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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K브랜드 핵심 경쟁력 확보 전략은

K브랜드, 개방형 AI 장착해 혼종성 강화
‘코어’ 지키며 EU-아세안-중동과 협력을

정나영,정리=김인오 | 423호 (2025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AI 시대의 브랜드 경쟁력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기업 고유의 정체성과 전략적 활용에 달려 있다. 극소수 스타 브랜드만이 생존하고 대다수는 대체 가능한 존재로 전락하는 현실 속에서 K브랜드는 ‘한국적 본질(Core)’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시장과 적극적으로 협업해야 한다. K컬처의 성공은 전통과 트렌드, 지역성과 글로벌성을 혼합한 ‘혼종성(hybridity)’ 덕분이며 이는 AI 시대에도 유효한 경쟁 전략이다. 한국은 독자적인 디지털 생태계와 콘텐츠 기반의 방대한 한국어 데이터를 갖추고 있어 AI 시대 글로벌 진출에 강점을 지닌다. 그러나 한국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전사적 전략에 AI를 통합하는 ‘브랜딩 내재화’가 시급하며 우리만의 코어를 기반으로 EU·아세안·중동 등과의 개방적 협력을 통해 세계와 연결돼야 한다.



“한국의 K컬처든 제조업이든 앞으로 모든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AI에 의해 좌우될 것입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나라는 자국의 문화가 AI 모델에서 제대로 표현되는지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은 ‘그냥 자체 AI를 만들자’거나 ‘이 데이터를 써라’ 정도로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 언어만으로는 충분한 학습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국내 주요 기업 경영진에 AI 관련 자문을 수행하고 있는 AI 연구의 권위자, 제임스 랜데이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HAI) 공동연구소장은 최근 필자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2022년 12월 챗GPT 출시를 기점으로 촉발된 AI 열풍이 3년째 지속되고 있지만 시장의 판도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AI 혁명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오픈AI는 현재 막대한 개발 및 운영비용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에 직면해 있다. 한편 구글은 초기 경쟁에서의 실수를 만회하며 강력한 반격에 나서고 있다. 2023년 챗GPT의 대항마로 내놓은 바드가 출시 시연에서 오답을 제시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단 이틀 만에 시가총액 150조 원이 증발하는 충격을 경험했지만 올해 5월 세계 최초 사운드를 입힌 영상 생성 모델 ‘Veo3’를 공개하며 기술적 우위를 되찾았다. 이는 마치 무성영화에서 처음 소리가 나던 순간과 같은 혁신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흥 플레이어들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퍼플렉시티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매일 사용하는 AI’라는 구전 마케팅 효과에 힘입어 올해 기업가치가 작년보다 36배나 증가했다. 최근에는 AI 검색을 넘어 지능형 멀티태스킹 에이전트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메타 역시 공격적 전략으로 시장 재편에 나섰다. 라마4로는 현재 경쟁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메타는 초인공지능(ASI) 개발을 목표로 슈퍼인텔리전스 랩을 신설했다. AI 데이터 라벨링 기업 스케일AI에 143억 달러(약 19조 8000억 원)를 투자하며 창업자인 알렉산더 왕을 영입하고 경쟁사의 핵심 인재를 빼앗아 오기 위해 최대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규모의 보상 패키지를 제시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단 2~3년 만에 발생했다는 점이 AI의 파괴력을 고스란히 입증한다. AI는 전기, 인터넷, 모바일 혁명과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현재 도입 초기 단계로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SNS 시대가 개막되면서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링크트인이 각기 다른 타깃과 사용성에 따라 고유한 영역을 구축해간 것처럼 AI 시대에도 각 서비스 분야별로 특화된 스타 브랜드가 등장할 것이다. AI 시대가 막을 올린 지금, 누구든 스타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신생 기업들에도 전례 없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


