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Business Succession
가족경영, 구시대적 지배구조인가?
세계 각국의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들의 대부분은 가족기업이다. 가족기업(Family Business)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정의는 “한 가족 또는 한 가문이 지배적 소유권을 가지고 기업경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가족기업 비중이 92%다. 대부분 중소기업이지만 <포천> 500대 기업 중에도 가족기업이 3분의 1가량 된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 영국, 독일은 전체 기업의 60% 이상, 이탈리아는 90%가 가족기업이다. 우리나라 상황도 비슷하다. 전체 상장기업과 코스닥기업의 약 70%가 가족기업으로 분류되고 중소기업이나 비상장 기업의 대부분이 가족기업으로 분류된다. 가족기업은 사람들이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만큼 문제도 많지만 압도적인 숫자만큼이나 국가 경제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가족기업 하면 구시대적 지배구조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최근 10년 사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가족기업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2003년 6월, 로널드 앤더슨(Ronald Anderson)과 데이비드 리브(David Reeb)가 <파이낸셜저널>에 발표한 연구는 가족기업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됐다. 그들은 가족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일반 기업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고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적인 시각과는 다른 결과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족기업의 평균실적이 S&P500 인덱스 평균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경제학자가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 가족기업의 성과를 확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5년 벤저민 마우리(Benjamin Maury)는 유럽에서도 가족기업이 비가족기업보다 더 높은 성과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을 뒤이어 2011년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의 이머징마켓 연구소도 동일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아시아의 가족기업은 2002년, 2003년 IT 버블과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에서 2010년 동안 누적수익 265%, 연 평균 13.7%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IMD의 요아킴 슈바스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족기업이 다른 기업들에 비해 경제위기를 잘 극복했다고 평가하며 가족기업은 위기에도 강하다고 주장했다.
가족기업이 비가족기업보다 더 놓은 성과를 내고 기업수명도 더 긴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일반적으로 가족기업은 오너 가문의 투철한 주인의식과 강력한 리더십, 그리고 눈앞의 이익을 좇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을 한다는 것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가족기업 경영자의 평균 재임기간이 24년으로 직위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자원을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신속한 의사결정이나 과감한 투자결정 등이 경영실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가족기업이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장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기업의 족벌경영이나 부적합한 가족의 경영참여, 오너에 집중된 의사결정 구조, 리더의 자만심 또는 독단적 의사결정과 같은 권력남용 등 가족기업의 영속성을 저해하는 단점들도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일련의 연구결과로 인해 최근에는 가족기업이 구시대적인 지배구조라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리고 가족기업 연구는 가족기업이 가진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장점을 강화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이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여부보다는 어떻게 기업이 대를 이어 생존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가족경영, 왜 3대까지 어려운가?
일반 기업의 평균수명이 15년인 데 비해 가족기업의 평균수명은 24년에 달한다. 가족기업 오너의 평균 재임기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단지 30%의 가족기업만이 2세대까지 생존한다. 3세대까지 생존하는 비율은 14%, 4세대 성공비율은 4%로 낮아진다. 가족기업이 비가족기업보다 더 높은 성과를 보이고 평균 기업수명이 더 긴데도 불구하고 세대 이전의 생존율이 낮은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가족기업 연구자들은 가족기업이 세대 이전에 실패하는 이유를 5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환경과 기술이 계속 변하기 때문이 한 기업이 계속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지 못한다. 둘째, 상속·증여세 부담으로 인해 사업이 해체되거나 약화된다. 셋째, 후계자가 리더로서 능력이 부족하고 준비가 미흡하거나 기업 경영의 동기가 낮아 부모 세대보다 사업에 대한 헌신이나 헝그리정신이 약하다. 넷째, 세대가 지날수록 가족의 수가 늘어나면서 각자의 관심과 가치관, 목표, 꿈이 달라진다. 따라서 상호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이로 인해 가족 간 갈등이 생길 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헌신이나 공동의 목표가 약화돼 가족기업으로의 에너지가 떨어진다. 다섯째,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 경영철학이나 가치관, 생각이 다르므로 세대 간 갈등이 생긴다. 세대 간의 갈등은 자녀의 문제해결 능력을 떨어뜨리고 극단적으로는 후계자가 바뀌거나 회사를 떠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경영층의 응집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승계라고 하면 세금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위의 5가지 실패 이유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는 세대 이전에 실패하는 데 약 20% 정도밖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뒤의 3가지 이유, 즉 후계자의 능력이나 준비 부족, 가족의 갈등과 분쟁, 그리고 세대 간의 갈등 등 승계문제와 가족문제가 실패 원인의 80%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가족기업의 장기생존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비즈니스 문제라기보다는 가족 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기업의 장기생존을 위해서는 기업 못지않게 가족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족기업 연구는 기업을 경영하는 가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가족기업의 성패가 가족들에게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세대 이전 성공률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환경이나 기술의 변화 속에서도 경쟁자를 물리치고 100년 이상 번창하는 가족기업들도 많다. 카킬, 미셰린, 뉴욕타임스, 에스티로더, SC존슨, 이케아, 포드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대표적인 예다. 헤르만 지몬의 히든 챔피언 기업들 가운데서도 3분의 1이 100년 이상 생존하는 세계적인 중소·중견 가족기업이다. 또한 수백 년 또는 천 년 이상 생존하고 있는 소규모 가족기업도 있다. 하지만 가족기업이라고 해서 모두가 장수기업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과 4%도 안 되는 기업만이 100년 기업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러면 이들 장수 가족기업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100년 기업들의 공통적인 성공비결을 살펴보자.
