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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중의 공교육 혁신

교사들이 교실을 열고 시스템 바꿨다.주인없는 공립학교에 ‘스스로 바람’이 불었다

최한나,윤정구 | 164호 (2014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HR , 혁신 

 

 

몸은 교실에 있으나 마음은 다른 곳에 둔 학생들을 수업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자로 만들어 낸 장곡중학교 혁신의 비결은?

1) 삼원학습을 통해 기존 틀 안에서의 단순 수정 및 개선이 아닌 근원적 변화를 추구

2) 개방과 공유를 통해 공동체를 강화하고 변화를 체계화

3) 변화의 주체들이 앞장서서 솔선수범했을 뿐더러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으로 구성원들의 참여 독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정권(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1. A중학교

5교시 종이 울렸다. 복도에서 왁자지껄 하던 학생들이 저마다의 교실로 뛰어 들어간다. 국어시간이다.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반장이 일어섰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세요.”

“자, 167페이지 펴세요. 오늘은 김유정의 동백꽃을 배웁니다.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한 아이가 교과서를 읽는 동안 점심식사를 막 끝낸 아이들의 눈이 하나둘 감기기 시작한다.

“자자, 다들 눈 뜨고! 이 소설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배경은 1930년대 식민지 시대의 강원도, 등장인물은 점순이와 나, 이렇게 두 명이죠. 반영론적 관점에서 보면 소작인과 마름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고, 내재적 관점에서 보면 사춘기 남녀의 수줍고 순수한 사랑을 볼 수 있어요….”

교실은 조용하다. 열심히 받아 적는 몇몇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멍하니 앉아 눈만 껌벅거리고 있거나 이어폰을 꼽고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턱을 괴고 창밖을 보는 중이다. 아예 눈을 감거나 엎드린 학생도 적지 않다.

 

#2. B중학교

5교시 국어시간이다. 학생들이 교과서에 실린동백꽃을 읽고 있다. 선생님이 말한다. “다 읽었죠? 이제 모둠 만듭니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책상 구조를 바꿔 서넛씩 짝을 지어 앉는다. “나눠준 활동지를 보고 모둠별로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곧바로 교실이 시끌벅적해진다. 선생님이 나눠준 활동지에는소설에서 갈등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동백꽃에서 갈등은 무엇인가등의 질문이 적혀 있다. “갈등이 뭐야?” “서로 싸우는 거 아니야?” “근데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다 갈등이 있더라. 어제 엄마랑 드라마 봤는데 주인공끼리 엄청 싸우던데.” “당연하지, 서로 싸워야 얘기가 될 거 아니야.” “맞아. 사이좋게 지내기만 하면 얘기가 안 되잖아, 얘기가.”

 

“이제 모둠을 풉니다.” 학생들이 책상을 옮겨 원래의 대형으로 돌아온다. “, 소설에서 갈등은 어떤 역할을 할까?”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든다.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요소요.” 다른 학생도 입을 연다. “사건의 시작이요!” “이야기의 끝 아니에요? 갈등이 끝나면 소설도 끝나잖아요.” “소설을 끌어가는 핵심이요. 갈등이 없으면 소설이 안 될 것 같아요.”

 

학생들이 말하는 동안 선생님은 옆에서 부추길 뿐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 그런 생각은 나도 못했는데!” “대단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선생님이 나섰다

경기도 시흥에 자리 잡은 장곡중학교는 1999년에 32학급으로 문을 열었다. 한때 40학급에 이를 정도로 학생이 늘었다가 인근에 새로운 학교가 생기면서 학생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변변한 체육관 하나 없을 정도로 시설이 열악한데다 학생 숫자가 한꺼번에 줄어들면서 교사도 학생도 의욕이 감소했다. 여기에수요자 중심의 자율적 교육을 목표로 하는 7차 교육과정이 본격화하면서 학생들의 사기가 눈으로 확인될 정도로 뚝 떨어졌다. 이 교육과정은 학생이 자신의 실력에 맞는 교육을 고를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제공했다. 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을 수준별로 반을 나눠 운영하는 식이다. 학급회의가 사라지고 전 과목에 수행평가가 도입되기도 했다. 이후 경쟁이 심해지고, 낙오자가 늘었으며, 아예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사기 저하는 수업시간에 가장 뚜렷하게 확인됐다. 학생들은 눈과 귀를 닫은 채 몸만 교실에 뒀다. 수업시간에도 대놓고 엎드려 자거나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않는 학생들이 늘었다. 교사가여기 좀 보라며 칠판을 두드리면공부는 해서 뭐 하냐” “내가 공부 안 하겠다는데 선생님이 무슨 상관이냐며 대들었다. 학생부장이 학생들을 데리러 경찰서를 드나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자는 학생을 깨우는 교사에게 욕을 하며 화내는 학생도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교사들 쪽에서 먼저 고조됐다.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학생들을 대하는 것은 교사들에게 지옥과 같았다. 박현숙 장곡중학교 수석교사는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거나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때리거나 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아무 희망도 꿈도 없이 학교만 왔다갔다 하는 학생들을 매일 대하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권을 생각하기 전에 교사 개인에게 매우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장곡중학교의 일부 교사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갖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단순히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자는 모임이 아니었다. 교육철학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침체된 분위기의 교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공개 수업 모습

 

 

