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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혹시, 회의 때 혼자 말하지 않나요?

박영규 | 279호 (2019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말이란 풍파처럼 쉽게 흔들리는 속성을 지녔다. 단어 하나, 토씨 하나가 진의를 왜곡할 수도 있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언변이나 긴 문장이 아니라 말의 진정성이다. 말이 조금 어눌해도 진심이 담겨 있으면 상대의 심금을 울릴 수가 있다. 언행(言行)이 일치하는 리더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조직을 효과적으로 통솔할 수 있다. 회의 석상에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리더보다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짧은 말로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는 리더가 더 뛰어난 CCO(Chief Communication Officer)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인간은 바벨탑을 높게 쌓아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자 했다. 이러한 인간의 무모한 욕망을 좌절시키기 위해 신이 선택한 수단은 채찍이 아니라 언어의 교란이었다.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없었던 인간들은 우왕좌왕했고 결국 바벨탑 건설은 신의 뜻대로 무산됐다.

말의 힘은 채찍보다 강하다. 말은 존재의 집이기도 하고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말을 넘어서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말이 없으면 사회도, 문화도, 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 라캉의 표현을 빌리면 말이 없으면 무의식도 없다. 따라서 말이 없으면 인간은 꿈조차 꿀 수 없다.

언어를 사회적 소통의 수단으로 보는 구조주의자들의 견해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언어가 없으면 소통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카레(communicare)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됐다. 커뮤니카레는 ‘나누다, 교환하다, 공유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다. 소통은 구성원들의 생각과 아이디어, 정보를 교환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 수단이 말이다. 길이 막히면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끊어지듯이 말이 막히면 조직 내에서의 교류가 끊긴다. 교류가 끊긴 조직은 병이 들고 종국에는 시장에서 퇴출된다.

장자는 탁월한 언어철학자였다. 일찌감치 소통의 중요성을 간파한 장자는 우화를 통해서 말의 의미와 무게를 강조한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섭공자고가 초왕(楚王)의 사신으로 제나라에 가게 됐다. 섭공은 출발하기 전 스승을 찾아가 사신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조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릇 나라 사이의 국제관계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우에는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하고 먼 경우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제나라는 후자의 경우에 속하니 군주의 말을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자네의 임무가 매우 막중하다. 전하는 말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것은 양국의 군주가 동시에 기뻐할 말과 동시에 노여워할 말을 전하는 것이다. 양쪽이 모두 기뻐하는 말에는 필요 이상의 아첨과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고 양쪽이 모두 노여워하는 말에는 불가피하게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 섞이기 마련이다. 무릇 말이란 지나치면 거짓되기 쉽고, 거짓되면 소통이 막히게 되고, 소통이 막히면 말을 전하는 자가 화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옛 속담에 이르기를 ‘그대로의 실상을 전하고 과장하지 않으면 일신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 『장자』 ‘인간세’편.



국제관계에서 외교관의 자세를 언급하면서 장자는 특히 말의 의미와 무게에 방점을 찍고 있다. 공자의 입을 빌리고 있지만 사실은 장자 자신의 언어 철학을 드러낸 것이다.

비단 국제관계뿐만 아니라 정부나 기업, 학교와 같은 크고 작은 조직 내에서도 메신저의 역할은 중요하다. 직장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메신저다. 직원들은 CEO의 메신저이고, CEO는 직원들의 메신저다. 직장인들이 출근하자마자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부터 켜는 것은 조직 내 소통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업무시간의 75%를 커뮤니케이션에 소비한다. 소통 과정에서 어느 한 라인이라도 메신저가 정보를 왜곡하면 조직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장자가 갈파하고 있듯 조직이 건강하려면 각 라인의 메신저들이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위의 인용 문구에 이어지는 원문의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자.


“말은 바람에 이는 물결과 같은 것이며, 일은 말을 전하는 자의 태도와 화술에 따라 잘 풀리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 言者風波(언자풍파) 行者實喪(행자실상)”

- 『장자』 ‘인간세’편.


