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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김광섭 엠로 DX사업부문장

신속한 리스크 감지 및 대응 전략 구사가 핵심
디지털 기술, 공급망 회복탄력성 높여

백상경 | 392호 (2024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인공지능(AI)을 현실 비즈니스에 접목하는 건 쉽지 않다. AI 기술과 현업 양쪽의 전문성을 모두 갖춰야 하는 까닭이다. 국내 최고의 AI 기반 공급망 관리(SCM) 솔루션 기업 ‘엠로(Emro)’는 자칫 공허할 수 있는 ‘AI 혁신’ 구호를 현실로 바꿔놓는 곳이다.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공급망 전반을 통합 관리하고 구성원 간 소통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솔루션을 제시한다. 가격·수요 등의 예측을 통해 기업경영에 도움이 될 정보를 제시하고, 궁극적으로 ‘발주 자동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도 하고 있다. 이들 솔루션은 최초 공급부터 최종 수요에 이르는 공급망 전역에 걸친 ‘엔드-투-엔드’ 가시성을 확보해주고 기업이 데이터에 기반해 협력적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공급망 회복탄력성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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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기업들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라는 유령이다. 도처에서 AI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당장 도입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질 것처럼 위기감을 고조한다. 그런데 실제로 언제 어느 분야에 도입해,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는 이는 드물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AI를 현실 비즈니스에 적용해본 사람이 많지 않아서다. AI 분야의 전문가는 기업 경영을 잘 모르고, 경영 분야 전문가는 AI를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AI를 둘러싼 환상만 커져간다. 공급망 관리 분야도 마찬가지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AI가 글로벌 공급망 전역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실시간으로 세상 모든 정보를 긁어모아 사전에 위기 상황을 감지하며, 선제적으로 공급망 계획을 조율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환상이 만연했다. 물론 복잡다단한 현실 앞에 환상은 금세 깨졌지만 말이다.

이런 환상 속에서 실제로 구현 가능한 요소를 찾아 하나하나 현실로 조각하는 기업이 있다. 국내 최고의 AI 기반 공급망 관리(SCM)1 솔루션 기업인 ‘엠로(Emro)’다. 2000년 구매관리 시스템 기업으로 출발한 엠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서 국내 구매 공급망 관리(SRM)2 소프트웨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오랜 기간 공급망 관리 분야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디지털 기술이 기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강점이다. AI 분석 모델을 접목한 수요·가격 예측으로 기업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디지털 SCM 플랫폼을 구축해 기업이 공급망 위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AI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공급망의 회복탄력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DBR은 김광섭 엠로 DX사업부문장(부사장)을 만나 국내 기업들의 다양한 공급망 관리 혁신 사례들을 직접 들어봤다.

핵심은 최초 공급부터 최종 수요에 이르는 공급망 전역에 걸친 엔드-투-엔드(End-To-End) 가시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김 부사장은 “기업을 둘러싼 공급망 전반을 하나의 디지털 관리 체계 안에 묶어내 순도 높은 정보를 빠르게 생성·공유하고, 이 데이터에 기반해 구성원이 협력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한적 정보를 접하는 소수의 특정 구성원만의 인사이트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것이 연결된 시스템하에서 기업 내 자원을 총동원해 공급망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회복탄력성 향상의 전제 조건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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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기업들의 공급망 관리 방식에 어떤 변화가 있나?

팬데믹 초기만 해도 기업들에 어떤 환상이 있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하면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사전에 위기를 정밀하게 감지해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술 전문가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엄청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정학적 이슈나 팬데믹 같은 상황을 예견할 수 있을까? 최근 일어난 대만 지진, 이로 인한 공급망의 지연 이슈를 사전에 완전히 예측하는 건 가능한 일일까? 쉽지 않다.

그래서 기업들이 주목하는 것이 회복탄력성이다. 어차피 완벽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빠르게 감지해 즉각 대처하고,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문제없이 대응할 수 있는 위기 대응 시스템을 갖추는 쪽으로 흐름이 확고해졌다.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활용 방식도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실제 공급망 관리 시스템은 어떤 형태로 운영되나?


