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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조직과 관찰

관찰기반 수평적 평가 저성과자 숨을 곳 없다

김성남 | 145호 (2014년 1월 Issue 2)

 

 

관찰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풀면 볼 관() 자에 살필 찰() 자가 합쳐진 형태로 의미상살펴본다’ ‘주의를 기울이며 본다는 뜻이다. 대충 보아 넘기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나 현상의 이모저모를 세세하게 살피면서 그 이면의 원리 및 배경까지도 파악한다는 적극적 의미를 담고 있다. 동양에서는 관찰의 개념이 사람의 내면에 대한 관찰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수단으로서 전승돼 왔다. 서양에서는 관찰이 합리주의에 기반한 과학적 방법론의 필수 단계로서 중시됐다. 인류가 문명 사회를 형성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발명과 발견,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이론들은 관찰의 힘을 빌려 성립됐다.

 

한편, 관찰의 대상이 사람의 행동일 경우행동 관찰(behavior observation)’이라고 한다. 100년 전, 테일러(Frederick Taylor)는 작업자들에 대한 행동 관찰 경험을 토대로 <과학적 관리의 원칙(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을 저술했고 그 원리는 현대 산업 공학의 출발점이 됐다. 사람의 직무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으로역량(competency)’에 대한 관찰을 선도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맥클리랜드(David McClelland). 오늘날의 인사관리는 채용, 평가, 보상, 보임, 육성, 핵심인재 관리 등 어느 한 부분도역량이라는 개념을 떠나서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 관찰과 관련한 두 권의 책이 나와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얀 칩체이스의 <관찰의 힘>, 양은우의 <관찰의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책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관찰의 중요성 및 기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앞의 책은 저자가 다양한 문화권에서 시장조사를 하면서 실제로 체득한 관찰의 본질에 대해 공유하는 것이 특징이고 뒤의 책은 관찰력을 높이기 위한 8가지 기법을 방대한 사례를 들어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흥미롭다. 두 책의 공통점은 탁월한 관찰 능력이 개인과 조직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필자는 이 관점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본고에서는 관찰이 조직·인사 관리 측면에서 갖는 의의, 사례, 실천적 행동방향 제시 등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관찰의 유형과 활용상의 유의점

 

구체적 사례를 쓰기 전에 우선 관찰의 유형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자. 관찰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어떤 주장 또는 판단이 맞는지에 대한 확인 수단이기도 하며,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찰은 한 가지 정형화된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상황, 목적 등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일 수가 있다. 필자가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관찰은 크게 귀납적 관찰과 연역적 관찰이라는 2가지 전형적인 패턴으로 나눌 수 있다. ( 1)

 

 

두 가지 관찰 프로세스를 잘 비교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귀납적 방식과 연역적 방식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귀납적 관찰을 통해 추론을 하다가 새로운 가설을 가지게 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역적 관찰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책 <관찰의 기술>에서는 관찰의 프로세스를동인관찰발견깨달음개선 5단계 프로세스로 정리했는데 나름 좋은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모든 경우의 관찰을 이 프로세스로 다 설명하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관찰 없는 사유(思惟)가 어렵지만 관찰을 제대로 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관찰과 관련한 여러 가지 한계 또는 제약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정확히 알고 대응한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관찰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유의할 점을 몇 가지 정리해 본다.

 

1. 관찰과 추론의 결합 - 추론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많은 관찰을 해도 소용이 없다. 뭔가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과정은관찰데이터 축적분석 및 종합결론 도달과 같이 종합적이고 변증법적인 지적 활동이다. <논어> ‘위정 편에서도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혹에 빠지기 쉽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잘못된 길로 빠져 위험해 질 수 있다1 했는데 바로 이러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2. 관찰의 충분한 축적 - 관찰을 통해 위대한 발명을 하고 큰돈을 번 사람은 마치 아주 우연히 한 가지 관찰로 인해 성공한 것처럼 묘사된다. 과연 그럴까? 사실은 많은 관찰이 축적된 후에 이뤄진 결정적인 관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두 번의 관찰만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하면성급한 일반화(hasty generalization)’ 오류에 빠지기 쉽다.

