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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형 디바이스의 현황과 미래

성급하게 대중화한 제품들 모두 실패
소비자의 ‘눈’은 정확하고 예리했다

우운택 | 376호 (2023년 0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인류의 발전은 우리의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과 함께했다. 이제 현실을 넘어 가상 공간으로 인간의 세계는 확장하기 시작했다. 물리적 현실과 가상 경험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엔 가상경과 증강경이라는 XR 안경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눈에 담을 수 있게 될 것이다.

1968년 이반 서덜랜드 하버드대 교수의 ‘다모클래스의 칼’ 이래 수많은 안경형 XR 기기가 우리 앞에 등장했다. 하지만 시장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구글 글라스는 성급한 대중화의 덫에 빠졌고,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는 일상성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VR의 시대를 연 메타의 오큘러스, 최근 ‘공간컴퓨팅’ 개념을 앞세워 존재감을 드러낸 애플의 비전프로가 격돌하며 XR 안경 대중화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상당한 진보에도 불구하고 XR 안경의 기술적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 한계점을 기회의 변곡점으로 바꿔놓는 기업이 XR 시대의 승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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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눈에 보이는’ 만큼 발전해 왔다. 인간의 시력을 보완하고 향상하는 렌즈의 발명을 기점으로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이 시작됐다. 망원경은 너무 멀리 있어 눈에 담을 수 없었던 거시의 세계, 현미경은 너무 작아 볼 수 없었던 미시의 세계를 각각 인류에게 허락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도전이 다가왔다. 현실을 넘어 가상으로 인간의 세계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물리적 현실과 가상 경험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에는 가상경과 증강경이라는 XR 안경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눈에 담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실-가상 융합의 세계에서 인간의 능력을 확장할 새로운 도구, 안경형 XR 기기는 어떤 발전을 쌓아 올렸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

지난 10년 동안 안경형 XR 기기는 선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앤 2세대로 진화하고 있다. 구글의 구글 글라스를 시작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HoloLens) 1·2, 매직립의 매직립(Magic Leap) 1·2 등의 사례를 중심으로 안경형 XR 기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서로 다른 새로운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는 애플과 메타의 안경형 XR 디스플레이를 비교하면 지금 우리가 도달한 기술 수준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안경형 XR 기기가 일상에서 활용하기 위한 현안과 도전적 과제는 무엇일까? 단순히 하드웨어 문제를 개선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소프트웨어, 콘텐츠, 네트워크, 사용자 등 복합적인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더 복잡한 윤리적, 사회적, 법적 문제도 사회적 합의나 정비가 필요하다.

미래는 현실-가상 융합의 시대다. 도시 생활에서 가상의 콘텐츠를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그 사람의 능력이 되는 시대다. 안경형 XR 기기와 연동되는 주변 기기를 사용자의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활용하는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안경형 XR 기기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 ‘다모클래스의 칼’에서 매직립까지

1968년 유타대의 이반 서덜랜드 교수(현 하버드대 교수)가 ‘다모클래스의 칼(The Sword of Damocles)1 ’이라는 이름으로 안경형 XR 기기의 가능성을 선보인 이래 다양한 안경형 XR 기기가 소개되고 또 잊혔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았던 건 단연 2012년 구글 신기술 발표회에서 소개된 ‘구글 글라스’다. 안경형 XR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결과적으로 대중화엔 실패했지만 차세대 XR 안경의 정의를 일정 부분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구글 이전의 안경형 XR 기기 대부분은 PC와 직접 유선을 통해 연결해야 했다. 형태도 다소 거추장스럽고, 너무 무겁거나 착용감이 불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터페이스 역시 매우 번거로워 실용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구글을 시작으로 한층 가볍고 편의성을 높인 형태의 안경형 XR 기기가 쏟아졌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매직립, 삼성, HTC, 애플 등 다양한 업체가 안경형 XR 기기를 선보였다. 다만 시장은 여전히 우호적이지 않다. 왜였을까? 이들 기기에는 각각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했다.