그러던 중 경기도 교육청에서혁신학교를 지정해 지원하겠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이는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행정 전담 직원을 둘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해공교육 정상화를 도모하려는 정책이었다. 무기력한 학생들과 학교 분위기를 고민하던 장곡중학교 교사들은 혁신학교 지정에 지원해 변화의 돌파구를 마련해보기로 했다. 교장이 아닌 평교사들이 새로운 제도를 시도해보자며 자원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무엇이든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여 시행하는 데는 적지 않은 수고와 시간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이는 곧 업무량 증가를 의미한다. 하지만 교사들에게는수업을, 교실을, 학교를 바꿔보자는 갈망이 컸고혁신학교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당시 재임 중이던 교장이 반대했다. 교장은 교과 교실제 등 다른 제도를 도입하고 싶어 했다. 교사들이 모여 여러 차례 회의하면서 교장을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몇 달간 교장과 교사들 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교사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다. 그러다 해당 교장이 다른 학교로 옮겨가고 새로운 교장이 왔다. 새로 부임한 교장도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교사들의 끈질긴 설득에 혁신학교 지원을 수락했다.

 

모든 교사들이 찬성했던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가 신청할 수 있는 제도는 혁신학교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시범학교가 있는데 시범학교에 선정되면 받을 수 있는 예산이 더 클 뿐더러 공립학교 교사들이 승진할 때 필요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반면혁신학교는 이제 막 시작한 제도라 선례나 효과를 확인할 수 없고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은데다 교사들에게 승진 점수가 부여되는 것도 아니었다. 박현숙 수석교사는그래서 오히려 혁신학교 제도에 더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교사들에게 이로운 제도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실제로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제도인가를 꼼꼼히 따져봤고 그 내용을 토대로 반대하는 교사들을 설득해나갔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반대하던 일부 교사들은 혁신학교로 지정되던 해, 자진해서 다른 학교로 이직했다. 혁신학교에 지원할 무렵, 교사들의 찬성률은 99%에 달했다. 변화를 위한 내적 응집력이 강했다는 의미다.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있었다. 1∼3학년 학부모들을 모두 모아 혁신학교가 무엇인지, 왜 지원하려고 하는지,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등을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장곡중학교는 2010 3월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달라진 제도는 2010년 신입생부터 적용됐다.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일단 학급당 학생 수가 줄었다. 한 학급당 35∼40명에 이르던 학생 수가 30명 이내로 감소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줄었다는 얘기다. 공문 전담 인력도 새로 생겼다. 현재 장곡중학교에서 공문과 관련된 일만 전담하는 인력은 3명이다. 이들은 그동안 교사들이 나눠서 처리해야 했던 공문 작성 및 발송, 결재 서류 작성 및 승인 절차 진행, 전출입 학생 관리, 단순 보고서 처리 등을 도맡고 있다. 행정 업무에서 벗어난 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한 수업 준비와 연구 등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실제로 2010 3월부터 8월까지 장곡중학교가 처리한 공문 3500여 건 중에 공문 전담 직원이 처리한 공문은 전체의 97% 3400여 건에 달한다. 교사들은 100건 정도( 3%)만 처리했을 뿐이다.1 교과 운영 방식의 자율성은 더 커졌다. 교사들은 국가에서 정해준성취기준(달성해야 할 학습목표)’을 참고해 다양한 학습방식을 수업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박현숙 교사는 “혁신학교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비정상적인 공교육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시도가 있었을 것이라면서도안팎의 합의를 모으고 실제 행동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학교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업을 열자

수업은 일종의 성역(聖域)이다. 어떤 이가 함부로 접근하거나 방해할 수 없다. 가르쳐야 할 내용이나 달성해야 할 목표에 일정한 가이드라인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수업에서 교사가 어떤 말투로,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를 일일이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같은 과목, 같은 내용이라도 교사마다 가르치는 방법과 내용이 천차만별이며 듣는 학생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이든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장곡중학교가 혁신을 꾀하며 가장 초점을 뒀던 것은 다름 아닌수업이었다. 학생이 학교에 오는 가장 큰 이유도, 교사와 학생이 가장 열심을 기울여야 할 것도, 변화의 핵심이자 뿌리도 모두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이 바로 서지 않으면 다른 어떤 혁신도 무용지물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바뀌려면 열려야 했다. 꼭꼭 닫혀 아무도 개입할 수 없는 수업에는 발전이 있을 수 없었다. 장곡중학교가 혁신학교 초기부터공개수업 제도를 적극적이면서도 꾸준하게 실천해 온 이유다. 박현숙 수석교사는여기는 대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교사들이 교과의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대신 수업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가르치는 대상에게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교사의 가장 큰 임무다. 수업을 개선하려면 수업을 연구해야 하고, 수업을 연구하려면 당연히 다양한 수업을 계속 보고 분석해야 한다. 내 수업에 대한 누군가의 피드백도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존심 강한 교사들이 처음부터 교실 문을 쉽게 열었을 리 없다. 특히 10년 이상 교단에 섰던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을 누군가에게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불편해 했다. 교사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기꺼이 내보일 수 있게 하려면 그만한 정당성이 필요했다. 교실 문 열기는 곧 교사들의 마음 문 열기였다.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이 동원됐다.

 

 

먼저 동료 교사들이 일대일로 다가가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독서모임 등을 해오며 학교 변화를 바라고 추진해 온 젊고 적극적인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나섰다. ‘이렇게 고문 같은 수업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는가’ ‘우리 진짜 수업을 한번 해보자는 설득이 계속됐다. 이들은 특히 교사들의 정체성과 성취감에 호소하는 데 주력했다. ‘수업이 살아야 수업 할 맛이 날 것 아니냐’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들 보는 것 괴롭지 않느냐며 평소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던 감정적 어려움을 자극했다.

