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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철 머서코리아 대표 인터뷰

“사람 중심의 인사 관리 시스템 직무 중심으로 바꿔야 유연해져”

고승연 | 221호 (2017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4차 산업혁명과 구조적 저성장은 현재의 ‘극한 환경’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이러한 극한 환경에서 기업은 기존 ‘사람 중심의 인사’에서 ‘직무 중심의 인사’로 HR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직무 중심의 인사 시스템을 만들 때 내부 전문가를 확실히 파악해 ‘적합한 배치’를 할 수 있고 유연하게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한 환경에 걸맞은 ‘평상시적 평가 시스템’과 ‘효율화’는 이 같은 시스템 전환을 통해 가능하다.

인사부서는 예전처럼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직무와 인재의 ‘핏(fit)’을 판단하고, 필요한 직무에 필요한 인재를 배치하도록 도우며, 직원들이 역량 개발에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교육과 성과평가 툴을 개발하는 ‘인사 전문 컨설팅팀’으로 변화해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조규원(홍익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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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혁명의 시대’다. 증기기관 발명과 기계의 발달로 시작된 ‘산업혁명’, 바스티유 감옥 습격과 함께 구체제를 무너뜨렸던 ‘프랑스혁명(정치적 자유주의 혁명)’은 시기적으로 상당 부분 중첩돼 일어났고 위대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이를 ‘이중 혁명’이라 불렀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 어떤 정보화혁명, 모바일혁명보다 더 거대한 혁명의 흐름이 시작됐다. 인간을 넘어서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한 인공지능과 이를 가능하게 한 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가장 복합적이고 근본적이며 급격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혁명의 시대에는 언제나 ‘극도의 불확실성’이 함께한다. 2017년 1월 전미경제학회에서 “지금 세상이 불확실하다는 사실만 확실할 뿐 그 어느 것도 확실한 게 없다”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불확실성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미국 CNBC가 내놓고 있는 ‘글로벌 불확실성 지표(Global Uncertainty Index)’에 따르면 2016년은 지표를 제시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불확실성이 심한 해였다.1

혁명의 시대가 만들어내는 불확실성과 혼란은 동시에 ‘기회의 장’을 만들어낸다. 혁명의 시대, 극한 환경이 열어놓은 기회의 장에서 실제 기회를 만들어가는 건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데이터가 모든 걸 말하는 시대가 되더라도 결국 ‘사람’이다. ‘극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시대에 기업들이 조직을 변화시키고 직원을 교육하고 새로운 인재를 찾아나서는 건 혁명이 열어놓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HR의 문제는 단순한 관리와 교육의 문제가 아닌 ‘혁신과 생존’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DBR은 HR 전문가 박형철 머서코리아 한국 지사장 겸 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예전의 위기상황과 지금의 극한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며 “기존 위기는 ‘일시적’이었던 반면 현재는 극도의 불확실성과 구조적 저성장, 그리고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우리의 삶과 가치관이 바뀌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많은 기업인들이 현재의 경영 환경을 ‘극한 환경’이라고 보고 있다.
이 ‘극한 환경’이란 
무엇이며, 어떤 특징이 있는가?


