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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 대중화의 조건

‘모두에게 필요’보다 ‘특정 분야 꼭 쓸모’
비전 웨어러블 기술 정의부터 확실하게

조명광 | 376호 (2023년 0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던 기술엔 공통점이 있다. ‘분명한 쓸모’, 즉 정확한 사용 목적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적절한 정의(Definition)가 필요하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그 용도에 걸맞은 기능적 요소가 정확히 들어가 있는지 등이 포함돼야 한다. 확장현실(XR)을 우리 눈에 구현할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첨단 기술이기 이전에 소비자에게 어떤 콘텐츠와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주 개인화한 것이어야 하고, 즐거운 것이어야 하며, 온·오프라인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것이어야 한다.

기업은 생존을 위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 산업은 아직 태동하는 단계지만, 그렇기에 초기 단계부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가상현실 플랫폼 ‘제페토’에 신라면 분식점을 내고 현실의 팝업 스토어와 연계한 농심, 다양한 AR·VR 서비스로 고객 경험을 확장하는 이케아 등 기업들의 움직임은 이미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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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
정의부터 제대로 해야

구글 글라스를 한 문장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눈에 쓰는 컴퓨터라고 정의해 보자. 그러면 구글 글라스는 기능적으로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을 거의 다 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노트북이나 태블릿PC, 휴대폰을 통해서 컴퓨터를 들고 다닌다. 과연 눈에 컴퓨터를 쓰고 다니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노베이터나 얼리어댑터들의 열광 속에서도 구글 글라스가 대중화에 실패한 이유일 수 있다. 인류는 생존에 필요한 도구들을 개발하고 혁신시켜 현재의 기술 사회를 만들어 왔지만 모든 기술과 혁신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구글 글라스도 어쩌면 그런 필요하지 않은 도구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구글 글라스의 실패 이후에도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구글 글라스는 실패했다고 말하기보다는 진화의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단지 선택받는 기술의 조건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을 뿐이다.

선택받는 기술과 기기가 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첫째는 정확한 사용 목적이다. 기술이나 기기와 만나 인류의 선택을 받으려면 ‘분명한 쓸모’가 있어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정의(Definition)다. 구글 글라스에는 ‘모두에게 필요한 글라스’가 아니라 특정 분야에 꼭 필요하다는 분명한 정의가 필요했다. 모든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싶다는 건 좋은 목적이다. 하지만 안경이란 게 그렇다. 모든 사람이 늘 안경을 쓰는 건 아니다.

2022년 5월 구글은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실시간 번역 언어를 시각적으로 내 보내주는 AR 글라스를 공개했다. 시연 영상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자막으로 안경에 띄워주는 기능이 등장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쉽게 대화하고, 청각장애인도 수화 없이 의사소통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이는 기존에 구글 글라스에서 구현하려던 것들 중 하나다. 하지만 그 하나만을 보여준 것이 정의라는 측면에서 더 주효했다. 이 번역 안경은 사생활 침해 논란을 겪을 일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진 않겠지만 누군가의 어떤 순간엔 꼭 필요한 기기로 가치를 입증했다. 이는 비전 디바이스를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지난 6월 애플은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비전프로를 발표했다. 애플이 공들인 것도 정의다. 이 제품을 디지털 미디어가 현실과 연결되고 사람의 제스처나 눈의 움직임 등 물리적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 컴퓨터라고 정의했다. 기존의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과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기능을 섞은 혼합현실(MR, Mixed Reality) 기기 속성을 분명하게 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메타버스와 같은 모호한 개념들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공간 컴퓨터라는 정의엔 인간의 눈앞에 펼쳐지는 공간을 현실을 더하거나 AR로 만들어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방향성이 담겨 있다. 애플이 이걸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적어도 분명한 정의를 내렸다는 점에선 ‘선택받는 기기의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에서 출발하라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선 기기의 역할과 정의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이 용도가 선택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정의를 제대로 내리려면 상품 개발 순서를 소비자의 입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기술이 나왔으니 이 기술을 소비자가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첨단 기술이니까 상품을 만들면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살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성공하고 안착할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이기 전에 어떤 콘텐츠와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 이것이 소비자가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와 부합하는지가 중요하다.