말이란 풍파처럼 쉽게 흔들리는 속성을 지녔다.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CEO나 담당자의 마음에 풍파를 일으키는 것은 교묘하게 상황을 비트는 말 한마디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격언처럼 단어 하나, 토씨 하나가 진의를 왜곡할 수도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

풍도(馮道)가 쓴 『설시(舌詩)』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누구라도 마음의 경구로 새길만 하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신체를 베는 칼이다.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풍도는 10세기 중엽 중국의 극심한 정치적 격변기에서 다섯 왕조(후당, 후진, 요, 후한, 후주) 동안 11명의 황제를 보좌한 재상이었다. 그의 입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하게 하는 이력이다.

조직을 춤추게 하고 조직 내 소통에 날개를 달아주는 말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장자』에서는 말의 진정성과 언행일치(言行一致), 간결하고 담백한 언어 리더십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는다.



“개가 잘 짓는다고 해서 훌륭한 개라고 말할 수 없듯이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해서 현명하다고 할 수는 없다. 狗不以善吠為良(구불이선폐위량) 人不以善言為賢(인불이선언위현)”

- 『장자』 ‘서무귀’편.


소쉬르가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말에는 생리적 요소와 물리적 요소, 심리적 요소의 세 가지가 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단어와 문장이 입에서 나와 상대의 귀로 전달되는 생리, 물리적 요소보다는 그것이 상대의 마음속에 수용되는 심리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언변이나 긴 문장이 아니라 말의 진정성이다. 말이 조금 어눌해도 진심이 담겨 있으면 상대의 심금을 울릴 수가 있다.

GE 회장을 지냈던 잭 웰치는 어린 시절 말이 어눌했다. 웰치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자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네 말이 느린 것이 아니라 네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야. 말을 잘하는 것보다는 말에다가 생각의 깊이와 진심을 담는 게 더 중요하단다.” 말이 어눌했던 잭 웰치를 전설적인 경영인으로 만든 것은 언어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준 어머니의 말 한마디였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으며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성인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다. 知者不言(지자불언) 言者不知(언자부지) 故聖人行(고성인행) 不言之教(불언지교)”

- 『장자』 ‘지북유’편.


2001년 미국 뉴욕의 9·11 테러 현장.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시민들 앞에 섰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뉴욕은 내일도 이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테러가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시민들은 그의 입이 아니라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사고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파괴된 건물 잔해 속을 헤집고 다니느라 줄리아니 시장의 얼굴은 시커먼 콘크리트 먼지로 범벅이 돼 있었다. 줄리아니의 말은 천금의 무게로 시민들의 가슴에 와 닿았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의 리더십 때문이었다. 언행(言行)이 일치하는 리더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조직을 효과적으로 통솔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말하느냐’가 수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리더의 말은 조직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대중들은 그를 믿지 않는다.


“큰 말은 담백하지만 작은 말은 수다스럽다. 大言淡淡(대언담담) 小言詹詹(소언첨첨)”

- 『장자』 ‘제물론’편.


말은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 품(品)자가 입 구(口)자 세 개로 구성돼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말에 품격이 있으면 긴말이 아니라 짧은 경구 하나로도 무거운 공기를 반전시킬 수가 있다. 회의 석상에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리더보다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짧은 말로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는 리더가 더 뛰어난 CCO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빅데이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데이터가 생산하는 인공 언어를 해석하고 조직 내에서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기계가 쏟아내는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압축해서 간결한 메시지로 표현할 수 있어야 조직을 효율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

공자는 자신의 저서를 주나라의 도서관(요즘으로 하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하기 위해 그곳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노자를 찾아갔다. 노자는 거절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공자는 자신의 저서 12권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주저리주저리 설명해 나갔다. 그러자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번잡하니 요점만 말하시오. 大謾(태만) 願聞其要(원문기요)” 『장자』 ‘천도’편에 나오는 우화다.

내공이 얕으면 말이 번잡해진다. 번잡한 말로는 빅데이터를 감당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을 경영의 조력자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과 함께 간결하고 담백한 언어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말을 보태는 능력이 아니라 말을 빼는 능력이다.


“지극한 말은 말을 버리는 것이고, 지극한 행위는 행위를 버리는 것이다. 至言去言(지언거언) 至爲去爲(지위거위)”

- 『장자』 ‘지북유’편.

필자소개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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