1) ‘성급한 대중화’의 덫에 빠진 구글 글라스

구글 글라스는 2012년 혁신적인 스마트 안경 제품으로 등장해 많은 기대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금방 잊혔다. 초기 개발자용 제품에 대한 호응에 힘입어 자신만만하게 일반 소비자용 판매를 시작했지만 곧 판매를 중단해야 했다. 장비만 놓고 보면 훌륭했다. 무게 45g, 640×360 해상도, 500만 화소 카메라, 음성 인식 인터페이스, 골전도식 오디오, WiFi와 블루투스 지원, 4시간 수명의 배터리 등 당대의 혁신 기술로 중무장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기대치를 너무 높인 광고, 사용자 경험 반영이 미흡해 불편한 인터페이스, 개인정보 보호 및 사회적 수용 문제 등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한 도전으로 기억됐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성급한 대중화와 낮은 효용성이다. 구글 글라스는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단순한 HUD(Head Up Display, 헤드업 디스플레이) 장치였다. 손으로 기기를 쥐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화면을 볼 수는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이라는 본질은 상당 부분 빠져 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대중화를 시도했기에 기술적으론 ‘혁신적’이었지만 사용자들이 카메라 촬영의 편리함 이외에 실생활 사용에서의 효용성을 느끼기 어려웠고, 상품성 역시 낮았다. 카메라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발열 문제도 있었다. 여러 취약점을 감안하면 일반 환경보다는 특수 환경에서의 활용에 집중하는 게 주효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개발 과정에서 더 많은 테스트와 피드백 수집을 통해 사전에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유용한 활용 방법을 명확하게 제시해 상품성을 높였어야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르게 일반 사용자에게 제품 공급이 이뤄지면서 혁신성은 금세 묻히고 기기의 단점만 극명하게 드러나는 결과를 낳았다.

다음으로 기기의 스타일과 인터페이스도 문제였다. 신기한 ‘무선 착용형 디스플레이’ 장치였지만 터치 인터페이스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영어만 지원하는 음성 인식 인터페이스 역시 불편하고 어렵기 매한가지였다. 형태도 착용하고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용하기에는 다소 어색했고, 따로 보관하기도 불편했다. 맨눈과 초점 거리가 다른 글라스의 화면을 한쪽 눈으로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의 피로감을 유발했다. 시력 저하의 우려나 두통을 보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편리함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안경의 구조적 특성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너무 진입 장벽이 높은 ‘번거롭고 불편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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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유는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 침해 문제다. 눈과 밀착해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하는 기기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의 개인정보 보호 문제나 주변 사람들의 사생활 침해 우려를 없애지 못했다. 특히 언제 켜질지 모르는 카메라 때문에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글 글라스 착용자를 금지하는 카페나 식당도 등장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도촬을 방지하기에 더 유리한 제품이었음에도 심리적 저항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안경형 XR 기기가 스마트폰처럼 진화하기 위해선 효용성, 인터페이스, 수용성 등 구글 글라스가 남긴 숙제를 풀어야만 한다. 먼저, 유용한 기능을 용도에 잘 맞게 활용하도록 사용자를 충분히 설득해야 한다. 사용자가 편안하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해야 한다. 사용자와 주변 사람들 모두가 새로운 기기를 수용할 수 있도록 심리적 저항감을 낮출 장치를 마련하고, 활용해야 할 이유를 ‘사용자 경험 시나리오’로 제시해야 한다.

2) 일상성의 벽 못 넘은 MS 홀로렌즈

2016년 소개된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는 2019년 홀로렌즈2로 진화했다. 현실 세계에 가상 콘텐츠를 증강해 MR(Mixed Reality, 혼합현실) 경험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안경형 XR 기기로 주목받고 있다. 무엇보다 PC와 연결할 필요 없는 독립형 기기이고, 현실과 단절된 VR 기기와는 달리 투명한 안경에 증강된 3D 홀로그램을 통해 여러 사람이 동시에 XR을 경험할 수 있는 장치다. 움직이면서 3차원 공간을 매개로 정보에 접근하고, 생성하고,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 디자인, 교육, 훈련, 의료,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개선해야 할 문제도 있다.