극소수 스타만 생존,
기존 강자도 들러리로 전락할 것

브랜드의 생애주기가 급격히 짧아지고 있다. 펀딩을 받아 순식간에 혜성처럼 떠올랐다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스타트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 생존의 가혹한 현실은 역사적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포천500 기업 중 1955년부터 현재까지 70년간 지속적으로 순위에 남아 있는 기업은 전체의 9.8%(49개사)에 불과하다. 기업의 평균 생존 기간은 67년 전 61년에서 최근 18년 이하로 급격히 단축됐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AI 없이는 관심도 투자도 받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업이 진정한 핵심 가치나 탁월한 기술 역량 없이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무작정 따라가는 데 몰두하고 있다. 심지어 실제 역량과 무관하게 AI 기능을 과장하거나 왜곡해 브랜드를 포장하는 ‘AI 워싱(AI Washing)’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AI가 자동으로 앱을 제작해준다’는 메시지로 4억5000만 달러(한화 약 6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던 빌더AI는 알고 보니 700명의 인도 개발자가 투입된 수작업에 의존한 서비스였던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안겼다.

기술적 우위는 언제든 후발 주자에게 추월당할 수 있다. 실제로 챗GPT와 퍼플렉시티가 리서치 기능을 잇따라 선보이자 시장에는 다양한 AI 리서치 에이전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젠스파크·스카이워크 등 슈퍼 에이전트를 표방하는 신생 서비스도 출시되면서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여러 서비스를 병행하거나 전환하는 ‘멀티호밍(multi-homing)’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격전지에서는 기술적 우위만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할 수 없다.

결국 확고한 브랜드 가치와 비전을 바탕으로 AI를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는 극소수 스타 브랜드와 평범한 기술과 역량으로 가성비를 앞세워 언제든 유사 브랜드로 대체될 수 있는 다수의 브랜드 간 격차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AI 기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진정한 차별화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 각 기업은 AI 인프라에 투자하고 AI로 생산성을 향상해야 한다는 압박과 동시에 AI 시대에 적합한 고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해야 한다는 이중 부담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자사 브랜드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다.

AI가 노동시장을 파괴하거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지만 소수의 스타급 CBO(최고브랜드책임자), 브랜드 전략가,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오히려 더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은 AI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면서도 AI로는 대체 불가능한 전략적 통찰과 창의성으로 시장 가치가 높은 차별화된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는 음악·미술 등 예술 분야와 유사한 현상이다. 수많은 화가와 음악가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상당한 수익을 창출하는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창의적 실험으로 유명해진 크리에이터 카렌 X. 쳉은 AI 기반 창작 방법론을 소개하며 구글 ·어도비·애플·인텔 등의 테크 기업들과 협업하고 있다. CNN·넷플릭스·레드불미디어·파라마운트 등에서 신기술-콘텐츠 융합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했던 제작자 베레나 펌은 최근 AI 스타트업 루마AI가 새로 개설한 크리에이티브 허브의 총책임자로 임명됐다. 영화 ‘파이’ ‘블랙 스완’을 연출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작년 AI 스튜디오를 설립하며 AI 기반 디지털 필름 창작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브랜딩 전문 에이전시도 예외는 아니다. AI 수용도를 바탕으로 AI 역량과 인프라를 발 빠르게 갖춘 소수의 톱 티어 에이전시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글로벌 디자인 스튜디오 펜타그램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펜타그램은 미국 정부의 ‘Performance.gov’ 웹사이트 리디자인 프로젝트에서 1500개 이상의 아이콘을 AI 도구 미드저니로 제작했다. (그림 1) 당시 “AI가 인간 디자이너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창작계의 우려와 저작권 논란이 일었지만 정작 3개월이라는 촉박한 기간에 5명의 디자이너가 방대한 작업을 진행하는 데 성공해 충격을 줬다. 인간 디자이너가 위기감을 느낄 정도의 성과를 낸 비결은 탄탄한 크리에이티브 기본기를 바탕으로 AI를 ‘창작 역량 증폭 도구’로 받아들인 수용적 자세였다. 최근 이 기업은 오픈AI와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은 물론 국내 기업인 삼양그룹의 리브랜딩 프로젝트도 수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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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즈·AKQA·퍼블리시스사피엔트·엑센츄어송 등 브랜드 경험 전문사들도 클라이언트에 AI 기반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며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디자인부터 브랜드 경험, 마케팅 자동화에 이르기까지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디자인 툴의 절대 강자 어도비도 ‘파이어플라이’라는 생성형 AI 툴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면서 펩시코·에스티로더 같은 포천 500대 기업에 AI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어도비는 지난 3년간 연평균 20%대 성장세를 지속할 정도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AI는 이처럼 ‘극소수 스타’와 ‘대체 가능한 다수’ 사이의 격차를 갈수록 더욱 벌릴 것이다. 기존의 강자라도 AI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쥐라기 시대의 공룡처럼 시장에서 멸종될 수 있다.


