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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Sloan Management Review

디지털 전환은 정확한 역할 분석이 먼저

할 그레거슨(Hal Gregersen),로저 리먼(Roger Lehman),김성아 | 344호 (2022년 05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글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21년 여름 호에 실린 ‘How Organizational Change Disrupts Our Sense of Self’를 번역한 것입니다.


Article at a Glance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같은 거대한 변화가 들이닥칠 때 조직 관리자들은 대개 직무 내용이 어떻게 바뀔지 ,기능 재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 ‘업무(task)’ 변화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막상 관리자들이 쉽게 간과하는 진짜 도전은 ‘역할(role)’ 변화다. 보통 큰 변화는 역할 조정, 업무 학습, 감정 개입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개인의 파괴를 야기한다. 조직 내 더 많은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분석하고 조정할 때 개인뿐 아니라 조직도 디지털 전환 같은 변화를 잘 견뎌낼 수 있다.



최근 필자들은 다양한 조직에서 대규모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작업에 관여했던 관리자들을 불러 모아 워크숍을 진행했다. 먼저 논의의 일환으로 참석자들에게 일련의 변화가 진행되는 동안 그들이 각자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물었다. 여기서 역할이란 직함과는 다른 의미였다. 그들이 최고기술책임자(CTO)인지 혹은 인사책임자인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참석자들에게는 이미 명확히 밝혔지만 우리는 ‘문제 해결사’ ‘협상 전문가’ ‘기능 전문가’ ‘아이디어 메이커’같이 좀 더 전형적인 역할이 궁금했다. 이런 역할을 확인한 다음 그들에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완수했다고 가정했을 때 성공을 일구는 데 가장 핵심적으로 작용한 역할이 무엇이었을 것 같은지 물었다. 그러자 두 답변 사이의 흥미로운 괴리가 확인됐다. 두 질문에 대한 참석자의 답변이 대부분 달랐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조직의 미래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고 싶었다면 애초에 자신의 역할을 어느 정도 조정했어야 했다.

이는 관리자들이 당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문제다. 거대한 변화를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상당히 많은 기업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착수했고, 이런 변화는 팬데믹의 장기화와 원격 근무로 더 가속화되고 있다.

문제는 관리자 대부분이 자신 앞에 헤쳐 나가야 할 거대한 변화가 들이닥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를 완전히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직무 내용이 어떻게 바뀔지, 기능 재교육이 얼마나 필요해질지 등 ‘업무(task) 변화’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물론 업무 변화 역시 매우 중요하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업무 변화에 비교적 자신 있게 대응한다. 물론 새로운 프로세스와 도구를 익히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전에도 의식적으로 해왔기에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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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중요한 변화가 벌어지는 가운데 관리자들이 간과하는 진짜 도전은 ‘역할(role) 변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글에서 ‘역할’이란 용어는 사회학자와 사회심리학자들이 역할 이론을 거론할 때 가리키는 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즉, 집단 내 개인은 통상적으로 자신이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을 맡으려 한다. 그리고 이런 역할은 그들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좌우한다. 예컨대 자신을 ‘선동가(firebrand)’로 정의하는 사람은 가령 ‘전문 기술자(technocrat)’라면 하지 않을 법한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선동가라는 역할에 부응해 살아간다. 하지만 개인의 일상에서든, 직장에서든 보통 자신이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적응은 더 어려워진다. 대부분 자신이 맡은 역할에 순응하긴 하지만 이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역할이 바뀔 때 각자 감수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애초에 자신이 “역할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역할 변화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자신이 그 변화를 헤쳐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할 파괴 헤쳐 나가기. 역할 이론이 직장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대형 동물병원에서 시니어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마리안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병원 직원들은 2020년 3월부터 재택근무를 하다가 필자들이 이 기사를 작성하던 시점에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마리안은 원래 사회생활과 안락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갈망하면서도 출근 재개와 함께 찾아올 변화에 불안감도 느꼈다. 1년여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갖가지 새로운 디지털 기능이 도입됐고, 예전에는 특별한 경우에만 활용되던 프로세스와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여러 업무 방식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마리안은 회사가 팬데믹 이전부터 이야기하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조만간 조직을 크게 흔들 것임을 감지했다.

