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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조직

MZ 금쪽이 일하게 하려면?
일의 정체성 알게 해야

박선웅 | 389호 (2024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조직 내 리더와 구성원 간 서로에 대한 불만이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다. 이 불만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정체성 이슈가 그 핵심에 있다. 리더가 제대로 된 의사소통 없이, 어떤 맥락에서 해야 하는 업무인지에 대한 설명 없이 일을 맡기기 때문에 직원들이 몰입하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직원 불만을 잠재우고 이탈을 막으려면 조직 내에서 이뤄지는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구성원들이 그 일에 공명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끌어내야 한다. 이렇게 조직과 개인의 정체성 간 교집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리더가 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에 각자가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구체적인 언어로 제시해야 하고, 조직의 정체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선발해야 하며, 구성원 개개인을 이해하고 충분히 의사소통하면서 누가 어떤 업무에 공명할 수 있을지 파악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성격심리학자이자 성격 진단회사 ‘호건 어세스먼트’의 최고경영자이기도 한 로버트 호건은 지금껏 살았던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을 제시했는데1 그중 두 가지 특징이 주목할 만하다. 첫째, 모든 인간은 집단을 이루고 산다. 둘째, 그 집단에는 위계, 즉 리더와 구성원이 존재한다. 모든 인간사회에 리더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 리더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리더에게 숙명처럼 주어지는 과제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답을 찾는 것이다. 이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리더들에게 더 중요해졌다. 최근 조직 내 리더와 구성원 간 서로에 대한 불만이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리더는 구성원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불만이 많다. 얼마 전부터 구성원들 사이에는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내에서 주어진 일만 하고 추가적인 업무는 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사직’ 바람이 불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시키면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MZ 3요’라 불리는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조직을 위해 더 큰 성취를 내는 것보다는 자신의 워라밸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성원은 구성원대로 리더의 일방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좌절스럽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맥락 없이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일의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일의 의미는 모른 채 억지로 일을 마치려다 보면 어느덧 번아웃이 찾아온다. 이렇게 서로 간의 간극이 멀어진 상태에서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떻게 구성원을 동기부여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리더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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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보상의 허와 실

동기부여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은 당근과 채찍으로 불리는 보상과 처벌이다. 이 둘은 분명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는 하지만 각각 한계가 있다. 먼저, 처벌은 바람직한 행동을 더 하게 만들기보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덜 하게 만드는 데 특화된 동기부여 방식이다. 고속도로에서 빠르게 운전을 하다가 과속 단속 카메라가 나오면 사람들은 범칙금(처벌)을 내지 않기 위해 속도를 줄인다. 하지만 카메라를 보고 ‘국가가 나의 안전을 위해 이토록 신경을 써주니 천천히 달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카메라를 지나치는 순간 다시 속도를 올린다.

반면 보상은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이다. 청소 도우미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서 청소를 하는 이유는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기 때문이고 그 보상이 주어지는 한 계속해서 청소를 할 것이다. 이렇게 보상에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보상으로 유발된 행동은 더 큰 보상이 제시될 때 쉽게 폐기된다. A 씨 집에서 5만 원을 받던 청소 도우미는 B 씨 집에서 7만 원을 준다고 하면 옮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두 번째 더 중요한 문제점은 물질적 보상으로 유발된 일의 성과가 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키보드의 키를 빠르게 누르는 것과 같은 단순한 육체노동의 성과는 보상이 커질수록 높아지지만 덧셈처럼 인지적 능력이 필요한 일의 경우에는 보상이 클 때 오히려 더 낮은 성과가 나타났다.2 그렇다면 창의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일에 보상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 연구에서는 참여자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과제를 하게 했다.3 첫 번째 집단에는 아무런 물질적 보상 없이 단지 연구자들이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만 했다. 두 번째 집단은 창의성 점수에 비례해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마지막 집단은 다른 참여자에 비해 창의성이 더 뛰어날 경우에는 큰 보상을 받고 덜 뛰어날 경우에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연구 결과, 창의성 점수(실제 성과)는 보상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집단에서 가장 높았고, 다른 참여자와 경쟁한 결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졌던 집단에서 가장 낮았다. 한편, 과제를 하는 데 들인 시간(투입된 노력)은 보상이 없었던 집단보다 보상이 있었던 집단에서 더 길게 나타났다. 종합하면 물질적인 보상이 예정돼 있을 때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는 하지만 그 노력이 창의적인 결과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적인 보상은 중요하다. 돈은 기본적으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고 조직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연봉을 받는지는 조직이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바로미터로 작동하기도 한다. 핵심은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조직을 이끌기 위해 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돈만으로 구성원을 움직이려 하는 경우 더 많은 돈을 주는 조직에 구성원을 뺏길 수 있다. 나아가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에 필요한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 시대의 리더는 근원적인 차원에서 구성원을 움직일 수 있는 동기부여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필자는 정체성을 제안한다.