‘극한 환경’을 구성하는 건 두 가지다. 첫째는 ‘4차 산업혁명’ ‘인더스트리 4.0’이다. 산업구조가 완전히 바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으로의 변화와 적응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렇게 적응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점에서 극한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현재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크게 절감하는 부분일 수 있는데 바로 ‘구조적 불황’이다. 절대 단기간에 회복되는 불황이 아니다. ‘단기적’ 혹은 ‘일시적’ 불황은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긴 것이고 그걸 해결하면 극복되는 것인데,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고성장을 지속해오다 2%대 성장에서 멈춰 있는 구조적 저성장이다. 이 두 가지가 함께 만들어내는 게 바로 대한민국 기업들이 처한 극한 환경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극한 환경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부분 레드오션에 속해 있는 한국의 제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위기 돌파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겠으나 산업구조는 그렇게 빨리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당분간 계속 극한 상황으로 기업이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6년 12월 기준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출산율, 연금제도 미비 등으로 제대로 소비할 여력이 없는 고령층의 급격한 증가, 생산 인구와 소비 인구 전체가 줄어드는 현상은 사실 매우 위험한 것인데 마땅히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은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이 쥐어 버린 상황이다. 웬만해선 우리가 주도권을 갖기가 어려운 지경이 됐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업의 입장에서 극한 환경이란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4차 산업혁명은 그나마 이런 극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주의할 점도 있다. 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는 기업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스템 등을 도입해 생산성을 극도로 높이자는 것인데 현재 사회적 분위기로 봤을 때 ‘고용 유지’나 ‘대기업 공채 시스템 유지’ 등에 대한 정치사회적 압력이 강하기 때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시기에 인사관리의 기본 원칙 혹은 방법론은 무엇일까?

인사관리뿐만이 아니라 전체 경영에 해당하는 얘기고 다소 ‘올드’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바로 ‘효율성’이다. 기업의 자산은 현금, 생산시설, 사람 등이다. 냉정한 얘기지만 기업이 중시할 수밖에 없는 건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생산과 판매를 이뤄내는 것이다. 좀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지만 아마존의 물류센터 사례를 한번 보자. 실제 물류센터에 가니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놀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생산성에 초점을 맞춰 극도로 효율화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사람이 없다면 노사 간 갈등도 없고, 생산성도 일정할 것이며, 휴식시간도 필요 없이 24시간 운영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사회적, 정치적 압박을 극복하고 정말 이 정도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구조적 불황기에 접어들었을 때 지금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 ‘효율성’을 중심으로 인사관리를 해야 한다는 건 꼭 강조하고 싶다. 사람의 수, 인건비, 인당 생산성 등을 고려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사람의 ‘역량’이라는 부분을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이 많은 역량, 큰 역량을 갖고 있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생산성을 낼 수 있다. ‘인사관리 효율성’이라고 말하면 보통 ‘해고’를 떠올리는데 그건 아니다. 개인들의 역량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그렇다면 ‘역량이란 무엇인가’가 중요한 화두가 된다. 능력은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고 역량은 그러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갖춘 실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들 컨설팅을 들어가서 보면 ‘역량 교육’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에서 죄다 ‘리더십’과 ‘가치’ 얘기만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엄밀히 말해 4차 산업혁명시대, 극한 환경에서의 핵심 역량이 아니다. 그냥 관리적 역량일 뿐이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량은 ‘전문 역량’ ‘직무 역량’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HR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업은 4차 산업혁명과 동떨어져 있다.



어떤 부분이 가장 동떨어져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첫째, 우리나라 기업은 아예 ‘직무 중심의 인사’를 하지 않고 있다. 경영자들 중에는 당연히 ‘직무 중심의 인사를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사람 중심’의 인사가 아닌 ‘직무 중심’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어감이 별로 안 좋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엄밀하게 개념적으로 따져보면 직무 중심의 인사라는 게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 중심의 인사란 일반적으로 괜찮은 사람을 뽑아서 이 사람에게 이 일도 시켜보고 다른 일도 시켜보는 형태를 말한다. 이런 형태에서는 조직에 아주 뛰어난 사람이 들어오는 경우에 그 조직이 그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해 움직이고 그 사람 밑에 라인도 생기고 위계질서가 생기는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사람 중심의 인사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예를 들어보면 어떤 기업의 경우 ‘Marketing & Finance’라는 부서가 있다. 이건 이 부서를 이끄는 임원이 우연하게도 두 분야 모두 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사람 중심의 인사에 따른 조직운영이다. 이런 특정인에게 조직이 의존하고 있다가 이 사람이 이직이나 퇴직을 하면 조직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온다. 또 앞서도 말했듯 이런 사람 중심의 인사에서는 조직원들 간의 라인과 위계가 생겨나는데, 이는 수평적 조직구조의 형성을 어렵게 하고 결국 위기 대응을 느리게 한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ICT 기업들이 지닌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권한 위임’이지만 사람 중심의 인사가 만들어내는 폐해 속에서는 이러한 권한 위임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아랫사람들은 직무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고 발전시키기 어렵고, 나중에는 직무의 전문가가 아니라 조직의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 다양한 기업의 임원들과 인터뷰를 해본 경험을 토대로 보면 많은 임원들은 ‘본인이 가진 가장 뛰어난 역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조직을 잘 관리할 줄 알고, 이 회사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이 회사에 대해서 잘 안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다. 이건 역량이 아니다.