우리 솔루션을 기초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중심이 되는 것은 거대한 글로벌 지도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들은 거점별, 지역별로 물품을 공급하는 고객사, 자신들이 공급을 받는 벤더들이 있다. 미국, 중국, 인도 등 세계 각지에 다양하게 퍼진 고객사와 벤더들의 위치를 지도상에 일목요연하게 표시한다. 공급업체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이 지도에 정보를 표시한다.

이걸 적용한 대표적인 예가 국내 자동차 부품회사 A사다. 과거 인도 뭄바이 대홍수로 부품 공급에 타격을 입은 이후 시스템을 도입해 대응 체계를 고도화했다. 우리가 제공하는 리스크 관리 솔루션의 기본 기능 중 하나가 글로벌 재난재해 정보를 계속 수집하는 것이다. 화산이나 지진, 홍수 등이 발생했는지를 탐지해 영향을 받는 주변 업체를 빠르게 알려준다. 특정 위치에 경고 메시지가 발생하면 주변 업체 리스트가 자동으로 뜨고, 곧바로 해당 업체의 관리 담당자에게 공지가 간다.

해외에서 발생하는 정치·사회적 이슈는 자동으로 정보를 모으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 부분은 해외 주재원이 수집한 정보를 시스템을 통해 빠르게 공유하는 형태로 설계한다. 예를 들어 어떤 현장에서 파업이 발생했다거나, 법적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정보가 있으면 즉각 전사적으로 확산시킨다. 적합한 대처를 빨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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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은 공급망 관리에 어떻게 활용되나?


지금까지는 주로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많이 투입되는 업무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됐다. 대표적인 게 협력업체 견적 분석 시스템이다.

협력업체 분석은 설비구매팀이 가진 대표적인 페인포인트다. 대기업 설비구매팀을 만나보면 모두 똑같은 고민과 어려움을 갖고 있다. 제조 분야의 경우 빈번하게 설비를 도입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협력업체로부터 견적서를 받아 적정 도입 금액을 검토해야 한다. 견적서 자체도 굉장히 복잡하다. 어떤 설비 부품이 들어가고, 공사가 필요한지가 수천 줄에 걸친 내역서로 온다.

구매 담당자들은 이 내역서를 하나하나 분석해야 한다. 특정 부품이 왜 이 금액인지, 실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평균 가격은 얼마인지, 과거 우리가 샀던 가격에 비해 얼마나 비싼지, 대체할 부품은 없는지 등을 검토한다. 이후 적정 금액을 도출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과거에 받은 견적서를 찾아서 열람하고, 시스템이나 온라인 플랫폼을 샅샅이 뒤져보는 작업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한다.

글로벌 소재·부품기업 B사의 경우 설비 구매팀 규모만 20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팀원 수가 많다 보니 사람마다 일을 하는 방식도 다 달랐다. 동일한 물품을 구매해도 각자 결정 기준이 미묘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B사는 이 과정을 AI를 활용해 자동화했다. 기업의 과거 구매 이력이나 표준화한 내역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딥러닝을 통해 AI에 학습시켰다. 일반적인 데이터베이스 검색과 달리 AI 검색은 유사도 분석 모델을 통해 정확도와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약 3000줄짜리 정보를 검색해도 5초 정도면 답이 나온다.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빠르다. 물론 정확도가 100%는 아니지만 사람이 작업을 하더라도 실수는 나온다. 휴먼 에러 가능성까지 포함할 경우 효율성 면에서 상대가 안 된다. 사람이 며칠 걸려 하던 작업이 이젠 10분에서 1시간 이내에 끝난다. 이 시스템은 글로벌 기업인 C사에서도 사용 중이다.


공급망 관리 효율화 측면에서 AI 도입의 효과가 큰 것 같다.