정체성,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

정체성이란 어떤 대상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껍데기를 벗어 버렸을 때 남는 알맹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 혹은 선언이다. 한 개인으로서 정체성에 맞게 산다는 것은 진정한 자신이 누군지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향성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정체성이라는 개념에는 특정 방향에 대한 동기부여가 이미 포함돼 있다. 뭘 해야 할지 확신이 없을 때보다 특정한 목표와 방향성을 설정했을 때 그 목표를 향한 에너지가 솟아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 한국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 없는 목표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 원하는 일이라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신분이 보장되기 때문에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안에 뿌리를 두지 못하는 목표의 추구는 지속하기가 어렵고 설사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도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특정 목표와 방향성에 대한 결단에 앞서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탕으로 삶의 목표와 방향성을 추구할 때 강력한 힘이 나오고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으로 이어진다.

정체성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선교사다. 선교사들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오지에 가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을 보낸다. 그러다 풍토병에 걸려 죽기도 하고 현지인에게 처형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말기에 많은 선교사가 순교했다. 막대한 돈이나 명예가 보장된 것도 아닌데 이들은 왜 목숨을 걸고 선교의 길을 걷는 것일까? 자신이 신의 뜻을 전하는 신의 사도라는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정체성에는 돈과 명예, 안정적인 삶으로도 이끌어낼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다.

심리학자들은 정체성에 대한 미세한 조작만으로도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08년 대선 전날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유권자의 대문을 두드리고 유권자들에게 다음날 있을 대선에 대한 짧은 설문을 부탁한다며 설문지를 건넸다.4 절반의 유권자는 “내일 투표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라는 질문이 있는 설문지를 받았고(실험집단), 다른 절반의 유권자는 “내일 투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라는 질문이 있는 설문지를 받았다(비교집단). 이 하나의 질문을 제외하고 나머지 설문은 모두 동일했다. 투표가 끝난 후 연구진은 투표자 명부를 확인해 누가 투표를 했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투표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던 사람들이 투표를 더 많이 했다. 왜일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투표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투표 전날 투표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음날 자신이 투표하지 않으면 투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투표자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투표장에 나간 것이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사람들을 심리학 연구실로 초대한 뒤 과제를 하나 하게 했고 결과에 따라 금전적 보상을 지급했다.5 이때 절반의 참여자에게는 “거짓말쟁이가 되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을, 다른 절반의 참여자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을 주었다. 그 결과 거짓말쟁이가 되지 말라는 안내문을 받은 참여자들이 더 적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거짓말을 종종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거짓말쟁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실험실에서 거짓말쟁이가 되지 말라는 안내문을 읽었던 참여자들은 그 순간 자신이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거짓말쟁이라는 정체성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건을 경험한다.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기도 하고 소속이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 자체가 우리를 그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성공적으로 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에 가고 싶었지만 연세대에 입학한 학생은 연세대생으로서 자랑스러운 학교생활을 하지는 못한다. 테슬라에 취직하고 싶었지만 결국 기아차에 취직한 회사원은 기아차 구성원으로서 업무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중요한 것은 연세대에 입학했다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연세대생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기아차에 입사할 때가 아니라 기아차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을 때 우리는 기아차 구성원답게 살아가게 된다. 제대로 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이유다.


내 조직에서의 일의 정체는 무엇인가?

삶에서 정체성이 갖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정체성은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2007년 삼성생명공익재단 사회정신건강연구소에서 성인 199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통해 정체성 발달 상태를 파악했다. 그 결과,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충분히 탐색하고 삶의 방향성에 대해 결단을 내린 사람, 즉 정체성을 제대로 형성한 사람은 12.6%에 불과했다.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아직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탐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2.5%였고, 탐색도 하지 않고 결단도 내리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10.6%였다. 반면 74.3%의 사람은 자신에 대한 탐색은 없이 결단만 내린 상태에 있었다. 17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좋아졌을까? 안타깝게 이 연구 이후 한국인을 대상으로 정체성 발달에 대한 대규모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모두 의대를 지원하는 현실을 보면 상황이 더 나아졌을 것이라 추측하기는 어렵다.

