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 in Practice

패션회사가 개도국 여성에게, 왜 리더십 교육을 실시했을까?

232호 (2017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글로벌 패션 기업인 갭(Gap Inc.)은 비영리 연구단체인 ICRW(International Center for Research on Women)와 제휴를 맺고 개발한 PACE(Personal Advancement and Career Enhancement) 프로그램을 인도 등 개도국에 위치한 자사 생산 공장에서 2007년부터 운영 중이다. 개도국 협력업체 여성 인력의 리더십 함양에 초점을 둔 만큼 이 프로그램은 65∼80시간 동안 문제해결 방법, 의사결정 방법, 법률 및 재무 등에 관한 교육을 수강해야만 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짜여 있다. 총 8∼10개월 동안 고급 기술교육을 모두 받은 여성들에겐 관리자로 승진할 기회가 주어진다. 여성을 단순히 숙련 노동자로 만드는 데 초점을 두지 않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은 인재로 거듭나게 하는 게 PACE 프로그램의 목표다. 2012년부터 갭은 다른 회사가 운영하는 개도국 다른 공장에도 이 프로그램을 전파하고 있다. 오는 2020년까지 100만 명의 여성들이 PACE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프로그램 도입을 원하는 모든 기업에 무상으로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다.
 

의류업계에서 SPA(Special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자체상표 부착 유통)는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다. 유니클로, 자라, H&M 등 옷 자체도 관심사지만 자라의 창업자인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가 빌 게이츠를 제치고 2016년 세계 최고의 부호로 등극한 사실도 눈길을 끈다.

SPA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회사는 갭(Gap Inc.)이다. 196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탄생한 이 회사는 1986년에 세계 최초로 SPA 아이디어를 구현시킨 기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유니클로, 자라, H&M의 전 세계 시장공략이 워낙 거침없는 탓에 상대적으로 주춤해 보인다. 그래도 만만히 볼 회사는 아니다. 갭(Gap) 외에 바나나리퍼블릭(Banana Republic), 올드네이비(Old Navy) 등의 브랜드도 소유하고 있으며 2016년 매출액은 158억 달러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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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과 교육을 중시하는 갭(Gap Inc.)

갭은 ‘여성’과 ‘교육’이란 측면에서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다. 우선 여성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자. 갭의 창업자는 도널드 피셔(Donald Fisher)와 도리스 피셔(Doris Fisher) 부부다. 남편 혹은 아내 혼자가 아니라 부부가 함께 회사를 키워 왔다. 도리스 피셔는 미국을 움직이는 파워 비즈니스 우먼 중 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이 회사에는 ‘남녀평등’ 기업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돼 있다. 부사장급 이상 남녀 비율이 거의 50대50이다. 말로만 성 평등을 외치는 공허한 회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교육에 관한 관심도 남다르다. 창업자 도널드 피셔는 KIPP(Knowledge Is Power Program), TFA(Teach For America)처럼 미국의 열악한 공교육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자 하는 비영리기관에 많은 돈을 기부하거나 이사 직무를 수행해 왔다.

의류업체들에는 어떤 사회공헌이 매력적일까? 가치사슬을 살펴보자. 유명 의류업체는 대부분 협력업체가 생산을 맡고 있다. 협력업체의 생산 공장은 과거 중국이나 멕시코 중심에서 이제는 방글라데시, 아이티 등으로 이전하고 있다. 인건비 때문이다. 개도국으로 갈수록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낮다. 봉제공장의 80% 이상이 여성 근로자다. 따라서 현지 여성 인력들의 기술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훈련이나 교육 등을 통해 지원해 준다면 이는 의류업체의 품질 제고뿐 아니라 협력업체 입장에서도 여성들의 보다 나은 삶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유니클로의 예를 살펴보자. 이 회사에는 타쿠미(Takumi, 匠의 일본 발음)라고 불리는 그룹이 있다. 업계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을 지칭한다. 유니클로는 2000년부터 이들을 거래선 생산 공장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생산현장에서의 기술지도, 공정관리, 인재육성이 주된 목적이다. 이들이 해외 공장에서 기술을 지도한 만큼 그 공장의 기술 수준이 향상된다. 업계 특성상 유니클로 제품만을 생산하는 공장은 없다. 다른 여러 브랜드도 함께 생산한다. 따라서 그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든 브랜드의 기술력이 향상된다.



기술 교육 그 이상의 리더십 교육 ‘PACE’

하지만 기술 관련 교육이 다일까?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교육은 없을까? 평소 여성과 교육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던 갭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을 시도했다. 기술 교육도 필요하지만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보다 광범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시하기로 했다. 바로 여성들의 리더십을 키워주는 데 초점을 둔 PACE(Personal Advancement and Career Enhancement) 프로그램이다.