또 하나 예를 들면 이른바 ‘품목 마스터 데이터’ 품질 관리다. 기업의 구매 파트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 분야다. 보통 기업들은 다양한 원자재를 구매하면서 마스터 데이터라는 것을 운용한다. 구매하는 품목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통합해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데이터 입력은 개별 품목에 대한 코드를 생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품목별로 구매 이력을 관리·분석해 추후 의미 있는 데이터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코드 부여의 일관성이다. 담당자나 제품이 조금씩 바뀌면서 동일하거나 비슷한 품목이 다른 코드로 중복 생성되는 이슈가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도 마찬가지다. 품목을 생성하는 주체가 보통 현장의 유관 부서 담당자들이다. 이들은 사실 코드 부여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당장 내가 필요한 품목을 조달하는 게 중요하다. 승인하는 입장에서도 당장 급하다는데 코드 부여를 하나하나 따지기 어렵다. 교정 작업을 시도하더라도 수년간 쌓인 더미 데이터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다 그냥 승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은 보통 주기적으로 컨설턴트를 불러 클렌징이라는 정비 작업을 거친다. 하지만 한 번 깨끗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도 3~4년 뒤면 또 망가지고 더러워진다. 이걸 반복하는 패턴이 국내 기업들의 아주 일반적인 모습이다.

가장 최근 이 문제를 해소한 사례가 바로 글로벌 제철기업 D사다. 일반적인 데이터 검색과 다르게 AI는 ‘유사도가 97%까지 비슷한 게 있는데 한 번 체크해보라’는 식의 결괏값을 내놓는다. 100% 중복이면 등록을 아예 원천 차단한다. 현재 마스터 데이터상의 품목 코드 가운데 중복된 물품이 얼마나 있는지, 유사도가 일정 수준 이상인 게 얼마나 있는지를 그룹별로 분류하는 기능도 있다. 이걸 기초로 관리 담당자가 날마다 중복도를 관리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 E그룹의 통합 SRM 시스템도 AI를 통해 관리한다. E그룹의 전 계열사가 사용하는 시스템이라 규모 면에서 다른 기업과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 품목 코드를 확인해 보니 300만 개가 넘었다. 보통 제조업체들이 쓰는 코드 개수가 10만 개에서 20만 개 내외인데 거의 15배에서 30배 정도나 많은 수치였다. AI를 통해 분석해 보니 엄청나게 많은 중복 코드가 잡혔다. 2년가량 운영하면서 중복 코드를 크게 줄였고, 이에 관리 효율성도 크게 높아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AI를 예측의 도구로 쓰는 것을 기대한다. 예측 영역에서 활용하고 있는 사례는 없나?

가격 예측에 적용했다. 사실 미래 예측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영역이고, 그중에서도 가격은 매우 민감한 분야다. 하지만 미래의 흐름을 예측하는 건 공급망 관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래서 AI를 통해 정확도를 높인 분석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람의 경영적 판단을 지원하려는 시도를 했다. 미래를 알려줄 순 없지만 설명 가능한 미래 전망을 AI로 도출하는 것이다.

국내 정유사 F사 사례가 아마 국내외를 통틀어 AI로 처음 가격 예측을 한 사례일 것이다. 이들이 원한 건 자재 가격의 예측이었다. 팬데믹과 공급망 차질 문제로 원자재 가격이 요동치는 문제가 나타났고, 그래서 가격 예측을 통한 리스크 관리를 시도한 것이다.

방식은 이렇다. 주요 구매 품목 가운데 구매 기획이나 구매관리팀에서 담당자들이 내가 예측하려는 품목을 선정하고, 이 품목과 연관성이 있는 외부 요인을 분석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랜트 장치 가운데 파이프를 구매할 때 이 파이프의 공급에 영향을 주는 외부 요인이 무엇일까를 따져본다. 철로 만든 파이프니까 포스코 등 제철 기업에서 철광석을 수입하는 유통 과정부터 생산자 물가지수 등의 요소를 반영할 수 있다. 철광석 외에도 여러 가지 부자재를 내가 아는 선에서 전부 선택할 수 있다. 이후 앞으로의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지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다.