조직 내에서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한국의 조직, 특히 공공 조직에서는 순환근무를 원칙으로 구성원의 선호와 역량에 상관 없이 소위 뺑뺑이를 돌리는 경우가 많다. 일이 단순하고 세상이 천천히 변하던 시기에는 이런 식의 순환근무가 나름의 역할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구성원 개개인에게 고도의 전문 지식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오늘날에는 구성원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방해하는 역할만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몇 년 전부터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정기 채용 대신 인원 충원이 필요한 직무별로 사람을 선발하는 수시 채용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는 점은 바람직하다. 누가 어느 부서에서 일하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정기 채용은 결국 스펙 위주의 선발로 귀결되기 쉽다. 하지만 직무별 수시 채용의 경우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인지하고 지원한다는 점에서 그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잘할 자신이 있고, 또 의미를 느끼는 지원자를 선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 잘하지 못하는 일,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일을 할 때보다 자신이 재미있어 하고 잘하며 의미를 느끼는 일을 할 때 훨씬 더 몰입하고 만족하며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조직에서 적극적으로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구성원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조직,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는 일이 구성원 개인의 정체성이 발휘될 수 있는 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조직 내에서 이뤄지는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의함으로써 그 일에 공명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필자는 15명 내외의 대학원생과 함께 심리학 연구라는 공동의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소규모 조직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매 학기 신입생이 들어오면 대학원에서 이뤄지는 일의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 학부생으로서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과 대학원생으로서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의 차이를 물어본다. 학부생은 다른 학자들이 집필한 교과서와 논문을 읽는다는 점에서 대체로 지식의 소비자 역할을 한다. 교수는 다른 학자의 논문을 읽는다는 점에서 지식의 소비자지만 직접 논문을 쓴다는 점에서 지식의 생산자다. 나아가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업과 강연을 한다는 점에서 지식의 유통자이기도 하다.

그럼 대학원생으로서 하는 일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학원생 역시 다른 학자들이 출판한 논문을 읽는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지식의 소비자이지만 논문을 쓰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생산자 역할을 체득해 가는 사람이다. 학부생으로서 썼던 글들은 학기가 끝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지만 대학원생으로 쓰는 논문은 그 안에 담긴 지식이 위대하든 하찮든, 인류 공동의 지적 자산으로 남아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신입생들에게 대학원생으로서 일의 정체에 대해 설명해주면 학생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졸업하며 전해준 편지에서 한 학생은 “지식의 생산자 역할을 강조하셨던 교수님의 첫 수업이 아직까지 기억나고 당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정체를 깨닫고 나면 대학원생은 교수에게 점수 받기 위한 글이 아니라 인류의 공동 자산으로서 지식을 생산하는 글을 쓰게 된다.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는 일의 정체를 보다 극적으로 선언한 사람은 아이유(본명 이지은)다. 아이유는 한국 연예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온갖 아이돌 그룹이 난무하는 요즘 직접 곡을 쓰는 솔로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고, 배우로서의 역량도 상당하다. 깨끗하고 바른 이미지가 있어 광고 모델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아이유는 삼다수와 참이슬의 최장수 모델이고, 참이슬은 아이유가 모델로 활동하던 동안에 연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이런 아이유의 저력은 기본적으로 가수와 배우로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역량에 기반하고 있겠지만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유는 콘서트나 팬미팅이 끝난 후, 혹은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스태프들을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한 뒤 이런 말을 하고는 한다. “저 개인은 이지은이고, 저희 모두가 다 합쳐서 아이유예요.” 연예인 스태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자신이 아이유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일하는 스태프와 아이유를 위해 일하지만 쉽게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일하는 스태프 중 누가 더 뜨거운 마음으로 일에 몰입할지는 자명하다. 아이유는 소속사를 결정할 때 전 스태프에 대한 고용 보장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으로 유명한데 모든 스태프가 다 합쳐져 아이유가 된다는 발언을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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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법