1.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개인화라는 말이 이렇게 많이 사용되는 시대가 있었을까? 과거 상품이나 서비스는 대중을 상대로 했다. 기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개인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는 불과 100~200년 사이의 일이다. 이는 사회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화된 상품이나 서비스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곳으로 시장이 진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0년부터 가전제품 통합 슬로건으로 ‘가전을 나답게’를 선택했다. 이는 시장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2020년 인구주택 총조사 내용을 보면 1~2인 가구 비율은 59.8%다. 이제 가전이라는 말을 ‘개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개인화를 가장 앞당긴 것은 디지털 모바일 디바이스가 증가한 이유도 있다. 집단적 소비자로 정의되던 소비자의 모습이 컴퓨터를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개인 소비자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개인화는 맞춤화나 파편화라는 말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소비자의 선택이 대중의 의견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답은 개인화에서 찾아야 한다. 구글의 번역용 AR 안경도 사용자의 언어 사용 환경을 고려한 초보적인 형태의 개인화로 볼 수 있다. 애플의 비전프로가 강조하는 공간 컴퓨팅은 문자 그대로 퍼스널 컴퓨터의 대안이다. 하드웨어적으로 봐도 개인의 머리둘레나 시력 등을 고려한 XR 안경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개인화 콘텐츠가 얹혀야 한다. 개인에게 맞춰주는 디바이스가 돼야 사라지지 않는 디바이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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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냥 이야기 말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가?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눈이 매우 중요한 신체 기관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감각 수용체 중 70%가 눈에 있고 오감 중 가장 중요한 감각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눈이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에서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 수집하는 매우 많은 정보를 눈이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눈은 생존을 위해 가장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창이었다. 아날로그 시대, 거리와 시간의 한계를 가지던 시대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 속도의 시대로 진화할수록 눈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는 더욱 많아진다. 이를 처리하는 능력이 곧 생존의 능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눈이 과로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이 아까운 눈의 시간을 유용하지 않은 정보로 채우는 제품이 과연 소비될 수 있을까? 시선을 잠시만 붙잡으면 되는 스마트폰 시대보다 개인 맞춤형 정보를 선별하는 일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개인에게 도움이 되고 재미라는 가치를 주지 못하면 선택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현재 글라스 콘텐츠 분야별 시장 규모를 보면 2025년 기준 게임이 189억 달러로 2위인 헬스케어(51억 달러)를 압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기기들이 대체하지 못하는 재미를 비전 웨어러블 기기들이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이 게임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부딪히고 캐릭터들과 대면하거나, 싸움을 하거나, 눈으로 들어온 정보가 자극적 경험을 극대화해준다. 물론 B2B 영역 등에서 설계나 의료 등 미개발 개척지들이 당연히 많지만 기술의 발달은 항상 사람의 감각적 재미와 함께 발달해 왔다. 감각적 재미의 전달을 위해서는 콘셉트와 스토리, 환경의 조성, 기술의 뒷받침 등 수많은 요소가 함께해야 한다.

3. 온라인 오프라인의 연결이 자연스러운가?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점차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옴니채널이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건, 어떤 이름이 붙었는지는 상관없다. 아날로그인 인간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돌아다니며 쇼핑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정보도 얻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글라스 시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물론 글라스가 디지털 컴퓨팅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AR은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고 있고 VR은 온라인에 방점을 찍고 있다. 2020년 현재 시장 규모도 AR이 4배 정도의 차이로 전망됐으니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글라스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현실 같지 않은 VR 역시 가상으로 끝날 것이다.