시뮬레이션 과정에선 과거의 외부 요인 변동 추세와 우리가 실제로 구매를 했던 가격의 추세를 분석해서 상관관계를 도출한다. 이걸 기초로 어떤 요인이 자재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는지를 찾고, 유의미한 변수를 적용해 가격을 예측하게 된다. 이 작업까지 끝나면 이후로는 알아서 AI가 가격을 예측해준다. 특히 F사는 과거 10년간의 구매 이력 정보가 잘 쌓여 있는 회사였다. 순도 높은 자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좀 더 개연성 있는 미래 예측이 가능했다.

예측은 크게 장·단기로 이뤄진다. 단기는 다음 달 가격 예측이다. 비교적 신뢰성이 있다. 현재 시점의 정보를 활용해 분석하지만 공급망의 특성상 당장 다음 달 가격에 영향을 주는 정보는 몇 달 전의 정보다. 그래서 단기 가격 예측의 경우는 나름대로 유효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측한 가격을 기초로 구매 입찰을 할 때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폭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전체 구매 시스템상에서 벤더들이 제출한 입찰 금액 대비 우리가 예측한 가격의 갭이 큰 것을 자동으로 찾아내 관련 이슈를 확인할 수도 있다. 두 달 전부터 철광석 가격이 급락했는데 특정 업체가 여전히 가격을 높게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관련해서 꼭 알아야 할 이슈가 발생했는지, 단순히 가격을 낮게 협상할 수 있는 부분인지를 사람이 결정하면 된다.


장기 예측은 어떤가?

장기 예측은 미래 12개월을 예측하는 것이다. 사실 1년 단위는 예측을 위한 충분한 기초 정보가 주어지기 어렵다. 1년 새 무슨 사건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다. 고객사와 미팅할 때도 장기 예측 결과에 대해 정확한 예측 보장은 어렵다고 사전에 양해를 구한다.

그럼에도 정확도를 높이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다. 첫째는 외부 데이터 예측이다. 예를 들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글로벌 기관에서 나오는 주요 원자재 정보가 있다. 단순 통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상태론 사람이 엑셀을 돌려서 하는 기존 예측 방식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여기에 딥러닝을 적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 나름대로 시계열 예측 방법을 설계했는데 콘셉트는 이렇다. 시계열상 여러 가지 패턴으로 움직인 과거의 원자재 가격 정보를 학습하고 분석하는 거다. 원자재 가격은 다양한 변수의 결과물이다. 이 결과의 변화에서 변수와의 상관관계를 딥러닝으로 학습하고 분석해서 다시 미래 가격 변화를 예측한다. AI가 스스로 학습해서 분석하는 것이라 사실 우리도 정확히 어떤 공식에 의해 장기 예측값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 결과물을 보면 실제 흐름을 쫓아가는 움직임을 보인다. 기존 예측이 단순한 추세선으로 그려진다면 AI의 예측은 수많은 진폭을 가진 추세선으로 나온다. 장기적인 가격 변화를 예측할 또 하나의 참고 자료로 살펴볼 수 있다. 한계는 분명하지만 앞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전쟁이나 팬데믹 같은 사건의 영향도 반영할 수 있다.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 자체를 예측하진 못해도 발생했을 때 가격에 주는 임팩트는 분석할 수 있다. 사건에 대한 민감도 분석을 해서 미래 어느 시점에 실제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상황이 어느 정도 강도로, 얼마나 지속되는지에 따라 시나리오를 구성해 ‘과거 패턴과 민감도를 따져볼 때 가격에 이만큼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라고 예측할 수 있다.


수요 부분의 예측도 공급망 안정성을 위해 중요한 부분일 텐데.

