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국에서는 상사와 부하직원이 사외에서 개인적으로 만났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구의 기업들 중 일부는 최근까지도 직원들이 회사 밖에서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금지하는 사내 규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사의 엄격한 구분을 통해 공정한 인사평가 분위기를 조성하고, 특히 남녀관계의 경우 성희롱 및 사내 불륜을 방지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런 생각과 반대되는 증거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미국 갤럽연구소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12개국 451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 ‘조직 내에 절친한 친구가 있으면 구성원의 업무 몰입 및 성과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친한 ‘회사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그 반대의 경우에 비해 50%나 높고, 업무에 충실할 가능성은 일곱 배나 높다고 합니다.
동료 간 친밀도 예상보다 낮아
놀라운 것은 한국 기업 직장인들의 동료 간 친밀도 수준이 예상과 달리 아주 낮다는 사실입니다. ‘끈끈한 정’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문화를 고려할 때 정말 의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LG경제연구원이 올해 9월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직장 내 ‘프렌드십’ 수준은 100점 만점에 52점에 불과했습니다. 반면에 국내에 있는 외국계 기업의 프렌드십 수준은 54.9점이었습니다. 절친한 친구의 숫자는 한국 기업 구성원이 2.46명, 외국계 기업 구성원이 3.09명이었습니다. ‘사내에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응답은 한국 기업 구성원 14%, 외국계 기업 구성원 8.9%였습니다. 조사를 진행한 김현기 책임연구원은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할 경우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동료를 밟고 올라서야만 할까?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LG경제연구원은 ‘과다한 업무 부담감’과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상사의 존재’가 건설적 프렌드십을 가로막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다음으로 지적된 ‘회사의 관심과 지원 부족’ ‘지나친 개인 간 경쟁 분위기’에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다한 업무 부담은 외국계 기업 직원들도 똑같이 겪는 것이고, 강압적인 상사가 있다고 해서 그 이외의 사람들과 친분관계를 맺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해외 기업들은 최근 구성원 간의 비공식적 접촉을 늘려 업무 협력을 원활히 하고 조직 분위기를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는 사옥 중간에 카페테리아·회의실·화장실·우편함 등이 있는 거대한 홀을 배치했습니다. 건물 구조상 픽사 직원들은 일과 중 여러 차례 홀을 찾아 다른 부서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동아비즈니스리뷰 17호 참조)
지나친 경쟁의식도 문제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많은 국내 기업 구성원들은 ‘동료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내가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자신의 지식을 남과 공유하지 않고, 실적과 승진 문제에서 동료를 경쟁자로 바라보는 풍조가 생깁니다.
이런 문제는 해결이 어려워 보이지만 조직 차원에서 어느 정도 해소가 가능합니다. 꼭 관리자가 되지 않아도 전문가로서 조직 내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다양한 경력 경로(career path)를 마련하거나, 협력을 통해 조직의 전반적인 실적이 좋아지면 좋은 ‘자리’가 생긴다는 비전을 제시하거나, 조직 내에 갈등관리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방안입니다.
동료들 간의 친밀한 관계는 개인은 물론 조직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좀 더 활기차고 긍정적인 조직 문화 내에서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