전통의 명품 기업들도 AI를
미래 생존 전략으로

장인의 손길이 한 땀 한 땀 깃든 수작업을 고수해온 명품 기업들도 AI 혁신에 나섰다. 기술을 유산의 위협이 아닌 미래 확장의 도구로 재정의한다. 핵심은 ‘기술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기술을 쓰느냐’다. 루이뷔통·디오르·태그호이어·펜디 등 75개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LVMH는 구글, 알리바바와 손잡고 전사적 AI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요 예측, 재고 최적화, 개인화 추천을 넘어 ‘AI 팩토리’ 설립, 사내 교육용 AI 챗봇 운영, 파리의 ‘AI 아카데미’ 설립까지 나아갔다. AI를 명품 DNA에 내재화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또한 매년 이노베이션 어워드를 통해 유망 테크 스타트업을 선정하고 파트너십을 구축해 럭셔리의 미래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워치 브랜드 ‘위블로’의 리카르도 과달루페 CEO는 지난해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AI를 디자인에 적용하려고 몇 가지 실험을 해 봤는데 정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디자이너에게 그런 작업을 맡기면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AI는 무료로 순식간에 10~12개 제품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위블로가 AI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위블로는 디자인, 재질의 품질, 정확도를 누구보다 중요시하는 전통 럭셔리 브랜드다. 고객들을 그냥 고객이 아닌 ‘존경받는 수집가’라고 칭할 정도로 ‘수집 가치를 지닌 제품을 개발한다’는 철학을 고수해온 기업이다.

이렇게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해 온 위블로가 AI를 브랜딩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사 웹사이트에서는 ‘남편의 50번째 생일 선물’이라고 입력하면 사용자의 의도대로 맞춤형 상품, 헤드라인 문구, 페이지 레이아웃을 실시간 자동 조정하는 개인화 기술을 구현 중이다. (그림 2) 방문자는 콘텐츠가 변하지 않는 페이지를 방문해 그저 제품들을 둘러보는 대신 특정 정보를 입력하면 그 즉시 개인화된 제품을 보여주는 경험을 제공받게 된다. 중국 시장 진출 과정에서는 AI 기반 영상 자동 제작 시스템을 활용해 80개 SKU(제품 단위)에 대한 브랜드 영상을 단 2주 만에 제작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실현이 어려운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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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경험 에이전시 ‘휴즈’의 키어런 레퍼드(Kieron Leppard)1 가 위블로 웹사이트 개인화에 대해 발표한 자료

AI 전환을 선도하는 기업 중 하나인 로레알은 2024년 기준 연 매출 세계 1위의 뷰티 기업이다. 37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150개국에서 수억 명의 고객을 상대하는 만큼 대규모 고객 관리가 필수다. 로레알은 AR 기술 기업 모디페이스 인수를 시작으로 피부 진단·가상 메이크업·헤어 컬러 체험 등 AI 기반 뷰티 기술 혁신을 주도해왔다. 로레알의 뷰티 마켓플레이스 노리(Noli)는 이러한 노력의 집약체다. 로레알이 축적한 100만 개 이상의 피부 데이터와 수천 건의 제품 포뮬러 데이터를 학습해 1억 가지 조합으로 개인 맞춤형 뷰티 프로필을 생성한다. 소비자는 얼굴 스캔과 피부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만으로 자신만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어 과잉 선택으로 인한 피로도를 줄인다.

