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Interview: 최원석 필라멘트앤코 대표

“1만 명 방문보다 100명이 오래 머물게”
판촉 아닌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라

이한규,최호진 | 387호 (2024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국내 팝업스토어 열풍이 거세지면서 현장에서 방문객 수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만 늘리려는 ‘판촉형 팝업스토어’가 만연해졌다. 고객과의 진정한 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경품을 제공해 일시적으로 고객들의 환심을 사기보다 브랜드 인식을 심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해 팝업스토어를 설계해야 한다. 또한 팝업스토어의 성과를 측정할 때도 방문자 수를 핵심 지표로 삼지 않고 브랜드에 대한 공감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체류 시간 및 구매 전환율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20240213_105735
서울 성수동, 연남동, 가로수길 등 핫플레이스 상권에서 팝업스토어 열풍이 거세다. 인터넷에서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팝업 창처럼 일정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팝업스토어가 이제 오프라인 마케팅의 핵심 축이 됐다. 문제는 소비자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무수한 팝업스토어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팝업스토어 밀집 상권으로 불리는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의 경우 월평균 100개 이상의 팝업스토어가 열린다. 성공 사례가 하나둘씩 늘며 거리 자체가 부흥하자 지난해 기준 성수동의 일평균 팝업스토어 대관료는 평당 20만 원대로 치솟았다. 평당 10만 원이던 2019년보다 2배 오른 수치다.

2014년 브랜드 컨설팅 기업 필라멘트앤코를 창업한 후 팝업스토어 기획 서비스 플랫폼 ‘프로젝트 렌트(이하 렌트)’를 선보인 최원석 대표는 “국내 팝업스토어 시장이 양적으로만 성장했을 뿐 질적으론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최 대표는 성수동의 가치를 빠르게 알아보고 뛰어들어 초기 팝업스토어를 유행시킨 기획자로 알려져 있다. LG전자에서 모바일 디자인을, 현대카드에서 브랜드 관련 디자인 기획을 담당했던 그는 2018년 성수동의 유휴 공간을 임차해 팝업스토어 전용 공간을 오픈했다. 이를 기반으로 공간 임대부터 팝업스토어 기획, 제작, 운영, 마케팅까지 전담하는 ‘토털 서비스 솔루션’ 사업 모델을 완성했다. 현재 렌트가 운영하는 팝업스토어 전용 공간은 7호점으로 늘었고 현대자동차, 롯데월드, 매일유업 등과 진행한 렌트의 누적 팝업스토어 운영 횟수는 지난해 말 기준 250회를 기록했다.

팝업스토어 열풍의 최전선에 있는 최 대표는 요즘 국내 팝업스토어 시장을 두고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판촉’에 목적을 둔 곳이 많아졌다”고 꼬집는다. “브랜드 메시지를 알리겠다는 목표 의식 없이 현장에서 방문객 수 또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해 경품을 퍼주는 무의미한 판촉형 팝업이 늘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판촉형 팝업에서 성과 지표로 삼는 방문자 수가 사실상 허수가 많다고 강조한다. 파격적인 경품 덕분에 방문객이 몰린다고 해도 대다수가 브랜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회성 고객에 머무르는 탓이다. 브랜드 메시지에 대한 방문객들의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팝업스토어를 설계하고 그 성과는 어떻게 측정, 분석해야 할까? 최 대표를 만나 마케터가 알아야 할 올바른 팝업스토어 기획 및 운영 방식에 대해 물었다.


DBR mini box I: ‘프로젝트 렌트’는

소규모 브랜드에 토털 마케팅 서비스 제공



프로젝트 렌트(이하 렌트)는 최원석 필라맨트앤코 대표가 소규모 브랜드를 컨설팅할 때마다 느꼈던 아쉬움에서 론칭한 플랫폼이다. 최 대표는 소규모 브랜드의 가치를 오프라인 채널에서 보여줄 기회가 부족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창업 초기 단계에 있던 탓에 장기간 비용을 부담하며 상설 매장을 운영할 여력이 없었고 팝업스토어를 열기에도 공간 탐색, 기획, 제작을 담당할 내부 인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해결책을 고민하던 중 그는 성수동 거리 곳곳의 공실에 주목했다. 소규모 브랜드에 서울의 유휴 공간을 임대하고 팝업스토어 기획 및 제작을 대행하는 사업 모델을 구상한 것이다. 그렇게 2018년 팝업스토어 기획 및 서비스 플랫폼 렌트를 론칭한 후 서울 성수동의 공실을 장기간 임차해 팝업스토어 전용 공간을 개장했다. 올해 1월 기준 렌트는 서울 성수동과 역삼동에서 총 7개의 팝업스토어 전용 공간을 운영 중이다. 1층 규모의 13.2∼66㎡(약 4∼20평)대부터 2층 규모의 445.5㎡(약 135평)대까지 고객사 요청에 따라 알맞은 규모의 시설을 제공한다.