AR은 현실에 정보나 재미를 더해 주는 것이다. 시장에서 통하기 위해서는 현실과의 연결, 즉 오프라인과 온라인 연결이 매우 매끄럽게,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VR도 AI 기술의 발달에 따라 더욱 현실과 가까운 가상을 만들어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시도되고 있다. 온오프라인이 ‘Seamless(재봉선이 없는)’하게 연결되면 될수록 기기의 지속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4. 이들을 지원하는 플랫폼이 있는가?

세계는 이미 플랫폼 사업자들의 시대다. 개인화와 파편화가 현재 시장의 기본적 속성이라면 비즈니스 모델의 속성은 플랫폼 비즈니스 중심으로 독과점 형태가 지속될 것이다. 미국의 10년 단위 시가총액 순위 변화표를 보면 단번에 이해되는 변화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온라인 플랫폼 비즈니스 기업들이 있다. 애플, MS, 아마존, 알파벳, 메타 등등. 이 회사들은 기본적으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자신들의 플랫폼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또한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경쟁자들이라는 점도 있다.

시장의 소비자들이 개인화되고 파편화될수록 시장의 사업자는 더욱 거대해져야 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그 많은 사람들의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와 지속적 발전이 필요한데 2021년 시가총액 상위 10개 회사를 보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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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제조자이자 플랫폼을 가지고 비전 웨어러블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MS는 컴퓨팅 OS의 대장답게 넥스트 컴퓨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아마존은 스스로를 유통 기업이라고 하지 않고 기술 기업이라고 하면서 디바이스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구글과 메타 또한 마찬가지다.

비전 웨어러블 기기는 미래의 시장 먹거리임을 이 회사들은 다 알고 있지만 작은 기업들은 이런 기기들을 만들고 지속하는 것에 엄두를 내기도 어렵다. 물론 대기업 기술들도 연구기관이나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하기도 하지만 시장에 상품이나 서비스로 내놓고 지속시키는 일은 거대 플랫폼 기업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다. 플랫폼의 기본은 양면 시장이다. 물론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기반을 만들어 비즈니스를 시작하겠지만 결국 시장은 다양한 콘텐츠 공급자와 소비자들의 연결이 될 것이다. 비전 웨어러블 기기의 시장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만들겠지만 시장의 활성화는 결국 시장 구성원 전체의 몫이다. 이를 제대로 구현하는 플랫폼은 비전 시장에서 소비자가 먼저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제공할 경험 가치는 무엇인가?

1. 경험의 진화

경험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내용이라고 정의돼 있다. 다시 풀어보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외부 자극과 내부 수용의 결과로 생기는 콘텐츠화된 기억이다. 사람들은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며 젊은 때는 많은 경험을 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럼 시장에서의 경험은 무엇일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책 『미래쇼크(1970)』에서 경험산업(Experiential Industry)의 등장을 예견했다. 1999년 조셉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고객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경험재가 가장 중요한 상품 형태가 될 것이라고 기술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험이라는 단어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로 인식돼 왔는데 시장에서 경험재는 어떤 것인가? 조셉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는 경험재를 이렇게 정의했다. “기업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점차 균질화됨에 따라 고유의 기능에다 이벤트를 추가해 연출함으로써 고객에게 감동을 주고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정의에서 경험재가 중요해진 배경을 재화와 서비스의 균질화로 정의했다. 공급 과잉의 시장에서 기업들은 지속적인 차별화를 강조해 왔지만 결국 균질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미래에는 기능적 차별화가 아니라 감정적이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함께 주는 경험 상품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그들은 경험산업 시대의 진화를 5단계로 설명했는데 이는 실제로 단계적 진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중적 진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원자재가 제품이 되고, 서비스가 가미되고, 경험적 가치가 중요해지고, 마지막에는 고객의 변화 열망을 가이드하는 경험재가 소비자에게 감정적 울림뿐만 아니라 경제적 가치도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진화는 기능성 물질 중심 시장에서 창조성 경험 중심 시장으로 이동함을 보여준다. 이런 경험은 기업들이 제공하는 상품을 기능보다는 감정적 기억과 개인화된 취향으로 미래 가치를 판단하게 하고 시장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경험재는 두 가지로 구성된다. 물리적 가시적 활동과 그 활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감정들이다. 소비자들은 이런 감정적 결과물에 반응하고 자신의 의사결정 구조를 지배하게 된다.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경험이 중요한 이유가 디바이스의 사용 경험들은 감정적 결과물로 쌓인다는 점이다.