첫째, 하드웨어 플랫폼상의 문제다. 홀로렌즈2는 넓은 시야각(52°)과 높은 해상도(2K), 다수의 카메라와 IMU(Inertial Measurement Unit·관성측정장치) 센서2 , 5개의 마이크 어레이, 공간 음향 지원 스피커, 멀티모달 인터페이스(Multi-Modal Interface)3 등을 통해 실시간 공간 매핑과 증강을 지원하는 혁신적인 안경형 XR 기기다. 하지만 사용자 편의성과 휴대성에서 약점을 노출했다. 안경 후방에 컴퓨트 모듈과 배터리를 넣어서 무게중심을 맞추긴 했지만 장비가 570g 내외로 무겁고 배터리 수명도 2~3시간으로 제한됐다.

둘째, 여전히 직관적이지 못한 멀티모달 상호작용이다. 홀로렌즈2는 실시간 공간 매핑과 함께 시선, 손, 음성 등을 사용해 가상 객체와 직접 상호작용하도록 지원하면서 사용자 경험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직관적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개선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았다. 특히 손 기반 상호작용은 ‘에어 탭(Air Tab)을 이용한 선택, 손바닥을 펴는 블룸(Bloom)을 이용한 홈 화면 이동’ 등 몇 가지 제한된 제스처만 사용할 수 있어 자유롭고 직관적인 양손 상호작용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다.

셋째는 협업의 한계다. 다수의 홀로렌즈 사용자는 동일한 가상 환경에 참여하고 협력해 작업할 수 있다. 하지만 참여자 수에 제한이 있고, XR 안경을 착용한 상태에서 공존감을 느끼면서 원활한 협력을 수행하는 데도 아직은 한계가 있다.

그 밖에도 일반인이 일상에서 활용하기엔 가격대 또한 3500달러 수준으로 고가다. 콘텐츠의 손쉬운 제작, 안경형 기기의 데이터 수집에 대한 투명성 문제나 개인정보 보호 문제, 사회적 수용성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다.

요약하면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는 안경형 XR 기기의 혁신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여전히 일상 활용을 위한 과제가 산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드웨어 플랫폼의 무게와 배터리 수명 개선, 직관적 상호작용 강화, 협업 기능 개선, 가격 접근성, 데이터 수집과 개인정보 보호 등에 대한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또한 기술적인 한계 극복 외에도 윤리적 사용,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해 효과적으로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3) 매직립의 새로운 도전

안경형 XR 기기의 역사에서 주목해야 할 회사 중 하나가 바로 매직립이다. 루머와 기대 속에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매직립은 2018년 회사 이름을 본뜬 매직립1을 출시했고 4년 뒤인 지난해 매직립2를 공개했다. 매직립2는 소형 컴퓨터(Lightpack), 헤드셋(Lightwear), 컨트롤러로 구성되고 루민OS(Lumin OS)라는 운영체제로 구동한다. 홀로렌즈2와 비교하면 시야각은 70도로 더 넓고, 크기는 반으로 줄었고, 무게도 260g까지 감소했다. 반면 사용 시간은 3.5시간까지 늘렸다. 시선 추적, 음성 입력, 손 추적 등도 제한적으로 지원한다.

새로운 특징은 ‘지능형 조광’이다. 사용자가 제어할 수 있는 글로벌 조광 기능, 실내조명에 따라 조절되는 자동 조광 기능, 시야의 모든 부분을 조광할 수 있는 동적 조광 기능 등 3가지 감광 기능이 있다. 선글라스처럼 변하는 새로운 조광 기능을 갖추고 있어 주변 시야는 어둡게 하고 가상 객체는 밝은 상태로 증강해 가시성과 가독성을 향상한다. 이런 기능을 활용하면 AR 콘텐츠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또한 밝은 방이나 야외 환경에서도 선명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공간 오디오는 좌우로, 그리고 상하로 소리를 배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까운 곳이나 먼 곳에도 소리를 위치시킬 수 있다. 그만큼 XR 원격 회의를 좀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소리가 사용자를 특정 장소 또는 특정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왼쪽에 있는 동료 아바타가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소리의 방향을 따라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곧바로 협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특징은 개방성이다. 매직립의 운영체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프로젝트(Android Open-Source Project)를 기반으로 한다. 개방성은 더 많은 개발자를 모이게 하고 쉽게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산할 수 있게 한다. 더 많은 콘텐츠와 더 다양한 서비스는 XR 서비스 개발 생태계를 촉진할 수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취약한 점도 있다. 휴대용 CD플레이어 같은 소형 컴퓨터와 유선 연결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이동성과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제한할 수 있다. 그리고 140g 무게의 컨트롤러 의존성이 높아 손 기반의 직관적인 상호작용은 불편함이 있다. 아직 기기의 가격이 높고 설득력 있는 콘텐츠나 성공적인 활용 사례도 부족한 상황이다.

