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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메타버스(metaverse)는 HRD에 날개를 달다

부캐를 통해 더 활발한 배움 가능해져
메타버스에선 모두가 배움의 크리에이터

김상균 | 314호 (2021년 0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최근 메타버스(metaverse)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메타버스와 기업 HRD와의 연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메타버스를 활용하면 단순히 들어서 배우는 방식이 아닌, 가상 세계에서 체험을 통해 직접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메타버스를 HRD에 접목할 때 그 시작은 학습 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새로움과 낯섦에 압도돼 무조건적으로 접목해보려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탑승구를 향한 채 모두 고개를 떨구고 있다. 눈은 일제히 스마트폰에 꽂혀 있다. 지하철에 올라타고 자리를 찾는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좀 전의 모습대로 스마트폰만을 바라본다. 어떤 이는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온라인 공개 수업)를 통해 유럽 대학교수로부터 수업을 듣고 있고, 어떤 이는 롤플레잉게임에 접속해서 호주에 있는 이들과 전쟁을 치르고, 어떤 이는 소셜미디어에서 수많은 이들과 삶의 기록을 공유하고, 어떤 이는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방탈출 게임에 빠져 있다. 필자는 이런 모습을 보면 PC방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지하철은 어쩌면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스마트폰방’이다. 지하철을 타면서는 스마트폰을 통해 새로운 메타버스(metaverse)1 에 도착하고, 지하철에서 내리면 새로운 물리적 공간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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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석, 비즈니스석, 그다음은?

국내에 최초로 인터넷이 들어온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지만 인터넷 보급이 가속화된 시점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인터넷이 교육에 미친 영향을 딱 잘라서 한 가지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필자는 ‘이러닝(e-learning)’으로 요약하고 싶다. 2020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공교육과 기업 교육 측면에서 가장 많이 활용한 게 바로 이러닝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스마트폰이 더해지면서 우리 삶은 급속도로 편리해졌다. 요즘 아이들은 MP3, 전자계산기, 만보기 등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그저 스마트폰 자체였다. 교육 측면에서 보면 컴퓨터가 없는 곳에서도 공간의 제약 없이 교육 콘텐츠를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교육 참가자 간 상호작용과 소셜러닝을 한 단계 끌어올린 점을 높게 평가한다.

필자는 이렇듯 교육 인프라, 방법을 큰 틀로 바꿔놓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비행기의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석에 각각 비유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주제인 메타버스는 무엇에 비유할까? 퍼스트클래스를 떠올렸을 수 있으나 필자는 메타버스가 우리의 교육 경험을 비행기에 그저 몸을 싣는 탑승객이 아닌 슈트만 입으면 직접 날 수 있는 아이언맨으로 바꿔 주리라 기대한다.

우리는 어느새 메타버스에서 살고 있다

메타버스란 단어는 이제 아주 낯설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메타버스는 작가 닐 스티븐슨이 1992년 발표한 SF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 등장하는 개념이다(Stephenson, 1992).2 지금으로 보면 가상현실 고글 같은 것을 끼고 접속하는 가상 세계를 소설에서 메타버스라고 지칭했다. 가상현실 고글을 통해 가상 세계에 접속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으로 우리에게는 2011년 발표된 소설을 원작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18년에 발표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더 익숙하기는 하지만 그 시작은 『스노우 크래쉬』였다.