인사관리에 있어 ‘혁신’을 해내고 ‘직무 중심의 인사’를 하는 기업이 아직도 많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 언론에서 혁신적인 기업 사례들을 많이 다루고 있고 그중에는 국내 기업 중 인사혁신을 한 사례도 많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례는 전체 기업 중 10%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얘기한 사람 중심의 인사가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항상 안 좋았던 게 아니다. 과거 고성장시대에는 이런 형태가 훨씬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조적 저성장의 시대이고 극한 환경의 시대다. 사람 중심의 인사는 한계에 봉착했다. 단적으로 사람 중심의 인사는 구조조정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인력구조조정은 ‘고령자’ ‘고연봉자’ ‘저성과자’ 위주로 이뤄져왔다. 여전히 사람 중심의 구조조정이다. 특히 저성과자들은 자신이 저성과자라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는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큰 갈등요인이 되기도 한다.

다시 직무 중심의 인사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이는 앞서 언급했듯 사람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개념이 아니다. 직무 중심 인사는 ‘조직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직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직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당연히 목표달성에 필요한 기능들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혹자는 이를 ‘기능주의적 사고’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저성장기, 극한 상황에서 ‘인사 효율화’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이다. 효율화는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별해서 불필요한 것은 걷어내고 더 필요한 것은 더 많이 확보해 놓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조직도 그리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하지만 요즘 실리콘밸리에는 조직도를 아예 그리지 않는 기업이 많다. 조직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직무가 무엇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직무를 살펴보면 굉장히 세분화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직무가 무엇이냐’라고 물어본다면 인사, 회계, 총무, R&D라는 식으로 답변한다. 이것은 직무가 아니다. 넓은 의미의 업무 분야 또는 영역일 뿐이다. 직무는 세분화해 나눠야 한다. 마케팅을 예로 들면,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마케팅 전문가’라고 막연하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시장조사 전문가, 빅데이터 전문가 등으로 세분화해야 한다. 새로 직무를 나누든지, 현재 있는 직무를 가지고서라도 이 직무가 우리의 사업목표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기여를 하는지 상대적 중요도를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기업 대부분은 이러한 것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상대적 중요도를 파악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직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는 것이다. 그래야만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사람 중심의 인사 시스템에서는 이 사람에게 이 일도 시켜보고, 저 일도 시켜보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례가 많다.



직무를 세분화해야 하는 한편 그런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직무들이 통합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은데.

업무 세분화를 하는 건 앞서 얘기한 ‘조직도를 없애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제 조직에서 상시 조직은 운영적인 일을 담당하는 기능(Function)조직만 남게 되고 앞으로는 직무를 중심으로 뭉치는 프로젝트성 조직으로 변할 것이다. 직무는 영원하지 않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에 대해 테크니컬하게 분석 잘하는 사람이 있고, 소비자의 행동에 대해서 마케팅적으로 직관이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또 둘 다 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때 각각을 잘하는 두 명을 협업을 시킬 것인지, 둘 다 잘하는 한 사람에게 일을 맡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면서 결정해야 한다. 이렇게 프로젝트 형식으로 팀이 뭉쳤다 흩어지려면 직무가 오히려 더 세분화돼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IMF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대부분 대(大)팀제를 유지했던 가장 큰 이유가 유연성(Flexibility)인데, 이것이 오히려 전략적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과거에는 통했을지 모르나 지금처럼 업종의 변경이 심하고 경쟁우위의 원천이나 핵심 차별화 포인트가 순식간에 바뀌어야 할 때에는 세분화시켜 놓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업무 세분화는 기업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만 구조조정에도 도움이 된다. 극한 환경에서는 상시 구조조정이 필수인데 이것은 조직을 단순하게 구성하면서도 더 강력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직무 중심의 세분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고액 연봉자, 고령자라는 이유로 구조조정하면서 생기는 갈등과 분란 없이 우리 조직에 필요가 없는 직무, 가치가 낮은 직무순으로 구조조정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름의 명분이 확실해진다.