AI의 도입은 감성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톱스타가 내 상점을 무료로 광고해준다면? 내가 200년 전 광고의 주인공이 된다면? 영국 초콜릿 브랜드 캐드버리는 이 불가능한 상상을 AI로 실현했다. (그림 3) 이 브랜드는 인도의 디왈리 축제 시즌에 AI 스타트업과 협력해 유명 발리우드 배우 샤룩 칸의 디지털 트윈을 제작, 인도 전역 2000여 개 소매상을 위한 맞춤형 광고 영상을 자동 생성했고 이를 무상으로 배포했다. 톱스타가 출연하는 개인 상점 광고를 AI 기술로 구현한 것으로 과거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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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캐드버리는 창립 200주년을 맞아 고객을 과거 캐드버리 광고 속 주인공으로 변모시켰다. 고객이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을 업로드하고 과거 캐드버리 광고 7편 중 하나를 선택하면 AI 디자인 툴인 스테이블 디퓨전이 고객의 얼굴이 삽입된 빈티지 포스터를 자동 생성했다. 7만7000장 이상의 포스터가 제작됐고 각 개인에게 e메일로 전송돼 특별한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다. 이 두 캠페인은 AI를 단순한 효율성 도구가 아닌 감정적 연결고리를 만드는 브랜딩 수단으로 활용해 큰 호응을 얻었다.

콘텐츠가 브랜드고, 브랜드는 콘텐츠다. AI 시대에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평균적 콘텐츠가 아닌 개인에게 특화된 맞춤형 콘텐츠가 더욱 중요해진다. 건강관리 콘텐츠 기업인 후프는 개인화된 피트니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콘텐츠 추천을 AI로 수행한다. 개인의 신체 변화와 컨디션을 바탕으로 일상 콘텐츠를 자동 구성하는 시스템은 AI가 사용자 경험의 핵심을 차지하는 브랜드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다.

F&B 산업에서도 AI의 실험은 활발하다. 하이네켄·코카콜라 등 글로벌 식음료 기업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맛의 취향을 데이터로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다.

AI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푸른 뱀을 상징하는 을사년을 맞아 창립 75주년을 기념한 불가리는 브랜드의 대표 컬렉션 ‘세르펜티(Serpenti)’를 중심으로 AI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과 협업을 진행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불가리의 유산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몰입형 인터랙티브 전시로 구현한 것으로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 4개 도시에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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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는 1948년 첫 출시 이후 축적해온 세르펜티 디자인 아카이브와 2억 개 이상의 자연 이미지를 학습한 AI 알고리즘을 접목해 로보틱 기술 기반의 AI 데이터 조각(Data Sculpture)을 선보였다. 여기에 맞춰 신제품도 함께 출시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번 협업은 럭셔리 브랜드가 AI 기술을 활용해 전통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디지털 감성에 기반한 새로운 고객 경험을 창출한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AI 시대의 브랜드 경쟁력은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도입했느냐보다 그 기술로 어떤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구글과 워너브러더스는 오는 9월 라스베이거스 ‘스피어(Sphere)’에서 AI 기반 초몰입형 콘텐츠를 최초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은 고전 명작 ‘오즈의 마법사’를 16K 해상도의 거대한 원형 LED 디스플레이에 맞춰 재창조하고 있으며 기존 사각 프레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청 경험을 목표로 한다. AI 기반 업스케일링과 장면 확장 기술을 통해 익숙한 콘텐츠가 전혀 다른 감각의 몰입형 서사로 탈바꿈된다. 단순한 리마스터링을 넘어 콘텐츠의 공간성과 감정 몰입을 재설계하는 방식이다.

결국 관건은 기업이 AI를 어떻게 ‘포지셔닝’하느냐에 있다. 단순한 효율화 도구로만 AI를 활용하는 브랜드는 변화를 뒤쫓을 것이고 창의성과 정체성의 증폭 장치로 삼는 브랜드는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이다. AI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감성과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확장시키는 도구가 될 때 비로소 브랜드에 진정한 경쟁력이 된다.


디지털에 잘 적응한 K브랜드,
AI 시대에도 꽃피우려면

최근 출범한 새 정부가 ‘소버린 AI’ 구축을 주요 의제로 내세우면서 한국어 데이터 부족 문제에 대한 우려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AI 플랫폼에 종속된다면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오혜연 카이스트 교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AI 학습 언어 비중에서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에 이어 한국어는 5위를 기록했다. 인구 대비로 보면 의외의 결과다.