2. 격돌한 메타와 애플… XR 빅뱅 눈앞으로

1) 메타버스와 VR의 시대 연 메타 오큘러스

이제는 VR을 대표하는 기기로 자리매김한 오큘러스 VR(Oculus VR)이다. 오큘러스의 여정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젊은 혁신가인 팔머 럭키가 2012년 8월에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Kickstarter)에서 VR HMD인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펀딩을 받으며 시작됐다. 그리고 2014년,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20억 달러에 오큘러스를 인수한다.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기업인 페이스북의 대규모 투자는 단숨에 세간의 관심을 VR 기술로 쏠리게 했다. 페이스북의 지원을 받으며 오큘러스는 2016년 3월 컴퓨터에 케이블로 연결해 사용하는 오큘러스 리프트를 출시하면서 VR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로 인해 개발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VR의 가능성을 각인했다. 이제 사람들은 VR 게임은 물론 교육, 훈련, 의료 등 다양한 산업의 응용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VR 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큘러스 리프트는 여러 가지 한계와 도전에 직면했다. 선이 달린 안경형 XR 기기, 그것도 PC에 연결해야 하는 기기는 여전히 일반 소비자들이 대중적으로 활용하기엔 어려운 장비였다.

이에 2019년 5월 오큘러스 퀘스트(Oculus Quest)가 모습을 드러낸다. PC나 외부 센서가 필요하지 않는 독립형 VR 헤드셋이다. 양손으로 가상 콘텐츠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손쉽게 VR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20년 10월 출시한 오큘러스 퀘스트2는 ‘메타버스’를 경험할 수 있는 안경형 XR 기기의 수준에 이르렀다. 마침내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크래쉬』가 제시한 메타버스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2022년 10월 등장한 퀘스트 프로(Quest Pro)는 사람들이 기대하던 새로운 기능이 대거 포함됐다. 최신 프로세서인 스냅드래곤 XR2+ Gen 1이 적용됐고, 얼굴 및 눈 추적, 풀 컬러 패스스루(Passthrough)4 , 개선된 손 추적 등을 지원하며 단독형 VR 헤드셋 중 최고의 성능을 갖췄다. 본격적으로 MR을 지원한다. 퀘스트2와 비교해 형태는 단순해졌고 크기도 훨씬 작아졌다. 광학 요소 측면에선 기존 해상도(1800×1920)를 유지하면서도 선명도를 한층 개선했다. 무게가 770g임에도 배터리를 후방에 배치해 무게 균형을 잡고 착용 시 불편함을 줄였다. 컨트롤러의 위치는 작은 카메라로 추적한다.

가장 첨단에 선 기기이지만 역설적으로 VR 기기가 가진 전형적인 한계를 여전히 보여주는 제품이기도 하다. VR 기기 특유의 어지러움과 멀미감, 무겁고 불편한 착용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밀한 시선 추적 기능과 함께 ‘스크린 도어 효과’5 를 제거하는 고해상도 패널, 정교한 광학 장치 개선도 필요하다. 시공간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하고 실제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더 쉽고 단순한 인터페이스도 필요하다. 그 외에도 눈 건강, 데이터의 윤리적 사용, 개인정보 보호 등에 대한 우려도 해소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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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간컴퓨팅’으로 맞받은 애플 비전프로

애플이 2023년 6월 개발자 대회인 WWDC에서 선보인 비전프로(Vision Pro)는 스키고글 같은 느낌의 안경형 XR 기기다. 하지만 기존 마이크로소프트의 투명 안경형 XR이나 메타의 안경형 VR 기기와 달리 애플은 비디오투과형(Video-see-through) XR 기기로 포지셔닝했다.

