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대학에서 총장, 교수, 직원 사이에 학교 발전안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한 발제자가 이슈를 제기했다. “우리 학교의 조직과 운영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중 어디에 더 가까워야 할까요?”
토론 참가자들의 의견은 극명하게 반으로 나뉘었다. 한쪽은 “대학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 아니고 정부 기관과의 협조도 생각해야 하므로 공공기관의 조직 형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쪽은 “비록 학교가 사기업은 아니지만 조직과 운영만큼은 민간기업의 경쟁 마인드를 도입해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맞섰다.
논쟁은 총장의 말 한마디로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우리 학교의 조직과 운영은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고, 이들을 더욱 우수한 인재로 육성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면 됩니다. 굳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모델 사이에서 하나를 택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당신의 고객은 누구인가
이 이야기는 필자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잊기 쉬운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줬다. 조직의 구조와 가치, 문화, 운영방식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조직이 존재하는 목표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고객’이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고객 중심의 구조와 가치 및 운영방식을 추구하다 보면 이런 것들은 다른 조직이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자산, 즉 경쟁우위가 된다. 경쟁우위는 자신의 고객을 지키고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유용한 무기가 된다.
앞의 토론 사례에서 공공형 조직을 주장하는 쪽은 대학의 궁극적 고객인 학생과 사회보다 교직원과 주무부처를 먼저 생각한 측면이 있다. 반면에 민간기업형 조직을 주장한 쪽은 효율화로 학생과 사회가 이익을 볼 것이란 인식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공공성 추구는 비합리적’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양쪽은 대학의 고객과 목표를 무시한 채 논쟁을 벌였다고 할 수 있다.
‘고객’ 빠진 공기업 민영화 논쟁
최근 공기업의 민영화와 선진화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그러나 관련 논쟁이 대부분 정치적 방향으로 흐르고, ‘공공성’ 또는 ‘공익성’과 ‘효율성’ 또는 ‘수익성’을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게다가 실제로 민영화의 수혜 또는 피해를 볼 ‘고객’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당연히 정치적이고 극단적인 논쟁보다 해당 조직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고객들이 앞으로 더 큰 가치를 향유하도록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특정 조직이 독점하고 있는 분야를 민영화해 경쟁을 활성화하고, 고객에게 좀 더 나은 서비스를 더욱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민영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특정 공기업에 존재하는 낭비요소를 없애 동일 품질의 서비스를 더 적은 국민 부담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이 역시 그 어떤 반대논리를 무릅쓰고라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민영화 결과가 선의의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아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거나 고객이 기존에 향유하던 가치가 줄어들 경우 무리한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또 뚜렷한 결과, 즉 고객 가치의 향상으로 직결된다고 보기 어려운 맹목적 효율화는 오히려 해당 조직 구성원의 사기만 떨어뜨려 서비스의 질 저하라는 악순환을 불러올 뿐이다.
‘고객’과 ‘고객의 가치’는 조직간 통폐합 및 기능 조정에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개별 조직 기능이 중복되고 고객이 매우 유사한 경우에는 조직 통합을 통해 고객 비용을 줄일 수 있어 통합의 이점이 크다. 반면에 기능이 비슷하다 하더라도 고객층이 상이한 경우 물리적 통합이 고객 가치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필자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 미국 테네시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대우경제연구소와 앤더슨 비즈니스 컨설팅에서 국내 유수의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 조직 및 인사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다. 현재 인사·조직 전문 글로벌 컨설팅사인 머서의 한국지사 대표로 재직하고 있으며, 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M&A 시 인사·조직 통합전략, 글로벌 조직운영 전략 등에 대한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