업계에선 현재 많은 기업이 수요 예측에 오토ML(AutoML)을 활용한다. 오토ML은 자동화한 머신러닝 모델이다. 일반적으로 예측과 관련해선 통계 기반 모델링부터 시작해 딥러닝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한 모델이 존재한다. 그런데 수많은 방법 가운데 어떤 게 내가 알고 싶은 제품에 가장 적합한지는 모른다. 그래서 전부 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가지 예측 모델이 있으면 데이터와 특이 사항을 모두 동일하게 준 다음 원하는 조건을 주고 분석 경쟁을 시킨다. 똑같은 자료로 학습시킨 다음 과거 시점의 자료를 가지고 문제를 내서 현재 상황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평가한다. 여기서 가장 정확한 모델을 몇 개 골라내 미래 예측에 활용한다. 복수의 우수 모델을 결합해 예측을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오토ML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과거 정확도가 높았다고 해서 앞으로의 예측도 정확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가 없다. 적용되는 변수의 숫자도 계속 달라지고, 앞으로 중요하게 작용할 변수가 달라질 수도 있다.

약간의 설명 가능성, 개연성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디컴포지션(decomposition) 모델이라는 방법을 적용했다. 상품 판매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컴포넌트라고 보고, 이걸 디컴포즈(해체)해서 요소별 영향력을 본다. 이 결과를 학습해서 최종적으로 이 상품의 수요를 주간별로 예측한다. 이런 모델링을 통해 단순한 통계 자료를 수식으로 돌려서 뽑아내는 예측 결과보다 훨씬 입체적인 분석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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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식품 대기업 G사에 이 방식을 적용했다. 먼저 G사가 판매하는 식품의 수요가 무엇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지를 찾는다. 상품의 수요가 계절적 요인에 크게 좌우한다면 계절 요소를 집중 분석한다. 어떤 계절에 수요가 급증하는지, 혹은 특정한 달이나 김장철 등에 맞물려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인지 여러 가지 특성을 탐색한다. 프로모션 효과가 어느 정도 있었는지 등도 함께 따져 모델링에 적용한다. 추석이나 구정 같은 변동성이 워낙 심한 시기는 예측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이럴 때를 제외하고는 안정적으로 수요 예측을 하고 있다.

물론 예측 가격의 최종 컨펌, 여기에 기초한 의사결정은 사람이 한다. 전문 MD나 SCM팀에 AI 모델링을 통해 좀 더 고도화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주는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H사도 과거엔 담당자 개개인의 ‘감’에 따라 발주량을 결정했다. 4주간의 이동평균을 보고 그간 업무를 해오면서 생긴 감각과 영업 등에서 들어오는 각종 정보를 기초로 수요를 예측했다. 하지만 이제는 판단에 AI 정보가 개입한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AI가 4000여 개 품목의 수요를 예측한 뒤 제안한 기본 발주량이 모니터에 뜬다. 담당자는 각 예측 수량을 검토하고 최종 컨펌을 한다. 더 적극적인 활용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다양한 프로모션 시나리오를 분석해 판매 목표를 잡고, 여기에 맞춰 발주와 생산을 맞추는 형태로 공급망 효율화를 달성할 수 있다.

중고차 거래업체인 H사의 경우 수요 예측이 매우 중요한 회사였다. 중고차를 직접 매입해서 재고로 쌓은 다음 판매하고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장엔 차종과 연식별로 매우 다양한 차량이 있는데 이 수천 개의 차량 중 어떤 게 수요가 높은지를 알아야 딜러들이 효율적으로 차를 매입할 수 있다. 만약 미리 예측해서 매입해 재고로 만들었는데 수요가 붙지 않아 악성 재고가 되면 수익성 악화로 직결된다.