 

3. 맥락의 해석 및 이해 - 관찰만큼 중요한 것이 해석이다. 관찰 결과의 해석은 맥락(context)의 영향을 받는다. 관찰 대상이 사람이나 조직일 경우는 특히 그렇다. 관찰 자체에 들이는 것 이상의 노력을 맥락을 이해하는 데 들여야 한다. 맥락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WHY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는 것, 그리고 그 문화권 또는 조직에 속한 사람과 인터뷰를 통해 묻는 것이다.2

 

4. 프레임의 활용 및 탈피 - < 1>에서도 보여지듯프레임(패러다임, 이론)’은 유용하지만 상황에 따라 새로운 돌파구(breakthrough)를 찾는 데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인류가 이룬 과학적 성과의 발전은 패러다임 자체의 교체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 과학사가(科學史家)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주장인 바 어떤 상황에서 프레임을 활용하고 벗어나야 할지에 대한 판단이 관찰에서도 중요하다.

 

5. 주관적 판단 오류 탈피 - 관찰은 대개 개인 차원에서 이뤄진다. 결과를 논문 등으로 써서 공유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고 피드백을 받기도 어렵다. 따라서 항상 주관적 판단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보편 타당한 결론으로 연결되지 않는 관찰은 별 가치가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개인적 관찰과 집단지성을 아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고, 함께 관찰·토론하는 것이다.

 

6. 관찰의 한계 이해 - 완벽한 관찰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인간의 인지 능력이 완벽한 것도 아니고 물리적으로 관찰하기 어려운 상황도 존재한다. 때로는 맥락 정보가 부족해 관찰 결과를 충분히 해석할 수 없을 경우도 있고 관찰이 대상자의 행동을 변화시켜 정확한 관찰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런 문제가 있는 경우 그 한계점도 인정하고 다른 방법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인적자원관리 영역에서 관찰의 중요성

 

기업들은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어떠한 기술이나 제품도 지속성 있는 경쟁 우위를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누구도 흉내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됐던 애플 아이폰도 삼성 갤럭시폰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3  분야별 1, 2위를 하는 기업들조차 지속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 없는 혁신이 필요하며 거기에는 리더와 구성원들의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다. 실제 2010 IBM이 글로벌 기업의 CEO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미래에 제일 중요한 리더십 역량으로창의력(creativity)’이 꼽힌 바 있다.4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크리스텐슨 교수 등은 <이노베이터 DNA>라는 책에서 창조적 기업가 25명의 습관을 집중 분석해 창의력의 비결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는데5  그중 하나가 관찰이었다.6

 

인적자원관리는 인재의 선발, 활용, 육성, 동기부여를 통해 조직의 목적 달성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성과는 항상 사람의 행동을 통해서만 달성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높은 성과를 내고 있는지, 또 앞으로 낼 것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 및 예측하는 것은 조직 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여기에서 관찰의 중요성이 또 한번 부각된다. 이러한 관찰은 조직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행동관찰 또는 입사 지원자를 대상으로 하는 면접 관찰의 형태로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것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사람들은 항상 긍정적 평가를 받고 싶어 하고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지에 따라서 행동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람에 대해 평가함에 있어 평가자의 선입관 및 주관이 개입된다는 점이다. ( 2)

 

모두(冒頭)에서 언급한 두 권의 책을 살펴보면 성공적인 관찰의 적용사례가 풍부하게 소개돼 있다. 양은우의 책에서는 노벨의 다이나마이트 발명, 다이슨 날개 없는 선풍기 개발, 3M의 포스트잇 발명, 화이자의 비아그라 출시 등 많이 알려진 사례 외에도 독자들이 평소 지나치기 쉬운 다양한 사례들이 많이 다뤄지고 있다. 얀 칩체이스의 책에서는 주로 글로벌 시장을 직접 몸으로 뛰면서 체험한 시장 니즈에 대한 관찰의 경험을 풍부하게 접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내용들과 겹치지 않으면서 주로 조직 차원에서 관찰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런 내용들을 통해서 독자들이 인적자원관리 영역에서 관찰의 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기를 바란다.

 



조직 차원의 관찰 적용 사례

 

Right Talent 선발은 정교한 채용관찰에서

 