『스노우 크래쉬』는 말 그대로 소설이기에 메타버스가 어떻게 구성돼 있고, 미래에 어떤 모습일까를 논하지는 않았다. 메타버스에 관한 국내외 글을 보면, 간혹 ‘메타버스는 그런 게 아니다’ ‘그게 메타버스가 맞냐?’는 식의 댓글이 붙는 경우가 있다. 스티븐슨이 그 단어를 세상에 내놓았지만 그 단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학술적, 산업적으로 깊게 논의되고 합의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메타버스는 초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메타버스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기에 메타버스를 하나의 고정된 개념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에 일상을 올리는 것,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회원이 되고 활동하는 것,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것, 이 모든 게 다 메타버스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기술 연구 단체인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세계, 라이프로깅(lifelogging)3 세계, 거울(mirror) 세계, 가상(virtual) 세계의 네 가지로 분류했다(Lopez, 2008). 4 필자의 견해로 현재까지는 ASF의 분류가 가장 적절해 보인다. 스마트폰 앱으로 포켓몬을 잡아 보거나 자동차 앞 유리에 길 안내 이미지가 나타나는 HUD(Head Up Display)를 사용해봤다면, 또는 스마트폰 앱으로 책에 있는 마커를 찍었더니 책 위에 움직이는 동물이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다면, 이미 증강현실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오늘 먹었던 음식 사진을 올리거나 페이스북에 최근에 읽었던 멋진 책의 커버를 찍어서 올렸다면, 또는 공부하는 모습이나 일하는 모습을 브이로그에 올렸다면, 라이프로깅 세계를 즐긴 것이다. 아이돌 팬 카페에 가입해서 활동하거나 화상회의 소프트웨어를 써서 원격수업이나 원격회의를 했다면, 또는 배달의민족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했다면, 거울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즐기는 온라인 게임을 해봤다면, 그게 바로 가상 세계이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낯설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에서 살고 있다. 다만 앞으로 다양한 메타버스가 우리 삶 곳곳에 더 깊게 들어오면서 그 비중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메타버스는 HRD를 어디로 데려갈까?

증강현실 세계, 라이프로깅 세계, 거울 세계, 가상 세계, 이런 네 가지 메타버스는 HRD (Human Resource Development)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필자는 이를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눠서 제시해본다. 첫째, 배움에도 부캐와 아바타(avatar)가 널리 쓰인다. 배우는 과정에서 학습자를 움츠리게 만들었던 심리적 부담감을 낮춰주고, 자유로운 다양성을 보장한다. 둘째, 귀로 들어서 배우는 방식이 몸으로 경험해서 배우는 방식으로 대폭 바뀐다. 배움을 일으키는 경험을 만드는 공간을 메타버스 안에 물리적 제약의 한계를 넘어서서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다. 셋째, 배움에 존재했던 벽, 구분이 사라진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구분이 흐려져서 모두가 배우고 동시에 모두가 가르치는 형태로 변화한다. 배우는 시기와 안 배우는 시기의 구분이 흐려져서 일상의 활동이나 업무가 모두 배움과 끊김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세 가지를 상세히 살펴보자.

변화 1: 배움에는 부캐가 딱이다.

2020년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부캐였다. 부캐는 게임에서 사용되던 용어인데 본래 사용하는 캐릭터 외에 별도로 만든 보조 캐릭터를 의미한다. 이런 부캐를 메타버스 세계관으로 교육에 활용하면 학습자의 새로운 면을 끄집어낼 수 있다.

필자는 매년 한두 차례 우리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민 콘서트’라는 특강을 2시간 진행한다. 이 특강에는 보통 200∼3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참여한다. 첫해에 특강을 했을 때는 강의 시작 후 10분 정도 오프닝 인사를 한 후에 학생들에게 고민거리가 있으면 말해보라고, 질문하라고 했다. TV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연예인, 종교인 등이 나와서 현장에서 바로 묻고 답하는 식으로 강연을 진행하고자 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 많은 학생 중에서 입을 여는 친구가 없었다. 두 번째 강연부터는 강당 앞쪽 대형 화면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올려놓고, 접속하고 싶은 학생들은 들어오라고 했다. 실명 말고 닉네임으로 들어와서 갖고 있는 고민을 올려보라고 했다. 닉네임은 가급적 자신의 개성,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도 정하게 했다. 이렇게 해보니 필자가 했던 여러 번의 이런 특강에서 대략 40∼50개의 고민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2020년에는 이 특강을 유튜브로 했다. 학생들이 닉네임으로 접속하고 채팅창에 고민을 올려주면 답변했다. 그런데 대강당에 물리적으로 모인 상태에서 오픈채팅방을 통해 소통할 때와 물리적으로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유튜브 채팅창으로 소통할 때, 학생들이 더 활발하게 소통에 참여한 것은 유튜브 채팅창이었다. 어떤 고민거리에 필자가 답변하고 있으면, 함께 의견을 채팅창에 올려주거나, 그 고민에 관한 추가적인 질문을 올리기도 했다. 강의실에서보다 좀 더 익살스러운 댓글도 많이 올라왔다. 10년 넘게 교수 생활을 해오며 강의실에서 필자가 매년 만났던 학생들의 일반적 특성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강의실 오픈채팅방과 유튜브 채팅창에서 만난 두 집단의 학생은 꽤 다르게 느껴졌다. 유튜브 채팅창 속 학생들이 보여준 그들의 부캐는 훨씬 더 외향적이고 적극적이었다.

