 있지만 큰 덩어리가 없는 것은 그냥 먹는 것이다. 현실적인 절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식재료 구매의 어려움’이다. 대부분의 공산품은 식물성 성분으로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성분표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성분표를 통해서는 100% 채식 상품인지 여부를 알 수가 없다. 성분표에 모든 성분이 표시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표기된 텍스트만으로는 식물성인지 아닌지 일반인은 식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표시된 부분에 대해서만 체크를 하거나 알레르기 성분만 대강 확인하고 넘어가는 절충안을 선택하게 된다.

세 번째는 ‘인프라 부족에 따른 사회생활의 어려움’이다. 현대사회에서 식사는 단순히 신체 활동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식사 시간이 커뮤니케이션의 기회가 되기도 하고, 대인 관계에 있어 사교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제한된다는 것은 곧 이런 커뮤니케이션 기회와 사교의 장으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와의 미팅이나 회식, 데이트, 친구와의 모임, 뒤풀이 등 많은 커뮤니케이션은 먹는 것을 동반한 자리에서 이뤄진다. 이때 채식을 선택한다고 밝히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장소 선정에서부터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지인들에게 ‘유난 떤다’ ‘귀찮다’ 등의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또한 환경이나 동물 등 어떤 가치를 위해서 채식을 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은연중에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기방어 기제가 발현돼 채식을 공격하거나 언쟁을 벌이는 이들도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고립을 초래한다. 밥을 혼자 먹게 되고 모임에 참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국내외 채식 관련 비즈니스의 출현

아직 한국 시장은 태동기이지만 채식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해외 시장에서는 이미 채식 관련 회사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큰 성장을 이룬 회사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채식 상품 제조에 집중하고 있다. 비욘드미트, 임파서블푸드 등 대체육을 만드는 회사, 우유를 대체하는 식물성 음료를 만드는 오틀리, 식물성 계란을 만드는 잇저스트 등 잘 알려진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대부분은 채식 상품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데서 기회를 찾았다.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디보션푸드, 지구인컴퍼니, 위미트 같은 대체육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농심, 롯데, CJ, 풀무원, 신세계 등 대기업들도 신사업의 일환으로 대체육 제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부분이 각자만의 기술적인 차별성 혹은 자본력을 앞세워 시장에 소구하는 중이다. 모두들 채식 상품의 절대적인 가짓수가 많지 않다는 데서 기회를 포착한 회사들이고 시장의 반응이 우호적인 만큼 향후 상품군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좋은 상품이 늘어날수록 이를 활용한 식당 또한 다양해질 것이다. 농심에서는 이미 자사 대체육 브랜드의 이름을 딴 비건 레스토랑 ‘베지가든’을 올해 국내 식품 업계에선 처음으로 연다는 뉴스를 발표한 바 있다. 만약 반응이 괜찮다면 이를 벤치마킹한 더 많은 채식 테마의 식당과 프랜차이즈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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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상품 개발만으로는 기존 채식 인구들이 당면하고 있는 모든 어려움을 풀어줄 순 없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는 상품이나 식당을 론칭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채식 지향 인구를 실질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이들 잠재 고객의 편의를 증진하거나 접근성을 높이는 소셜 벤처들이 등장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홍콩의 ‘그린먼데이’가 있다. 그린먼데이는 식품 개발, 쇼핑몰 및 오프라인 스토어 운영, 투자, 교육기관의 역할을 결합함으로써 다방면으로 채식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제공한다. 돼지고기 대체 식품 옴니포크를 개발하고, 옴니포크 외에도 다양한 타사의 채식 상품을 유통하며, 이런 상품들의 가치를 알리고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과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활동에 힘을 실어줄 아군에 대한 투자도 단행한다. 최근 그린먼데이가 공개한 임팩트 성과에 따르면 이 회사는 홍콩 전체 인구의 22%를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1 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매 끼니 식물식을 먹는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육류를 섭취하긴 하지만 의식적으로 채식 빈도를 높이는 인구가 늘어날 수 있도록 토대를 닦은 것이다.