단순히 공간 대여만 하는 건 아니다. 팝업스토어를 여는 데 수반되는 행정 절차 및 팝업 기획을 담당할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브랜드에 토털 서비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 대표는 렌트의 사업 모델을 RaaS(Retail As A Service) 스타트업으로 정의한다. RaaS란 공간, 물류망, 고객 정보, 기술 등의 자산을 활용해 다른 소매 및 제조업체에 인프라 향상을 위한 B2B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이다. 매장 임대 방식과 유사해 보이지만 직원 관리, 판매, 고객 응대, 데이터 수집 등 모든 서비스와 운영을 지원하기 때문에 고객사에 주어지는 혜택이 일반 매장 대비 크다. 신기술로 매장 내 구매 행동을 데이터화한 후 고객사에 공유하기도 한다. 판매보다 만족스런 고객 경험에 집중하기 때문에 혁신 상품과 서비스, 새로운 체험 등을 공간에 더할 수 있다는 점이 RaaS의 장점이다.

20240213_105749


커뮤니케이션형과 판촉형 팝업스토어의 구체적인 차이점이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형 팝업스토어에는 브랜드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제품, 전시물, 체험 부스 등이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다. 팝업스토어 내부의 모든 콘텐츠가 ‘일관된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이다. 즉 고객과 브랜드의 관계 개선, 고객의 인식이나 인지 변화를 위해 설계된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판촉형 팝업스토어의 경우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는 내부 콘텐츠가 없다. 방문객 수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늘리기 위해 제품만 화려하게 전시하거나 형식적인 이벤트로 갖가지 경품을 증정한다.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해 단기간에 많은 방문객을 모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체리피커1 일 확률이 높다. 이런 판촉형 팝업스토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추구하는 브랜드인지 정확히 이해한 소비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경우가 많다.

고객과의 소통 구조가 D2C(Direct to Consumer)로 전환된 현시점에서 판촉형 팝업스토어는 무의미하다. 이는 소통 채널로서 팝업스토어의 가치를 절반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거에는 주요 미디어에 브랜드 소식을 알려야만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다. 미디어의 정보 파급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많은 소비자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정도로 개인이 바이럴 파워를 갖춘 시대가 됐다. 미디어의 도움에서 벗어나 고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D2C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첫 번째 창구로 온라인 채널이 주목받았지만 현재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제한된 화면에 수많은 브랜드 광고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고객의 시선을 3초 이상 사로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커뮤니케이션형 팝업스토어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브랜드 메시지를 공유하는 갖가지 콘텐츠가 결합된 공간이라면 고객을 몰입시킬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국내 기업은 아직도 팝업스토어를 판촉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다. 미디어 중심의 소통 방식에 의존해온 탓에 D2C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팝업스토어를 기획해야 할 필요성을 모르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현장에서 경품 및 할인 쿠폰을 제공받는 것에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혜택으로 생각할 뿐이다. 1만 명이 방문해도 대부분은 팝업스토어를 나오는 즉시 경품을 받기 위해 올렸던 SNS 게시물을 삭제하고 더 이상 해당 브랜드에 관심 갖지 않는 일회성 손님이 되고 만다.


브랜드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알린 팝업스토어 사례가 궁금하다.

2015년 6월 디올(Dior)이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한 ‘에스프리 디올(Esprit Dior)’ 전시회를 꼽을 수 있다. 전시회지만 일정 기간 동안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했다는 점에서 팝업스토어와 결이 같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국내 명품 시장에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디올의 상징성을 강화시키는 계기 중 하나였다. 기존 명품 브랜드의 오프라인 행사와 달리 디올은 시즌용 신제품을 노출하지 않고 브랜드의 역사와 과거 전성기 모습을 보여주는 데 방점을 찍었다. 디올 창립자인 크리스찬 디올의 천재성, 디올 특유의 18세기 스타일, 디올이 동시대 거장들과 함께 만들어 온 작품 등으로 전시장을 꾸몄다. 특히 크리스찬 디올의 일대기가 정리된 안내판과 그가 과거에 디자인한 오트 쿠튀르2 스타일의 드레스, 액세서리, 향수 등이 인기였다. ‘유서 깊은 명품 브랜드’라는 메시지를 디올만의 역사적인 작품들로 세련되게 알렸다는 점에서 일종의 성공한 팝업스토어라고 볼 수 있다.