여성 권익 증진에 관심이 많은 비영리 연구단체인 ICRW(International Center for Research on Women)와의 제휴를 통해 개발된 PACE 프로그램은 인도 등 개도국에 위치한 갭의 주요 생산 공장들을 중심으로 2007년 도입됐다. 개도국 현지 여성 재봉사들에게 봉제 기술은 물론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게 프로그램의 주된 목표다. 핵심 취지에 맞게 프로그램 구성도 여느 기술훈련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65∼80시간으로 이뤄진 기본 과정을 통해 의사소통, 문제해결 방법, 의사결정 방법, 시간 및 스트레스 관리, 건강관리, 법률 및 재무에 대한 기본 교육, 성 평등에 관해 가르친다. 이 기본 과정을 이수해야만 고급 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

본인의 법정 휴가시간이나 개인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교육을 받다 보니 PACE 프로그램을 완전히 이수하는 데까지는 8∼10개월 정도 걸린다. 이렇게 고급 기술 교육까지 받고 나면 일반 근로자에서 관리자로 승진할 기회가 주어진다. 혼자 하던 일에서 다른 사람의 일까지 관리하고 그들을 교육해야 한다. 업무량이 늘어나지만 그만큼 급여도 많아지고 자부심도 커진다. 자부심이 커진 만큼 주변 사람에게 PACE 프로그램의 장점을 늘어놓는다. 본인이 직접 겪은 과정에 대한 설명이니 그만큼 진정성이 느껴지고 듣는 이의 귀가 솔깃해진다. 입소문을 거쳐 프로그램 참여자는 점차 증가한다.

교육 효과는 뛰어났다. 실제 PACE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인도와 베트남 현지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는 인도에서 단순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중학교까지만 마치고 입사했던 탓에 나의 장래나 미래의 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지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서서히 바뀌고 있는 나를 만났어요. 미래에 대해 생각했기 시작했고, 저축하기 위한 계좌도 개설했어요. 여러 가지 꿈이 생겨났죠. 이를 어떻게 하면 실현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어요. 이 프로그램을 수료한 뒤 저는 관리자로 승진했어요.” “저는 베트남 북부지역에서 태어났어요. 집안이 가난했던 탓에 교육은 중학교까지만 받았고, 이후에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짓다가 결혼했죠. 그러다 취직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이를 통해 저축하는 법을 배웠고, 3년간 노력해서 제 소유의 집을 갖게 됐어요. 다른 동료들과 협업하는 방법도 배워 지금은 100여 명의 인력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이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거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 열정을 심어주는 교육

갭이 PACE와 같은 독특한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개도국 현지 여성 근로자들의 생활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다. 여성 인력이 대부분인 공장에서 관리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는데, 그 이유는 여성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탓이었다. 갭의 최고경영진은 이러한 차별이 옳지 않다고 느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다면 여성 근로자도 충분히 남성만큼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해결책은 여성 근로자에 대한 교육이었다. ICRW와 파트너십을 맺고 PACE를 개발해 운영하고 있는 이유다.

흔히 교육이라고 하면 기술 훈련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갭의 PACE 프로그램은 이 수준을 뛰어넘는다. 즉, 여성을 단순히 숙련된 노동자로 만드는 데만 초점을 두지 않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게 목표다. 실제로 갭의 교육을 받은 여성 근로자 중에는 현지 관리자로 승진한 사례도 꽤 있다.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기회를 통해 더욱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면 회사에도 이익이다. PACE를 도입해 운영 중인 공장들이 이전보다 생산성은 높아지고 이직률이나 결근율은 낮아졌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갭은 2012년 PACE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는 자사 공장 근처에 있는 다른 회사 공장에도 이 프로그램을 전파했다. 반응이 괜찮았다. 2015년 9월에는 2020년까지 100만 명의 여성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발표했다. 100만 명이라면 적은 숫자가 아니다. 2017년 기준으로 기존 프로그램 수혜자는 5만 명 정도였다. 10년간 운영한 프로그램의 참여자보다 향후 4년간 운영할 프로그램의 참여자가 20배에 달한다. 참석 범위를 늘리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따라야 한다. 우선 프로그램의 도입을 원하는 모든 기업에 무상으로 커리큘럼을 제공하기로 했다. 어떻게 교육하는지 구체적인 방법까지 함께 전수하는 것은 물론이다. 아울러 지역사회의 13∼17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기로 했다.

2007년 인도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2017년 현재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요르단, 미얀마, 파키스탄 등 12개국으로 확산됐다. 10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갈 길이 먼 만큼 할 일도 많다. 행복한 고민이다.

대부분 회사가 매출과 이익 극대화를 기업의 최대 목표로 삼는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적정 수준의 매출과 이익을 달성했다면 재무적 가치만을 목표로 삼기보다 사회를 위해서도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특히 우리나라처럼 반(反)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는 갭처럼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업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바뀌기 위해선 먼저 기업들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신현암 前 삼성경제연구소 사회공헌연구실장 gowmi123@gmail.com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연구실장을 지냈다. 저서로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공저)> <잉잉?윈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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