 

외부의 권위자를 데려와 컨설팅을 추진하기도 했다.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의 손우정 대표를 초빙해 2010∼2011 2년간 전 수업을 듣게 하고 각 수업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특히 손 대표가 직접 수업을 참관하고 장단점을 짚어주겠노라고 제안하면서 자존심 강한 교사들의 마음 벽을 허물었다. ‘내 수업은 절대 공개 못한다던 교사들도전문가 컨설팅 한번 받아보시라는 제안에는 솔깃해 했다.

 

또 기존 수업공개와는 달리 평가적인 요소를 배제했다. 일반적으로 교사들끼리 진행하는 수업공개에는 평가가 따른다. 동료 교사의 수업을 참관하는 교사들은수업내용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가(1∼5)’ ‘학생들을 골고루 바라보며 이야기하는가(1∼5)’ ‘수업 전 사전 준비는 충실했는가(1∼5)’ 등 각종 문항들이 빼곡히 적힌 평가지를 들고 들어간다. 수업을 보면서 해당 교사의 수업 방식이나 그 효과를 체크하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하지만 장곡중학교에서의 수업공개는 교사 개인을 평가하기보다는 서로의 수업을 보면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고쳐나가자는 의도가 컸으므로 이런 요소를 아예 없애 부담을 줄였다. 그렇게 하나둘 교실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수업이 공개되고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면서 수업 연구가 활발해졌다. 교사들은 서로의 수업방식을 보며 장단점을 비교하고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며 더 나은 방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업 공개의 장점을 인식하게 되면서 더 많은 교사들이 더 자주 수업을 공개했다. 학년별, 과목별로 활발하게 수업 공개가 이어졌다. 현재 장곡중학교에서는 매달 두 차례씩 수업 공개가 시행된다. 한 번은 내부 교사들끼리, 다른 한 번은 다른 학교 교사들도 포함해 진행된다.

 

다른 교사들이 던져주는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수업 방식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지만 교사들은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한 관심의 밀도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1학년 1반에서 진행되는 국어 수업에는 국어를 맡은 교사들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국어가 아닌 다른 과목이지만 1학년을 맡은 교사들이 들어간다. 이 교사들은 맡은 학년의 학생들을 자신의 교과 시간 외에도 접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다른 수업시간에는 어떻게 임하는지, 다른 과목에 더 흥미를 보이지는 않는지, 모둠활동에 대한 참여도는 어떤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학생에 대한 정보가 쌓이고 학생 개개인을 더 자세히 알게 되면 자신의 수업시간에 그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철수 너, 선생님 시간에는 모둠 때 조용하더니 국어 시간에는 엄청 활발하더라라든지, “영희야, 국어 시간에 했던 것처럼 친구들한테 이 개념을 좀 설명해 줄래?”라고 할 수 있다. 수업을 참관한 교사들이 전해주는 관찰 결과도 도움이 된다. 공개수업이 끝나면 수업에 들어왔던 교사들이 해당 교사에게선생님 시간에 민영이가 잘 집중하지 않더라고요라든지, “A모둠은 굉장히 활기차고 분위기가 좋았어요. 반면 B모둠은 조용한 학생들만 모여서 그런지 토론이 잘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구성원을 바꿔보시면 어때요등의 피드백을 해준다. 오미경 교사(수학)처음 공개수업을 할 때는 많이 긴장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이수업시간에 ○○는 이렇고, ○○는 저렇다고 해주면 다음 수업 때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니까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수업 공개가 자리를 잡고 교사들끼리의 피드백이 활발해지면서 장곡중학교는 교사들끼리의 수업연구회를 정기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은 오후 수업이 없다. 학생들을 일찍 보내놓고 전 교사 54명이 한자리에 모인다. 모여서 학년별 또는 교과별로 소그룹을 만들어 그 주에 있었던 공개수업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거나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수업내용을 연구하거나 교과별 협의회도 갖는다. 수업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문가를 불러 강연을 듣기도 한다. 교과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교사들끼리 공부하는 시간을 매주 갖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개수업 방식도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다. 지금은 공개수업에 들어가는 교사들끼리 미리 의논해 각자 맡을 모둠을 정하고 학생들을 나눠 집중적으로 관찰한다. 조성현 교사(음악)학기 초부터 이런저런 수업을 통해 맡은 학년 학생들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몇 달 지나지 않아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알 수 있다이름도 모르고 지나가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교과통합

 

수업 공개가 정례화하고 교사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면서 장곡중학교 교사들은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교과통합이다. 이를테면 과목과 과목 사이의 벽을 허물고 국어시간에 수학을, 수학시간에 영어를 접목하는 식이다. 예컨대 음악시간에는 학생들이 국어시간에 배운 시를 노래로 만들어보는 수업을 한다. 미술시간에는 음악시간에 들었던 노래를 주제로 조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 국어시간에 배운 내용을 음악시간에, 음악시간에 배운 내용을 미술시간에 반복해서 접하는 만큼 학습효과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기시험이나 수행평가 문제에서도 과목 간 이합집산이 활발하다.

 

: <설명문 쓰기 수행평가 질문지>

다음을 참고하여 분자 운동인 증발과 확산에 대한 설명문을 작성하시오.

