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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umn : Behind Special Report

“실리콘밸리가 띄우는 새로운 거품 아닐까?”

이미영 | 283호 (2019년 10월 Issue 2)
처음 푸드테크 취재를 시작할 때 삐딱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콩으로 만든 가짜 고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영화 ‘설국열차’에서 경제적 약자들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었던 곤충이 대체 단백질로 각광받을 것이라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일인데 굳이 이런 ‘가짜’ 음식을 먹어야만 할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전 세계 최신 기술과 트렌드를 선도하는 실리콘밸리의 ‘선수’들이 새로운 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밑 작업’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미래 음식’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는 Z세대(주로 1995년 이후 출생한 20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봤다. 이들은 이런 음식들을 일부러 찾아 먹는다. 음식의 맛보다 영양성분, 만들어진 과정을 더 중시한다. 건강에 좋은 균형 잡힌 식단을 찾고, 식재료 생산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최소화한 음식을 더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사 먹는다.

별나게 보이는 이들의 선택에는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었다. Z세대는 숨 막히게 가속화되는 환경오염 후폭풍에 죽어가는 동물들의 처지가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봄, 지구 온난화로 인해 타들어 가는 여름과 견디기 어려운 혹한으로 이어지는 이상 기후가 그들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조상들이, 그리고 부모 세대들이 살아온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환경을 지키며 함께 살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친환경 제품을 사고, 자원을 공유하는 노력으론 부족했다. 고민은 먹고사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가축을 기르면서 내뿜는 막대한 환경오염을 ‘0’으로 수렴할 수 있는 먹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Z세대와 이들의 삶의 방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비즈니스’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영리하게도 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유용하고 훌륭한 도구인 디지털 기술을 활용했다. 여기에 실리콘밸리 특유의 과감한 실행력과 시류를 읽는 혜안이 반영된 투자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됐다. 인공 소고기와 계란을 만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한 단백질 음료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탄생한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자율주행 회사도, 플랫폼 회사도 제치고 지난 5월 상장된 콩고기 생산 스타트업의 주가가 최근까지도 매우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들의 생각, 그리고 세상을 향한 외침이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마음을 달리 먹고 보니, 나 또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생겨난 푸드테크 서비스를 이미 생활화하고 있었다. 배달 음식 플랫폼과 공유주방이 대표적인 예다.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쪼개 쓰고 싶어 하는 요즘 세대들의 생활방식을 반영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가정식을 더 맛있고 편리하게 먹기 위해 요리를 ‘외주화’한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음식과 요리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은 물론, 새로운 가사 분업 구조로 변모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쭉 지켜보면서 결국 푸드테크는 인간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내고, 이는 곧 사람들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동(shift)’하게 만든다. 푸드테크는 인류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결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인류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간파해낼 수만 있다면 탄탄하고 확장 가능성도 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들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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