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을 통해 본 2인자 경영학
편집자주
기업이 거대해지고 복잡해질수록 CEO를 보좌해줄 최고경영진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커집니다. 리더의 올바른 판단과 경영을 도와주고 때로는 직언도 서슴지 않는 2인자의 존재는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명재상들 역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군주를 보좌하며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조선시대 왕과 재상들의 삶과 리더십에 정통한 김준태 작가가 ‘조선 명재상을 통해 본 2인자 경영학’을 연재합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2인자를 뜻하는 말로 전통사회에서는 재상을 이렇게 불렀다. 재상은 모든 사람들의 가장 윗자리에 위치하며 그 위에는 오로지 군주 단 한 사람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상이 처음 등장한 것은 요순(堯舜)시대부터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각기 왕위를 물려주기 전까지 이들을 ‘백규(百揆)’로 임명해 국가의 주요 정무를 처리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서 ‘백규’가 바로 재상이다. 이 밖에도 은나라의 탕왕을 보좌한 이윤(伊尹)과 주나라의 성왕(成王)을 도와 훌륭한 정치를 펼친 주공(周公)이 후대 재상들의 모범으로서 역사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문무백관의 우두머리라는 뜻에서 재상은 ‘총재(冢宰)’라고도 불렸다. 정도전은 총재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릇 임금 중에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현명한 이도 있으며, 강력한 이도 있고 유약한 이도 있는 등 한결같지가 않다. 그러므로 총재는 임금의 장점은 북돋워주고 단점은 바로잡아야 하며, 임금이 옳은 일을 하면 받들어 실천하고 옳지 않은 일을 하면 막아야 한다. 임금으로 하여금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가장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 또한, 백관은 제각기 맡은 바 임무가 다르고 백성들도 제각기 직업이 다르다. 총재는 이들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다스려서 각자가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으며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이는 지금의 CEO 혹은 2·3세 승계가 완성된 기업의 오너와 그를 보좌하는 2인자와의 관계와도 흡사하다.
총재의 임무는 구성원들을 고루 균형 있게 다스리고(宰制) 군주를 보좌해 바른 길로 인도(輔相)하는 것이다. ‘재상(宰相)’이라는 명칭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됐다. 그런데 이러한 재상의 역할은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면이 있다. 각 부 장관처럼 전담하는 분야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신하들을 통솔하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다스려야 하는 임무는 군주와 겹친다. 유교정치사상에서도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고(格君), 인재를 등용하고(知人), 일을 잘 처리하는 것(處事)이 재상의 책무다”라고 말할 뿐 구체적인 업무분장을 하지는 않고 있다. 더욱이 재상은 설령 형식적일지라도 군주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왕권을 위협할까봐 걱정하는 군주로부터 견제를 받게 된다. 주도적으로 정치의 전면에 나설 경우 자칫 군주와 충돌할 위험이 높다. 그래서 재상들 중에는 군주의 자문에나 응하며 수동적으로 자리를 지킨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왜 굳이 재상이라는 자리를 따로 뒀을까. 첫째, 군주가 혼자서 국가의 모든 일들을 감독하고 결정하기란 불가능하다. 둘째, 군주의 각도에서 국정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군주가 내리는 선택에 대해 조언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각 부 장관들도 자신이 맡은 업무에 관해서는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해 줄 수 있겠지만 서로 다른 부서의 업무를 조율하며 종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는 못한다. 셋째, 군주의 유고에 대비한다. 군주의 교체는 대부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군주가 갑자기 죽거나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정변으로 인해 퇴진할 수도 있다. 이때 군주의 빈자리가 곧바로 채워지지 않으면 국가는 위기를 맞는다. 결정과 책임의 공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자라는 후계자가 준비돼 있지만 세자가 즉위하고 본격적으로 국정을 담당하게 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요구된다. 이 기간 동안 권력이 안정적으로 이양될 수 있도록 국정을 대신 담당해 줄 경험 많은 신하, 즉 재상이 필요하다.
정도전은 여기에 대해 근본적인 이유를 한 가지 더 제시했다. 앞에서 인용한 대로 군주마다 자질의 수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원래 가장 어질고 현명한 사람이 왕이 돼야 한다고 봤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선양을 했듯이 혈연보다는 성품과 능력을 보고 왕위를 물려주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겼다. 만백성을 다스리고 교화하는 책임을 짊어진 임금은 능력 면에서나 도덕적인 면에서나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 왕의 잘못과 실수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구성원의 안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에게 왕위를 전하는 세습군주제가 정착되면서 이것은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한 모델이 돼버렸다. 세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철저히 후계자 교육을 시켰지만 왕의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늘 뛰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왕의 잘못을 견제하고 왕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역할이 바로 재상이라는 것이다. 정도전은 재상을 통해서나마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을 지도자로 삼는다는 유학의 이상이 지켜질 수 있기를 바랐다.