20240213_105800



대부분의 기업은 신제품을 알리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연다. 에스프리 디올과 달리 신제품 위주로 팝업스토어를 꾸밀 수밖에 없지 않나?

제품을 보여주지 않고도 메시지를 알릴 수 있다. 2021년 2월 렌트가 성수동에서 공개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의 팝업스토어 ‘스튜디오 I’를 예로 들 수 있다. 아이오닉 5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전기차’라는 포지셔닝을 원했다. 당시 현대자동차 측에 “매장에서 아이오닉 5 차량과 현대차 로고를 아예 빼버리자”고 제안했다. 대중이 예상하기 쉬운 자동차 쇼룸처럼 기획하기보다는 아이오닉 5가 지향하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팝업스토어를 꾸몄다. 내부에 아이오닉 5의 블루 포인트 컬러를 더하고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지원하는 다양한 아이템과 체험 부스로 공간을 채웠다. 버려진 신문지와 일회용 마스크를 소재로 만든 인센스 홀더, 재생지로 만든 노트북 거치대, 아이오닉 컬러를 더한 업사이클링 가방 등을 전시했고 플라스틱 수거함과 세제 및 샴푸 리필 스테이션도 운영했다.

20240213_105809


현장 직원들은 방문객들에게 아이오닉 로고가 각인된 안내용 리플렛을 보며 팝업을 둘러보도록 권했다. 내부 콘텐츠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는 방법 중에 아이오닉 5도 있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하기 위한 시도였다. 실제 전시 제품을 보며 리플렛 속 아이오닉의 뜻을 묻는 고객이 많았고 일평균 방문자 수는 5000명을 넘었다. 제품 홍보용 팝업스토어를 기획할 땐 ‘상품 전시’로만 사고를 좁혀선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 제품을 의도적으로 감추는 등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 팝업스토어 내부에 기획한 각각의 코너가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면 방문객은 일관된 톤앤드매너를 갖춘 팝업스토어로 여긴다. 그 팝업스토어의 존재 이유까지 쉽게 이해하는 셈이다. 이런 경우 소비자의 인식 속에서 팝업스토어 내 일부 코너가 ‘B’에 준하는 점수를 받아도 공간 전체의 점수는 ‘A’를 받을 수 있다.


확고한 메시지와 이를 전하는 장치들이 충분하면 대형 팝업스토어가 아니어도 무방한가?

공간 규모와 브랜드 인지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유명 브랜드의 블록버스터급 팝업스토어라면 쉽게 이목을 끌겠지만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내부 콘텐츠가 불분명하면 오히려 더 큰 반감을 살 수 있다. 일반적으로 최초 방문객들의 재방문까지 유도하려면 팝업스토어의 평균 최소 운영 기간은 2주, 대규모 공간일 땐 4주 정도는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매장 규모, 즉 하드웨어로 주목받을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주다. 소프트웨어로 입소문 나지 않으면 팝업스토어의 인기는 급격히 식는다.

팝업스토어의 최종 목표는 ‘Valuable Perception(가치 있다는 인식)’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단순히 주목받는 것을 넘어 소비자가 이 공간과 메시지를 가치 있다고 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신생 브랜드의 소규모 공간일지라도 한 가지 메시지에 맞춰 밀도 있게 구성하면 이런 인식을 형성할 수 있다. 2018년 5월 렌트가 성수동에서 운영한 자체 브랜드 팝업스토어 평양슈퍼마케트를 예로 들 수 있다. ‘평양에서 잡화점을 낸다면 어떨까?’라는 메시지를 재밌게 풀어낸 공간으로 탈북민들이 만든 수제 디저트 딱친구 캔디, 겹과자, 손가락과자 등을 판매했다. 북한의 포스터를 재치 있게 재해석한 이미지와 영국 출판사 파이돈이 북한의 모습을 담아낸 그래픽 서적 ‘메이드 인 조선’ 등을 배치해 공간의 재미도 높였다. 인지도가 전혀 없던 브랜드의 팝업스토어였고 당시엔 성수동 상권이 부흥하기 전이었음에도 촬영 및 공간 섭외 문의가 빗발칠 정도로 성행했다.

