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정조를 통해 본 리더십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HR
조선은 조상숭배와 제사를 무엇보다 소중히 하는 사회였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르던 사회에서, 왕이 행차한다는 이유로 무덤을 깎고 비석을 뽑아 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때는 1724년, 영조 즉위 첫해였다. 선왕인 경종의 장례를 위해 능으로 행차하던 중 영조는 길에 있는 수많은 무덤들이 훼손돼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왕의 행차 때 백성들은 모두 그 자리에 엎드려야 했는데 비석과 봉분은 오뚝하게 서 있어 문제가 된다는 이유로 신하들이 무덤을 깎고 비석을 뽑아버렸던 것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아랫사람들의 과잉 충성이나 권력 남용으로 봐서는 안 된다. 변화를 싫어하고 일정한 형식에 자신을 가두려는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 문제를 일으킨 역사적 증거다.
편집자주
영조와 정조가 다스리던 18세기는 조선 중흥의 시대라 불립니다. 하지만 이런 타이틀은 결코 쉽게 얻어진 게 아닙니다. 노론과 소론 간 권력 투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즉위한 두 왕은 군왕의 소임이란 특정 당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도탄에 빠져 있는 조선과 백성을 위해 있는 자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당시로선 너무나 혁명적인 선언인 탓에 수많은 방해와 반대에 직면했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혜와 용기, 끈기로 무장해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낸 두 임금, 영조와 정조의 기록을 통해 진정한 리더의 자질에 대한 통찰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영조와 정조의 시대에 유럽에서는 절대군주와 계몽전제군주라는 두 가지 사조가 유행했다. “짐은 곧 국가다.” 이 말은 볼테르가 17세기 프랑스 절대군주였던 태양왕 루이 14세를 지칭해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태양이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태양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루이 14세를 태양왕으로 만든 비결은 유럽 최고의 부와 강력한 군대였다. 루이 14세는 전 유럽 대륙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왕이었다. 막대한 세금과 풍부한 재정으로 베르사유궁전을 짓고 60만의 상비군을 운영함으로써 절대군주로 군림했다.
계몽전제군주의 대표주자는 18세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다. 유명한 “군주는 그 나라의 첫 번째 공복이다”라는 말을 한 주인공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좋아하는데 그 의미를 완전히 반대로 이해하고 있다. 이 말은 왕의 지위를 태양에서 종으로 바꾸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만들었다. 국가통치, 고문 폐지와 같은 민주적 개혁, 학문 진흥, 군대조직, 정복전쟁 지휘 등 1인 다역을 훌륭히 해냈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만한 절대 권력을 요구했고 필요하다면 납치, 숙청, 기타 무슨 짓이든 다 했다. “군주는 국민의 공복이다. 너희를 위해 모든 일을 할테니 나를 믿고 모든 권력을 내게 다오.” 그의 선언은 사실 이런 뜻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절대군주 vs. 계몽전제군주
서구에서 왕이 태양이냐, 종이냐는 논쟁을 하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 있던 조선에서도 국왕권의 확대를 두고 긴장이 강화되고 있었다. 조선의 왕은 어떤 면에서는 절대군주와 계몽군주적 요소를 다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영정조 시대에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신하들과 갈등이 벌어졌다. 다만 문제는 조선에서 태양왕과 같은 절대군주적 개념은 너무 오래된 것이었고 계몽전제군주는 너무 낯선 것이었다는 점이었다.
동양의 전통적 군주관은 온 나라의 표상과 본보기로서의 군주였다. ‘하늘이 백성을 낳고 (그 통치자로) 군주를 세워 인(仁)으로써 모두 태평하고 화목하게 지내게 한다’는 것이 왕과 백성의 관계이자 국왕 권력의 근거였다. 이 말은 왕은 하늘로부터 백성의 통치를 위임받은 존재라는 의미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왕을 하늘의 해로 묘사했다. 조선에서는 왕이 승하하면 그 즉시 세자가 왕으로 즉위했다. 효를 하늘처럼 받들고 삼년상까지 치르던 나라였다. 선왕의 장례라도 치르고 즉위하는 것이 옳을 듯하지만 왕은 그 즉시 즉위했다. 이유는 바로 “하늘의 태양은 한순간이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였다. 이것이 태양왕적 요소다.
물론 이 말에는 왕은 백성을 하늘같이 여겨야 하며 백성의 뜻을 듣는 것이 하늘의 뜻을 듣고 시행하는 것이라는 이중적 의미도 있다. 국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 백성의 조그만 불평과 불행도 왕의 책임이다. 이런 점에서는 계몽전제적 군주 같기도 하다. 그러나 존귀함과 공정함을 강조하는 이론이 공존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사람들은 존귀함 쪽으로 유혹되기 마련이다. 왕은 하늘의 대행자라는 관념이 태양왕적인 의미로 사용된 지가 너무 오래 됐기에 백성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백성이 원한다면 기존의 관행과 법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계몽전제군주적 태도는 훨씬 더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섦과 너무도 오래 지속된 태양왕적인 자세 때문에 좋은 뜻으로 시행한 일이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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