그린먼데이 사례가 의미 있는 까닭은 소셜 벤처로서 단순히 회사의 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플렉시테리언을 타깃으로 한 시장 인프라를 확충하고 채식에 동참하는 고객 기반을 늘렸기 때문이다. 사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식 비즈니스는 아직 규모가 크지 않다. 진정 큰 비즈니스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을 위한 채식 비즈니스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채식 식품을 일정 주기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수요가 있다. 미국의 한 시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1%가 본인을 플렉시테리언이라고 밝혔을 정도로2 MZ세대를 중심으로 선택적 채식을 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채식주의자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새로 채식을 선택해보려는 인구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게 채식 비즈니스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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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충족 수요를 해결하기 위한 플랫폼

필자가 만든 ‘채식한끼’ 플랫폼은 국내에서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는 동시에 플렉시테리언 시장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자 역시 군대에서 환경운동가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채식을 지향하게 된 지 어언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환경, 동물, 건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채식을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실천하기 시작했지만 전역 이후 대학 생활과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불편함을 몸소 느꼈다. 여의치 않을 땐 식사를 거르기도 했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고 높은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싶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한 과제는 ‘점심 식사’ 문제의 해결이었다. 채식 비즈니스에 뛰어들기 전 게임회사에 재직했는데 당시에는 회사 동료들에게 고기 알레르기가 있다고 둘러대고 채식 메뉴가 나오는 식당을 찾곤 했다. 이렇게 양해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메뉴 선정이 쉽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부터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매주 모임을 열어 채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 채식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다. 300∼400명 정도 만나보니 대략 감이 왔다. 채식을 선택했을 때 가장 힘든 것이 물리적으로 점심시간에 채식 식당을 찾아다닐 여건이 안 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문제를 플랫폼에서 풀어 보기로 했다. 게임회사에 근무하면서 플랫폼의 힘을 느꼈던 것도 이런 접근에 영향을 미쳤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생활 반경 안에 ‘채식 메뉴를 만들어주는 단골 가게’를 찾아 놓는다. 채식 메뉴로 처음부터 의도하고 조리하지는 않았더라도 최대한 채식에 가까운 메뉴를 주문하면서 몇 가지 재료를 더 빼 줄 수 있는지를 요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골 가게 정보를 모은다면 새로운 지역을 가더라도 매번 번거롭게 식당을 발굴하지 않고도 채식 메뉴(혹은 채식에 가까운 메뉴)를 선택하기 수월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채식한끼’ 앱이다. 이 앱은 채식 메뉴가 있는 식당 정보를 제공한다. 채식 전문점 정보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 식당의 채식 메뉴(혹은 채식에 가까운 메뉴) 정보까지 수집하고 있다. 전문점은 그 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일반 식당의 채식에 가까운 메뉴까지 모두 한데 모아야 그때그때 외식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고 타협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필자가 식당 하나하나 직접 발품 팔아 찾아다니고 주문하면서 채식 메뉴를 요청해 특정 재료를 빼 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승낙해준 식당들을 등록해 나갔다. 이렇게 차츰 식당 숫자를 늘려 약 300∼400여 곳의 정보를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팔로워 수가 3만5000명대로 늘어났다. 실수요를 확인하고 모바일 앱을 구축하자 사용자들이 모여들었고, 사용자가 직접 새로운 식당을 제보하기 시작하면서 데이터베이스는 더욱 빠르게 불어났다. 그렇게 현재까지 약 4500여 개의 식당이 등록돼 있다.