가장 큰 차별점은 현실 공간을 매개로 가상 세계를 경험하는 공간컴퓨팅 개념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용자의 눈, 손, 음성 등을 함께 사용하는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멀티모달 인터페이스를 채택했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공간컴퓨팅 운영체제인 비전OS(Vision OS)를 사용하며 애플의 M2칩과 센서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하는 R1칩을 탑재했다. R1칩은 비전프로에 내장한 12개의 카메라와 5개의 센서, 6개의 마이크에서 취합한 데이터를 응답 속도 12ms(12/1000초) 이내로 실시간 처리해 4K 해상도의 화면에 디스플레이한다. 이때 두 패널에 총 2300만 화소가 사용되는데 소니의 OLEDoS(OLED on Silicon)6 기술을 사용해 아이폰의 한 화소 크기에 64개의 화소를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동시에 사용자의 두상과 귀 형태, 실내의 음향 특성 등을 분석해 개인과 공간 특성을 반영한 공간 음향도 제공한다.

패스스루 기능은 한 쌍의 고해상도 카메라를 통해 바깥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손동작 제어, 시선 추적, 음성 등을 사용해 가상 콘텐츠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아이사이트(EyeSight) 기능을 통해 착용 상태에서 XR 안경의 외부 디스플레이에 사용자의 눈동자를 표시하고, 기기 사용 중에도 주변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영상통화나 화상회의에선 학습을 통해 생성된 아바타인 ‘페르소나(Persona)’를 통해 소통하고 협업한다. 새로운 보안 인증 시스템인 옵틱 ID(Optic ID)는 다양한 비가시 LED 광선에 노출된 사용자의 홍채를 분석한 후 기기를 잠금 해제해 사용자 정보를 보호한다.

애플이 비전프로로 만들 새로운 변화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최고의 센서 기술, 인공지능 기술, 디스플레이 기술, 상호작용 기술을 총동원해 공간컴퓨팅의 가능성을 보였다. 애플을 중심으로 콘텐츠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으며 가격이 비싸도 기꺼이 구매할 마니아들도 존재한다. 애플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3) 플랫폼 표준 두고 양쪽으로 진영 갈려

현재까지 안경형 XR 기기는 VR과 AR, MR 세 갈래로 진화하고 있다. 결국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기기가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메타는 VR 기반 ‘소통 경험’을 위한 차단형(Opague) XR 기기를 선보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AR 기반 ‘업무 경험’을 위한 광투과형(Optical-see-through) XR 기기를 선점했다. 후발 주자인 애플은 AR을 좀 더 현실적으로 ‘현장 협업’ 경험을 위한 비디오투과형(Video-see-through) 기기를 선보였다. 다만 아직 기기가 보급되지 않아 실효성에는 의문이 남아 있다. 삼성전자가 준비하고 선보일 안경형 XR 기기는 어떤 모습일지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후발주자들은 이들 선발 주자의 도전과 좌절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XR 기기의 승패는 기기 자체의 성능과 사용성에서도 갈리겠지만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등 관련 생태계에도 크게 좌우될 것이다. 메타는 생태계 구축을 위해 기존의 산업계 포럼을 중심으로 한 메타버스 표준화포럼(The metaverse standards forum)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에 맞서 애플은 어도비(Adobe), 오토데스크(Autodesk), 엔비디아 앤드 픽사(Nvidia and Pixar) 등과 함께 Alliance for Open USD(AOUSD)를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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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형 XR 기기 시장,
기회는 한계에서 찾아야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해야 안경형 XR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까? 우리 기업의 가장 큰 강점은 제조에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경량화에 앞서가고 있는 중국의 엑스리얼(XReal)이나 미국의 뷰직스(Vuzix) 등이 시장을 선점해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래티널(LetinAR), 페네시아, 피앤씨솔루션 등 탁월한 기술력을 앞세운 업체들이 안경형 XR 기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장이 완전히 대중화하지 않은 만큼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기회는 안경형 XR 기기가 일상에서 활용되지 못했던 이유에서 찾아야 한다. 기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내놔야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우선은 안경형 XR 기기를 실내외 현장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려면 당장 안경 수준의 무게와 형태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휘도, 해상도(화소밀도), 시야각, 사용성 등 안경형 XR 기기의 부족한 성능을 더욱 끌어올려야 한다. 현존 기기들의 해상도는 아직 몰입감 있는 실감 콘텐츠 증강이 어렵고, 화면은 눈에 비해 시야각이 좁아 몰입감을 방해하고 있다. 동시에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디자인을 개선하고 효율성과 사용성을 향상시켜야 한다.7