직무 중심의 인사로 가게 되면 역량 평가 방법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맞다. 현재도 직원들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자기평가, 다면평가 등을 하는 기업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공기업들은 다면평가를 전부 하고 있지만 활용을 잘 못한다. 자기평가와 다면평가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평가 사이의 간극(GAP)을 보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자신은 재무적 역량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하더라도 타인들의 평가가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의 역량이나 잠재력이 뛰어난지, 안 뛰어난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그 역량은 잘 발현이 안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보기 위해 자기평가와 다면평가를 한다. 이러한 평가들을 통해 나온 결과들을 보고 내 역량이 왜 잘 발현이 안 됐는지 고민해보고 자기계발을 해나가야 한다. 즉 자기주도형 역량 계발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역량 수준과 남이 생각하는 나의 역량 수준, 자기 전문성에 대한 명확한 이해, 약간의 경쟁 환경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 모두 직무 중심의 인사일 때 가능한 얘기들이다.

다시 직무 중심 인사 얘기로 돌아가보자. 결국 중요한 건 직무를 알맞게 세분화하고 그 직무 중에 우리에게 더 필요한 직무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무와 제일 적합한 인재를 찾아내고 인사 제도적으로 그 직무와 제일 적합한 인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동기부여를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베스트 프랙티스’를 강조한다. 그런데 사실은 베스트 프랙티스보다는 ‘베스트 핏(fit)’이 더 중요하다. 극한의 경영환경에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전략’은 무엇이고, 이 전략에 ‘가장 필요한 직무’는 무엇인지, 또 그 직무에 가장 ‘적합한 인재’는 누구이며, 이 인재에게 가장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적합한 인사제도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한 사이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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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핏, 즉 적합성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부분은 기법과 과학(Art & Science)의 영역이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떤 전략이 있을 때 ‘이 전략은 누가 가장 잘하지?’라고 묻는 방식으로 생각을 한다. 최고의 기업들은 ‘이 전략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부터 생각한다. 그게 바로 직무 관리다. 그 다음에 그 직무를 잘할 수 있는 인재를 찾게 된다. 만약 내부에 이 업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외부에서 찾는 등의 방향으로 ‘석세션 플래닝(Succession Planning)’을 하게 된다. 선진 기업들에는 이 과정이 잘 발달돼 있다. 우리나라에선 석세션 플래닝이 ‘가업승계 계획’이라는 말의 대체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본래 뜻은 정의된 핵심 포지션에 현재 있는 사람의 적합도와 내외부의 다른 후보자들의 적합도를 따져 인재풀(pool)에서 사람을 찾는 과정이다. 역량 평가와 성과평가는 바로 이걸 위해 진행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레퍼런스를 참고하면서 해당 후보자의 교육이나 경력 등 다양한 방면에 대해서 토론을 한다. 토론을 하면서 인재에 대한 파악이 일어난다. 따라서 석세션 플래닝은 데이터 수집과 토론을 거쳐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사람 중심의 인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이 토론이 잘 안 된다. 인재에 대해서 토론을 해야 하는데 라인, 위계질서 등의 문제로 인해 이를 꺼리게 된다. 반복해서 말하게 되는데, 결론은 직무 중심으로 가야 효율성이 올라간다는 얘기다.