이런 현상은 학습자들이 2D, 3D의 시각적 아바타로 나타날 때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아바타를 괴상하게 꾸며서 본래 모습을 너무 숨기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학습자들이 서로 교감하는 데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바타를 만들 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본래 개성을 잘 담을 수 있게 만들고, 상대방은 그런 아바타를 보고서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마치 현실 세계에서 첫인상으로 어느 정도 가늠하듯이 상대를 인식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Fong et al., 2015).5

학습자만 부캐, 아바타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자도 부캐를 통해 좀 더 편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 익살스러운 느낌으로 학습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통해 실제 사람이 아닌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이 메타버스 안에서 교수자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기도 한다. 규모가 큰 플랫폼은 아니지만 공개된 사례를 한 가지 살펴보자. 독일에서는 의료진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디지털 휴먼 방식을 적용했다(Monteiro & Pfeiffer, 2020).6 아마존의 수메리안(Sumerian) 서비스를 기반으로 개발된 케이스다. 아마존 수메리안 서비스는 프로그래밍 기술이 없는 사용자도 증강현실, 가상현실 구현을 위한 장면들을 손쉽게 만들 수 있게 지원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아마존 렉스(Lex)라는 인공지능 기반의 챗봇, 아마존 폴리(Polly)라는 음성 합성 솔루션을 사용했으며, 보다 정확한 대화를 구현하기 위해 윗트닷에이아이(Wit.ai)라는 무료 자연어 처리 인터페이스를 사용했다. 또한 가상현실 속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퓨즈(Fuse)를 사용했고, 가상현실 캐릭터의 애니메이션 구현을 위해 믹사모(Mixamo)를 활용했다.

학습자와 교수자가 부캐, 아바타, 디지털 휴먼 등으로 바뀌는 현상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대신해서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 안에 숨어 있던 다양성을 자유롭게 꺼내놓고 학습에 빠져들게 유도하는 장치로 여기면 좋겠다. 배움의 메타버스에는 자유로운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변화 2: 배움은 듣기가 아니라 경험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리니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같은 대규모 롤플레잉게임, 심시티, 심즈와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을 떠올려보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게임 캐릭터를 이리저리 조정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게임 속 캐릭터, 주인공에게 동화돼 있다. 화면 속에 보이는 캐릭터가 3D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더라도, 게임 속 상황이 현실에서 내가 겪을법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 상황에 빠져든다. 이게 게임의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 가진 힘이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대규모 롤플레잉 게임인데 2005년 9월13일 게임 속 세계에 큰 문제가 터졌다(김상균, 2020).7 학카르라는 괴물이 등장했는데, 이 괴물은 일정 지역에 들어간 사용자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병에 걸리게 하는 캐릭터였다. 병에 걸리면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력이 떨어지고 끝내 사용자는 죽게 된다. 다행인 점은 일정 지역 내에서만 퍼지는 바이러스여서 해당 지역을 벗어나면 자연스레 병이 나았다. 그런데 학카르가 있는 지역에 자신의 동물을 데려갔던 사용자가 그 지역을 벗어나도 동물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자연치료가 되지 않았다. 일종의 버그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사냥꾼이 데리고 있던 동물의 바이러스가 대도시에 살고 있는 다른 사용자 또는 NPC(Non-Player Character, 게임 속 세계관과 스토리에 필요한 등장인물이며 사람이 조정하지 않고 컴퓨터의 알고리즘이나 인공지능에 의해 움직이는 캐릭터)를 감염시켰다.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게임 세계는 큰 혼란에 빠졌지만 게임 속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을 맡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료사 직업을 가진 이들은 감염된 다른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주기 시작했으며 일부 사용자들은 자체적으로 민병대를 구성해 감염자가 많은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리지 않도록 유도했다. 또한 감염자가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그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나쁜 행동을 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사람들을 일부러 감염지역으로 유도하거나,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알면서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기도 했으며, 아무런 효과가 없는 물약을 전염병 치료제라고 속여서 팔아치우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전염병 연구자 발리커에 의해 가상 세계 속에서의 전염병 발생과 확산이라는 주제로 「Epidemiology」라는 의학 저널에 실리고, BBC 뉴스를 포함한 여러 매체에 소개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전염병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 블리자드 측에 이 사건에 관한 기록들을 넘겨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사건은 2020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속에서 우리 사회가 보여준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 또다시 다가올지 모르는 다른 유형의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학카르 사건을 재현해 여러 사람이 게임 속 메타버스에서 상호작용하며 문제를 풀어보는 훈련을 한다면 어떨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디브리핑한다면 배우는 바가 크리라 생각한다.

