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기업 인사 체계를 살펴보면 인재의 능력에 기초한 성과주의 제도가 더 이상 낯선 풍토가 아니다.
과거 서열과 연공 중심에서 탈피한 직무 중심의 직급제도, 성과 중심의 보상제도, 목표 관리를 통한 평가제도 등 다양한 차원의 성과주의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능력주의 인사제도가 시행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경제가 붕괴한 뒤, 한국에서는 1998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기업들이 체질 개선 및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성과주의를 도입했다.
그런데 이 성과주의 인사제도가 18세기 일본 에도시대에도 존재했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당시의 인사제도는 현재의 인사제도보다 오히려 더욱 혁신적인 부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를 우리의 인사제도와 비교해 보자.
新사회, 상인층의 당면과제
16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에도시대가 중기에 접어들자 일본 경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에도시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전통적 신분제도가 확고했으며, ‘사’에 해당하는 무사 계층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화폐경제 발달로 새로운 권력층이 대두했다. 그들이 바로 ‘상’에 해당하는 상인 집단이었다. 이들은 신흥 권력층으로서 자신의 세를 과시하려는 욕망과 무사 집단과는 차별화한 자신만의 강점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은 가훈과 가법 같은 것을 만들어 무사 집단을 모방하는 한편 무사집단의 비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해 고심했다.
17세기 일본 사회는 활발한 기술 혁신과 산업 혁명의 싹이 트던 시기였다. 상인들은 무사 중심 사회의 절대적 질서이자 관습이던 연공 중심의 인사제도로는 급변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상점은 계속 커지고 종업원 수는 늘어나는데 나이나 서열 중심으로 인재를 활용하면 조직의 활력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인사 제도를 능력주의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중대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에도시대 인사제도의 특징
이런 이유로 등장한 에도시대 인사제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직급별로 다른 평가 기준을 적용했다. 하위 직급은 기존처럼 연공에 의해 관리하되 책임자급이나 간부들은 능력과 성과로 평가하고 등용했다. 직급에 따라 필요한 업무 능력이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위 직급이 하는 일은 대부분 잡무였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보다는 경험이 쌓이면 누구나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능력보다는 성실한 근무 태도와 인간성이 중요했다.
반면에 상위 직급의 업무는 완전히 달랐다. 개인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 상점의 수익도 확연히 달라졌기에 그들을 평가할 때는 능력과 성과를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의 긴장과 활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인재 등용뿐 아니라 급여 배분, 능력 개발, 점장 교체 등 다방면에 걸쳐 인사평가가 이뤄졌다.
두 번째, 직원들의 능력 개발을 위해 직무능력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신기술이 넘쳐나고 사회 변화 속도가 빠른 에도 시대에는 주인부터 말단 직원까지 그 사회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했다. 상점 임직원 모두에게 도전 의식, 유연한 발상,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숙련도 향상 등이 당면 과제로 등장했다.
이에 따라 상인들은 부문별로 필요한 직무 능력을 세부적으로 명시한 기준을 작성했다. 예를 들어 말단 직원은 주판 능력, 중간 관리자는 계수 관리 능력과 시장 파악 능력, 지배인은 점포 경영 능력 등 구체적인 직무 역량을 정의하고 이에 근거해 직무 평가를 단행했다. 이러한 역량 수준 평가에 대한 평가자의 왜곡을 막기 위해 다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평가 위원회를 운영할 정도로 평가 공정성에도 신경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