청년실업자는 넘쳐나는데 기업에서는 쓸 만한 인재를 충분히 못 뽑아서 고민인 것이 요즘 대졸 신입 채용을 둘러싼 풍경이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주요 대기업들이 거의 동시에 채용 진행을 하고 또 지원한 사람 중에서만 가려서 뽑다 보니 입맛에 맞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수 지원자 풀(pool)은 넓히고 검증의 잣대는 강화하는 것이 대기업 채용담당자들의 영원한 고민이다. 이런 가운데 현대자동차는 2013 6 ‘The H’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새로운 채용모델을 공개했다. 후보자의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아 나서캐스팅한 후 4개월 동안 각종 모임 프로그램을 통해 입체적인 방법으로 인성을 평가,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핵심은 지원자들의 포장되지 않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것이다. 현장 캐스팅 또는 친구추천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발굴된 후보들은 그룹 여행, 봉사활동, 식사 모임 등을 통해 채용 담당자들과 비격식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후보자들의 인성, 잠재력, 현대의 가치와 부합 여부 등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선발과 뚜렷이 차별화된다고 하겠다. 과연 현대자동차그룹의 이런 실험이 Right Talent 선발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2009년 아마존에 1조 원 가까운 금액으로 인수된 자포스(Zappos.com)사의 경우도 행동관찰을 기반으로 특이한 채용을 한 사례가 있다. 이 회사는 다른 쇼핑몰들과 차별화된 남다른 서비스로 유명한데 어떤 업체보다 빠르게 배달하며(저녁에 주문해도 다음날 아침 도착), 100% 무료 배송(반품 포함)일 뿐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물건의 재고가 없으면 다른 곳에서 구입을 해서라도 배달해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전체 매출의 약 75%가 반복구매 고객으로부터 발생한다.7  이런 서비스 기반 경쟁우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모든 직원이 철저한 고객 마인드로 무장돼 있어야 하는데 이를 핵심 가치에 반영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고 거기에 따라 모든 신규 입사자를 채용한다. 다른 9가지 핵심가치에 대해서는 인터뷰를 통해 충분히 검증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10번째 핵심가치, ‘겸손하자(Be humble)’였다. 인터뷰에서당신은 겸손한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누구나그렇다고 할 것이고 사례를 들어서 설명한다고 해도 검증에 한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고민한 방법이 후보자들이 면접을 끝내고 회사 차량을 타고 돌아가는 길에 운전기사를 대하는 태도가 겸손했는지 여부를 당락에 반영했다는 것이다.8  기사에게 무례한 언행을 한 후보자는 다른 면에서 아무리 뛰어나도 탈락 통보를 받게 된다.

 

 

위와 같이 특이한 방식이 아니라도 검증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매우 정교하게 구조화된 선발기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통칭해 평가센터(Assessment Center)라고 한다. 이런 방식들은 지원자의 숨겨진 역량이 과제 수행을 통해드러나도록유도한 후 관찰하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는 임원급 리더 후보의 선별과 육성 목적으로 개발됐으나 최근에는 신입사원의 선발에도 적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평가센터 도구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 3>과 같다.

 

관찰에 기반한 직원평가 고도화 및 역량 육성

 

직원 설문을 실시해 보면 인사제도 중 직원 만족도가 가장 낮은 것이 급여였고 그 다음이 평가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2012년 타워스왓슨이 실시한글로벌 인적자원 조사에서도최근 고과에서 나의 성과는 정확하게 평가됐다는 문항에 대한 긍정 응답률에서 한국 평균은 48%에 불과했다.9  그만큼 직원이 승복하는 평가란 어려운 것이다. 최근 많은 기업에서육성형평가를 지향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HR에서 제시한 배분율에 따라 등급만 결정하고 피드백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피드백을 해주고 싶어도 몇 달 전 일을 일일이 기록해 두지 않는 다음에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최근 두산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 선도적으로 이런 등급배분 중심의 평가제도를 지양하겠다고 공표해 주목된다.10  줄 세우기식으로 직원의 등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역량 및 행동지표별로 구체적인 관찰 결과를 평소에 기록해 뒀다가 본인에게 피드백도 하고 승진이나 연봉인상 등에도 반영하는 식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관찰 기록에 기반한 평가와 피드백은 당사자의 수용도를 높이고 진정성에 기반한 육성을 가능하게 하는 초석이 된다.

 

직원평가의 또 다른 문제점은 한 명의 직책자가 너무 많은 직원을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팀장들도 자기 업무가 많고 챙겨야 할 이슈가 산더미 같은데 어떻게 직원들의 역량개발과 업무수행 상황을 평소에 세밀히 관찰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겠는가. 게다가 평가 시즌은 대개 차년도 계획수립, 조직개편, 임원인사 등과 맞물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연말이라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상사 비위를 잘 맞추는 직원에게 좋은 평가가 나가고 묵묵히 자기 일 잘하는 사람들은 소외되는 결과도 있다. 구글은 이런 문제를동료평가라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구글에서는 거의 모든 업무가 프로젝트 단위로 이뤄지고 한 사람이 3∼5개 정도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부서를 넘나들며 10명 내외의 동료들과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중 5∼7명 정도의 동료평가자를 지정해서 평가를 요청하면 동료들은 같이 일하면서 관찰한 해당 직원의 강·약점 및 공헌도 등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에세이를 작성한다. 내용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써주는지 타 회사에서 경력직으로 입사했던 한 직원은 첫 평가에서마치 자신이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리더의 역할은 이런 에세이들과 자신의 관찰을 종합해 최종 등급을 결정하고 본인에게 피드백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 기반의 수평적 평가에서는 저성과자가 숨을 곳이 없다.