한국어가 AI 학습 언어로서 위상을 확보하게 된 배경에는 독자적인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가 있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인터넷을 개통한 국가로 1990년대 후반 웹 1.0 시대에는 구글에 종속되지 않고 네이버·다음 등 토종 포털이 검색 주도권을 잡았다. 특히 지식인·블로그·카페 등 사용자 참여형 플랫폼을 통해 한국인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공유했다. 이는 한국어 기반 디지털 아카이브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한국은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부문에서 일본을 앞서기 시작했다.

스마트폰과 SNS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웹 2.0 시대에는 카카오톡이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으며 일상 대화 기반 한국어 데이터의 양적 팽창을 이끌었다. 메신저 시장에서 밀려난 네이버는 일본 시장에서 라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해외 현지 데이터를 역으로 확보했다. 일본 정부가 데이터 주권을 이유로 라인 경영권 이슈에 개입한 사례는 데이터가 단순한 산업 자산이 아닌 국가 전략 자원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디지털 인프라와 데이터 자산은 AI 시대에 새로운 기회로 전환되고 있다. AI 기반 실시간 번역·통역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한국어의 언어 장벽이 무너지고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문화가 전 세계로 전달될 수 있는 전례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웹 3.0과 생성형 AI의 시대가 본격화된 최근 3~4년 사이 한국의 AI 인프라는 글로벌 경쟁에서 확연히 밀리고 있다. 데이터센터 투자액이 전 세계 29위에 그치고 컴퓨팅 파워는 미국, 중국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초거대 AI 생태계는 아직 초기 단계다. 또 K팝, K푸드, K뷰티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강한 인지도를 확보한 K컬처 브랜드들과 달리 AI 시대를 대표할 만한 K브랜드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지난해 국내 최대 헤어숍 브랜드 준오헤어는 글로벌 사모펀드 블랙스톤에 8000억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스트리트 감성의 독창적 뷰티·패션 브랜드 스타일난다 역시 2018년 로레알에 약 400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인수됐다.

공장이나 기술 특허가 없는 이 두 기업이 업계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고가에 매각된 배경은 바로 브랜드 자체의 경쟁력 덕분이었다. 차별화된 아이덴티티와 일관된 경험, 미래 확장성을 내포한 브랜드 밸류에이션이 글로벌 투자를 이끌어낸 근본적 동인이 됐다. 즉 K브랜드의 가치를 글로벌 확장성이 있는 플랫폼으로 평가를 받았기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한국의 AI 전환은 늦은 감은 있지만 패스트 팔로워로서 축적한 경험이 상당하다. 이미 우리는 상당한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콘텐츠, 디자인, 마케팅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한국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안목 덕분에 국내 시장은 신제품 테스트를 위한 최적의 안테나 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 OECD 디지털 정부 지수, IMD 세계 디지털 경쟁력 지수와 같은 주요 평가에서 디지털 경쟁력 역시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또한 언어 장벽이 무너지고 문화적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한국만의 독창적 감성과 기술력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AI 시대 K브랜드의 타깃시장은 글로벌이어야 한다. K브랜드를 더 넓게 멀리 꽃피울 토양은 이미 기름지다.