채식 식당 정보를 수집하는 데 이어 시도한 것은 채식 상품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점심 식사 문제는 단지 식당을 아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다. 생활권 주변에 등록된 식당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국의 음식점 수를 50만6437개(2018년 기준), 한국 인구를 5200만 명이라고 봤을 때 인구 100명당 1개의 음식점이 있다. 그런데 채식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 식당의 수를 4500개로 놓고 한국의 채식 지향 인구를 250만 명이라고 가정하면 인구 555명당 1개의 음식점 정도밖에 없다. 더욱이 채식 메뉴가 가능한 대부분의 식당이 서울에 집중돼 있고 서울 내에서도 강남, 종로, 이태원, 마포 등 특정 지역에 쏠려 있다 보니 정작 내 일터나 집 주변에는 식당이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은 도시락을 싸서 회사나 학교에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도시락을 싸겠다는 선택을 하는 순간 채식 상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바로 성분표를 살펴보고 식물성 재료로만 구성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완전 식물식을 하는 비건이 아니라 락토(유제품은 허용), 오보(계란 등 알은 허용), 락토오보(유제품과 알은 허용), 페스코(해산물까지 허용)를 지향한다면 조금 더 편한 쇼핑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성분표에 나와 있지 않은 성분도 많고, 성분을 보고도 이것이 식물성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를 소비자가 일일이 확인하기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래서 채식한끼 몰은 이런 성분 확인 및 상품 테스트를 거친 상품을 소개함으로써 비건부터 채식에 처음 입문하는 플렉시테리언까지 다양한 수요층의 선택을 돕고 있다. 현재까지 상품기획자(MD)들이 사전에 성분을 모두 검토한 식물성 고기와 샐러드 등 순식물성 제품 200여 종이 입점돼 있다.

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쉽게 찾고 채식 상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리적인 장애물 제거에 초점을 맞췄다면 그다음 단계는 사회문화적인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정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채식주의자들은 선택권의 부재나 채식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인해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고 타인과 갈등을 빚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채식주의자들에겐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플랫폼의 또 다른 순기능은 채식 지향 인구를 연결함으로써 사회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 즉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채식한끼’ 앱이 환경, 동물, 건강에 대한 전문가들의 정보와 견해부터 나와 비슷한 채식 지향 인구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발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래퍼 ‘슬릭’, 방송인 ‘줄리안’ 등의 인플루언서가 채식주의자로 살면서 느끼는 솔직한 소회를 고백하며 많은 공감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불편함을 없애고 진입 장벽을 하나씩 허물다 보면 지금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이고도 더 많은 사람이, 더 자주 채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필자의 경험을 돌아보더라도 채식의 이로움을 설명하며 한번 시도하라고 권하고 싶어도 그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질 때가 많았다. 선택하기 어려운 것을 선택하라는 것은 강요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채식을 권할 때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흩어져 있는 채식 지향 인구를 연결하고 관련 상품과 서비스가 한곳에 모일 수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이유다.

새로운 선택지와 대안을 제시하는 길

채식 지향 인구의 증가는 미국 등에서 두드러진 현상이긴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확대될 것이다. 이때 비즈니스 관점에서 채식 시장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단순히 ‘채식 지향성’, 즉 비건이냐, 아니냐 등으로 타깃을 구분하기보다는 채식을 선택하는 ‘목적’을 기준으로 나누는 게 목적 적합한 결과를 얻는 데 훨씬 유용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소비자 A, B, C가 있을 때 A는 동물 권리를 위해 비건을 지향하고, B는 환경보호를 위해 비건을 지향하고, C는 건강 관리를 위해 비건을 지향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은 모두 채식을 선택했지만 구체적인 목적이 다 다르기 때문에 상품 구성과 메시지를 세분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물권을 중시하는 A를 위한 상품을 개발, 판매할 때는 비건 인증 마크를 잘 보이게 하는 동시에 성분에 있어 동물의 노동력을 활용하지 않았고,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료를 사용했으며, 동물 실험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좋다. 환경을 생각하는 B를 위해서는 상품의 포장재를 친환경을 쓰고,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인 상품을 만들고, 배송 과정에서까지 친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 B는 배송 단계를 없애기 위해 온라인 쇼핑을 하기보다는 직접 매장에 가서 구매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유통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비건을 지향하는 C를 위해서는 이 상품이 어떤 성분으로 인해서 건강 개선 효과가 있는지를 주요 메시지로 사용하면 좋다. 물론 일반화하긴 힘들지만 환경과 동물을 위한 비건 지향인 A, B는 20∼30대일 확률이 높고 건강을 위해 비건 지향인 C는 40대 이상일 확률이 높다.