 

때로는 관찰하는 사람의 수준이 높지 않으면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전문가에 대한 평가가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직급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상위자보다 높은 전문성을 가진 경우, 보유한 전문성에 대한 적절한 인정(認定)이 이뤄지지 못해서 실망하게 돼 이직이나 몰입도 저하를 가져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따라서 고도의 전문가 집단을 보유한 기업에서는 연례 고과 외에 전문성을 정밀하게 관찰, 평가하는 시스템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수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이 IBM Professional Development Framework(PDF) 제도다. 이는 특히 IBM의 컨설팅 조직인 Global Business Services 부문에서 적용되는데 일정 레벨 이상으로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PDF 패널의 공식 평가를 거쳐서 각 해당 역량별 필요 역량, 경험, 전문성 등을 검증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방산 업체 대상 IT 전략 컨설팅 분야의 시니어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명의 각 분야별 전문가 패널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 역량을 어필하고 이에 대해 평가를 받아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만 해당 타이틀을 취득하게 되는 식이다. 국내에서도 R&D, IT, 기술/엔지니어 조직을 보유한 기업에서도전문위원제도’ ‘마스터제도등의 명칭으로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관찰과 개선 정착화를 통한 학습조직 (Learning Organization) 만들기

 

관찰은 살아 있는 지식을 얻는 방법이다. 책이나 강의를 통해 잘 정리된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하는 것도 좋지만 진짜 비즈니스에서 도움이 되는 생생한 지식은 현장에서 나온다. 과거 삼성전자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신입사원 시절의 경험담을 필자에게 많이 얘기해줬는데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오랜 기간의 입문 교육을 마치고 현업 배치를 받았더니 두 달 동안 아무 업무도 주지 않고 그냥 공장 라인 여기저기에 서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킬 일이 없어서 그런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교육의 일부였다. ,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공장이 돌아가는 것을 관찰만 해도 제품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무엇이 비효율적인지,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가 눈에 보이더란다. 필자는 이공계가 아니라서 공장 쪽으로 배치를 받아본 경험은 없지만 신입사원 교육의 일환으로 생전 처음 물건을 팔아본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11  그 경험을 통해서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파는 것보다 미용실처럼 사람들이 30분 이상 머무르는 곳에 가서 파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는 것을 체득하기도 했다.

 

구성원들의 관찰 역량을 통해 혁신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기업 중 IDEO는 단연 넘버원이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꼽히는 디자인 기업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과거 신제품 개발을 위해 이 회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삼성, P&G, 인텔, 네슬레 등 유수 글로벌 기업 및 기관들이 이 회사의 고객이다. IDEO는 자사의 디자인(컨설팅) 프로세스의 핵심을 IDEO Way라고 하는데 이는관찰(observation) → ②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 ③ 빠른 시제품화(rapid prototyping) → ④ 개선점 파악(refining) → ⑥ 적용(implementation)의 다섯 단계로 구성된다. 중요한 것은 이 가운데관찰단계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점이다. 관찰을 위해서 IDEO 디자이너들은 실제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현장에 간다. 거기서 고객과 소비자를 관찰하고, 직접 물건을 써보고, 함께 생활하면서 불편함도 느껴본다. 그리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은 비디오, 녹음기, 메모지, 포스트잇 등에 닥치는 대로 기록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대표적 관찰 기법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12

 

·Shadowing - 소비자들이 실제 제품을 사용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병원에 방문하고, 기차를 타고,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등의 행동을 직접 관찰

 

·Behavioral Mapping - 한 장소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의 행동을 일정 기간 (예를 들어 2∼3) 동안 계속 사진으로 촬영

 

·Consumer Journal - 소비자가 어떤 제품, 서비스를 사용할 때의 모든 행동 단계, 또는 특정 장소에서 관찰대상인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하나도 누락하지 않고 일일이 기록

 

·Camera Journal - Consumer Journal과 유사한 방식이지만 종이와 연필이 아닌 비디오 카메라를 활용해 끊임없이 기록

 

·Extreme User Interviews - 어떤 제품에 대해 아주 잘 알거나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제품을 써보도록 권유한 후 의견을 인터뷰

 

·Storytelling - 사람들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와 관련해서 이전에 경험했던 것을 얘기해보도록 유도하고 이를 기록하는 방식

