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학은 서양인들이 가장 난해하게 여기는 동양의 전통 중 하나다. 우리는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의 팔에 침을 놓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평균적인 서양인은 ‘왜 배가 아프고 어지러운데 팔에 바늘을 꽂는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동양의학의 기본 전제를 이해한다. 그 전제는 몸의 여러 부분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가 아픈 사람의 배만을 들여다보는 것은 피상적 접근이라 여긴다. 동양의학은 대증요법이 아닌, 원인을 찾아 없애는 치료법을 제시한다. 이제는 서양에서도 이런 동양의 접근법을 점차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사물을 쪼개서 보는 서양인, 연결해 보는 동양인
서양인은 세상을 ‘서로 다른 사물의 집합’으로 보는 지적(知的) 전통을 갖고 있다. 이런 전통은 언어와 일상생활에도 깊게 뿌리내렸다.
영어권의 사람들은 사물의 단수와 복수도 명확히 구분한다. 단순히 ‘사과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고, ‘한 개의 사과를 가져오라’고 하거나 ‘○○개의 사과들을 가져오라’고 말한다(우리말로는 얼마나 부자연스럽게 읽히는지 보라). 식습관에도 이런 특성이 나타난다. 서양의 맥주병은 대부분 1인용이다. 맥주를 나눠 먹는 우리의 맥주병보다 작다. 재료를 섞어 먹는 비빔밥이 서양인들에게 얼마나 신기해 보일지 생각해보라.
사물을 쪼개 보는 서양인은 일찌감치 ‘원자론’을 생각해냈다. 원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atom’은 어원상 ‘쪼갤 수 없는(not[a] + to cut[tom])’이란 뜻이다. 세상은 개별적 사물의 집합이란 서양인들의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원자론은 사회를 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줬다. 개인을 뜻하는 ‘individual’ 도 ‘나눌 수 없는(not[in]) + to divide[divid])’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원자론적 사고는 자연스럽게 구별할 수 있는 사물들은 모두 제각각 특성이 다르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개성을 강조하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서양의 전통은 바로 이러한 ‘서로 다름’에 기인한다.
반면 동양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氣)이 서로 어울리면서 다양한 사물이 만들어졌기에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물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고, 서로의 관계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고 여긴다. 관계를 중심으로 사물을 보는 시각은 인간관계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친다. ‘이종사촌’이나 ‘오촌 당숙’과 같은 말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생각해보라.
사물 간의 관계를 찾는, 진보된 사고방식: 통합적 사고
사물을 연결시켜 보는 동양의 사상적 전통은 비즈니스에도 차별적 특성을 부여한다. 필자가 미국 상무부에서 한국에 진출하려는 미국 기업을 돕던 중 난처한 상황에 처한 일이 있었다. 사무실을 찾아온 미국인 사업가가 “한국의 비즈니스 관행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협상 과정에서 양측의 사고방식이 서로 달라 생긴 오해였다.
미국 사업가는 “한국인 파트너가 전날 합의한 내용의 수정을 요구했다”며 몹시 언짢아했다. “바로 어제 한 말도 바꿔버리는 사람과 어떻게 사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것이 비즈니스 매너를 넘어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인 사업가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협상이 진전되면서 새로운 요소들이 나타났고, 그것을 보고 협상 내용을 수정하자고 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보통 서구인은 협상을 단계별로 진행하는 데 익숙하다. 이미 합의한 내용을 다시 협상하자고 하면 당연히 당혹스러워한다. 반면 한국인은 협상 도중에 새로운 요소가 나타나면, 그것이 협상 내용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논의를 다시 진행하려고 한다. 세계 경제가 서구 중심으로 발전한 탓에 이런 한국인의 협상 방식은 ‘뒤떨어진 매너와 무지’로 폄하되곤 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재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요소는 분명히 전체 그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피터 셍게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는 ‘전체 그림을 먼저 본 후 그 요소들의 관계를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선진성을 주장한 서구의 경영 대가다. 그는 1990년 발간한 <제5경영(The 5th Discipline)>에서 “사물을 분리하고 개별적으로만 접근하는 서양의 사고와 비즈니스 방식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서구 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사업의 규모와 복잡성이 늘어나고 있는데, 비즈니스 리더의 사고는 여전히 구시대적”이라고 진단했다. 또 “서구 비즈니스 리더들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보지 못한 채 잘못된 판단을 거듭해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가 몸담은 MIT는 1960년대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라는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비즈니스 리더들을 대상으로 ‘맥주 배급 게임(beer distribution game)’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특정 맥주 브랜드의 수요를 일정 기간 동안만 평소의 2, 3배로 늘렸다가 다시 정상화시키고 참가자들의 반응을 기록했다.
게임은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에 소개된 뮤직비디오가 특정 맥주를 언급하면서 그 브랜드가 반짝 인기를 끌었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게임 참가자들은 해당 브랜드의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주문량을 늘렸고, 그 결과 그 브랜드의 전체 맥주 재고는 동이 났다. 수요가 줄어든 후 게임 참가자 모두 자신들의 불어난 재고를 감당하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게임이 끝난 후 주기적 경기 활황과 불황이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란 설명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