강사, 교육장, 책상 등으로 상징되는 전통 교육은 학습자가 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이런 방식이 나쁘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때로는 듣기보다는 몸으로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효과적인 부분이 많다. 그러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학카르 사건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구현해서 훈련하려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야 하고, 운영 과정에서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모아서 분석하기도 어렵다. 그런 교육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디지털로 구현된 메타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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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젊은 층에 핫한 플랫폼인 제페토를 살펴보자. 제페토는 증강현실에 라이프로깅과 가상 세계를 합친 플랫폼이다. 제페토 서비스는 2018년 8월에 시작해 2020년 10월 기준으로 누적 가입자 1억8000만 명을 돌파했고, 이 중 해외 이용자 비중이 90%에 달한다. 제페토는 매우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경험 학습과 관련된 두 부분만 살펴본다. 첫째, 제페토는 3D 기술과 증강현실을 접목한 강력한 아바타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바타는 온라인 환경에서 나를 대신해주는 분신, 캐릭터를 의미한다. 제페토에서 사용자는 [그림 1]과 같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3D 아바타를 가지고,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고, 다른 사용자들과 가상 세계에서 소통한다.

둘째, 아바타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과 이벤트 공간을 사용자가 직접 제작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 형태의 소통이 비실시간, 1대 N의 방식이었다면 게임과 이벤트 공간을 통해 여러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소그룹, 1대1 소통을 하도록 경험을 확장해주고 있다. 사용자들은 이러한 기능을 활용해서 아늑한 카페, 방탈출 게임, 낚시터, 지하철역 등 매우 다양한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그들만의 소통과 놀이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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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있는 학교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학교에 와보지 못한 20학번 신입생들을 위해 제페토 메타버스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그림 2) 필자의 수업에서 학부생들이 프로젝트로 개발한 콘텐츠인데 강원대 캠퍼스의 일부를 제페토 안에 만들었다. 신입생들이 제페토를 통해 맵에 들어와서 선배들의 안내에 따라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상호작용하면서 학교에 관한 정보를 얻고 동급생, 선배들과 팀 빌딩 과정을 경험했다. 맵을 설계하고, 콘텐츠를 운영하는 과정은 필요했지만 메타버스라고 해서 엄청난 난도의 프로그래밍, 하이테크가 개발 과정에 필요하지는 않았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경험 기반 학습을 진행하다 보면 간혹 이런 비판이 들려온다.

“이건, 공부하는 게 아니라 노는 게 아닌가요?”

곁에서 얼핏 보면 노는 거라 여길 수 있다. 마치 게임 같은 배경 화면, 캐릭터, 흥분하고 몰입한 학습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공부하는 학습자보다는 PC방에서 즐겁게 게임을 즐기는 이들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뭐가 문제일까? 노는 게 공부가 된다면, 놀면서 배움을 만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본다.

변화 3: 모두가 언제나 배움의 크리에이터다.