 

·Unfocus Groups -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서 어떤 제품/주제에 대한 그룹 인터뷰 (일반적 Focus Group과는 달리기발한의견 표출이 가능하도록 최대한 다양한 그룹 구성)

 

조직에서 이뤄지는 모든 개선에 앞서 관찰은 필수다. 제안과 개선을 통해 탁월한 경영 성과를 달성하는 대표적 사례가 일본의 미라이공업(未來工業)이다.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듯이 잔업 금지, 출산휴가 3, 70세 정년, 연간 140일 휴가, 전 직원 해외여행 지원 등 환상적인 복지 때문에유토피아 경영의 사례로도 회자(膾炙)되는 이 기업은 1965년 창립 당시 이미 마쓰시타 같은 대기업과 경쟁해서도 이긴다는 목표 위에 세워졌다. 특별한 강점이 없는 중소기업으로서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잠재력을 100% 끌어내는 경영방식이 필요한데 구체적으로는 미라이공업형제안제도의 형태로 집약돼 있다. 사실, 직원 제안 제도는 국내에서도 이미 1980∼1990년대부터 도입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제대로 정착되지 못해 고색창연하게 느껴지는 제도다. 미라이공업의 경우 제안은하면 좋은 것정도가 아니라 경영전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 안 어디를 가더라도항상 생각하자(える!)”라는 표어가 붙어 있고 직원 1인당 연평균 10건의 제안을 내며 제안의 수준도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보다는 문제점, 개선요인들을 철저히 관찰한 후 치밀한 개선방안 수준인 것들이 많다. 이렇다 보니 직원 800명도 안 되는 회사가 연 250억 엔( 2550억 원) 매출에 두자릿수 수익을 내고 회사 제품의 98%가 자사보유 특허에 기반한 제품이다. 그러니 직원을 뽑을 때도창의력자발성을 가장 중시하고13  불필요한 낭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 물론 국내 기업이 미라이공업의 방식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다만 현장 직원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관찰하고 개선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동기요인 및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실전과 통합된 살아 있는 관찰, 미 육군 After Action Review

 

군대의 성과를 측정하는 궁극의 지표는 전투에서의 승리다. 전투는 지휘관의 전략과 전술에 기반한 작전 계획을 부대원들이 정확하게 실행함으로써 적을 섬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 육군은 오래 전부터 전투능력 향상을 위해 현장 관찰에 기반한 After Action Review(AAR)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AAR은 크게 5단계로 이뤄지는14  전투훈련의 마지막 단계의 활동에 해당된다. 이 자리에는 실제 작전(훈련)을 수행한 부대원들이 참여하고 리더가 주재(fascilitation)한다. 산업공학에서 얘기하는 ‘PDCA 사이클과도 유사성이 있지만 몇 가지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 첫째, 매우 신속하게 이뤄진다. 대개 작전이 끝난 직후에 바로 이뤄지며 시간도 매우 짧다.15  둘째, 행동에 집중한다. 전투(훈련) 상황의 특성상 부대원들의 행동이 결국 결과를 좌우하므로 모든 것을 행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셋째, 수행자와 관찰자가 동일하며 혼연일체의 팀 단위로 이뤄진다.

 

AAR은 단순하면서도 잘 구조화된 형태로 진행되는데 크게 4가지의 핵심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①최초에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는 무엇인가?② 실제로 발생한 결과는 무엇인가? ③ 발생한 결과의 원인은 무엇인가? ④ 그렇다면 향후 보완, 강화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순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질문들이 쉽고 개방형 질문(open-ended questions)으로 돼 있는 만큼 실전형 관찰에서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다. 복잡한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누가 잘했고 못했는지를 따지는 방식 위주의 접근보다는 실제 어떤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관찰하고 이해함으로써 함께 배우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실패로부터의 학습, 책임의식 강화, 지속적 개선을 통해 궁극적으로 작전 능력이 향상된다. 이런 방식은 약간 수정을 거쳐 기업이나 다른 조직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팀이나 엔터테인먼트 사업조직, 콜센터, 영업조직, 서비스조직 등 현장 퍼포먼스가 중요한 영역에서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사항이 있다. 우선, 어떤 결과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기에 앞서 책임 소재만 따져서 비난해서는 안 된다. 좋은 의도로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을 경우 이를 비난한다면 결국 구성원들은 면피할 생각만 하게 돼 있다. 둘째, AAR 같은 활동은 어쩌다 한 번 해서 효과를 얻을 수 없고 꾸준히 실천해서 조직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미 육군의 경우 비공식적 AAR은 거의 매일 실행한다. 셋째, 폭넓은 참여가 중요하다. 모든 팀 구성원이 참여하는 것이 가장 좋고 그런 활동을 통해 얻은 교훈은 다른 부서에서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 인트라넷 헤드라인이나 블로그 등에 ‘Lessons Learned Library’ 같은 것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구성원 시야 넓히기, 관찰 근육 키우기