조직 내에서 이뤄지는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구성원들에게 일깨워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최종 사용자, 즉 업무 결과를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을 활용하는 것이다. 대학교 콜센터에서 기부금 모집을 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했던 연구를 살펴보자.6 콜센터 직원의 삶은 고단하다. 출근하면 그날 전화를 걸어야 할 명단을 받고 전화를 돌리지만 전화를 끊는 사람, 왜 자신에게 전화했냐고 따지는 사람 등 업무가 쉽지는 않다. 당연히 직원들의 업무 만족은 낮고 퇴사율은 높았다. 연구진은 이런 콜센터 직원들 앞에 대학으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학생을 한 명 데려왔다. 이 학생은 직원들 앞에서 5분간 장학금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꾸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 달 후 직원들의 업무 성과를 확인해 보니 통화하는 데 보내는 시간은 142% 증가했고 기부금은 171% 늘었다. 연구진은 다른 콜센터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해봤다. 이번에는 주당 기부받은 액수가 411.74달러에서 2083.52달러로 400% 이상 증가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자신들이 하는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생을 만나기 전에 직원들은 자신들의 일을 ‘전화 걸어야 할 명단을 받아 아무도 반기지 않는 전화를 하는 일’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학생의 감사 인사를 듣는 순간 직원들은 자신의 일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보람찬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물질적인 보상이 없었음에도 더 열심히, 더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종 사용자를 활용하는 전략은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구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뇌전증 약을 만드는 SK바이오팜의 경우 약을 사용한 경험에 대한 수기를 공모할 수 있다. 뇌전증은 언제 어디서 발작이 일어날지 몰라 사회활동에 엄청난 제약을 동반하는 질병이다. 이 약을 통해 그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수상자에게 1년 치 약을 제공하는 등 혜택을 준다면 구성원들의 가슴은 더 뜨거워질 것이다.

구성원 스스로가 자신의 일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의 한 보건소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살펴보자.7 보건소는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정서적 소진이 많이 발생하는 조직이다. 연구진은 보건소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기반영적 직함, 즉 자신이 하는 일을 잘 드러내는 직함을 만들게 했다. 예를 들어 감염병을 담당하는 내과의사는 ‘세균 박멸자’, 엑스레이 기사는 ‘뼈 탐색자’, 주사를 놓는 간호사는 ‘신속 한 방’이라는 직함을 만들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만든 직함을 직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알려주고 자신의 직장 내에서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5주간 활용할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이들의 정서적 소진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으로 낮아졌다. 조직에서 흔히 사용하는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는 특정 일이 육체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그 일의 육체적인 움직임을 넘어서 그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공감할 때 구성원은 그 일에 더 몰입하게 된다.


구글과 디즈니에서의 일은 무엇인가?


이런 이유로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에서는 이미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구체적인 언어로 조직에서의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전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구글이다. 구글에서의 일은 “전 세계의 정보를 체계화해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글이 진행하는 많은 사업에서 이는 정확하게 구현되고 있다. 구글 도서는 출판된 책을 디지털화해 인터넷이 있는 곳 어디에서든 읽을 수 있는 서비스이다. 얼마 전에 국내 앱 사용량 1위를 기록한 유튜브는8 세상의 영상 정보를 체계화해 누구든 볼 수 있게 했다.

구글이 세계 최초로 선보였던 스트리트 뷰(street view) 서비스를 만들었을 때의 상황을 살펴보자.9 이 서비스를 구상할 때 구글에서는 이 서비스를 어디에, 어떻게 팔아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단지 우리가 사는 전체 세상을 보행자의 시선에서 기록하고 싶었다고 한다. 10년마다 이 서비스를 업데이트한다면 전 세계가 10년 단위로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거대한 기록물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길이 있는 곳에는 자동차에 카메라를 달고 길이 없는 곳에는 사람이 카메라를 메고 세계 구석구석을 다녔다. 그렇게 해서 조직된 시각적 정보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클릭 몇 번이면 침대에 누워 그랜드캐니언도 에펠탑도 구경할 수 있다.

누군가는 같은 서비스를 만들면서 이 일에 전혀 다른 정체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3박 4일 여행에서 방문하게 될 곳을 미리 맛보기로 보여준다거나 구매하고자 하는 집 주변을 보여주는 식으로 여행사나 부동산에 팔 정보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일의 정체가 무엇이라 생각하든 두 경우 모두 보행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찍기 위해 육체적으로 정확하게 같은 일을 하겠지만 심리적으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길이 없는 험지를 걸어 다니지만 자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세계사적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보람과 뿌듯함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도대체 얼마나 벌겠다고 이 고생을 시키나?’ 하며 화가 날 수도 있다.

디즈니의 경우도 빼놓을 수 없다. 디즈니랜드에서 일하는 모든 구성원은 캐스트 멤버라고 불린다.10 캐스트 멤버는 배역을 뜻하는 연극 용어다. 백설공주나 미키마우스 같은 주요 캐릭터 역할을 맡은 구성원부터 시설 관리자, 매표원, 미화원 등 모든 구성원을 캐스트 멤버로 부름으로써 디즈니는 구성원 모두가 ‘디즈니’라는 연극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배우라는 정체성을 제공한다. 다른 사람들이 쾌적하게 놀 수 있도록 남들 놀 때 청소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미화원과 디즈니라는 무대에서 미화원이라는 배역을 맡아 연극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미화원은 육체적으로는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이는 리더가 그 일에 어떤 정체성을 부여했는지의 차이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일에 대한 정체성 부여 작업은 조직을 창설할 때 한 번 하고 접어두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행하는 많은 일에서 그 일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을 예로 들어보자. 한참을 쭉 뻗은 길 끝에 급커브가 있는 도로에 카메라를 하나 달아야 한다면 어디에 달아야 할까? 그 결정은 이 일의 정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 카메라를 다는 일이 과속하는 운전자에게 벌금을 매기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차가 빠르게 달리는 쭉 뻗은 구간에 카메라를 달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이 운전자의 안전을 보호하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쭉 뻗은 구간이 끝나고 급커브가 시작되기 전에 달아야 할 것이다. 급커브 전에 속도를 줄여야 사고가 덜 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든 작든 구성원에게 일을 맡길 때 리더는 그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구성원과 공유해야 한다.