- 국어 활동지 30, 31, 38을 참고하시오.

- 과학 활동지 Ⅳ-1, Ⅳ-2를 참고하시오.

- 과학 교과서 263∼267쪽을 참고하시오.

 

때로는 전교가 하나의 주제를 놓고 협동하며 통합수업을 한다. 올해의 경우월드컵을 주제로 했다. 이를 위해 전 교사가 작년 12월부터 머리를 모았다. ‘내년에 월드컵이 있으니 이것을 주제로 전교가 함께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작년 말, 새해의 연간 계획을 짜던 중에 이 아이디어가 나왔고 전 교사가 참여해 각자 맡은 교과에 맡게 아이디어를 보탰다. 올해 2, 내용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일단 학년별로 큰 주제를 잡았다. 1학년은월드컵 다문화 차이를 넘어’, 2학년은월드컵으로 하나 되는 우리’, 3학년은월드컵, 그 빛과 그림자였다. 그리고 학년별, 과목별로 각 주제에 맞는 교과과정을 기획했다. 예컨대 3학년 국어 수업에서는논평을 배우는 시간에 월드컵에 대한 긍정적인 논평과 부정적인 논평을 읽고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추가로 읽고평창 동계올림픽, 국가에 이익인가?’를 논평 형식으로 작성하도록 했다. 수학시간에는 비율과 치수를 정확히 재서 축구공 만들기를 실습했다. 음악시간에는 각 나라별 국가(國歌)를 감상하고 특징을 분석했다. 영어시간에는 축구선수 응원가를 영어로 만들어 불렀다. 학기 초에는 1학년 1반부터 3학년 10반까지 총 30개 반이 월드컵에 참여하는 국가 중 한 곳을 추첨해 월드컵이 종료될 때까지 그 나라를 응원하게 했다. 전 교과에서 월드컵과 관련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월드컵을 온몸으로 느끼고 즐길 수 있었다. 월드컵 기간에는 반별로 응원하는 국가의 말로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반마다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이를 기획하고 준비하기 위해 전 교사들이 봄 방학 동안 정상 출퇴근하며 교과별 통합을 협의했다. 이윤정 교사(국어)보통은 학기 전 협의를 학년별로 모여서 하는데 올해의 경우 전 교사가 모두 모여 여러 차례 회의를 했다하기 전에는 과연 전교 학생들을 다 이끌고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수업연구회를 통해 교사들끼리 활발한 토론문화가 조성돼 있었고 커뮤니케이션이 워낙 잘됐기 때문에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움의 공동체

일본 도쿄대 사토마나부 교수가 주창한 개념이다. 사토마나부 교수는학교라는 장소는 사람들이 서로 배우고 성장하며 연대하는 공공적인 공간이라고 정의하며 학교를 배움의 공동체로 바꾸기 위해서는 일상의 수업을 통해 교실이배움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배움이란 만남과 대화를 토대로 일어나는 활동으로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통해 활성화된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식이 수업시간에 모둠활동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모둠 구성원은 4명이 가장 적절한데 이 정도를 넘어가면 이야기를 나누는 데 비효율적이다. 친구들과의 활발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학생들은 상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도 하고, 귀담아 듣는 법을 배우기도 하며, 다른 사람과 협동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시스템을 바꿔라

 

공립학교에는 주인이 없다. 교장을 비롯한 모든 교사는 4∼5년에 한 번씩 학교를 옮긴다. 학생들은 3년만 다니면 상급학교로 진학한다.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주체가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장곡중학교가 혁신을 추진하면서시스템화에 초점을 둔 것은 그런 이유가 컸다. 학생이든, 교사든 학교를 종착지가 아닌, 몇 년 머무르다 옮겨가는 정류장쯤으로 여기는 문화에서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변화를 구조화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수업방식에서 변화를 꾀했다. 수업의 내용을 고민하기에 앞서 학생들이 교실에 앉는 형태부터 바꿨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구조가 아니라 학생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원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실에 들어가면 책상은 <그림 1> a와 같은 모습으로 배치돼 있다. 교사가 교단 위에 서서 학생들과 마주본다. 교사가 칠판에 적어가며 교과서 내용을 설명하면 학생들은 듣고 받아 적는다. 이런 형태의 구조에서는 교사가 볼 수 없는 사각지대가 곳곳에 존재한다. 교사의 바로 앞이나 교실의 각 모서리, 가장 뒷줄 등이 그렇다. 자연히 이런 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집중도도 떨어진다. 장곡중학교에서 새로 배치한 책상 배열은 <그림 1> b와 같다. 교사와 학생들이 일률적으로 마주보지 않는다. 교사는 책상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살펴볼 수 있다. 장곡중학교에서 도입한 새로운 수업방식의 백미는 <그림 1> c. 수업을 하다가 학생들끼리 해결하거나 토론해야 할 과제가 있을 때모둠을 만들어 수업한다. ‘모둠을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학생들은 책상을 옮겨 c형태의 구조를 만든다.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기 좋은 구조다. 토론이 끝나면 다시 b형태로 바꿔 선생님과 답을 맞춰보거나 더 깊이 있게 논의한다.