2022년 10월 성수동에서 매일유업의 식물성 음료인 ‘어메이징 오트’의 팝업스토어 ‘어메이징 오트 카페’를 운영했을 때도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식물성 음료도 맛있고 지속가능한 식단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 어메이징 오트를 활용한 디저트 및 쿠킹 클래스를 선보였다. 카페 중앙에는 오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귀리밭을 조성했다. 그런데 오픈 후 2주 동안 일 방문자 수가 처참했다. 기대치보다 현저히 낮은 200명대까지 떨어졌다. 고민하던 무렵 3주 차부터 일 방문자 수가 700명대로 회복했고 마지막 4주 차엔 1000명을 넘어섰다. 조사 결과, 1∼2주 차 방문객들의 긍정적인 후기가 공간이 입소문 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성수동에서 유명 F&B 기업들의 대형 팝업스토어가 열렸음에도 3∼4주 차 주간 검색량 기준 어메이징 오트 카페가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팝업스토어에 녹인 일관된 메시지의 힘을 보여준 사례였다.


팝업스토어에 표현하기 적합한 메시지를 찾는 방법은?

어떤 고객들에게 이야기할지, 그 이야기를 전하는 데 무슨 걸림돌이 있는지 생각해보길 권한다. 재밌는 사례가 지난해 5월 성수동에서 전개한 코스메틱 브랜드 ‘비욘드’의 팝업스토어다. 당시 비욘드는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등 적극적으로 친환경 행보를 이어왔음에도 중년층이나 가족이 사용하는 브랜드로 20대에게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가 많아진 상황에서 ‘비욘드는 친환경’이란 단순한 메시지로 팝업스토어를 기획하는 건 위험했다. 친환경이라는 단어 자체가 20대에겐 진부하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어서다.

메시지를 구체화하기 위해 20대가 생각하는 친환경 화장품의 특징을 조사했다. 그 결과, 30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30대는 주로 성분에 관심을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피부 관리가 시급하지 않은 20대의 경우 성분에 무관심했다. 화장품의 기능이 아닌 친환경 패키지에 담긴 브랜드의 진심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메시지를 구상한 이유다. 비욘드가 꾸준히 종이 리필팩 상품을 판매한 점을 감안해 ‘화장품을 아름답게 하는 데 종이만으로 충분하다(Less Plastic Paper is Enough)’라는 메시지를 확정했다. 비욘드와 종이 리필팩 간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해 팝업스토어 진열대, 가구, 선반, 천장 장식물 등을 모두 종이로 제작했다. 어떤 브랜드든 관계없이 화장품 플라스틱 공병을 넣으면 무게에 따라 리필제품을 증정하는 자판기도 비치했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렌트가 기획한 팝업스토어 중 최초로 다음 시즌 재방문 희망률 100%(설문 응답자 70여 명)를 달성했다.


팝업스토어의 특성상 기업이 메시지를 전하는 대상이 MZ세대로 국한되는 것은 아닌가.

무조건 MZ세대를 타기팅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젊은 층과 친하지 않은 브랜드가 오프라인에서만큼은 MZ세대를 공략하겠다며 대규모로 투자하는 건 무리수다. 기존 타깃이 공감할 만한 메시지를 정하고 그 메시지와 어울리는 팝업스토어를 구성하면 어차피 20대가 가장 먼저 방문한다. 다른 연령대보다 상대적으로 여가 시간이 많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수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즐길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공간은 MZ세대의 레이더망에 걸릴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30∼40대를 겨냥한 팝업스토어도 20대가 SNS에 재밌는 공간이라고 후기를 올려야 30∼40대에 알려지는 경향이 있다.

20240213_105819


팝업스토어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데이터를 얻어야 하나?

정량적 지표와 정성적 지표로 구분할 수 있다. 정량적 지표는 소비자들을 얼마나 주목시키고 몰입시켰는지를 수치화한 값이다. 방문객 수, 체류 시간, 매출 전환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중 방문객 수 자체만은 핵심 지표가 될 수 없다. 방문객 수가 많았어도 체류 시간과 매출 전환율이 저조하면 공간을 잘못 기획했다고 볼 수 있다. 렌트는 팝업스토어 출입문 쪽에 AI 카메라를 설치해 방문객 수와 체류 시간 등을 측정한다. 카메라가 매장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얼굴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별과 대략적인 연령대를 자동 분류하기도 한다. 방문객 수의 경우 오차율을 줄이기 위해 현장 직원들의 수기 측정도 병행하고 있다. 팝업스토어에 대한 고객 만족도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표는 구매 전환율이다. 가볍게 둘러볼 때보다 구매할 때 브랜드를 평가하는 기준이 훨씬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무분별한 판촉형 이벤트를 전개하지 않았음에도 구매 전환율이 높다는 건 곧 방문객들이 팝업스토어 내부 콘텐츠에 만족했다는 의미다.