마리안은 왜 이런 전망에 두려움을 느꼈을까?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면 그녀의 업무 중 하나인 보고서의 수집, 배포 업무가 자동화되기 때문이다. 자동화로 시간이 절약되면 그녀가 더 귀중한 일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겠지만 조직에 기여할 만한 더 고차원적인 업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상사인 CFO는 그런 업무와 관련해 마리안의 고과를 제대로 알고 평가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게다가 이런 변화가 조직 내 그녀의 역할에 어떤 역할을 미칠 것인지는 더 큰 문제였다. 마리안은 회계 전문가로서뿐만 아니라 동물병원 사업과 그 고객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베테랑 직원으로서도 존경받고 있었다. 또 동료들을 너그럽게 돕는 공헌자(giver)이자 밝고 긍정적인 비타민 같은 사람으로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역할들이 이제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마리안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가 계속 빛을 발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점점 위축되는데 이런 변화 속에서 어떻게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리드할 수 있겠는가? 좀 전형적이긴 하지만 마리안의 사례를 다른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프레임워크로 만들기 위해 상황을 정리해봤다. 보통 큰 변화는 역할 조정, 업무 학습, 감정 개입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개인의 파괴를 야기한다.

이 중 업무 학습만이 보통 명시적으로 인식되는 차원이다. 그 이면에는 감정이라는 두 번째 차원이 있다. 사실 이 차원은 개인이 상실에 대처하는 ‘슬픔의 5단계’라는 유명한(오류가 있을 수는 있지만) 모델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감정의 전이를 보여주는 이 고전적인 모델에 따르면 사람은 보통 밀려드는 슬픔이 지나가고 난 뒤 상황을 수용한다. 이런 감정은 대개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는 인식되지만 관리해야 할 만큼 심각한 요소로는 여겨지지는 않는다. 한편 경영진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이에 수면 아래서 일어나는 변화가 바로 역할 파괴이며, 이는 보통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동반한다. 이를 인식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누군가 애써 기울이고 있는 노력들을 방해하게 된다.

역할 조정은 관리자적 사고 분야에서 새로운 이론은 아니다. 이 이론은 이전에 해외 지역 관리에 있어 어떤 임원들은 장기적으로 성공적인 실적을 낸 반면 어떤 임원들은 심한 문화 충격을 받고 실패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활용됐다. 연구에 따르면 해외 파견 임원이 달라진 환경에 따른 역할 조정을 정면으로 수용할 때 힘든 변화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1 또한 이 역할 조정론은 고위 관리자들이 해외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거나 높은 자리로 승진했을 때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2 누군가 크게 승진했지만 승진 이후 애를 먹고 있다면 이는 보통 조직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역할 조정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필자들이 아는 한 CEO는 승진 후 자신이 원래 담당했던 전문 기능 리더(관련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사람)로서의 역할을 애써 무시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기존 역할을 의식적으로 버리고 이전에는 본인과 전혀 상관없다 여기던 다양한 전문 지식의 학습자(learner), 소집자(convener), 격려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했는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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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역할 조정의 필요성은 C레벨 임원을 코칭할 때도 분명히 다뤄지는 사안이다. 최고경영진으로 승진하면 개인의 시간과 관심을 어디에 할당할지와 관련해서는 상당한 자유를 누리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리더십 측면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데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된다. 이때 “나는 이제부터 팀 구축자(team-builder) 역할을 해야 한다”든지 “나는 지속가능성 부문의 챔피언이다”(일론 머스크의 경우 본인의 직책을 “테슬라의 테크노 킹(Techno King of Tesla)”이라 밝혔다)같이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명료하게 역할을 밝혀야 새로운 업무든, 기존 업무든 해당 임원이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규모로 맞서기. 역할 조정은 조직에서 주목받아온 것만큼이나 조직 내 엘리트들이나 특별히 큰 리스크가 따르는 변화에 대한 고감도 카운셀링 기법으로도 활용돼 왔다. 필자들은 조직에서 큰 변화에 직면한 사람들 중 더 많은 이가 역할 조정을 해야 하고, 이런 작업이 ‘대규모’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직이 디지털 미래를 향한 전환기를 잘 견뎌내기 위해서는 마리안처럼 C레벨은 아니지만 실무진으로서 회사에 핵심적인 기여를 하는 인재 수백 명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코로나 이후에 더 문제가 될 것이다. 재택근무로 일과 삶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개인의 역할에 새로운 부담이 생기고 사람들의 감정 역시 동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들이 기업 관리자들과 진행한 워크숍은 이런 역할 조정을 위한 아주 유용한 단계가 됐다. 즉, 관리자들이 현재 맡은 역할과 조직의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 가장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역할을 비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역할에 대해 명시적인 질문을 던지자 수면 아래에 있던 문제도 표면화됐다. 직장에서 변화를 제안했을 때 내부 저항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관리자들이 더 잘 깨닫게 된 것이다.3 개인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역동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관리자들 역시 다양한 사람이 어떻게 집단의 성공에 기여하는지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고,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낳을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의 조직 내 역할을 분석하고 조정하는 새로운 기술을 업무에 추가하기 시작했다.