 

 

새로운 구조의 책상 배열은 혁신학교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모여 논의하던 중에 채택된 제도다. 혁신학교를 준비하면서 교사들은 여러 자료를 참고해 어떤 형태로 수업을 개선해나갈 것인가를 연구했다. 박현숙 교사는온갖 논문과 연구 자료들을 뒤져가면서 개선 방법을 고민하고 토론했다그러던 중 일본의 사토마나부 교수가 주창한배움의 공동체를 발견했고 이거다 싶어서 신입생 교실부터 적용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1년 이상 중학교 생활을 하면서 기존의 교실 구조에 익숙한 학생들은 기존대로 수업을 받게 했다. 2010년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일주일 정도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중학교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소개하면서 교실 구조 및 수업 방식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학교에 새로 입학한 학생들은 달라진 시스템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쉽게 적응했다.

 

책상을 이렇게 바꾸기로 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교사가 책상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사각지대 없이 학생들을 살필 수 있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마주보거나 붙어 앉아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다. 또한 필요할 때마다 모둠을 만들어 학생들 사이에 토론할 시간을 주면 학생들의 참여가 한층 높아진다. 학생들은 각자 알고 있는 것을 서로 가르쳐주면서 아는 것은 확인하고 모르는 것은 깨우칠 수 있다. 교사에게 물어보기 쑥스러운 학생이라도 옆 자리 친구에게는 쉽게 묻고 그들의 언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소통을 강화한 교실은 네트워킹이 강화된 상호 배움의 자리가 된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 책상 배치를 모둠 형태로 바꾸면 주의를 환기시키는 효과도 있다. 박현숙 수석교사는이 나이대 학생들의 집중력은 10분 정도 지나면 하락곡선을 그리기 마련인데 10분쯤 지났을 때 모둠으로 만들어 책상 배치를 바꿨다가 10분쯤 지났을 때 다시 원상 복귀하는 식으로 왔다갔다 하면 학생들의 지루함을 떨칠 수 있고 공기가 달라지면서 집중력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을 일상화하기 위해 교과서만 보고 가르치는 기존 방식에도 변화를 꾀했다. 장곡중학교에서 교과서는 보조 교재에 가깝다. 교과서보다는 각 과목 교사들이 재구성한활동지가 주 교재로 활용된다. 활동지는 교사들이 과목별 단원 내용을 보고 이를 토론할 수 있는 질문들로 바꿔 만든 일종의 유인물이다. 수업시간마다 교사들은 각자 만든 유인물을 나눠주고 모둠을 만들어 학생들끼리 토론을 통해 답을 찾게 한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활동지를 던져주고알아서 토론하라고 방치하는 수업이 아니다. 학생들이 모둠을 만들어 토론할 동안 교사는 책상을 사이사이 돌아다니며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이나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 자리로 가서 일대일로 대화하며 무엇이 문제인지, 막힌 부분은 어디인지를 체크하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수업시간은 말하는 시간임을 평소에도 끊임없이 주지시켜 입을 닫고 가만히 앉아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임을 인지하도록 한다.

 

책상 배치를 바꾸고 토론을 유도하면서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책은 보는데 눈으로 읽지는 않고, 말은 듣는데 귀로 흡수하지 않던 학생들은 또래와의 소통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구성원으로 포섭됐다. 박 수석교사는그동안의 수업이 30명 중에 5명만 데리고 수업하면서 나머지 25명을 버리고 가는 것이었다면 이런 방식의 수업에서는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교사의 말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던 아이들도 친구들과의 대화에는 부담 없이 참여한다고 말했다.

 

교사들에게 적용되는 시스템도 바꿨다. 기존의 학교 조직은 교무부, 연구부, 학생부, 생활부 등 업무 중심으로 구분돼 있었다. 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과목이나 학년보다는 행정적 업무 중심으로 나눠져 조직에 속했고 사무실 역시 부서별로 나눠져 있었다. 혁신학교 지정 이후에 장곡중학교의 조직은 1학년부, 2학년부, 3학년부 및 기타 부서 등으로 나뉘었다. 각 학년 담임을 맡은 교사들이 같은 조직에 소속되며 한 사무실 안에 모여 앉아 일하는 구조다. 담임을 맡지 않고 학생자치활동이나 교육연구 등 다른 업무를 맡은 교사들은 교육지원실 아래 각 부서에 속한다. (그림 2)

 

 

학년부 중심 체제의 가장 큰 장점은 학년별 교과협의나 교내외 활동을 근접거리에서 일상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마주보고 앉은 교사들은 각 학년에서의 이슈들을 언제든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다. 해당 학년 관련 정보들이 한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학생 지도가 가능하다. 또 학년부 소속 교사들은 별도의 부서 업무를 맡지 않기 때문에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이나 수업을 준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박현숙 수석교사는공문 전담 직원을 둔 것이나 학년부 소속 교사들에게 부서 업무를 맡기지 않는 것 등은 수업에 들어가는 교사들이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구조라며다른 업무 때문에 가장 중요한 역할에 소홀하지 않도록 운영 방식을 다시 짠 것이라고 말했다.