사실 컨설팅을 위해 한국 기업들의 경영자와 인사책임자 등을 만나보면 직무 중심 인사로 가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또 실제 노력하는 경우도 보인다. 그런데 잘 안 된다. 대기업의 경우 고속 성장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채용했고 직무의 수가 급격히 증가해 직무에 대해서 정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직무 순환을 많이 돌리다 보니 인사팀 직원이 기업 전체의 핵심 직무들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공공기관 같은 경우 직무에 대해서는 판단을 해놓은 경우가 있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다. 직무 중심 인사를 하게 되면 ‘직무급’을 도입해야 한다. 직무에 따라 급여가 달라져야 하는데 이게 큰 걸림돌이다.

노조의 경우에는 ‘직무분석’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곧 ‘해고’나 ‘직무급 도입’이라고 생각하며 곧바로 반대에 들어간다. 노조는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일부 전문가들마저 직무급에 반대하는 건 문제라고 본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기, 극한 환경에서는 직무급 체계가 꼭 필요하다. 직무급은 가만히 있으면 연봉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직무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형태다. 이러한 것이 가능하려면 사전에 직무가 명확히 정의돼 있어야 하고, 직무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며, 결정적으로 공채가 없어져야 한다. 그러니 직무급 도입이 안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조직 내부 전문가 양성을 위해서는 직무 중심 인사로 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직무급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좀 더 고급 직무의 일로 가기 위해 경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직무급 도입 등은 당장 어렵다 하더라도 지금의 극한 환경에서 기업들이 실행할 수 있는 인사관리 전략 정도는 있을 것 같다.
사례를 좀 알려주실 수 있나?

우선 선진 기업들의 트렌드부터 살펴보자. 최근 눈에 띄는 트렌드 중 하나는 선진 기업들이 ‘절대평가’를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절대평가는 사람을 서열화시켜서 평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건 지난해 내내 선진기업들의 확실한 트렌드였다. 처음 GE가 얘기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 실리콘밸리 대다수 기업들과 GAP과 같은 전통적인 기업도 도입하기 시작했다. 혹자들은 이것을 보고 다시 성과가 아닌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평가를 왜 도입하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이슈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업들은 자신의 기업에 지원한 인재가 어떤 전문성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채용과정에서 알기 어렵다. 또한 평범한 사원이 엄청난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특정 직무에서는 보통의 성과를 내던 직원이 다른 직무를 하게 되면서 높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 이처럼 ‘누가 인재인가’를 정형화하거나 유형화하기가 어렵고 서로 다른 직무를 하는 직원들을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걸 기업들이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절대평가가 도입된 것이다.

즉, 절대평가는 직원 각자가 ‘주어진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나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앞서도 언급했듯 직무가 명확히 정의돼 있어야 한다. 직무 목표와 그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에 대해서 비교하기 위해서다. 물론 직무 목표를 달성하면 무조건 최고점을 받는 방식은 아니다. 해당 직무 목표를 달성하면 중간 정도의 점수를 주고,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로운 요소들을 찾아내는 등 추가적인 성과가 있어야만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GE는 2016년에 HR 부서에만 절대평가를 도입했고 2017년부터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절대평가를 도입할 예정이다. 애플, GAP, 어도비 같은 회사들도 GE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절대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직무를 세분화하고, 직무 목표를 명확히 잡고, 직무들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 먼저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직원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고르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역량을 개발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트렌드는 선진기업들이 성과관리를 상시적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많은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6개월, 1년 단위의 목표설정과 평가 방식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최근 글로벌 ICT 기업들은 목표 또한 수시로 변경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목표가 한번 설정되면 무조건 1년을 끌고 가는데 이건 지금의 극한 환경과는 맞지 않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목표를 수행해가는 과정에서 시장 환경이 변화한다면 목표를 바꿀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하고 상시 모니터링과 평가, 피드백을 해줘야 한다. 불황기 속에서 효율화가 중요한데 효율화는 목표를 정해놓고 달성 여부를 측정하는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다. 계속해서 변하는 환경에 따라 조정(Adjustment)을 해야 한다.



직무 중심 인사관리를 비롯해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국내 기업도 있나?