브루스 페일러는 최근 출간된 자신의 베스트셀러 『인생의 전환점에서(Life Is in the Transition)』를 통해 직장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헤쳐 나가는 일과 관련해 비슷한 논점을 제시한다. 그는 이 책에서 “선형적인 삶은 죽었다” “비선형적 삶에는 더 많은 변화가 수반된다” “삶의 전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해야만 하며, 숙련될 수 있는 기술이다”라는 3가지 주장을 한다. 필자들의 연구는 거기에 4번째 주장을 덧붙인다. “변화에 잘 대처하려면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역할에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4

조직 역할 분석이라 불리는 기법을 활용하면 바로 그런 인식을 얻을 수 있다. 이 기법은 직원들의 조직 참여 활동을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본다. 첫째는 직원 스스로 자신이 맡고 있다고 여기는 역할, 둘째는 그 역할에 대한 조직의 태도, 셋째는 그 역할에 대한 개인의 경험이다. 필자들이 선호하는 분석 방법은 각각의 관점, 그리고 세 관점이 상호작용하면서 발생하는 역학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했던 마리안이 다음 일련의 질문에 답하는 상황을 그려보자.

1. 조직에서 당신의 공식 직책이나 직위는 무엇입니까?

2. 공식적인 직책과 별개로 당신이 팀에서 담당하는 가치 있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3. 그런 역할이 당신에게는 얼마나 중요합니까? 당신은 그 역할을 잃는 것과 그 역할이 덜 존중받는 것 중 어느 쪽에 더 화가 날까요?

4. 회사의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당신의 역할과 역할의 중요성을 어떻게 인식할까요? 당신의 인식과 그들의 인식 간에 차이가 있을까요?

5. 당신의 역할에 어떤 파괴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6. 그런 변화가 당신이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7. 그런 영향이 당신의 감정이나 당신이 조직에 기여하는 능력에 어떻게 작용할까요?

8.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변화된 환경에 맞추기 위해 당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에 조정이 필요할까요? 그런 조정 작업에 따라 이제까지와는 다른 업무나 우선순위가 생길까요?

9. 그보다 더 근본적인 역할 조정을 해야 할까요? 가령 새로운 역할을 맡거나, 예전 역할에서 물러나거나, 중요도가 각기 다른 여러 역할을 맡는 것처럼?

이 질문들에 대한 마리안의 대답들은 일종의 SWOT 분석5 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그녀가 현재 담당하는 일련의 역할들에 내재된 강점, 약점, 기회 및 위협 요인들을 면밀히 살펴본 다음 그녀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실행 계획을 짠 것이다.

일단 자신이 맡은 역할과 그런 역할이 자신의 행동을 좌우하는 양상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집중해야 할 업무들을 살펴보게 되면 누구든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4가지 우선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우리는 언제나 역할의 모호성, 역할의 충돌, 역할의 과부하를 줄이고, 역할 조정을 위한 자율권을 더 얻으려고 애쓴다.6 7 이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 좌절감은 바로 부정적인 감정 반응을 낳는다. 팀원들과 함께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다 보면 직장 내 역할을 더 명확하고, 더 조화롭고, 더 관리 가능하고, 더 자율적으로 만드는 일련의 실용적인 조정안을 찾을 수 있다.

팀이 같이하든, 개인적으로 하든 역할 분석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핵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에는 의식하지도 못했던 역할의 충돌에 대해 눈을 뜨게 하고,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문제를 표면으로 드러내는 데 있다. 이것만으로 전투의 절반 이상은 이겼다고 할 수 있다. 역할 조정은 개인 단위에서 변화를 헤쳐 나가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이는 나아가 조직 차원에서 변화에 잘 대처하는 핵심 열쇠이기도 하다. 이 변화가 흥미진진하지만 다소 버거운 디지털 전환이든, 팬데믹 이후 환영은 하지만 동시에 걱정되는 출근 재개든 마찬가지다. 역할 분석을 무시한다면 위험은 당신의 몫이다.


할 그레거슨(Hal Gregersen)은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리더십과 혁신 분야 조교수이자 2018년에 출간된 『질문이 그 답이다(Questions Are the Answer)』의 저자다.
로저 리먼(Roger Lehman)은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부교수이자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겸임교수다. 이 글에 의견이 있는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62413에 접속해 남겨 주시기 바란다.

번역 |김성아 dazzli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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