아직도 기기는 무겁고 착용이 불편하며 배터리 수명은 제한적이어서 사용성이 떨어진다. 인터페이스는 여전히 직관적인 멀티모달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XR 콘텐츠의 제작 문턱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제작 자체가 쉽지 않다 보니 활용 가능한 콘텐츠가 부족하다. 특히 실감 콘텐츠는 일부 전문 업체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시청각 중심으로 만드는 데 그치고 있다. 최근에 제한적이나마 촉각의 생성과 재현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후각과 미각을 제대로 재현하고 활용하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XR에서 시각이 주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론 안 된다. 오감을 모두 자극하고 만족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로 현실의 확장이 이뤄지는 것이다.

XR의 일상적인 활용 가능성은 실감 콘텐츠보다 오히려 정보 콘텐츠에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현장에서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정보를 소환해 증강하고 활용하는 것이 다른 기기들에 비해 차별화한 유용성이다.8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정보 콘텐츠의 생성, 관리, 공유 등의 기법도 필요하다.

나아가 콘텐츠 제작 비용을 낮추면서 누구나 쉽게 창·제작을 할 수 있는 호환성 높은 개방형 제작 도구도 필요하다. 사전 제작을 위한 도구와 함께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도구 역시 마찬가지다. 엔비디아가 하드웨어의 장점과 결합한 오니버스(Oniverse) 같은 제작 도구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저작권과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문제를 대비해야 한다. 특히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일상화하면서 AI 제작 콘텐츠에 대한 관련 규정 정비가 시작된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높은 가격, 그에 반해 부족한 사용자 경험은 당분간 안경형 XR 시장에서 계속 제기될 문제다.9 XR 안경은 높은 비용과 효용성에 대한 설득 부족으로 일반인들의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비용을 낮추는 것과 동시에 더 나은 디자인으로 직관적인 멀티모달 인터페이스를 실현해야 하고, 오랜 시간 착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도 해소해야 한다. 동시에 과도한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안경형 XR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사회적 상호작용과 소통이 어려워질 수 있으며 사용자들이 가상 세계 과몰입으로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다양한 윤리적 사회적 문제도 해소해야 할 것이다. 안경형 XR 기기는 사용자의 시선, 시야를 중심으로 주변 환경을 캡처할 수 있어 사용자 정보 보호 외에도 주변인들의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구글 글라스가 이 문제에 발목 잡혔던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접근성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시각 콘텐츠가 주류인 경우 시각장애인과 같은 특정 그룹의 사용자들에게는 접근성이 제한될 수 있다. 공감각 기능을 활용한 감각 기능 대체나 증폭도 XR 활용의 중요한 분야다.10

곧 선보일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삼성과 LG의 안경형 XR 기기에 대한 대응과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더불어 제조 강점을 앞세운 국내 중소기업의 등장과 성장을 기대한다. 아울러 각 영역의 성장과 함께 안경형 XR 기기의 관련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산학연관의 개방형 협력이 필요하단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11
  • 우운택 |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우운택 교수는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석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USC) 전기공학 및 시스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학과장, 문화기술연구소장, KI-ITC 증강현실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맥락 인식 모바일 증강현실, 3D 비전, 공간 작용 기술을 통합해 스마트 공간에서 유비쿼터스 VR을 구현하는 게 목표다. 증강휴먼, 증강도시, 증강사회, 포스트 메타버스 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혁신의 목격자들」이 있다.
    wwoo@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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