우리나라에도 2년 전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무 중심의 HR을 도입한 식품회사가 있다. 많은 기업들이 이걸 하고 싶어도 직무 분석이 안 돼 있고 포지션이 명확하지 않아서 못하는데 이 회사의 경우 이런 것을 전부 다 하자고 결정을 내렸다. 임원부터 현장 운영직까지 직무 중심의 HR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잘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첫 케이스다. 이 방식을 도입하고 난 후 직원들의 부정적인 피드백 중 하나는 ‘임금이 낮아진 것 같고 이로 인해 우수 인재 유치가 안 되는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데이터 분석을 해본 결과 직원들의 인식과는 달리 이직률도 낮았고 괜찮게 운영이 되고 있었다. ‘임금이 낮아진 것 같다’는 의견은 바꿔 생각해보면 그만큼 임금이 효율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회사는 최고경영진까지 모두 나서 직무 평가와 세분화 과정에 참여해서 토론을 했다. 인사팀만의 일로 만든 게 아니라 최고경영진이 앞장서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직무 중심의 인사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비용이 절감됐으며, 직원들이 특정 직무로 가고 싶어 하는 내부적 욕구들이 증가하면서 역량 개발에 더 힘쓰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 회사는 최근 외국계 기업들을 많이 인수하기 시작했는데 직무 중심의 인사를 도입해놓으니 굉장히 편하게 관리가 되는 장점이 있었다. 내부 피드백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긍정적인 얘기는 ‘우리 기업에 인력 내부시장(internal market)이 생겼고, 이것이 직원들에게 활력을 줬다’는 것이었다. 직책이 무엇인가보다 어떤 직무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며 관련 역량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는 거다.



근무시간 관리 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직무 중심의 인사’와 ‘직무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개인이 직무 목표를 달성하기에 가장 좋은 업무환경이 구성돼야 마땅하다. 우리나라는 유연근무제를 논할 때 주로 ‘장소’와 ‘시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 유연근무제가 발달된 호주 사례를 들어보자. 호주의 유연근무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성과 달성 방법 자체를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영업사원은 100일 동안 소비자들을 일일이 만나면서 100명에게 영업을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영업사원은 한 번의 큰 프로모션을 통해 100명의 고객에게 영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개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특히 이러한 ‘일하는 방법의 자율성’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직무 중심의 인사에서 직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할 때에는 개인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이 전문성은 그 일을 좋아해야만 생기기 때문이다. ‘일을 좋아한다’는 건 일에 몰입한다는 것이고 또한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강요된 방법으로 일을 시키면 생산성 하락과 몰입도 저하가 올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기업 중에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를 강조하는 기업이 많다. 아니, 거의 강요한다. 오후 6시가 됐으니 퇴근하라면서 불을 꺼버리는 사례도 있다. 이건
4차 산업혁명 시대 유연한 근무와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요즘 워크라이프 밸런스라는 말 대신 ‘워크라이프 초이스(choice)’라는 말을 쓰기까지 한다. 개인의 상황과 욕망에 맞게 가장 생산성이 높아지도록 시간, 장소, 방법 등을 스스로 선택해서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이 워크라이프 초이스가 이뤄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권한 위임’이다.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능률이 오르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조직 구성원들을 분류해보면 크게 4가지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회사와 직무에 둘 다 몰입하는 부류, 두 번째는 직무에는 몰입하지만 회사에는 몰입하지 못하는 부류다. 이 부류는 현재 생산성은 잘 나오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중장기적으로 이직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는 회사에는 몰입하고 직무에는 몰입하지 못하는 부류인데 이 부류는 ‘월급 도둑’이다. 단순히 회사의 브랜드가 좋아서, 회사가 안정적이어서 남아 있는 것이다. 네 번째는 둘 다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인데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겠다. 중요한 건 내부 인력들이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직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앞서 말한 네 부류의 인력 중 첫 번째 부류와 두 번째 부류가 이직하지 않고 내부 인력시장에서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며 직무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두 번째 부류의 인력들이 중간에 회사를 나가 창업을 하거나 이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막기보다는 기업은 계속해서 새로운 인재들이 우리 기업의 플랫폼 안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해내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결국 변화에 가장 둔감하다는 ‘인사관리 조직’ 자체가 변화해야 할 것 같다.