구성원의 정체성과 조직의 정체성 간 교집합

미국의 보험회사인 메트라이프(MetLife)는 매년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데 2022년 보고서에 주목할 만한 결과가 하나 있다. 지난 20년 동안 진행됐던 설문을 통틀어 2022년에 업무 만족도가 가장 낮게 나온 것이다. 특히 질레니얼11 세대(당시 23~28세)의 만족도는 전 세대 중 최저였다. 이 젊은이들의 직장생활을 그토록 힘들게 한 요인은 바로 자신이 하는 업무의 목적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육체적인 수준에서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지는 알지만 그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일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일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54%가 이직을 할 경우 반드시 고려할 조건으로 의미 있는 일을 꼽았다. 사람들은, 최소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서두에서 리더와 구성원 간 서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불만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체성 이슈가 그 핵심에 있다. 리더가 제대로 된 의사소통 없이, 어떤 맥락에서 해야 하는 업무인지에 대한 설명 없이 특정 업무를 맡기면 구성원 입장에서는 그 일의 정체를 몰라 “이걸요? 제가요? 왜요?” 하면서 묻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하다 보면 번아웃이 찾아오고 이직을 고려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인 해결책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사소통이다. 구성원에게 맡기는 각 업무가 크게는 전체 조직에서, 작게는 해당 부서에서 추구하는 큰 그림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 것인지 설명함으로써 구성원들 역시 전체적인 일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4차 산업 시대를 선두에서 이끌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과거 적절한 물질적 보상을 통해 구성원에게 필요한 일을 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 조직을 통해 구성원 개인이 하고 싶고, 잘하고, 의미 있게 여기는 일을 할 수 있게 돕겠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조직과 구성원의 정체성 간 교집합을 만듦으로써 개인을 위해 하는 일과 조직을 위해 하는 일의 경계가 옅어지고 양자가 서로 순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조직의 정체성과 구성원의 정체성 간 교집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최고경영자와 부서의 리더는 조직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각 부서는 그 목적 달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즉, 조직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둘째, 조직의 정체성에 공감하는 사람을 선발해야 한다. 리더가 개인의 정체성을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에 구성원의 정체성 문제는 교육보다는 선발의 문제에 가깝다. 따라서 구성원 선발 과정에서 지원자가 어떤 스펙과 업무 경험이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지원자가 조직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공유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구성원 개개인에 대해 이해하고 충분히 의사소통함으로써 어떤 구성원이 어떤 업무에 공명해 몰입할 수 있을지 파악해야 한다.

어디에 흥미를 느끼고, 무엇을 잘하고,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지에 관심 없이 그저 적당한 보상을 할 테니 맡은 일을 하라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보통 딱 그 보상만큼만 일한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하고 싶지도 않고 의미를 느끼는 일도 아닌데 나서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조용한 사직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자기 돈을 써가면서도 기꺼이 한다. 그 정성과 열정을 조직 내로 끌어올 필요가 있다. 한국 내 직장인을 대상으로 했던 필자의 연구에서 구성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가 일치한다고 생각했던 구성원은 자신의 정체성과 조직의 정체성이 강하게 엮여 있다고 지각했고, 그 결과 업무에 만족하고 몰입했으며 이직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12 구성원 개인의 정체성과 조직의 정체성 간의 교집합을 만드는 것은 구성원의 행복을 증진하는 길인 동시에 구성원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분출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조직의 정체성이 공명할 때 조직과 구성원의 지속적인 동반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편집자주

박선웅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가 성격심리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조직과 리더십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조직과 그 구성원의 이야기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이들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소중한 기회로 삼길 바랍니다.
  • 박선웅 |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필자는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이스턴대에서 사회 및 성격심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인 개인차가 개인의 삶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정체성 형성이라는 개인차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정체성의 심리학』이 있다.
    sunwpark@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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