 

 

공립학교는 특성상 매년 교사가 바뀐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균열이나 미비 점을 메우기 위한 방법도 고민해야 했다. 장곡중학교에 이제 막 부임한 교사에게 당장 모둠활동을 이끌고 수업공개를 하라고 하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교과서를 보고 그대로 가르치는 일에 익숙한 교사에게 토론식 수업을 주도하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장곡중학교는 매년 새로 부임하는 교사들을 상대로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2월 교사연수를 가진다. 수업공개 영상을 보여주고 효과가 좋았던 학습 방식을 소개하며 같은 과목 교사들이 만든 활동지를 공유한다. 새로 온 교사가 쉽게 적응하도록 미리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토론식 문화를 도입하고 책상을 ㄷ자형 또는 모둠형으로 배치한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곧바로 활발하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성격이 활달하거나 해당 과목에 자신 있는 학생이라면 친구들과의 토론에 적극 나설 수 있겠지만 소심하거나 과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아무리 교사가 아닌 친구들과의 자리라도 말을 꺼내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학생들은 교사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포착된다. 수업공개를 통해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양한 교사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이 있으면 해당 학년 교사들이 모여 협의한 후 그 학생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수업에 들어가는 모든 교사들이 그 학생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동일한 언어로 같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들려준다.

 

그래도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고 뒤처지는 학생이 있으면 학년협의회를 거쳐학습참가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데 해당 학년을 맡은 교사들이 모두 모여 학생에게 필요한 내용을 논의해서 결정한다. 독서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방과 후 도서관에서 독서지도사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학생에게 재미있는 소설을 읽게 하고 독서지도사와 책 내용을 나누면서 학생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는다. 어휘력이 부족해서 생각하는 바를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집중력이 부족해서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견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문화를 바꾸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토론할 수 있으려면 학교 전체적으로 자율적인 문화가 조성돼야 했다. 평소 억압적이면서 딱딱한 분위기가 팽배하다면 수업시간에 아무리 자리를 만들어놓고 이야기를 독촉해도 학생들이 쉽게 입을 열기 어렵다. 학생들의 자율성과 민주성을 높이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문화를 일상화하기 위해 교사들은 다양한 제도를 고민하고 도입했다.

 

일단 등굣길 풍경을 바꿨다. 교문을 들어서면서부터 긴장해야 하는 기존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학생부 교사가 교문 앞에서 지키고 서서 옷차림 등을 감독하고 지적하던 일을 없앴다. 대신 반갑게 인사하며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서로 안아주는 등즐거운 등굣길 만들기를 실천했다. 대의원회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교문 맞이 행사를 기획해서 진행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대의원 학생들에게 물 풍선 던지기를 하게 한다거나 대의원 학생들이 가면을 쓰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등이다. 추석에는 교사들이 한복을 입고 학교 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에게 꿀떡을 먹여주기도 한다.

 

교문 맞이 모습

 

장곡중학교에는 반장, 부반장이 없다. 대신 반마다 대의원이 2명씩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각 학급이 논의해야 할 공통 안건을 만들어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각 학급에서 논의된 사항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대의원회의를 연다. 대의원회의에는 다양한 안건이 올라온다. 매년 한 번씩 열리는 체육대회나 축제를 기획해 의논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지키고 준수할 규정을 스스로 결정하기도 한다. 대의원 학생들이 모여 토론하는 대의원회의는 전교에 생중계된다. 몇 차례 중계를 해보던 대의원 학생들은방송만 틀어두면 교실에 있는 학생들이 지루해하더라며 다른 방법을 찾아왔다. 아프리카TV 등 실시간으로 채팅이 가능한 시스템을 이용해 교실과 회의장 사이의 의견 교환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다만 각양각색 의견들이 중구난방으로 올라오는 일을 막기 위해 회의에 참석하는 대의원 외에 또 한 명의 대의원이 교실에 남아 교실에 있는 학생들이 제안하는 의견을 받아 컴퓨터 채팅창에 입력하도록 했다. 대의원 학생들은 회의장에 크게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각 학급에서 올라오는 의견들을 보고 회의에 반영해 좀 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회의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대의원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을 교사들 앞에서 브리핑하고 최종 승인을 얻는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결정 사항을 원칙적으로 승인하되 크게 무리가 있을 때만 수정을 제안한다. 올해의 경우 학생들은머리 염색은 진한 갈색까지만’ ‘색조화장은 BB크림까지만등의 규정을 정하고 지키기로 했다. 생활인권부장을 맡고 있는 조성현 교사(음악)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규정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정한 규칙이니만큼 준수하는 정도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무엇이든 스스로 정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혁신학교로 지정되고 수업방식과 학교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학생은 물론 교사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 다른 학교로 옮겨가서도 장곡중학교를 그리워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한때 빠져나가는 학생들로 침체기를 겪었던 학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지금은 장곡중학교로 배정받기 위해 근처로 이사하려는 가구가 늘면서 주변 지역 전셋값이 크게 올랐을 정도다. 학생들의 학습 능력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또래와의 토론으로 직접 답을 구하게 하고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보통 이상 학력 비율은 오르고 기초 미달 학력 비율은 떨어졌다. ( 3) 수업시간에 서로 협동하는 일을 생활화한 덕분에 교내 사건사고 비율도 낮아졌다. ‘그냥’ ‘이유 없이같은 반 친구를 때리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다. 학생들이 서로를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동지로 인식하게 된 덕분이라는 게 장곡중학교 교사들의 평가다. ( 4)

 

 