전통적인 교육 환경에서 강사와 학습자의 역할은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대다수 조직의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보면 HRD 담당자와 강사가 동영상이나 각종 아티클을 플랫폼에 올려 두면 학습자는 이를 받아서 학습하는 방식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했다면 모두 느끼겠지만 현업에 도움이 되는 깨달음과 지식을 동료를 통해 얻는 경우가 흔하다. 전달받은 의견이나 지식이 깔끔하게 가공되지는 않았더라도, 교육학적 교수법의 패러다임에 맞춰 전달되지는 않았더라도, 살아 있는 배움이라고 느끼는 가르침을 동료로부터 받는 경우가 많다. 메타버스는 이런 현상을 가속한다. 변화 1에서 언급한 부캐를 통해 현실보다 한결 편한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고, 변화 2에서 설명한 경험의 공간을 통해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소셜 애너노테이션 도구인 WASP(web anno-tation and sharing platform, 웹 기반 애너테이션 & 공유 플랫폼)이 협력 학습에 미친 영향에 관한 실험을 살펴보자(Chan & Pow, 2020). 8 실험에서 학습자들은 소셜 애너테이션 도구를 활용해 즐겨 찾기, 강조, 주석 달기, 공유, 토론, 협업 등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교수자는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개입하고 모든 학습은 기본적으로 학습자들 간의 동료 학습으로 진행했다. 이 연구에는 총 452명의 대학생이 참여했다. 소셜 애너테이션 학습의 효과를 판단하기 위해 연구팀은 설문, 로그 파일, 인터뷰 등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소셜 애너테이션은 학습자들이 탐구 질문을 찾고 정보를 검색하는 초기 단계에 도움을 줬으며 협력적 학습에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실험에서는 학습자들이 강사가 설명해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강사가 다시 설명하기보다는 학습자를 그룹으로 나누고, 그룹 내에서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학습자가 다른 학습자에게 설명하는 방법이 내용 전달에 더 효과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두 실험을 종합해보면 강사 혼자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학습자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설명이 좀 어렵다면 라이프로깅 메타버스인 각종 소셜미디어를 떠올려보자. 필자의 경우는 페이스북을 주로 사용한다.(그림 3) 초기에는 그저 인맥을 늘리고, 지인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도구로 생각했으나 지금은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용도가 명확하다. 필자의 페이스북에는 꽤 많은 친구가 있다. 필자와 연결된 이들은 대부분 HRD, 공교육, 스타트업, 빅테크 관련 종사자들이다. 이들이 올려주는 각종 최신 뉴스, 업계 소식, 의견 등은 필자에게 늘 큰 가르침을 준다. 물론, 이런 관계가 지속하도록 필자도 좋은 정보와 의견을 나누고자 나름 노력한다. 필자처럼 소셜미디어를 배움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나뉘어 있지 않다. 모두가 가르치며, 모두가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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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여러 기업의 임원, HRD 담당자들이 필자에게 한 질문이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퇴근 후에는 여러 소셜미디어에 열심히 자기 노하우를 공개하고, 다른 이들에게 댓글도 달면서 토론을 잘하는데, 왜 회사 내부 플랫폼에서는 입을 꽉 다물고 있을까요?”

사용자들이 넘쳐나는 소셜미디어에는 공통적 인 특징이 있다. 인간의 세 가지 욕망인 자극(새로운 업무, 지식, 사람 등을 탐구하려는 마음), 지배(상대적, 절대적으로 더 많은 성취를 이루려는 마음), 균형(자극과 도전의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마음)을 잘 맞춰주고 있다. 메타버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내의 업무 포털, 학습 관련 게시판 등이 이런 자극, 지배, 균형을 꿈꾸는 구성원들의 마음을 잘 만족시키고 있을까? 해답은 앞서 설명한 변화 1, 2에 있다. 변화 1에서 언급한 부캐를 통해 현실보다 한결 편한 모습으로 서로 소통하고, 변화 2에서 설명한 경험의 공간을 통해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나눌 기회를 늘려줘야 한다. 앞서 질문과 함께 꼭 따라붙는 질문이 한 가지 더 있다.

“업무 시간 중엔 교육을 보내줘도 시큰둥해하면서 왜 자기 시간을 쪼개서 소셜미디어에 노하우와 의견을 공유할까요?”

HRD가 메타버스에 온전히 도달한다면 ‘교육을 보내준다’는 표현은 사라질 것이다. 특정 공간에 가서 짜인 일정에 맞춰서 참여하는 교육은 점차 사라진다. 오후에 짬을 내서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저녁 뉴스를 보다 말고 자신의 피드에 붙은 다른 이의 댓글을 읽고 무언가를 깨닫고, 자기 전에 다시 그 댓글에 관련된 추가 정보를 나눠주고, 다음 날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서 그 정보에 붙은 또 다른 이의 새로운 정보를 다운받아서 읽어보는 순환구조. 이미 이런 순환구조를 경험하는 이들이 많다. 메타버스는 이런 순환구조를 조직 내에도 활성화할 수 있다. 이런 순환구조가 조직 내에 활성화되면 배움은 일상이 된다. 배움은 다음 주에 1박 2일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발생하게 된다. 요컨대, 메타버스에서는 모두가, 언제나 배움의 크리에이터로 살아간다.