경험이라는 것은 시간과 장소, 환경, 조건들에 따라 다 다르게 정의된다. 경험산업 시대에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2. 프로슈머의 시대의 XR 콘텐츠 제작자는 소비자

경험산업 시대에 경험을 대하는 자세는 경험을 기존 시장 제공물을 파는 데 이용하는 법과 경험 자체를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경험은 소비자와 정서적 유대감을 높여주는 매우 중요한 장치인데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이 두 가지 접근이 모두 중요한 상품이다.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사람에게 매우 다양하고 생소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 경험에 대한 평가 역시 극단적일 수 있는 물건이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긍정적 경험으로만으로 판단받을 수 있는 기기는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미 소비자들의 기대 수준은 생산자의 기술 수준 이상으로 준비돼 있고 생산자는 그에 대한 준비가 덜 돼 있다.

누군가는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라고 하기도 하지만 개인화된 소비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원하는 경험과 변화에 대한 열망을 인식하고 있다. 거기에 챗GPT, AI 등의 기술들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거리나 경계도 사라지게 하고 있다. 비전 웨어러블이 기술이 아닌 콘텐츠로 소비자를 공략하려면 소비자들이 생산하는 콘텐츠에 집중해야 한다. 성공한 콘텐츠들의 특징은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자신의 삶이건, 남의 삶이건 자신의 감정과 공감하고 그 감정이 스토리를 통해 흘러나오고 이런 스토리가 단단한 구조를 통해 만들어질 때 각광받는 콘텐츠가 된다. 그 분야가 어떻든 재밌는 콘텐츠가 또한 작은 혁신으로 조금씩 재미를 배가시키고 이를 소비자가 또 공유하고 네트워크에 업로드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프로슈머형 콘텐츠가 결국 손에 키를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

OTT에서 순위에 올라오는 콘텐츠들 또한 다른 기기에서 플레이되지만 이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습은 다르지만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더욱 감각적인 콘텐츠로 진화할 수 있다. 가치는 대중의 표준적 신념이 아니다. 개인화된 가치들이 모여 공통적 모습으로 집결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비전 웨어러블 시대에 기업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오아시스(OASIS)라는 가상현실을 만들어 냈다. 암울한 현실과 달리 누구나 내가 상상하는 캐릭터로 변신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재미를 느끼고 살아간다. 모든 이의 선망이고 꿈인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유산을 빼앗기 위한 거대한 기업 IOI도 등장한다. 이 영화는 메타버스가 세상 모든 사람의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전에 상영됐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미 비전 웨어러블 시대를 영화로 그림으로써 바뀌는 세상에 파문을 일으켰다. 영화를 보는 순간 이러한 일들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소비자가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으로 세상의 일부분을 예상한 것이긴 하나 시장에 다양한 시사점을 던졌다. 현실과 더욱 괴리가 커지는 가상현실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가? 거대 기업의 독과점이 가져올 폐해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인간의 과욕은 가상현실에 어떤 디스토피아를 만들 것인가? 누구나 비전 웨어러블 기기만 끼고 있다면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은 어떻게 맞출 것인가? 결국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아날로그 인간이 또 답인가?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많은 영화다.