그래서 H사의 이슈는 두 가지로 좁혀졌다. 첫째는 수요 예측이다. 주·월별로 어떤 차가 많이 팔릴 것인지다. 과거 판매 패턴, 미국의 중고차 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맨하임 중고차 판매 지수’, 웹페이지 내 사용자들의 검색·클릭 패턴 등의 요소를 반영한다. 둘째는 가격 조정이다. 첫 가격 책정 이후 차가 팔리지 않으면 빠르게 조정해 판매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 차를 어떤 가격에 내놓으면 어느 기간 내에, 어느 정도 확률로 팔릴 것인가, 그리고 지금 재고 상황에서 수익률이 어떻게 변동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다이내믹 옵티마이저’라는 AI가 답을 내려준다. ‘차량의 상태, 과거 데이터를 고려할 때 2주 내에 이 차를 90% 확률로 팔고 싶으면 적정한 가격은 500만 원이다’라는 식으로 적정 가격을 산출한다. 반대로 1000만 원으로 3주 안에 팔고 싶은데 팔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를 계산할 수도 있다. 이 정보를 가지고 재고관리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가격을 낮춰가면서 원하는 수준의 판매 확률을 맞출 수도 있다. 각 지점의 딜러들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돌려보면서 원하는 수익률과 재고 수준을 맞춰갈 수 있다.


요체는 공급망 전반에 대한 관리를 디지털 기술로 묶는 것인가.

기업을 둘러싼 공급망 전반을 하나의 디지털 관리 체계 안에 묶어내면 순도 높은 정보를 빠르게 생성·공유할 수 있다. 이 데이터에 기반해 구성원이 협력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엠로는 공급망 관리 회사지 수요 예측 전문 회사가 아니다. 수요나 가격은 사실 공급망의 끝단에 있는 이야기다. 굳이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 그리는 그림이 있다. 공급망 관리 전반의 자동화다. 단순히 자동화라고 하면 기계에 모든 걸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원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자동화를 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여기서 공급망 전반을 조망하는 게 중요해진다. 공급망 중간 어느 곳에서 단순 조달이나 공급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단발성 대응을 잘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차원을 떠나 근본적인 의미에서 회복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 역량을 갖추려면 결국 공급망의 시발점에서 종착점 전체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공급망을 하나로 묶는 것이고, 여기서 나온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이런 형태다. 수요 예측과 가격 예측, 재고관리에 기반해서 원자재 발주와 생산이 돌아가고, 공급업체의 리드타임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언제 발주를 내고 물건이 들어오게끔 하면 될지를 결정한다. 예컨대 핵심 자재의 재고는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비즈니스에 차질을 빚지 않을 정도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수치로 확인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 공급망 관리를 자동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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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처음으로 발주 자동화를 시도해볼 기회가 생겼다. 최근 화학 분야 대기업 I사가 플랜트 정비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소모성 자재(MRO)의 재고관리라는 고민을 안고 찾아왔다. 당장 정비에 필요한 자재가 없으면 안 되니 지금까지는 잔뜩 사서 창고에 채워놓고 꺼내 쓰는 식으로 운영해왔다고 했다. 당연히 필요 이상의 재고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데 이게 모두 비용이다. 특히 대량 구매 타이밍에 하필 자잿값이 오르면 비용이 크게 증가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활용할 계획이다. 안전 재고를 어느 정도로 가져가야 설비 유지에 차질이 없는지, 재고가 어느 수준 이하로 떨어졌을 때가 리오더 포인트인지를 데이터 기반으로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 계산에 기반해 사람 개입 없이 협력업체에 부품 발주 오더까지 내리는 이른바 ‘터치리스 오토-PO(Touchless Auto-Purchase Order)’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아직 일부 품목에 한한 시도지만 궁극적으로는 이게 모든 기업이 가져가고 싶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몇 달 전 만난 해외 한 정유기업 역시 이런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자재 구매를 너무 많이 다루자니 힘이 들어 터치리스 오토-PO의 비중을 늘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예기치 않은 공급망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은 어떻게 향상할 수 있을까?

앞으로 맞춰나갈,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마지막 퍼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대규모언어모델(LLM)에 기반한 AI의 추론 역량이다.

지금도 많은 기업 담당자가 리서치를 한다. 매일 아침 글로벌 뉴스를 검색해 정보를 수집하고 리포트를 만든다. 원자재 이슈든 지정학적 이슈든 우리에게 임팩트를 줄 만한 이슈를 계속 탐색해서 정보를 모으고,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만들어 낸다.

