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기업을 요구하는 경영 환경
거함 GM이 좌초했다. GM 몰락은 현대 경영 시스템의 상징적인 의미가 무너졌다는 측면에서 일개 자동차 회사 파산 이상의 파급 효과가 있다. 씨티그룹과 AIG의 몰락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거대 기업들이 몰락한 원인에는 인수합병(M&A)을 통한 무리한 몸집 불리기, 체계적 리스크 관리 부족,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조직학 관점에서는 ‘느린 의사결정’과 ‘조직의 비대화’가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GM은 고유가와 환경 규제 강화라는 자동차 산업의 전반적인 트렌드와 소비자 성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점이 가장 큰 패착이다.
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은 “덩치가 큰 기업이 항상 작은 기업을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언제나 느린 기업을 이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다시 속도와 관련된 용어들(speed, agility, fast)이 경영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는 결국 누가 더 빨리 시작하느냐, 누가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느냐가 기업의 흥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기에는 오랜 역사나 거대한 규모를 가진 기업이라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경영 환경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는 반복되는 경기 부침 속에서 기업의 생사와 성장성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다.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업들은 불황기를 오히려 경영 시스템의 효율화와 조직 유연화의 기회로 활용한다. 이들은 호황기가 오자마자 경쟁사를 크게 앞서 나간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조화
우리나라 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경영의 비효율을 없애고 내실 경영의 기반을 구축했다. 이에 따라 기업의 가치와 경영 시스템의 수준도 한 단계 높아졌다. 많은 기업들이 조직 구조의 슬림화와 인사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을 통해 효율화와 스피드를 확보했다. 각종 경영 혁신 용어들(BPR, PI, TPS, BSC, 6시그마 등)이 주요 경영 과제로 자연스럽게 인식됐고, 자체적인 프로젝트나 외부 컨설팅을 통해 새로운 경영 트렌드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반면 GE나 도요타 등 해외 선진 기업들의 경영 기법을 여과 없이 받아들여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는 사례도 많았다. 국내 기업들이 ‘빠른 기업(fast company) 만들기’ 또는 ‘스피드 경영’이라는 구호 아래 시도한 다양한 혁신 활동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변화가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강요됐거나,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 위주로 추진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의 문화 개선을 위해 스탠딩 회의나 회의 시간 제한제, 원 페이지 미팅(one-page meeting) 등 여러 방법이 시도됐지만, 대부분 일회성 캠페인으로 끝나거나 주관 부서의 실적 과시용으로만 쓰였다.
실질적으로 효율적인 회의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참석자들의 인식(시간 엄수, 철저한 준비 등)이 우선 바뀌어야 하고, 회의 진행 기법이 뒷받침돼야 할 뿐 아니라, 회의 환경과 회사 시스템 개선 등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상당수 기업들이 주로 초점을 맞췄던 하드웨어(조직 구조, 프로세스 등) 측면의 접근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커뮤니케이션, 조직 문화 등) 측면의 접근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그림1) 특히 물리적으로만 ‘빨리빨리’를 요구하지 말고, 진정으로 경영에 도움이 되는 ‘빠름’의 정의와 방향성을 설정하는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DBR TIP ‘빠른 기업의 진정한 이해’ 참조)
‘빠른 조직 만들기’ 프로세스
헤이그룹은 조직 효과성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함으로써 어떻게 민첩하고 빠른 조직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왔다. 다음 4가지 포인트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이 포인트들은 명확한 목표 공유 → 조직 설계 → 부서 간 관계 정립 → 성과 관리 등의 순차적 프로세스로 정리돼 있다. 물론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활동들이 동시에, 또는 일부만 이뤄져야 할 때도 있다.
①명확한 목표 공유와 책임 소재 규명 ‘빠른 조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명확한 목표 공유다.(그림2) 대부분의 기업에서 의사결정과 전략 실행이 늦어지는 이유는 전략적 목표가 조직 전체에 명확히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조직원들은 업무에 몰입할 수 없으며, 엉뚱한 일을 벌이느라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기 일쑤다. 또 불명확한 목표는 책임 소재를 흐려 의사결정과 전략 실행을 늦춘다.
‘성과 책임 매트릭스’는 명확한 목표 전달과 책임 소재 규명이라는 ‘2마리 토끼’를 잡게 해주는 방법론이다. 이것은 최고경영자(CEO)에서부터 말단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원들이 업무상 부담해야 하는 기대 역할을 정리해놓은 표다. 연계된 직무를 수행하는 구성원들(그룹 리더와 그에게 직접 보고하는 부하 직원)은 성과 책임 워크숍을 통해 전사 비전 및 전략과 개인의 직무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공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