성공요인 및 시사점

변화와 혁신이 성공할 수 있을지의 핵심은 변화의 주체인 조직이나 개인이 환경변화에 유기적으로 대응해서 적응할 수 있도록 역량을 충분히 학습해왔는지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한국 대부분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학습을 제공하는 장소면서도 역설적으로 시대의 환경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학습시키는 노력에서는 가장 후진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공교육이 무너진 배경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학교의 운영주체인 교사와 행정주체들이 사회의 환경변화에 맞춰 학교를 신축성 있게 혁신해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조직이 상당기간 환경의 변화 요구에 맞춰 학습하지 못하면 이 조직과 환경 사이에는 변화에 필요한 정보가 선택적으로 들어오는 삼투막 현상(inside sealing)이 생긴다. 이 삼투막은 조직의 근본적 변화(deep change)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방어기제(defensive routine)를 작동시킨다. 이 방어기제가 작동하면 조직은 변화의 필요성을 더욱 부인하게 되고 결국 조직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서서히 죽어간다(slow death).2 경영학자들은 조직이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해서 서서히 고사하는 현상을 은유적으로삶아 죽어가는 개구리 현상이라고 불렀다.이는 실제 실험을 통해 밝혀진 현상으로, 개구리를 잡아다 냄비 속에 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면 변온동물인 개구리는 자신이 환경에 충분히 적응하고 있다는 믿음에 갇혀 온도가 비등점이 돼도 뛰쳐나오지 않고 삶아져 죽는다. 사실 한국 대부분의 학교는 삶아 죽어가는 개구리였다. 이런 상태에서 근원적 변화를 통해 뜨거운 냄비를 뛰쳐나온 몇 안 되는 혁신적 개구리가 장곡중학교다. 장곡중학교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조직을 근본적으로 바꾼 삼원학습 추진

장곡중학교가 보여준 변화는 대부분의 한국 학교가 채용하던 학습방법인 일원학습과 이원학습을 넘어선 삼원학습을 통해 달성한 근원적 변화다. 장곡중학교는 이미 교실이 무너진 상황을 인정하고 기존 정신모형을 파기했으며 새로운 정신모형을 통해 새로운 사명과 비전을 구성했다. 새로운 정신모형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해 정신모형에서 상상한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학습이 삼원학습이다.3

 

무너진 교실을 이끄는 교사들이 느끼는 자괴감을 수업에 대한 자존심을 통해 회복하려는 생각도 삼원학습적 사고방식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생들에게 무시당하는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 오로지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존경하는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되찾는 것은 정신모형을 다시 정립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신모형에서 규정하는 사명과 가치에 의해 믿음을 갖게 되면 가르치는 일의 의미 자체가 새롭게 프레이밍된다. 가르치는 일은 더 이상 생계를 위한 귀찮은 일이 아니라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가장 소중한업의 개념으로 떠오른다.

 

 

삼원학습이란?

조직의 변화는 환경변화에 맞춰 학습하는 정도에 따라 일원, 이원, 삼원학습으로 나뉜다.i 일원학습은 가장 초보적인 수준의 인지적 변화다. 학생들에게 정답을 틀리지 않고 맞히도록 하는 효과적 전략들을 학습하게 하는 것이 일원학습이다. 대부분의 문제에 답이 정해져 있다고 가정하고 학습자가 이 답을 맞히지 못하면 다음에는 이 답을 효과적으로 맞히도록 다른 전략으로 바꿔 가르치는 식이다. 전통적 수입은 대개 일원학습에 집중한다. 하지만 환경이 변해서 요구되는 답 자체가 달라졌을 때, 혹은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창의적 질문에 대한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는 데 그 맹점이 있다.

 

이원학습은 정신모형의 틀을 구성하고 있는 가정들을 수정하는 학습을 말한다. 잘못된 가정에 근거해서 생긴 오류나 실수에 피드백을 줘서 잘못된 가정을 고쳐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즉 실수에 대한 피드백을 기반으로 한다. 다만 이원학습은 정신모형을 구성하고 있는 몇몇 가정을 점진적으로 고쳐나가기는 하지만 정신모형 자체를 수정하지는 않는다.

 

삼원학습은 가장 고차원적인 학습의 형태로, 기존의 정신모형을 새로운 정신모형으로 교체하는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근원적 변화를 이뤄가는 것을 말한다. 만약 오늘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신모형을 갖고 있었는데 내일 불교도의 정신모형으로 변했다면 삼원학습을 한 것이다. 반면 기독교인으로서 갖고 있었던 정신모형 안에서 개별 가정들의 문제점을 고쳐서 더 완전한 기독교인이 되는 과정을 겪었다면 이원학습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원학습은 점진적 변화(incremental change), 삼원학습은 근원적 변화(deep change). 일원학습을 알파변화, 이원학습을 베타변화, 삼원학습을 감마변화라고 칭하기도 한다.ii

 

조직이 오랫동안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주체적인 변화 노력을 게을리한 경우, 조직의 성공적인 변화는 일원학습이나 이원학습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조직 자체의 뼈를 깎는 고통을 요구하는 삼원학습을 통해 근원적 변화를 추구해야만 비로소 변화에 성공할 수 있다. 이때 삼원학습은 기존에 따르던 낡은 정신모형의 구성요소를 성공적으로 폐기처분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정신모형의 사명, 비전, 가치, 정체성, 즉 삶에 대한 이유(know why)를 선택하고 구성원들이 이를 효과적으로 공유할 때 가능하다.