AI를 제대로 이해도,
활용도 못하는 K브랜드

챗GPT 등장 이후 생성형 AI 활용이 본격화되면서 삼성생명·롯데·농심 등 한국 대기업들은 AI를 활용한 광고를 선보였다. KB라이프생명은 배우 윤여정의 20대 모습을, 서울우유는 박은빈의 어린 시절을 AI로 구현했다. 쿠쿠 얼음 정수기 광고는 고가의 세트 제작 대신 AI 기술로 제작비를 크게 줄였으며 자동차 업계에서도 현지 촬영이나 고가의 CG 제작을 수백만 원대의 AI 영상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AI 기술 덕에 과거 장기간 수십 명의 인력을 투입해 많게는 수십억 원씩을 썼던 브랜드 아이덴티티 광고, 캠페인 제작도 훨씬 저렴하게 완성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이는 AI가 가진 잠재력의 일부일 뿐이다. 오롯이 비용 절감 도구로만 AI를 활용하는 것은 디지털카메라를 필름 절약 수단으로만 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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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AI가 가장 활발히 도입된 영역은 단연 콘텐츠 생성이다. 챗GPT·클로드·카피AI는 광고 문구와 기사를, 미드저니·런웨이·이마젠은 이미지와 영상 시안을, 헤이젠은 음성과 더빙, 수노는 배경음악을 생성한다. 한 달 전만 해도 이렇게 각 포맷별로 별도의 전문 툴을 사용해야 했지만 이제는 한 플랫폼 내에서 복합적인 작업이 통합 구현되는 올인원 멀티모달 AI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구글의 Veo3 하나로 이미지 생성, 영상화, 오디오 편집까지 가능해진 것이 단적인 예다. Veo3로 제작한 미국 예측 시장 플랫폼 칼시의 30초 광고는 지난 6월 NBA 파이널 프라임 타임에 ABC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1000만 뷰를 돌파한 이 영상은 단돈 2000달러 제작비로 불과 이틀 만에 완성됐다. 이는 전통적으로 디지털 플랫폼용으로만 여겨지던 AI 제작 영상이 대규모 관객 대상 메이저 방송에 적합한 품질을 극저비용·초단기간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런 변화는 생산성 향상을 넘어 브랜드 콘텐츠 제작의 경제성과 민첩성 자체를 재정의한다. 이제 브랜드는 러버블 같은 노코드 에이전트로 숙련된 디자이너나 코드 개발자 없이도 소셜 영상, 웹사이트, 챗봇을 ‘대화형 명령’이나 ‘드래그 앤드 드롭’만으로 제작할 수 있다.

상품 이미지 한 컷이 캠페인 영상 콘텐츠 3~5개로 바로 확장 생산된다. 단 한 번의 모델 촬영만으로도 힉스필드 같은 도구를 통해 각기 다른 의상을 입고 배경을 바꾼 수많은 컷을 몇 분 만에 추가 확보할 수 있다. 하나의 콘텐츠가 인스타그램·유튜브·틱톡 등 각 플랫폼별 규격에 맞게 동시다발적으로 순식간에 자동 최적화된다.

AI는 이제 콘텐츠 산업의 ‘엔진’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주도적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인간의 기획과 창의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의 AI는 새로운 제작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거버넌스)를 끊임없이 생성하고, 해체하고, 재편한다. AI를 활용하지 않는 콘텐츠 제작자나 기업은 사실상 시장 밖에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변화는 단지 서막에 불과하다.

AI는 단순한 제작 도구를 넘어 브랜드 전략 전체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범용 기술이다. 전략 수립, 경험 설계, 콘텐츠 생성, 캠페인 집행, 성과 분석, 리스크 대응에 이르기까지 브랜드 운영의 모든 단계가 데이터 기반 AI 프로세스로 전환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AI를 일부 부서의 실험적 기술로 치부하거나 마케팅 자동화 수준에 머문다면 글로벌 무대에서 도태될 위험이 크다. 지금은 브랜드 전체가 AI로 일하는 구조로 리빌딩해야 할 시점이다. 이 거대한 전환의 중심에는 네 가지 키워드가 있다. 바로 자동화, 실시간, 예측성, 초개인화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타깃 시장과 핵심 소비자를 정확히 포착하고 이들이 어떤 콘텐츠에 반응할지를 실시간으로 예측한다. 그 결과 개인 맞춤형 광고, e메일, 영상, 랜딩 페이지까지 모든 콘텐츠 접점이 하나의 서사처럼 연결된 ‘다채널 퍼스널 브랜드 경험’으로 구현된다.

우리는 지금, 개개인마다 ‘나만의 브랜드 유니버스’가 생성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AI는 이제 브랜드의 단편적인 도구가 아니라 전체 브랜드 경험을 아우르는 설계자다.

브랜드 퍼포먼스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검색어 중심의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 전략은 이제 GEO(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 AEO(Answer Engine Optimization), AIEO(Artificial Intelligence Engine Optimization) 같은 새로운 최적화 전략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전 세계 마케터들은 더 나은 브랜드 노출과 소비자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 새로운 노출 방식을 해독하고 재설계하는 데 분주하다.