장수비결 1. 경영철학과 기업이념을 계승하라.
현재 가장 많은 장수기업을 보유한 나라는 일본이다. 100년 이상 된 기업을 장수기업이라고 한다면 일본에는 약 5만여 개의 장수기업이 있다. 1000년 이상 19개, 500년 이상 124개, 200년 이상 3146개에 이른다. 일본을 능가하는 나라는 없다. 세계적으로 봐도 경이로운 수치다. 일본에 장수기업이 많은 이유로 호세이대학원의 구보다 쇼이치 교수는 2가지를 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창업자 후손들이 ‘가업의 계승’과 ‘기업이념의 실현’을 목표로 경영해 왔기 때문이다. 4000여 개의 장수기업을 설문조사 한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 제1조건으로 창업자의 경영철학 계승을 꼽았다. 두 번째는 ‘전통의 계승’과 ‘혁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장수기업들은 창업 이후 경영의 근간을 이루는 ‘기업이념’을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생산기술, 시장개발, 상품개발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기술적 부문에서는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
유럽에는 레 제노키앙(The Henokiens)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200년 이상 된 가족기업 경영자들의 친목모임이 있다. 이 모임의 회장은 1731년 창업한 이탈리아 기업의 대표가 맡고 있다. 그는 “윤리적 경영과 창업초기부터 전수된 회사의 가치를 지켜온 것”에 장기생존비결이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회원들 역시 “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회사의 지배적인 가치와 기본원칙을 지켜온 것”이 장수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수익성이란 사업을 영위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수익보다는 기업의 사명과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일상생활을 통해 부모들로부터 가족의 가치를 듣고 보고 자라며 가족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이전된다. 또한 장수기업들은 자녀들에게 ‘스튜어드십’을 물려주려고 노력한다. ‘스튜어드십’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개인의 사유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물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뜻한다. 즉 부가 아닌 책임을 물려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100년 넘게 “회사 직원을 가족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창업자의 경영철학을 지켜온 기업이 있다. 바로 SC존슨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에프킬러, 지퍼락, 페브리즈는 어느 가정에서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생활용품이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마룻바닥 왁스 회사로 시작해서 현재 전 세계 60여 개 국에 지사 및 직원 1만2000명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SC존슨. 그들이 성장한 배경에는 직원들을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는 경영철학이 작용을 했다. 이런 경영철학의 배경은 회사가 설립된 18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새뮤얼 존슨은 직원의 복지 향상과 사회봉사활동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창업 초기부터 수익금의 일부를 직원들에게 나눠줬고 수입의 10%를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등 자신의 경영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창업자 새뮤얼 존슨의 경영철학은 존슨 가문에서 5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가치지향적 사고방식은 <포천>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및 10년 연속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10대 기업’으로 선정되는 기반이 됐다.
SC존슨은 회사 로고에도 가족기업(A Family Company)이라고 새겨 넣었다. 회사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1886년부터 가족기업으로 운영되는 SC존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가족기업으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SC존슨이 아직까지 비상장회사로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관해서는 회사 경영 방침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비상장기업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들은 비상장 기업이지만 상장기업 못지않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한 경영철학과 신념은 말뿐만 아니라 실제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고 기업문화로 자리 잡혀 있다. SC존슨은 1976년부터 회사의 경영철학을 담은 회사경영방침(This we believe)을 명문화하고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해 전 세계 직원들과 공유할 뿐만 아니라 회사 외부에도 알리고 있다. 이 경영 방침은 창업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치와 이념으로 직원, 소비자, 지역사회, 국제사회에 대한 그들의 책임과 사명이 포함돼 있다.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가치를 표방하지만 실행은 뒷전으로 미루고 단지 구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SC존슨은 말로만 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업운영과 모든 의사결정에 그들의 가치를 반영하고 실행하고 있다. 창업자의 가치와 경영철학을 지켜온 것이 5세대 120년 이상을 이어온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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