굉장히 좋은 지적이다. 직무 중심의 인사가 시작되고 직무에 대한 목표가 명확해지면 그걸 토대로 절대 평가와 상시 관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 HR팀에서 하고 있는 업무의 90%는 기업의 각 팀 관리자에게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워진다. 인사부서의 역할은 완전히 바뀐다. 직무를 발견하고 직무와 산업, 그리고 인재들 간의 적합도를 찾고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제도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과 ‘방법론 제시’를 해야 한다. 구체적인 직무와 직무에 적합한 인재, 그리고 전체적인 방향성은 실무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실무 관리자들이 더 자유롭게 직무에 임할 수 있도록 인사 관리 팀의 권한이 많이 위임돼야 한다. 현재보다 인사부서 직원의 수는 훨씬 줄어야 한다. 운영 역시 시스템화하거나 외부 전문 업체들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인사부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수의 인사 관리자는 빅데이터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 인사와 관련한 컨설팅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직무를 분류하고 싶을 때 그 직무를 경쟁사와 비교해보고 직무 분류의 단위가 적절한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제일 중요한 직무에 적합한 사람은 어떤 이력과 어떤 일하는 방식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사람이 어떤 성과 등을 냈는지에 대해 다양한 데이터를 갖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특정 직무에 적합하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해내야 한다. 인사 제도에 대해서도 ‘평가 주기를 몇 번으로 바꿨을 때 가장 동기부여가 많이 된다’ 또는 ‘인센티브를 어느 정도 차별화했을 때 제일 동기부여가 많이 된다’와 같은 것들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제일 잘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구글이다. 구글은 원래 엔지니어 조직이었다. 구글 인사팀 내에는 아프로 팀이라는 게 있다. 빅데이터 분석팀이다. 4년 전 쯤 구글이 한계에 부딪힌 적이 있다. 구글의 주가도 올라가고 우수한 인재도 많이 들어오는데 1인당 생산성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빅데이터 분석을 해봤다. 잘하는 팀, 성과가 좋은 팀의 공통점들을 찾아 분석을 해본 결과 팀장의 평판이 좋을수록 지속적으로 성과가 높게 나타났는데 이 평판을 구성하는 것 중에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신뢰였다. 여기에서 이 ‘신뢰’란 그냥 누군가를 잘 믿어주고 하는 그런 게 아니다. 업무 적합도에 기반한 실력에 대한 팀원들의 신뢰다. 또한 팀원끼리도 역시 서로 실력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성공적인 팀의 팀장들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행동들을 체계화하고 ‘고성과의 기준’을 연구해서 구글 전체에 공유했다. 이게 앞으로 인사부서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인사부서들은 ‘직원들의 피드백을 받겠다’면서 매년 설문조사를 한다. 이것도 사실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단순히 남녀 구분이나 연령대별/직급별 구분을 통해 차이를 비교할 뿐이다. 구글에서는 ‘작년보다 내 직장이 좋아졌다’는 사람과 ‘싫어졌다’는 사람을 먼저 나누고 이 두 집단의 차이를 알아보는 근본적인 분석을 한다.