데이터의 역할도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 결과 분석 도구였던 데이터는 이제 미래를 예측하고 실험하는 전략 자산이 됐다. 에스티로더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컨슈머IQ를 개발해 80년간 축적한 고객, 마켓, 상품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인사이트를 도출한다. 무의미한 노이즈를 걸러내고 라벨링, 구조화한 양질의 멀티모달 데이터, 이것이 바로 브랜드 경쟁력이다.

최근에는 7~13세 어린이들도 AI 툴과 코딩 콘텐츠를 활용해 놀이하듯 앱을 만들어보는 시대가 됐다. 미국의 17세 고등학생 벤저민 최는 단 40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AI 기반 마인드 컨트롤 의수를 직접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3D프린터로 제작한 이 의수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상용 뇌파 의수와 유사한 기능을 100분의 1 이상의 가격으로 구현해 기술 민주화의 상징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것이 AI 세대의 현주소다. 더 나아가 2025년부터 출생하는 ‘베타 세대’는 AI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AI 네이티브’ 세대다. 브랜드가 주목해야 할 핵심 고객층은 바로 이들이다. 브랜딩도 이 변곡점에서 선택해야 한다. 선도하는 혁신가가 될 것인가, 망설이는 관망자로 남을 것인가. 기업들은 전사적 AI 혁신과 위기 감지 시스템 구축 같은 안전성 확보 노력을 동시에 기울여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
K브랜드의 ‘코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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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올여름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강타했다. 넷플릭스가 애니메이션으로 디즈니를 이긴 최초 사례다. OST 전곡은 40여 개국 스포티파이·빌보드 등 글로벌 차트를 휩쓸고 있다. 대표곡 ‘골든’은 ‘겨울왕국’의 ‘렛잇고’에 필적하는 글로벌 히트곡이 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굿즈 판매로 이어졌다. 오징어게임이 히트를 쳤을 때 관련 캐릭터 굿즈가 핼러윈데이를 휩쓸었던 것처럼 올해는 데몬과 요괴 의상, 한국 민화를 모티프로 한 호랑이와 까치 캐릭터가 세계시장을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케데헌은 할리우드 자본과 한국 K팝 제작 역량, 아이돌 문화가 결합된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콘텐츠다. 사운드트랙에는 프로듀서 테디와 작곡가 김은재,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메인 보컬 등 한국을 대표하는 월드클래스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극 중에는 아이돌 포지션과 칼 각 댄스, 슬로모션 장면 등 K팝과 K드라마의 클리셰 요소들이 녹아져 있으며 북촌 한옥마을·김밥·컵라면·민화·무당 등 한국적 디테일이 곳곳에 살아 있다.

이 작품의 돌풍은 이 같은 K컬처에 글로벌 보편성을 더한 결과다. K컬처의 ‘코어(core)’를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자본·플랫폼과 개방적으로 협업하고 트렌드·장르·이질적 문법을 과감히 섞어낸 하이브리드였기에 가능했다. K컬처의 성공을 가져온 ‘혼종성’을 AI 시대 K브랜드의 코어로 삼아야 한다.

코어는 단순한 핵심이 아니다. 그것은 브랜드 존재의 본질(pith)이자 독창성(originality)이며, 정신적 가치(ethos)다.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이듯 브랜드에도 자신만의 코어가 있어야 한다. 브랜드 코어는 브랜드의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며 개인·가족·친구·동료·글로벌 커뮤니티까지 진실되고 진정성 있는 브랜드 경험을 일관되게 전달하는 기반이다.

K브랜드의 코어는 한국에 있다. 브랜드 관점에서 한국은 수백 년 전통의 유럽 럭셔리 브랜드도,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대중 브랜드도 아니다. 한국은 K팝·K드라마 등을 내세워 이제야 세계에 존재를 알린 신흥국가에 불과하다. 하지만 케데헌 열풍에서 보듯 세계시장에서 점점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민주화 이후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문화 전반에 오랜 기간 내공이 쌓여온 성과물이다.

중국 브랜드들이 향후 수십 년간 글로벌 톱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되는 것도 코어의 부재 때문이다. 단지 기능이나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신뢰와 감성, 문화적 공감을 담보하기 어렵다.

