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곡중의 공교육 혁신
Article at a Glance – HR , 혁신
몸은 교실에 있으나 마음은 다른 곳에 둔 학생들을 수업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자로 만들어 낸 장곡중학교 혁신의 비결은? 1) 삼원학습을 통해 기존 틀 안에서의 단순 수정 및 개선이 아닌 근원적 변화를 추구 2) 개방과 공유를 통해 공동체를 강화하고 변화를 체계화 3) 변화의 주체들이 앞장서서 솔선수범했을 뿐더러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으로 구성원들의 참여 독려 |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정권(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1. A중학교
5교시 종이 울렸다. 복도에서 왁자지껄 하던 학생들이 저마다의 교실로 뛰어 들어간다. 국어시간이다.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반장이 일어섰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세요.”
“자, 167페이지 펴세요. 오늘은 김유정의 동백꽃을 배웁니다.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한 아이가 교과서를 읽는 동안 점심식사를 막 끝낸 아이들의 눈이 하나둘 감기기 시작한다.
“자자, 다들 눈 뜨고! 이 소설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배경은 1930년대 식민지 시대의 강원도, 등장인물은 점순이와 나, 이렇게 두 명이죠. 반영론적 관점에서 보면 소작인과 마름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고, 내재적 관점에서 보면 사춘기 남녀의 수줍고 순수한 사랑을 볼 수 있어요….”
교실은 조용하다. 열심히 받아 적는 몇몇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멍하니 앉아 눈만 껌벅거리고 있거나 이어폰을 꼽고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턱을 괴고 창밖을 보는 중이다. 아예 눈을 감거나 엎드린 학생도 적지 않다.
#2. B중학교
5교시 국어시간이다. 학생들이 교과서에 실린 ‘동백꽃’을 읽고 있다. 선생님이 말한다. “다 읽었죠? 이제 모둠 만듭니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책상 구조를 바꿔 서넛씩 짝을 지어 앉는다. “나눠준 활동지를 보고 모둠별로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곧바로 교실이 시끌벅적해진다. 선생님이 나눠준 활동지에는 ‘소설에서 갈등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동백꽃에서 갈등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적혀 있다. “갈등이 뭐야?” “서로 싸우는 거 아니야?” “근데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다 갈등이 있더라. 어제 엄마랑 드라마 봤는데 주인공끼리 엄청 싸우던데.” “당연하지, 서로 싸워야 얘기가 될 거 아니야.” “맞아. 사이좋게 지내기만 하면 얘기가 안 되잖아, 얘기가.”
“이제 모둠을 풉니다.” 학생들이 책상을 옮겨 원래의 대형으로 돌아온다. “자, 소설에서 갈등은 어떤 역할을 할까?”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든다.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요소요.” 다른 학생도 입을 연다. “사건의 시작이요!” “이야기의 끝 아니에요? 갈등이 끝나면 소설도 끝나잖아요.” “소설을 끌어가는 핵심이요. 갈등이 없으면 소설이 안 될 것 같아요.”
학생들이 말하는 동안 선생님은 옆에서 부추길 뿐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와, 그런 생각은 나도 못했는데!” “대단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선생님이 나섰다
경기도 시흥에 자리 잡은 장곡중학교는 1999년에 32학급으로 문을 열었다. 한때 40학급에 이를 정도로 학생이 늘었다가 인근에 새로운 학교가 생기면서 학생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변변한 체육관 하나 없을 정도로 시설이 열악한데다 학생 숫자가 한꺼번에 줄어들면서 교사도 학생도 의욕이 감소했다. 여기에 ‘수요자 중심의 자율적 교육’을 목표로 하는 7차 교육과정이 본격화하면서 학생들의 사기가 눈으로 확인될 정도로 뚝 떨어졌다. 이 교육과정은 학생이 자신의 실력에 맞는 교육을 고를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제공했다. 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을 수준별로 반을 나눠 운영하는 식이다. 학급회의가 사라지고 전 과목에 수행평가가 도입되기도 했다. 이후 경쟁이 심해지고, 낙오자가 늘었으며, 아예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사기 저하는 수업시간에 가장 뚜렷하게 확인됐다. 학생들은 눈과 귀를 닫은 채 몸만 교실에 뒀다. 수업시간에도 대놓고 엎드려 자거나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않는 학생들이 늘었다. 교사가 “여기 좀 보라”며 칠판을 두드리면 “공부는 해서 뭐 하냐” “내가 공부 안 하겠다는데 선생님이 무슨 상관이냐”며 대들었다. 학생부장이 학생들을 데리러 경찰서를 드나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자는 학생을 깨우는 교사에게 욕을 하며 화내는 학생도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교사들 쪽에서 먼저 고조됐다.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학생들을 대하는 것은 교사들에게 지옥과 같았다. 박현숙 장곡중학교 수석교사는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거나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때리거나 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아무 희망도 꿈도 없이 학교만 왔다갔다 하는 학생들을 매일 대하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권을 생각하기 전에 교사 개인에게 매우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장곡중학교의 일부 교사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갖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단순히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자는 모임이 아니었다. 교육철학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침체된 분위기의 교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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