아직 먼 이야기 같지만 그리 멀지 않은 비전 웨어러블 시대, 기업들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1.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하라

이미 많은 분야에서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의료, 건축, 제조 등 오프라인 기업들이 이를 준비하고 있고 구글이나 메타, 애플 등 자신들이 이 분야에서 선두로 나가기 위해서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산업의 경계가 더욱더 흐릿해지면서 많은 기업이 기존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영역도 자신들의 기존 사업 모델과 관련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있다. 이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드 비즈니스라 불리는 제조업이나 농어업 등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 아오모리현 이나카다테무라는 논에 다양한 캐릭터를 조성해 매년 인기를 끌고 있다. 단보아트(논예술)이라 불리는데 주민들은 이를 만들기 위해 소재를 공모하고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4~8종의 유색 벼 품종을 심고 관람객을 기다린다. 매년 10만 명이 방문한다고 하니 벼농사가 아니라 사람 농사가 됐다. 모내기 체험 투어나 수확 체험까지 있으니 농업과 관광업의 컬래버레이션이라 하겠다. 여기에 비전 웨어러블 콘텐츠까지 연결한다면 더 많은 콘텐츠가 생겨날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에 한계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충분하다.

건축사무소는 컴퓨터로 그려지는 도면을 VR로 연결해 건축주에게 미리 건축물을 보여줄 수도 있다. 병원은 3D VR 속으로 들어가 수술 부위를 관찰하고 환자에게 설명하거나 수술 예행연습을 해 볼 수도 있다. 노래방에서 VR이나 AR을 통해 가수가 되거나 가수와 컬래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성의 힘』 공동 저자이자 스트래티직 호라이즌의 공동 창업자인 조셉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는 경험을 정의하는 네 가지 영역으로 오락, 교육, 미학, 현실 탈출을 이야기했다. 이 모든 영역이 현실의 기업들에 연결될 수 있다. 기존 비즈니스에 대한 한계를 만들어 두면 더 이상 미래 먹거리를 준비할 수 없다. 비전 웨어러블 기기가 우리 비즈니스에 어떤 분야에 어떻게 쓰일 수 있고, 이를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지금 기업들에 당장은 아니지만 현실화할 미래라 하겠다.

2. 소비자와의 끈을 만들어라

과거 잘나갔던 많은 기업이 사라진 이유가 단순하게 세상이 변했기 때문은 아니다. 사라진 기업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소비자의 변화를 등한시하고 소비자와의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구매하고 이용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라면 당연히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게 하기 위한 활동을 하게 마련이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내 소리를 내고 개선점을 알리는 소비자들을 무시하는 기업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우매한 군중이 아니다. 공급자는 한 분야에 전문가일 수 있으나 소비자들은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기업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다. 이런 소비자와의 끈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는 일을 최근에는 커뮤니티 마케팅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 명칭이 어찌 변했건 간에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목소리를 받을 창구가 지속적으로 운영되느냐’라 하겠다. 특히 비전 웨어러블 기기 산업은 아직 소비자들에게 개인화된 효용과 가치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이럴 때일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공유하고 소비자의 소리를 꾸준히 들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농심은 2023년 새해부터 서울 성수동에 신라면 분식점을 냈다. 이는 이전에 VR 분식집으로 만들었던 제페토 신라면 분식점을 현실 세계에 재현한 것으로 신라면 카페테리아 팝업 스토어 형태로 운영됐다. 소비자들은 가상 공간에서 미리 신라면을 만드는 경험을 해 본 다음 현실 속 팝업 스토어에서 매운맛 정도나 면발의 퍼진 정도, 건더기 수프 등을 선택해 직접 먹어보는 체험을 했다. 그리고 다양한 게임과 굿즈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면서 장수 제품이지만 새로운 제품 같은 체험을 한 것이다. 또한 신라면 제페토 큰사발을 한정판으로 출시해 새로운 세대의 입맛을 잡으려 했다.

이는 올드 비즈니스 기업들에는 자극을 줄 수 있는 이벤트다. 시대가 흐르고 소비자가 바뀌면 시장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고 선택지가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 소비자의 모습을 계속 살피고 그들의 목소리를 축적하는 기업들에는 여전히 신사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기업가정신이 별 게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지속하듯이 기업도 자신들이 잘하는 일을 변화시켜 가면서 그 소비자의 변화를 따라가며 지속하려는 정신이 아닌가. 비전 웨어러블 시대가 가까이 왔다. 이 시대의 고객 경험은 공급자가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발산하는 모든 이야기가 소비자의 모든 감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면에서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 산업은 이제 첫걸음을 뗀 아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기술의 고도화가 급속히 이뤄진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치를 정의하지 못하면 기술은 기술로서 삶을 마무리하고 말 것이다. 공급자나 소비자 모두 늦지 않았다. 고객 경험을 만드는 첫걸음이 어떤 것이든 간에 서로 연결된 끈을 잘 유지하는 것이 모두에게 밝은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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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험 전달의 창구’
앞서가기 위한 XR 활용법은?