 

터널비전(tunnel vision)은 안과 장애의 하나로 어두운 터널에서 상하좌우는 안 보이고 빛이 있는 터널 끝만 보이는 증상이다. 주변시 손실(peripheral vision loss)이라고도 하는데 글루코마(glaucoma), 뇌병변, 혈중산소 결핍, 기타 다른 안과적 또는 심리적 요인 등에 의해 발생한다. 터널비전이 있는 사람은 앞에 있는 것은 아주 잘 보는데 주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누가 방에 들어왔을 때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한편, 어떤 일에 너무 열중해 주변 상황판단을 못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터널비전에 빠졌다고 한다. 구성원들이 너무 눈앞의 과제에만 매몰될 때 조직도 터널비전에 빠진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창의적 발상, 제안, 개선 등이 이뤄지기 어렵다. 조직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주로 단기위주의 성과관리, 수직적인 조직체계와 끊임없는 감시, 급여나 승진 같은 외재적 보상 편향, 구성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조직 문화 등이다. 따라서 창의적인 조직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기업은 이런 부분부터 먼저 해결을 해야 한다.

 

건강한 소가 좋은 우유를 생산한다고 했던가? 구성원의 관찰 능력과 창의력을 극대화하려면 일상 업무와 틀에 박힌 시각에서 벗어나 신선한 자극과 여유가 필요하다. 3M 같은 회사는 직원들이 근무시간 중 15% 정도를 업무와 무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구글도 일주일에 하루(20%)를 직접 관련이 없는 프로젝트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한다. 3M의 포스트잇, 구글의 Gmail 같은 결과물이 모두 이런 제도의 활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좀 더 새로운 사례로는 Hackathon이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 등에서 개발자, 디자이너, 프로젝트 매니저 등이 하룻밤에서 며칠 정도를 마라톤식으로 함께 토론하고, 개발하고, 배우면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페이스북의좋아요(Like)’ 기능 같은 것이 이런 Hackathon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구성원들이 평소 하고 싶었지만 해볼 수 없었던 것들을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맥주와 피자를 함께 먹으며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여율도 높고,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혁신적 아이디어도 많이 나올 수 있고, 실질적인 스킬 및 시야 확대 효과도 클 것으로 생각이 된다.

 

시야를 넓히는 방법 중에 또 하나는 여행이다. 특히 해외 여행은 인생과 비즈니스 측면에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발상의 기회를 줄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젊었을 때 인도 여행을 통해 불교와 참선에 대한 깊은 조예를 얻었다. 삼성은 일찌감치 1990년부터 우수 인재들을 해외 각지로 보내 약 1년간 언어, 문화, 시장에 대한 조예를 쌓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지역전문가 제도를 운영해 왔다. 현대카드·캐피탈의 경우 2003년부터 ‘Insight Trip’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구성원 3∼4명이 팀을 구성, 여행 테마 및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면 업무의 연관성과 관계 없이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매월 한 팀씩 지원해 준다. 구성원의 리프레시 측면도 있겠지만 실제 이런 여행과 관찰을 통해 얻은 정보나 아이디어를 다른 구성원과 공유하고 또 업무에도 적용함으로써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한다. 실제, 다녀온 직원들의 글을 모아 2010년에 <열심히 일 한 당신, 떠나라!>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현대카드·캐피탈 여의도 본사 1층에는통곡의 벽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누구나 볼 수 있는 벽면 모니터에 고객 불만이 뉴스 피드처럼 흐르도록 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정태영 사장이 뉴욕 인사이트 트립 중 <뉴욕타임스> 사옥 벽을 타고 흐르는 뉴스 피드를 관찰한 것을 발상의 전환을 통해 고객 소리를 담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경영자가 모범을 보이는 현장관찰, MBWA

 

경영자들은 매일 수많은 보고를 받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정보들이 대부분 수차례의 가공을 거친 것이라는 점이다. 때로는 문제들이 감춰진 채 미화돼 보고되기도 해서 직원들이 겪고 있는 고충을 경영자들이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개선책 중 하나가 MBWA.16  이 프로그램은 1970년대 휴렛패커드사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는데 사전 계획 없이 경영자가 직접 현장에 방문해 구성원의 업무를 관찰하고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중요한 것은 사전 통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리 알려주면 연출된 상황만 보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경영진을 찾아가서 이슈를 얘기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거꾸로 경영자가 직원들을 찾아간다는 개념이다. 이런 활동은 자기 목소리로 경영철학을 전파하고 구성원에 대한 스킨십을 제고(사기 진작)하는 등의 측면보다는 경영자들이 현장 상태를 자기 눈으로 직접 관찰함으로써 조직 내부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것이다.