정성적 지표는 팝업스토어의 메시지가 잘 전달됐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다. 장비를 활용해 자체 측정하는 정량적 지표와 달리 정성적 지표는 설문조사로 확보해야 한다. 렌트가 설문조사에 포함하는 필수 문항은 다음과 같다. △ A 브랜드가 팝업스토어의 메시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 이번 경험을 통해 A 브랜드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나? △ 지인들에게 해당 공간을 입소문 내고 싶은가? △ 다른 팝업스토어에 비해 색다른 점(유니크 포인트)이 많았나?

20240213_105828


평균적으로 유니크 포인트가 많다고 응답한 방문객일수록 입소문을 낼 의향이 높은 편이다. 여기서 유니크 포인트는 포토존이 아닌 브랜드 메시지를 경험할 수 있는 코너다. 흔히 팝업스토어라고 하면 인스타그래머블한 포토존이 여러 군데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지양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대놓고 꾸며진 포토존보다 브랜드 메시지가 잘 녹아든 공간에서 더 자주 사진을 찍는다. 후기를 올릴 때 공간이 좋았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서다. 대중이 팝업스토어에서 원하는 건 맥락 없이 예쁜 배경이 아닌 공유하기 좋은 이야기다. 어메이징 오트 카페가 적절한 예다. ‘식물성 음료도 맛있고 지속가능한 식단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에 맞춰 다양한 비건 디저트 코너를 운영했는데 이곳이 하나의 포토존처럼 활용됐다. 팝업스토어의 메시지를 가장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코너였기 때문이다. 테이블마다 비치한 귀리 작물을 소품 삼아 비건 디저트 인증 사진을 찍는 방문객도 많았다.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는 후속 팝업스토어를 기획할 때 유용한 자료가 된다. 롯데웰푸드의 팝업스토어 ‘가나초콜릿하우스’가 대표적인 예다. 가나초콜릿하우스에서는 주로 피곤하고 당 떨어질 때 사 먹는 간식처럼 인식되던 가나초콜릿을 프리미엄 디저트로 포지셔닝하는 것을 목표로 가나초콜릿을 디저트로 즐길 수 있는 미식 경험을 설계했다. 유명 셰프들이 가나초콜릿으로 만든 디저트를 선보였고 갖가지 초콜릿 디저트를 맛보는 페어링 코스 프로그램과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보는 DIY 클래스도 운영했다. 고객 만족도 조사 결과, 소비자들이 가나초콜릿을 프리미엄 디저트로 즐기는 경험을 낯설어 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 6주 동안 2만여 명이 방문했고 평균 체류 시간은 60∼90분에 달했다. 이렇게 얻은 긍정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난해 2월 부산 진구 전포동에 오픈한 가나초콜릿하우스 시즌 2에서는 ‘가나초콜릿의 프리미엄 디저트 이미지 강화’를 목표로 위스키 페어링 바를 마련했다. 이곳에서 가나초콜릿 디저트 위스키 페어링 코스를 사전 예약제로 운영했는데 예약 오픈과 동시에 매 회차가 빠르게 마감됐다.

이처럼 팝업스토어에서 수집한 데이터의 활용도가 높음에도 운영 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고객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 없이 무료 경품으로 방문객 수를 늘리는 데만 힘을 쏟는 건 길거리에서 사은품을 나눠주는 행사와 다를 바 없음을 마케터들은 유념해야 한다. 물론 팝업스토어에서 설문 참여를 유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땐 팝업스토어 메시지와 어울리는 경품을 증정하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다. 예컨대 가나초콜릿하우스 시즌 2에서는 3월 14일 화이트데이 당일 설문 참여자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을 건넸다. 화이트데이를 가나초콜릿하우스에서 만끽하는 달콤한 경험과 어울리는 경품이라고 판단했고 실제 설문 참여율을 성공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문항을 구성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

응답자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선에서 문항을 구체화해야 한다. 일례로 인테리어, 이벤트, 친절한 서비스 중 어떤 부분에서 브랜드 메시지가 잘 느껴졌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거의 모든 고객이 인테리어를 선택했다. 인테리어라는 단어를 자신이 만족한 공간의 톤앤드매너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인상깊었던 내부 콘텐츠들을 통칭할 수 있는 표현으로 인테리어를 선택했을 확률이 높다. 기업이 이 설문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면 ‘역시 인스타그래머블한 인테리어가 필요하다’고 착각하며 이후 열 팝업스토어에서 공간 비주얼에만 대대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이런 해석의 오류를 방지하려면 인테리어를 진열 제품, A 체험 코너, B 체험 코너 등으로 적절히 세분화해야 한다. 렌트 역시 이전 조사 결과와 프로젝트 성향에 맞춰 주기적으로 문항을 수정하고 있다.