아무래도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 대기업의 재무, 회계, 인사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역량이 뛰어난 것은 대기업의 경우 관리해야 할 영역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내 대형 회계법인과 같은 경우도 회계사들의 역량은 매우 뛰어나지만 나머지 관리 파트의 역량은 중소기업 수준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과 같은 경우는 이 부분을 기업 내부에서 소화하지 않고 외부 전문 소스들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직원이 25명 이하라면 별도의 인사 관리 부서와 제도를 만들 필요가 없다. 이 정도까지는 여전히 사장이 개개인과 소통하고 관리를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한다. 30명에서 40명 가까이 되면 무조건 인사 관리 부서를 둬야 한다. 이때까지 CEO는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생각이다. 이 정도 규모가 되면 사장과 직원 간의 접촉 시간이 현저히 적어진다. 인사 관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이 정도 소규모 기업에서는 전문 인사 관리자를 채용하기보다는 직원들이 로테이션으로 인사 업무를 거쳐 가게끔 하는 것이 좋다. 또는 중소기업들은 자신들이 직접 인사 관리와 전략수립을 하는 것보다는 관련 업종 협회 차원에서 돈을 모아서 외주 컨설팅을 통해 관리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직원들의 채용과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의 극한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이 전통적으로진행해오던 공채시스템과 집체교육은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다시 구글 사례부터 시작해보자. 구글에서는 특정 코딩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하는 사람을 추적해서 입사하라고 역제안한 경우가 있다. 이렇게 찾아가는 채용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인문계 등은 공채가 사라지고 상시채용으로 변할 것이고, 이공계는 인력이 늘 모자라기 때문에 공채로 인력 확보를 할 것 같다. 경력직과 신입이 별로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경력직이라고 꼭 잘하는 것도 아니고 신입이 더 잘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공채는 사라지고 경력직 채용이 이뤄질 것이다. 머서코리아에서 모바일 앱에서 게임같이 할 수 있는 ‘cognitive test’를 만들었다. 이것을 통해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가 기업이 필요한 역량을 가진 사람을 찾아간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SNS에서 재미있고 간단한 과정의 테스트를 재미삼아 하게 하면 기업이 이를 지켜보다가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찾아나서는 방법이다. 젊은 구직자들은 본인의 잠재력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최근 발전한 데이터 분석 기법에 따라 잠재력을 기업이 먼저 알아보고 접근할 수도 있다.

교육과 채용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지금은 채용과 교육의 융합화가 일어나고 있다. 페이스북의 채용 방식을 설명해보겠다. 페이스북 채용 방식 중 인터뷰를 거친 사람들에게 인턴 경험을 한꺼번에 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팀을 이뤄서 경쟁을 해야 하는데 팀을 짜기 위해서 자신이 스스로를 셀링(selling)해야만 한다. 팀을 짜고 나서 팀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단기간 내에 업무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면서도 팀워크가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입사할 때 쯤되면 회사에 이미 적응을 한 상태가 된다. 또한 이러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접 선택하게 함으로써 업무 몰입도를 증가시킨다. 이 과정에서 역량 강화가 일어난다. 즉 채용과정에서 러닝(learning)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좋다는 얘기다. 교육은 획일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학습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목표를 정해주고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자율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앞으로의 교육에 있어서의 키워드는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이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빨리 배우고 빨리 써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처음부터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틀리더라도 해보고 보완하고, 또 해보고 보완하고 하는 과정을 계속해나가는 과정이다. 과거와 같이 연수원에 가서 교육을 단체로 듣는 게 아니라 업무 성과 관리 자체가 역량개발(Development) 과정이 되고 거기에서 필요한 지식들을 제공해줄 수 있는 형태가 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현재 진행하는 신입 공채는 직무 중심의 인사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고 직무 중심으로 간다면 경력직 채용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신입 공채에서도 직무 중심이라는 개념을 접목시켜 볼 수는 있다. 공채 과정 중에 팀별 경쟁을 통해서 우수한 성과를 낸 팀을 전원 채용한다는 것과 같은 형태가 그 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인터뷰이
박형철 대표는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미국 테네시주립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앤더슨컨설팅과 대우경제연구소를 거쳐 머서(Mercer)의 한국 지사장 겸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글로벌 인재관리 전략, M&A 후 인사통합 및 성과관리 전략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Unconventional Insights

1 많은 기업의 임원들은 ‘본인이 가진 뛰어난 역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조직을 잘 관리할 줄 안다”고 답한다. 이건 역량이 아니다.



2 인사관리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연구하는 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 특성에 맞는 직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직무에 맞는 인재를 매칭시키는 ‘베스트 핏’이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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