 

이를 실행하는 데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품질관리 분야의 구루(guru)인 에드워드 데밍(Edward Deming) MBWA실제로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영진이 현장을 돌아 다녀봐도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모를 뿐 아니라 대개는 너무 짧은 시간에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현장 이슈에 대한 해답을 얻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미국 내 의료기관 중 56개 현장을 분석했는데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현장 대부분에서 안전, 품질 등의 성과가 오히려 떨어졌다는 결과가 도출됐다.17  따라서 MBWA라는 제도는 몇 가지 전제가 충족될 때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사전 통보를 통해 미리 준비된 방문을 지양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감한 사안을 절대 관찰할 수 없다.) 둘째, 파악된 이슈에 대해 진정성 있는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를 방치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셋째, 경영진이 이슈 해결에 대해 책임감, 리더십을 보인다. (직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면 MBWA 결과를 follow-up 하는 것을 부가업무로 인식하게 된다.)

 

세심한 관찰을 통한 리스크헤징(Risk Hedging)

 

아주 복잡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나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담당자들은 해당 프로젝트와 기술에 대해 애착을 갖기 마련이다. 따라서 일정 지연, 비용 초과 등의 문제가 생겨서 누군가가 업무의 내용에 대해 지적을 하더라도 귀를 잘 기울이지 않게 된다. 자신 스스로가 숨은 문제점을 관찰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Cold Eye Review(CER). CER은 주로 많은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 연구개발 사업, 신규 사업 등에 활용된다. Cold Eye라는 말은 해당 프로젝트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에 의해 수행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당국자미(當局者迷), 방관자청(傍觀者淸)’이라고 했던가. 바둑 두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수가 훈수 두는 사람 눈에는 잘 보이기 마련이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내부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적용하는 관리 체계(SIMS·Smart Innovation Management System)의 한 단계로 Cold Eye Review를 적용하고 있는데 사내외 전문가를 투입해서 기술, 안전, 원가 및 시장 적합성을 꼼꼼하게 체크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현재 산재 사고사망률이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며18  산업재해로 인한 직간접 경제적 손실액이 18조 원을 넘고 있다.19  왜 그럴까? 그 원인 중 하나는 경영자들의 관찰 부족이다. 경영자들이 현장 시찰을 나가면 설비, 기계 등을 중점적으로 보고 직원들과는 악수를 한 번 하고 현장에서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장이 깨끗하고 정돈이 잘돼 있으면 관리가 잘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사고는 설비나 기계 때문에 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행동 때문에 발생한다. 작업장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한 듀폰은 자체 연구를 통해 사고의 약 96%는 불안전한 행동 때문에 발생한다고 파악했다. 불안전한 상태·장비의 원인은 4%에 불과했다. 듀폰 관리자들은 작업장을 방문할 때 철저하게일하고 있는 사람중심으로 관찰한다.

 

듀폰에서는 사물을 관찰할 때도 행동의 관점에서 살핀다. 예를 들어, 지게차 표면의 페인트가 많이 벗겨져 있다면 평소 장비를 험하게 몰았다는 것으로 추론한다. 그리고 현장관리자의 관찰 역량을 높이기 위해 5단계 안전관찰 사이클20 을 만들어 모든 직원들이 불안전한 행동을 찾아내고 작업자와 효과적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핵심이증발하는 행동(evaporating behavior)’을 찾아내는 것이다. 누군가 자기를 지켜본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하던 행동을 중단하거나 자리를 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처음 몇 초의 짧은 시간 동안 작업자의 실제 행동과 주변 정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 잠시 작업을 멈추도록 한 후 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고 위험한 관행은 중단하도록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다. 공장에 불이 나고, 사람이 다치고 죽는 큰일을 방지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직원들의 사소해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수시로 관찰하다 보면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조직의 관찰 실천 전략

 

인적자원 관리 관점에서 관찰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들을 소개했지만 실제 관찰이 살아 숨쉬는 조직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관찰의 습관이 체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늘 해오던 관행에 대해라는 질문을 두려움 없이 던지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력 확보

 

