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많이 바뀌면서 많은 조직이 실패를 성공의 필수 과정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혁신을 도모하는 기업만이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가 그 자체로 축하할 만한 일인 것은 아니다. 실패가 가치 있는 과정이 되려면 진정성 있는 노력,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목표, 실패로부터 얻는 교훈 등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실패가 진정 성공의 어머니가 되려면 성공의 아버지가 필요하다. 흔히들 조직이 실패를 거쳐 성공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심리적 안전감과 성장 마인드셋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더 근본적인 전제가 있다. 바로 방향성이다. 조직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명확한 방향성이라는 아버지를 만날 때 실패는 비로소 성공의 어머니가 된다.
최근 실패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구글은 실패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구성원에게 보너스를 주고, 3M과 슈퍼셀에서는 실패한 사람에게 파티를 열어주며, 혼다는 정기적으로 실패왕을 선발한다. 핀란드에서는 매년 10월 13일에 교수, 학생, 벤처사업가 등이 모여 ‘실패의 날’ 행사를 열기도 한다. 더 이상 실패를 피해야 할, 자신과 분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성공의 필수 과정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실패에 대한 이런 인식의 변화는 긍정적인 동시에 필연적이다. 산업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혁명 이후 이어진 산업화 시대에는 결핍의 충족이 중요했다. 사람들은 TV, 냉장고, 자동차 등 생활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줄 많은 제품을 사고자 했고 기업들은 이런 제품을 생산하기에 바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목표가 비교적 명확했던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었다. 그래서 실패란 성공의 반대말이었고, 실패의 부재가 곧 성공이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뷰카(VUCA)와 빅블러(Big Blur)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기업 환경이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변해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워졌고, 과거에 명확히 구분된다고 여겼던 업종 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뒤섞이고 있다. 이제 어디에서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자신의 경쟁 기업이 어디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떤 제품을 어떤 경쟁 기업보다 더 빠르고 좋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목표 설정 자체가 어려워졌다. 빠르게 자주 시도해 보고 계산된 실패를 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정이 된 것이다.
박선웅sunwpark@korea.ac.kr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박선웅 교수는 성격심리학자로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인 개인차가 개인의 삶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정체성 형성이라는 개인차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정체성의 심리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