이걸 자동화하는 솔루션이 다음 스텝이다. 지금도 특정한 키워드와 관심사를 미리 입력하고 자동으로 검색하는 솔루션은 있다. 주기적으로 검색엔진을 작동시켜서 결과물을 요약해서 모아준다. 그런데 최근 생성형 AI의 추론 역량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AI에 팩트를 주고 추론을 시켜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발트 조달 계획을 수립한다고 해보자. 특정 기간 동안 수집한 코발트 관련 이벤트 정보를 주고 앞으로의 가격과 수급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 예측이 맞았는지를 추후 확인해 오차가 어디서 발생했고, 어떤 요인이 작용했는지를 피드백한다. 이를 통해 더 정확한 예측을 하도록 학습시킬 수 있다.

이 시점에는 기초가 되는 데이터베이스가 무엇인지도 중요해진다. 온라인상에 공개된 일반 데이터가 아니라 자사가 축적한 고급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AI를 세부 조정할 수 있다. 당연히 관련 업력이 길수록, 노하우가 많을수록, 오염되지 않은 데이터와 표준화한 데이터를 많이 축적한 기업일수록 좋은 결괏값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대규모 AI 모델을 운용할 수 있는 정도의 인프라와 인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라면 그야말로 공급망 관리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레벨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공급망 자동화 상황에서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는 더 치명적인 문제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래서 당장 기업들이 도입하기 시작한 게 바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다. 과거에도 다양한 형태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은 있었지만 최근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갖는 차별화한 특징이 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전사적인 리스크 관련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모으고 발생한 상황에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찾아 자원을 빠르게 배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이슈를 중심으로 담당자가 모두 달라붙어 디지털 협업 체계를 통해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간다. 평소엔 데이터 기반 AI 자동화로 공급망을 운용하고 불가항력에 가까운 문제가 발생하면 워룸을 통해 즉각적이고 전사적인 협업 체계를 발동하는 구조다.

결국 예상 범위를 뛰어넘는 공급망 중단 상황은 사람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다만 사람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정보와 소통을 기술이 제공할 뿐이다.


그 밖에 기업들이 공급망 회복탄력성을 위해 집중하는 요소가 있다면?

공급망 리스크 관리는 크게 두 가지 축이 중요하다. 하나는 리스크를 빠르게 감지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및 실행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이 공급업체 다변화다. 이 두 영역을 통틀어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게 이른바 ‘N차 벤더’ 관리다. 기업들의 직접적인 거래 당사자는 1차 벤더다. 그런데 공급망 위기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발생하는 곳은 대개 1차 벤더가 아니다. 그 뒤에 숨은 2차, 3차, N차 벤더 중 어느 한 곳에서 사고가 난다. 이면의 N차 벤더에 대한 리스크는 기업들이 알기 어렵다. 이 리스크를 관리하고 싶은 게 기업들의 가장 큰 숙제이자 고민이다.

흔히 규모가 있는 기업들이면 협력사 정보를 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차 벤더들에 ‘당신들이 거느린 하위 업체 정보와 상태를 달라’고 요구하기가 어렵다. 협력사 정보나 구매 노하우를 노출하라는 압박으로 여겨질 수 있어서다. 1차 벤더들도 구매 기업과 마찬가지로 N차 벤더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기가 어렵다. 굵직한 2차 벤더들은 잘 알더라도 영세한 3차 벤더, 4차 벤더가 어디에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모른다.

물론 국내외 벤더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업체들이 있다. 다들 1차적으론 이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국내 기업이라면 신용평가사 등에도 정보가 있다. 하지만 이 정보만으로 리스크 관리를 하는 건 한계가 있다. 결국 사후 정보이기 때문이다. 벤더 풀을 확보하는 차원으론 의미가 있지만 사전에 위기를 감지하는 데는 활용하기 어렵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거의 10년 넘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숙제를 못 풀었다. 팬데믹 때도 이런 부분에 대한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공급망 이슈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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