만약에 이런 C를 잠재 고객으로 겨냥한다면 헬스케어 시장과 연결하는 것이 하나의 접근이 될 수 있다. 채식은 헬스케어에 굉장히 적합한 식단이다. 당뇨 등 성인병과 환자식 등 관리식으로도 알맞다. 또 사람들이 체중 조절 목적으로 채식을 찾기도 한다. 자연식물식 다이어트는 다양한 SNS 콘텐츠에 소개되면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런 콘텐츠들을 보면 자연식물식 다이어트 과정에서 체중 조절 이외에 다양한 건강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는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피부가 좋아지고, 장 트러블이 줄고, 피로감도 완화됐다는 것이 대표적인 후기다. 이런 효과는 자연식물식이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나타난다. 육류에 비해 소화가 잘되고 식이섬유가 많은 식단이다 보니 여러 건강 문제가 개선되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이 처음 채식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경위는 다양하기 때문에 타깃을 세분화하는 접근이 유용할 수 있다. 다만 채식에 한 번 관심을 가지게 되면 환경, 동물, 건강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점차적으로 세 가지 가치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따라 궁극적으로 채식 비즈니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사람들의 ‘목적’이 무엇이 됐든 채식이라는 ‘수단’을 더 편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채식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한 목적도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필자도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음식을 선택할 때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육류가 포함된 식단 내에서의 선택권이었다. 한 번도 채식이라는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이에 따라 필자처럼 양쪽의 선택지가 모두 주어졌을 때 채식을 선택할 사람들을 위해 채식의 이로움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고, 채식을 쉽고 간편하게 시도해볼 수 있도록 돕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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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

채식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채식을 원하는 인구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상품을 큐레이션함으로써 이런 선택권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순기능을 가진다. 물론 채식 식당 데이터, 채식 레서피 등만 가지고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거나 수익을 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공급과 수요를 연결하고 양쪽 모두에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충분히 수익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 ‘채식한끼’ 앱의 목표 역시 채식 식당과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만한 모델을 선보임으로써 채식 식당이나 일반 식당의 채식 메뉴가 더 늘어나게 하고 소비자들의 채식 선택 빈도도 늘리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접근 방식을 시도해볼 계획이다.

첫 번째는 식당을 대상으로 B2B(기업 대 기업) 상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채식 식당은 소규모로 운영되기 때문에 새로운 원재료를 테스트하고 메뉴를 개발하는 데 시간을 쏟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채식 신상품을 취급하고 있는 플랫폼이 식당에 좋은 상품을 선별해주거나 샘플을 공급하면 이 같은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다. 더불어 앱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인기 메뉴 등의 정보도 식당에 전달해 신메뉴 개발과 신상품 판매를 도울 수 있다. 두 번째는 채식 식당의 메뉴를 쿠폰 형태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식당 입장에서는 한가한 시간대에 할인율이 높은 쿠폰을 만들어 판매하면 고객을 유치할 수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할인된 가격으로 식당의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채식 플랫폼은 채식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와 넓은 접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이런 쿠폰을 판매하고 알리는 창구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채식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주로 채식 식당에서는 채식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진행되는데 플랫폼이 이런 모임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커뮤니티의 주목적이 수익 창출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플랫폼이 만남의 장으로서 성장하면 이 만남을 계기로 고객들이 채식 식당에 더 많이 방문할 수도 있고 새로 채식을 시도하는 인구가 유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전히 시장에는 채식 상품의 수가 워낙 적고, 식당에서 고를 수 있는 메뉴의 수도 적다. 하지만 채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구축하는 플랫폼의 이용자 숫자로 보여주려 한다. 플랫폼이 커지다 보면 시장에서도 이 소비자들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고 물리적인 인프라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스스로를 플렉시테리언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30% 선까지 올라가는 날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박상진 비욘드넥스트 대표 sjpark@beyondnext.net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경영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넥슨코리아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모바일 게임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그러다 2017년 본인이 채식을 하면서 경험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 ‘비욘드넥스트’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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