조직·인사 분야의 구루인 미국 스탠퍼드대의 제프리 페퍼(Jeffery Pfeffer) 교수는 탁월한 기업들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통해 고성과 조직의 조직/인사 관리에서 공통적 특징을 7가지로 요약한 바 있는데21  이 중 하나가선택적인 채용(selective hiring)’이다. 관찰이 살아 숨쉬는 조직이 되려면 우선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많이 선발해야 하는데 대개 문제 해결 능력이 높은 사람들이 관찰력도 높다. 복잡한 비즈니스 케이스나 실무형 문제해결 과제를 부여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관찰 능력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처음 접해보는 정보와 상황을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주어진 내용에 대한 충분한 관찰이 전제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2. 인적 구성의 다양성 제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샘솟는 조직 환경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생각과 경험이 다양해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놓았을 때 서로 신선한 자극을 받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뽑은 이후 조직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채용 단계에서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성별, 나이, 출신지역 등 인구통계학적인 다양성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 성향, 사고방식 등의 다양성이다. 남다른 취미나 특기를 가졌거나 업무 외적으로도 뭔가 열정을 쏟는 것이 있다든지, 풍부한 해외경험을 해봤다든지 하는 것이 가진 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3. 중간관리자들의 관찰 능력 배양

 

‘의인물용(疑人勿用), 용인물의(用人勿疑).’ 의심스러우면 쓰지 말고, 한 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런 철학을 강조하는 삼성에서는 오랫동안 리더의 덕목으로 지행용훈평(知行用訓評)을 강조해 왔다. ()와 행()이 사업과 업무에 대해 스스로 전문성을 쌓고 실천하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용(), (), ()은 부하 직원의 적재적소 배치, 육성/코칭, 평가 등에 대한 내용이다. //평을 잘하려면 우선 사람과 행동에 대한 정확한 관찰 및 판단이 전제돼야 한다.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는 관찰처럼 어려운 것은 없다. (특히 사람에 대한) 관찰 능력은 딱히 교육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평소 실천을 통해 경험을 쌓이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4. 직무 순환 활성화

 

한 가지 직무를 오래 수행하다 보면 업무 스타일은 그 틀에 고정된다. 그 업무 분야에서 일반화된 관점으로만 모든 일을 바라보고 처리하게 된다. 이런 경우 적절한 직무 순환은 이런 고정된 틀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만약 완전히 직무를 바꾸는 것이 어렵다면 한시적인 업무 변경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는 직원들이라면 생산이나 서비스 현장에서 일정 기간 근무를 해보도록 한다면 어떨까? 반대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팀에 합류하면 조직 분위기에 새로운 활기가 생기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사람이 HR부서에서 일하면 다른 팀원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

 

5. 관찰 친화적인 문화 만들기

 

사람은 분위기와 환경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조직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연히 직원들도 일상업무 수행 이상의 관찰에서 관심이 멀어지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용인하는 것이다. 조금 엉뚱하고딴짓처럼 느껴지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환영하고 의도가 좋았다면 실패도 칭찬한다. 또 중요한 것이 소통이다. 좋은 아이디어나 발견을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리더들의 마인드가 먼저 열려야 하고 동호회, 연구회, 클럽 등 직원들이 모이고 소통하도록 해야 한다. 회사 안에 TED 프로그램을 만들어 끼와 아이디어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외칠 수 있도록 해보자. 이런 것들이 확장되면 집단지성으로 발전되는 것이 아닐까?

 

6. 현장이 항상 우선인 일처리 방식

 

관찰과 혁신은 당연히 현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현장에 사람이 있고 고객이 있기 때문이다. 흥하는 기업의 CEO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시장, 공장 등을 돌아다니며 쓴다. 현장에 나가지 않고 사무실에 처박혀 두꺼운 보고서를 써오는 관리자들은 크게 야단을 쳐야 한다. 현장에서 확인하지 않은 기획서는 무조건 반려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인사, 기획, 재무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영업, 생산, 연구개발 등 현장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간접경험은 현장에 대한 이해라는 관점에서 직접 경험을 대체하지 못한다.

 

 

김성남 타워스왓슨 이사 hotdog.kevin@gmail.com

필자는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버지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듀폰코리아, 휴잇컨설팅, 머서컨설팅, SK C&C 인력팀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타워스왓슨 인사/조직 컨설팅 부문 이사로 재직 중이다.

  • 김성남 김성남 | 칼럼니스트

    필자는 듀폰코리아, SK C&C 등에서 근무했고 머서, 타워스왓슨 등 글로벌 인사/조직 컨설팅사의 컨설턴트로 일했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미래조직 4.0』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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