그럼, 이제 가상현실에 투자하면 될까?

메타버스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HRD 담당자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

“메타버스를 우리 회사의 HRD에 접목하고 싶은데 어떤 부서가 주관하는 게 좋을까요?”

IT 부서 담당자가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으나 HRD에 메타버스를 접목하는 프로젝트를 IT 부서가 주관하면 망한다. HRD 프로젝트임에도 HRD 담당자가 앞서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상황은 이해한다. 메타버스는 기존의 그 어떤 교육 방식, 에듀테크보다 더 기술적 냄새가 짙게 풍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HRD 파트가 가진 IT에 관한 이해도를 가지고 이 험난한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순탄히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설 테다.

교육학적 관점에서 좀 낯선 이야기, 처음 보는 그림일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HRD에 메타버스를 접목하는 작업을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배움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하기를 바란다. [그림 4]를 보자(김진우, 2017).9 그림에서 전략은 서비스가 아키텍처와 모델을 통해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전체 경험, 목적, 비전 등을 의미한다. 모델은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와 어떤 가치를 주고받는가를 의미한다. 아키텍처는 사용자와의 접점을 제공하기 위해 구축한 시스템을 의미한다. 마지막 접점은 사용자가 서비스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접하는 모든 지점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장소, 공간, 웹사이트 정보, 대면 소통 등이 모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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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HRD와 메타버스의 관점으로 조금 바꿔보면 [그림 5]와 같다. HRD에 메타버스를 접목하는 프로젝트의 목적은 학습자에게 메타버스를 통해 새로운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다. 핵심은 IT가 아니라 학습자의 상호작용, 경험 설계에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젝트 소요 기간, 비용의 문제 때문에 새로운 플랫폼을 입맛에 맞게 제작하기보다는 기존의 상용, 공개용 플랫폼을 활용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그런 플랫폼을 기술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있는 IT 담당자의 도움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IT는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여러 IT 요소들, 특히 현란한 디바이스와 처음 보는 신기한 앱, 플랫폼을 핵심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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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같은 가상현실을 당장 구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얼마 전 출시한 오큘러스 퀘스트210 의 성능과 가격이 전작보다 놀랄 만큼 좋아졌지만 아직 영화 속 상황을 구현할 수준은 아니다. 서너 시간 지속하는 교육을 가상현실 고글을 쓰고 받을 상황은 아니다. 오큘러스 퀘스트2가 매우 좋아지기는 했으나 단적으로 보면 필자의 경우 한 시간 정도 사용하면 여전히 현기증이 나며, 고글의 무게 때문에 목도 아프기 시작한다. 이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가 올해 중에 ‘HRD +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기술적 측면에서 아직은 가상현실의 비중을 그리 높게 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앞서 언급한 증강현실 세계, 라이프로깅 세계, 거울 세계, 가상 세계 중에서 가상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꼭 가상현실 고글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가상 세계가 다른 세 가지 유형의 메타버스에 비해 교육에 더 효율적인 것도 아니다.

늘 그렇듯이 HRD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 목표이고, 그 학습 목표를 학습자가 이룰 수 있게 어떤 학습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메타버스는 그런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세계다. 새로운 세계인 만큼 기존보다 더 다양하고, 깊고,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메타버스가 아무리 다양하고, 깊고,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 경험이 학습 목표와 무관하다면, 이는 새로운 놀이터에 불과하다. 메타버스의 새로움과 낯섦에 압도되지 말기 바란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이해해가면서, 메타버스를 천천히 HRD의 영역으로 끌고 오길 바란다. 무엇부터 시작할지 가늠하기 어렵다면 당장 스마트폰에 제페토를 깔고 당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보자.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수업에 활용하는 교사들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자. 로블록스를 설치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관찰해보자. 메타버스로 향하는 HRD 담당자, 여러분의 멋진 여정을 응원한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전공 교수 saviour@kangwon.ac.kr
필자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강원도인재개발원, 삼성인력개발원, 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 등 여러 조직의 HRD 관련 자문을 맡고 있다. 재미를 활용한 동기부여, 메타버스 사용자들의 상호작용과 몰입을 연구하며, 주요 저서로는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가르치지 말고 플레이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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