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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예측 말고 발견

김현진 | 288호 (2020년 1월 Issue 1)
“Retrospective Rationalization!”

평소 잘 쓰지 않던 이 영어 단어가 요즘 유난히 후크송처럼 머리를 맴돈다면 아마도 ‘동아비즈니스포럼 2019’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함께했던 분이 아니실까 싶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 당신의 전략을 재창조하라(Rebuild Your Strategy for Digital Transformation)’를 주제로 2019년 12월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동아비즈니스포럼에선 특히 대기업들이 갖기 쉬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오해, 그리고 이를 깨는 참신한 전략들이 대거 소개됐습니다.

특히 단상 위 아래를 오가며 청중과 열정적으로 호흡한 윌리엄 바넷 스탠퍼드대 교수는 ‘retrospective rationalization(사후합리화)’이란 단어를 구호처럼 외치며 한국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각인하려 애썼습니다. 바넷 교수의 이론은 이렇습니다.

“리더는 미래에 대해 예측하기를 요구받지만 인간은 본디 예측에는 형편없이 약하다. 하지만 사후에 합리화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다음에 무엇이 올지 예측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대신 ‘위대한 요소’가 될 아이디어를 ‘발견(discover)’하고, 그에 따라 전략을 수정해야 더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바넷 교수는 2003년 중국에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직접 만났을 때 “알리바바는 실패할 것”이라 대놓고 말했던 ‘흑역사’를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겁니다. 사실은 마윈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타오바오란 온라인 경매 플랫폼을 만든 것은 알리바바 고객을 이베이에 뺏기지 않기 위한 방어 전략이었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금융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 도입과 맞물려 의도치 않게 이용자가 급증했습니다. 마윈은 결제 서비스 도입이 ‘위대한 요소’가 될 것이란 사실을 ‘발견’했고 결국 이에 맞춰 전략을 재정립함으로써 알리바바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유구한 역사 속에 축적해온 기존의 체질을 바꿔야 하기에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이한 대기업의 혁신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문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종종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무조건 벤치마킹하기’에 나섭니다. 수닐 굽타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전략에 일침을 가합니다 “훌륭한 자산을 축적해온 대기업들이 비즈니스 전략을 수정하기 위해 핵심 역량을 버린다면 비즈니스의 엔진을 끄는 것과 같다”는 설명입니다.

기존 기업의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요. 기업별로 주력 제품, 전략, 특허기술 등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는 조직을 이끌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이선 퍼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대기업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무조건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부서를 만들고, DNA가 뭔가 달라 보이는 사람을 뽑는 것만으로 혁신의 단초를 삼는다면 핵심 역량을 충분히 갖춘 기존 직원들로 하여금 스스로 낙후됐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합니다. 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 많은 기업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적임자는 외부에서 영입한 디지털 전문가가 아니라 기술은 잘 몰라도 조직을 잘 이해하는 내부자였습니다. 디지털 기술로만 중무장한 ‘디지털 전사형 리더’에게는 기존 조직원들이 방어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전환은 비전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이끄는 협업과 변화관리가 더 큰 핵심입니다. 퍼 교수는 “조직을 잘 아는 베테랑 리더들을 잘 활용해야 조직의 역량과 디지털 역량을 성공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 큰 변혁의 흐름 속에서 나의 좌표와 역할은 무엇일지 점검해보는 기회를 마련하시길 바랍니다. 동아비즈니스포럼에 보여주신 큰 성원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김현진 편집장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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