 

 

 

개방과 공유를 통한 학습공동체 형성

장곡중학교에서 추진한 근원적 변화의 드라이브는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체험의 가장 중요한 열쇠인 기존 수업 커리큘럼을 혁신하는 작업에서 나왔다. 사회의 큰 흐름이 개방, 공유, 참여, 소통으로 변화한 점을 파악하고4 이것에 기반을 둔 새로운 커리큘럼을 학습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s) 원리5 에 맞춰 디자인했다. 개방의 정신을 반영해 학급과 수업 간의 벽을 무너뜨리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학생들이 학습의 주체로 자리 잡게 했으며 학교 운영에도 직접 개입하도록 했다. 모둠을 통해 학습내용을 공유하고, 친구로부터 배우는 것을 장려했으며, 이런 학습과정의 변화를 이해관계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소통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통합교육은 학습공동체의 정점을 구성했다. 학교 차원에서 공동의 주제를 선정하고 모든 학년에서 이 주제를 풀게 하는 학습이나 서로 다른 교과에서 다른 교과의 내용을 다루게 하는 교차 통합학습은 정보가 필요한 곳에서 더 필요한 곳으로 물 흐르듯 흐르게 하는 무경계교육(boundaryless education)의 토대를 이룬다. 이를 통해 학습의 내용이 인지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서 학생들의 참여를 통한 체험을 중시하는, 문제 중심의 행동학습(problem-based action learning)으로 개편됐다.

 

이처럼 영역 간 경계를 허물고 공동의 문제를 향해 함께 노력하는 경험은 공동체를 하나로 만들어 변화에 추진력을 높이고 나아가 더 많은 아이디어가 한데 모여 개개인의 지식을 단순 합산한 이상의 앎과 깨달음을 얻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변화를 추진하는 효과적 전략들

또한 이 사례에서는 변화를 이끌어가는 조직의 리더들이 참고할 만한 몇 가지 변화관리 전략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것을 강요하기 이전에 교사들이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공부하는 학교라는 학교의 본질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죽어가는 학교의 특징은 공부를 가르치는 주체가 세상의 변화를 업데이트하지 못하고 자신이 오래전에 습득한 죽어 있는 지식만을 학생들에게 먹여주는 방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주체들이 앞장서지 않고 구성원들에게 변화를 강요하면 실패하기 쉽다. 장곡중학교는 이런 범례에서 벗어나 교사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는 변화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항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변화와 관련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더라도 변화 자체를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장곡중학교는 이런 사람들이 변화의 저항세력을 구성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현명하게 대처했다. 저항세력이 될 수 있는 당사자들을 설득했고 설득되지 않은 교사들이 다른 학교로 전출하는 것을 도왔다. 이런 노력은 변화의 과정에서 저항의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하는 것을 최소화했다. 셋째, 혁신학교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변화의 지렛대로 사용한 것도 주요한 전략이었다. 지렛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은 변화의 물꼬를 트는 데 효과적이다. 혁신학교 프로그램을 지렛대로 활용해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고 혁신에 대한 대내외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을 장곡중학교의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볼 수 있다. 넷째, 변화의 주체들을 혁신의 핵심인 커리큘럼의 혁신과 수업의 혁신에만 집중하게 한 전략도 주요했다. 장곡중학교는 혁신학교에 지원되는 예산으로 행정인력을 충원해 교사들을 행정업무에서 해방시켰다. 변화와 혁신에 대한 서류 작업이 많아지면 변화 혁신에 대한 집중력과 활력이 떨어지고 궁극적으로 주체들이 냉소주의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 때문에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다섯째, 기존의 관료적이며 위계적인 조직구조를 사업부제 형태인 학년제와 지원부서로 나눠서 이것을 다시 매트릭스 형태로 묶은 것은 목표에 집중하게 하면서 혁신을 원활하게 지원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변화를 이끄는 리더들의 진정성이다. 무너진 공교육을 다른 곳이 아닌 우리 학교 교실에서 다시 살려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교사들의 진정성은 학생과 학부모 및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 스토리가 구성원들에게 먹히면서 혁신을 향한 이들의 자발적 행보를 끌어낼 수 있었다.6

 

결언

장곡중학교의 사례는 무너진 공교육을 살려낸 몇 안 되는 긍정적 일탈(positive deviance)7 로 향후 많은 다른 학교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것이다. 문제는 장곡중학교를 그대로 벤치마킹해서 자신의 학교를 변혁시키려는 노력이 역풍을 맞아 오히려 자신의 학교를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벌거숭이 임금님은 유행에 대한 욕구가 강한 임금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부하들이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옷들을 수십 벌 입혔으나 어떤 옷으로도 임금님을 만족시키지 못하자 부하들이 꾀를 내서 벌거숭이 상태가 가장 최신이라고 꾸며서 임금님을 밖으로 내몰고 이것을 본 어린아이들이 놀리는 이야기다. 벌거숭이 임금님 우화는 학교가 자신이 주인공이 돼서 만들어가야 할 주체적인 사명, 가치, 비전, 정체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유행을 벤치마킹하면 첨단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아무 옷도 입지 않은 상태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국 삼원학습을 통한 근원적 변화의 기반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학교에 사명이나 비전, 가치, 정체성을 먼저 확립하고, 여기에 대한 믿음을 갖고, 이 믿음을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이슈다. 조직 안에 이런 믿음이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례의 관행을 베끼는 것은 자신을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만들어서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8   

 

최한나기자 han@donga.com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 jkyoon@ewha.ac.kr

윤정구 교수는 아이오와대(The University of Iowa)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경영대학의 인사조직전략 교수로, 미국 코넬대 조직행동론학과의 겸임교수다. 리더십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사회적 리더십을 개발 및 육성하는 프로그램인 진성리더십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에 <100년 기업의 변화경영> <몰개성화 시대의 사회적 헌신> <진정성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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