한국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브랜드의 코어를 한국에 둔 채 글로벌화해야 한다. 국적 불문의 세계화만 주창할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하는 것이야말로 K브랜드를 세계 무대에서 지속가능하게 확장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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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심이 돼 다른 국가들과 융합하는 ‘혼종주의’로 가야

“결국 영어 기반 데이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한국어 데이터를 추가해야 문화적 이해가 가능할까’는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한국은 싱가포르, UAE, 스위스 같은 나라와의 협업이 필요합니다.”

앞서 소개한 랜데이 교수는 필자에게 “한국 기업들이 AI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국제적인 협력이 핵심”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술이 지난 40년간 발전해온 방식은 바로 오픈소스 기반의 협업이었다. 서로의 연구 성과를 공개하고 그 위에 쌓아가면서 분야 전체가 발전해온 것이다. AI 시대에 혁신을 견인하는 해법은 바로 개방과 협력에 있다. 중국이 딥시크·알리바바·텐센트 등 유수의 AI 기업을 배출하며 글로벌 리더 그룹에 진입한 배경도 오픈소스 전략을 과감하게 도입한 덕분이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일부 기업이 중국을 의식한 나머지 점점 폐쇄적인 전략으로 돌아섰다. 이것이 도리어 중국의 추격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7월 대한상공회의소 ‘AI 토크쇼’에서 “제조업 AI 최대 위협은 중국”이라면서 “상당한 데이터를 보유한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일본과 한국이 상호 보완적인 제조 데이터를 각각 보유하고 있으므로 경쟁보다는 전략적 연합이 효과적이라고 역설했다.

단일 기업이나 국가만의 힘으로는 더 이상 글로벌 AI 헤게모니를 차지할 수 없다. 공유와 협력 기반의 생태계만이 지속적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시대다. 챗GPT의 성공도 결국 오픈소스 연구 성과들의 축적 위에서 가능했고 구글의 트랜스포머 아키텍처 역시 학계와의 개방적 협업에서 비롯됐다.

다행히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협력 행보는 이미 시작됐다. 네이버의 프랑스 AI 연구소 인수나 유럽 기업들과 기술 제휴, LG가 개방형 초대형 언어모델을 공개한 것, 하드웨어 부문에서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TSMC와 함께 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것 모두 ‘개방과 협력’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성과들은 한국이 AI 생태계에서 고립된 플레이어가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의 핵심 노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K콘텐츠가 증명했듯 혼종성은 우리의 경쟁력이다. 변하지 않는 고유한 코어와 다양성이 조화를 이뤄야만 글로벌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 한국은 EU·아세안·중동과 협력해 조화를 이뤄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돼야 한다. 한국적 코어는 폐쇄적 고유성이 아니다. 세계와의 긴밀한 협력, 데이터 공유와 결합, 다양한 문화권의 다원적 해석 속에서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K브랜드는 한국적 코어의 글로벌 확장 엔진으로 AI를 반드시 장착해야 한다.

AI 시대는 ‘승자독식’ 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AI 시대에 통하는 K브랜드 전략은 첫째, 개방형 AI를 장착하고, 둘째, 한국적 코어를 지키며, 셋째,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혼종주의 전략으로 무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쏟아붓는 막대한 투자에 겁을 먹고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디지털 시대 이후 한국에 축적된 자산마저 날리는 꼴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정나영nwhy@nwhy.kr

    앤와이컨설팅 대표

    필자는 제일기획 브랜드 익스피리언스 본부 디렉터로 삼성그룹, 삼성전자 무선·가전·반도체 사업부와 한국총괄, 동서식품, 동아제약, GM, CJ 등 국내외 브랜드 프로젝트를 10년간 진행했다. 제일기획 BE 성장전략 TF와 삼성 올림픽 마케팅 캠페인에 참여했다. 독일 브랜드 휘슬러의 마케팅 실장으로 한국 시장을 담당했으며 AI 기반 대학인 태재대 대외협력센터장으로 대학 브랜드 론칭에 참여했다.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했으며 환경부 전략홍보 자문위원이다.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영국 크랜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서강대에서 광고홍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AI와 브랜딩(2025)』책을 출간했다. www.jeongna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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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김인오carmenkim.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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