아무리 팝업스토어를 잘 기획해도 핫한 상권 자체가 더 중요하진 않나?

접근성이 낮은 곳에 위치해도 재밌다고 입소문이 나면 찾아오기 마련이다. 지난해 5월 제주맥주가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오픈한 ‘제주위트 시장-바’가 흥미로운 사례다. 제주 위트 에일 맥주와 함께하는 로컬 미식 여행을 콘셉트로 기획된 팝업스토어였다. 특히 매장 앞에 노점을 설치한 게 묘수였다. 광장시장의 터줏대감인 박가네빈대떡, 유명 셰프들이 개발한 길거리 음식 등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코너였는데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성수동, 연남동에 비해 광장시장은 요즘 세대가 좋아할 만한 팝업스토어 인기 상권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장의 로컬 푸드를 곁들여 제주 에일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뚜렷한 콘셉트 덕분에 긍정적인 반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곳을 경험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시장 안쪽으로 찾아와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감내할 정도였다. 요즘처럼 성수동, 연남동, 가로수길 등 핫한 상권에 매주 팝업스토어가 쏟아지는 시대에는 비인기 상권이 더 유리한 무대일 수 있다. 만약 제주위트 팝업스토어가 성수동에서 열렸다면 어땠을까? 광장시장보다 주목도가 낮았을 것이다. ‘맥주와 광장시장’이란 조합만큼 이색적이진 않기 때문이다. 외진 곳에 자리한 맛집이 오히려 희소한 로컬 콘텐츠로 주목받는 시대다. 이 원리는 팝업스토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얼마나 핫한 곳에서 오픈할지보단 얼마나 재밌게 기획하는지가 관건이다.


팝업스토어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앞으로도 팝업스토어의 인기는 지속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빠른 주기로 팝업스토어가 대거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부동산 업계에서는 하나의 인기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팝업스토어 열풍이 불기 전까지 건물주들은 1∼2주 단기 계약을 기피했다. 기대 수익 대비 단기 계약에 따른 리스크가 복잡한 데다 지속가능한 수익원으로 이어지지 않아 선호할 리 없었다. 하지만 2022년부터 서울 곳곳의 임대 공간에 팝업스토어를 모집하는 플래카드가 붙기 시작했다. 유휴 공간이 급증함에 따라 해당 지역을 부흥시킬 만한 인기 콘텐츠를 원하는 건물주가 늘고 있는 추세다. 단기간에 건물 활용도와 수익성을 높여주는 팝업스토어에 건물주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소비자와 입체적으로 소통하려면 오프라인 채널이 제격이다. 커뮤니케이션 과잉 시대에는 자주 소통하는 것보다 한 번을 소통하더라도 높은 퀄러티로 몰입시키는 전략이 중요하다. 많은 브랜드가 오프라인 채널에 주목하는 이유다. 팝업스토어는 장기간 운영해야 하는 상설 매장에 비해 비용 부담이 덜하다는 점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한편 일부 상설 매장은 팝업스토어를 열듯 주기적으로 내부 콘텐츠를 바꾸기도 한다. 데일리백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브랜드 ‘스탠드 오일’의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는 시즌별로 테마를 선정해 제품, 전시물, 영상 시청 공간 등을 재구성한다. 한섬이 젊은 층을 타깃으로 론칭한 온라인 편집숍 ‘EQL’의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 역시 매장의 약 30∼40%를 팝업스토어 공간으로 활용하며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예술 공연 및 신진 작가들의 전시물 등으로 다채롭게 채우고 있다.

기업들이 오픈하는 팝업스토어가 유행처럼 번질수록 소비자의 기대치 또한 높아질 것이다. 팝업스토어의 본질인 ‘메시지’와 ‘콘텐츠’가 더욱 중요해진단 뜻이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목표 의식 없이 방문객 수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늘리기 위해 형식적으로 기획하는 팝업스토어들은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