발 빠른 기업들은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자신의 기업이나 브랜드에 적용해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 역시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와 기업과 소통하고 있다.

지금까지 온라인에서 주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전달하려면 팝업 스토어 같은 오프라인 공간을 활용해야 했다. 당연히 물리적인 거리나 시간의 문제, 소비자 접근성 문제 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허들을 넘어서게 해줄 대안으로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XR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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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된 사례이긴 하지만 2018년 혼다 아큐라는 AR을 통해서 다양한 환경에서 차를 운전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주행 시간 기록으로 경쟁하는 아큐라 라이브 스트리밍 AR 자동차 경주를 세계 최초로 주최한 적이 있다. 아큐라의 2018년형 TLX 세단을 탄 4명의 인플루언서가 AR 기술을 적용한 특수 헬멧을 쓰고 가상의 공간을 달렸다. 이는 페이스북을 통해 라이브로 중계됐다.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AR 경주의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하며 혼다 아큐라 브랜드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다.

이케아는 다양한 AR, VR을 통해 새로운 고객 경험을 지속 전달하고 있다. 특히 휴대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가상 가구를 구매하기 전에 집에 가구들을 다양하게 배치해 볼 수 있는 AR 앱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테이블 위에 달린 카메라와 프로젝터를 활용해 음식 재료의 성분이나 레서피를 제공하는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디지털 테이블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AR 기능들을 XR 비전 웨어러블 기기로 연결한다면 훨씬 사실적이고 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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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일 분야에서 이런 시도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아마존은 VR을 통해 온라인 스토어를 만들어 제공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2023년 5월에는 아마존 애니웨어(Amazon Anywhere)라는 서비스를 론칭해 고객이 게임이나 다양한 앱에서 온라인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도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노스페이스는 맥머도 제품을 알리면서 냉장고같이 추운 곳을 만들고 VR을 통해 남극을 경험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기아자동차는 AR 앱을 통해 쏘렌토를 비대면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신차 발표회도 가졌다.

이런 시도는 B2C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CJ 대한통운은 2023년 6월 곤지암 메가허브 터미널에 안전체험관을 열었다. 지게차, 컨베이어 벨트, 독 작업 등 물류센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상황을 연출하고, 이에 대처하는 훈련을 VR 기기를 통해 할 수 있다.

비전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B2C, B2B 영역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 다양한 활용을 예고하고 있다. 코스를 눈앞에 보면서 등산을 할 수 있고, 환자의 아픈 부분을 기기를 통해 보면서 더 안전하게 수술을 할 수도 있다. 건축 현장에서는 설계를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사람이 하기 어려운 작업 현장은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로봇이 연결돼 작업할 수도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자신들의 업에 적용하는 기업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가장 효과적인 영역을 선점하는 기업이 더욱 많은 기회, 그리고 소비자의 로열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조명광 | 디트리스 대표

    필자는 ㈜디트리스, ㈜코네이스 대표로 삼성카드 프리미엄 마케팅팀/브랜드팀, 현대캐피탈 고객전략팀, 신세계백화점 CRM팀 등을 거쳐 24년여간 마케팅 현업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마케팅, 브랜딩 관련 컨설팅, 강의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한양사이버대학원 마케팅MBA, 가톨릭대 융복합전공 겸임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저서로 『21일 마케팅』 『호모마케터스』 『마케팅 무작정 따라하기』 『잘 팔리는 팝업스토어의 19가지 법칙』이 있다.
    mike@dttre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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