만약 임금의 자질이 중간 정도인데 재상이 훌륭하면 정치가 잘되지만 재상이 훌륭하지 못하면 정치가 어지러워진다. 예컨대 당나라 현종이 송경과 장구령을 재상으로 등용했을 때는 태평한 정치를 이뤘으나 이임보와 양국충을 재상으로 등용했을 때에는 천보의 환란을 불러왔다.
<조선경국전>
정도전은 누가 재상이 되느냐가 국정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고 구성원들의 편안한 삶과 공동체의 번영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평균 수준의 자질을 갖춘 군주의 경우 어떤 재상을 임명하느냐에 따라서 태평성대와 환란이라는 양 극단의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군(聖君)의 자질을 갖추고 국정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준비돼 있지 않은 바에야 군주는 그것을 대신 실현시켜 줄 재상을 어떻게 하면 잘 뽑을 수 있을지에 집중하라고 그는 조언했다. 마치 기업 오너가 자신보다 뛰어난 전문경영인을 발탁해서 기업 경영의 책임을 맡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재상의 역할을 강조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군주와 부딪히게 된다. 자신보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 것은 분명히 현명한 선택이지만 막상 권력을 공유하기란 쉽지가 않다. 더욱이 재상의 업무는 군주와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재상이 역할을 강화하게 되면 군주는 그것을 자신의 영역에 대한 침범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재상에게 권한을 주고 국정을 담당하게 하다가도 갑자기 해임하거나 숙청시키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또한 재상정치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해준 유교이념조차 군주에 의한 통치를 기본 원칙으로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2인자가 1인자보다 주목받고 더 센 권력을 갖게 되면 권력구조에 왜곡이 생긴다. 당사자들은 원하지 않더라도 재상에게 힘이 쏠리고 재상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투쟁이나 세(勢) 대결이 유발된다. 1인자인 군주가 무력화되면서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조선시대의 척신정치나 세도정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요컨대, 재상은 지위만 높고 할 일 없이 자리를 지키는 원로가 되거나 반대로 군주와 부딪히며 권력투쟁을 벌여야 하는 위치가 돼버리기 쉽다는 말이다. 이 중 어느 쪽도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상이라는 자리를 도입한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왕권과 재상권 사이의 균형점을 잘 찾아내야 한다. 1인자인 군주와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군주도 재상을 신뢰하면서 재상이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겠지만, 특히 재상은 군주의 성향과 특성에 맞춰 부족한 점을 메워주고, 군주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진심과 정성을 다해 보좌해야 한다.
재상의 권한과 역할도 재상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재상의 업무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고 했지만 이것은 업무의 제한 또한 적다는 말도 된다. 임무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구체적이고 다양한 일들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 재상이 소신을 가지고 국정을 살피면서 자신의 역할과 권한을 스스로 찾아간다면 얼마든지 재상다운 재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굳이 재상이 아니더라도 어느 조직의 2인자나 마찬가지다. 2인자이기 때문에 역할이 애매하지만 2인자라서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1인자가 관리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지만 우선순위 때문에 맡지 못하는 일들을 대신해서 수행한다거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등 기존의 부서들로는 담당하지 못하는 업무들을 책임질 수도 있다.
앞으로 연재할 글은 자신의 역할을 찾은 재상들에 관한 이야기다. 신권과 왕권의 접점에서 경륜과 철학으로 각자만의 2인자상을 정립한 조선의 재상들을 다루고자 한다. 재상들은 각자 복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특성만으로 도식화하기는 어렵지만 집중적인 논의를 위해서 가장 대표적인 특징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조정자형은 국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나 이해관계, 정파 간의 대립을 효과적으로 조정한 재상들이다. 세종 때 19년간 영의정으로 재직하며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책임졌던 황희, 세조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훈구세력 간의 대립을 조정하고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도모했던 신숙주, 효종 대를 중심으로 정치적인 갈등을 수습하고 외교적인 난제들을 도맡아 처리했던 이경석,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의 대립을 중재한 숙종 대의 남구만과 최석정이 그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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