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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와 ESS, 진정한 탄소중립을 위해선

전기차 배터리의 전기, 친환경 맞나?
非리튬계 배터리 ESS 시장이 뜬다

한신 | 371호 (2023년 0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배터리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줄 주요 기술로 각광받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배터리는 그 안에 담긴 전기만큼만 친환경적이다.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전기로 배터리를 충전한다면 진정한 탄소중립으로 볼 수 없다. ESS(대용량 저장 장치) 배터리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발전하고 남은 전기를 충전해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에 쓸 수 있게 하는 차세대 발전소다. 특히 바나듐플로배터리와 같은 신기술은 오랜 시간 충전한 전기를 쓸 수 있고 화재로부터 안전해 화석연료 발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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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모바일 기기에서 주로 사용됐던 배터리는 전기차 보급이 확산되면서 내연기관 엔진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 기여하는 주요 기술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전기차를 충전할 때 사용하는 전기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할 때 사용하는 전기는 여전히 대부분 석탄이나 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를 쓰는 대규모 발전소에서 온다. 전기차가 아무리 많이 보급되더라도 대규모 화석연료 발전소가 그 전기를 공급하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탄소중립은 아니다. 그저 각 개별 자동차의 내연기관 발전원이 휘발유나 경유, 천연가스에서 중앙집중식의 대규모 화석연료 발전원으로 대체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기차의 보급뿐만 아니라 전기차가 사용하는 전기까지 친환경적으로 생산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동차의 내연기관 엔진을 배터리가 대체하는 것처럼 대규모 석탄 및 천연가스 발전소의 발전기를 배터리가 대신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들어 발전소급의 대용량 에너지 저장 장치(ESS)를 통해 구현되기 시작했다. ESS 역시 충전에 필요한 전력을 어딘가에서 공급받아야 하지만, 이를 화석연료 발전이 아닌 신재생에너지 또는 원자력과 같은 친환경 에너지원으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어 전력 공급의 모든 과정을 탄소중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제 배터리는 휴대전화, 소형 가전, 그리고 전기차를 넘어 대규모 발전원으로 기능하는 시대가 열리며 새로운 역할과 위상을 갖게 됐다.


전력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을 해결할 열쇠

오늘날 탄소중립이 인류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첫 번째 해결책이 화석연료 발전을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대체하는 일인 것도 모두가 안다. 2023년 1월에 발표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지난해 8.9%에 그쳤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6년 무려 30.6%까지 확대하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내놨다. 이렇게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크게 늘리는 것은 화석연료 발전을 대체하는 효과적인 대안이지만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본질적인 속성인 간헐성과 변동성으로 인해 수요와 공급이 정확하게 일치해야 하는 전력 수급을 어렵게 만든다. 햇빛이 내리비추다가 금세 구름이 몰려와 잔뜩 흐려지기도 하고,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가 잔잔해지기 마련이다. 전기는 늘 부족하고 아껴 써야 한다고 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가 남아돌아 발전을 멈춰야 하는 일도 생겨난다.

제주도의 경우 이미 연간 전력 발전량의 18%를 신재생에너지가 담당하고 있고, 실시간 재생에너지의 전력 공급이 62%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특히 전력 소비가 적은 주말 낮 시간대에 신재생에너지 출력 제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출력 제한이란 전기가 과다하게 생산돼 전력 거래소가 특정 발전원에 전력 생산을 중단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 출력 제한은 풍력발전에서 처음 발생했다. 2015년 세 차례의 출력 제한이 있었고, 이후 출력 제한 횟수는 매년 큰 폭으로 늘어 2022년에는 132회로 수십 배 이상 증가했다. 풍력발전에서 시작된 출력 제한은 태양광발전으로 대폭 확대됐고, 지역적으로는 제주도를 시작으로 태양광이 밀집한 호남 지역에까지 퍼졌다. 올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의 증가로 인해 특히 태양광발전의 발전 효율이 높지만 전반적인 전력 수요가 낮은 봄철에 기저 발전인 원자력발전에 대한 출력 제한까지도 이뤄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즉, 정부 차원에서는 기저 발전인 원자력발전의 출력 감발1 을 하거나, 다수의 태양광발전을 출력 제한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간의 태양광발전 사업자로서는 전력 거래소로부터 출력 제한을 받더라도 이에 따른 별도의 보상은 받지 못한다. 정부가 앞장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을 장려해 놓고 전기가 남아돌아 사줄 수 없으니 발전을 멈추라고 하면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태양광발전의 출력 제한 대신 발전 공기업이 운영하는 원자력발전의 출력 감발을 선택하는 것은 불특정 다수의 민간 태양광발전 사업자로부터의 민원은 회피할 수 있지만 출력 감발을 고려해 설계하지 않은 국내 원자력발전의 특성으로 인해 발전소 운영 효율 저하 및 설비 수명 감소의 부담을 안고 가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에 따른 출력 불균형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2020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와 2021년 2월 텍사스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정전 사태 역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간헐성이 원인으로 꼽힌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재생에너지가 보급된 지역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및 기록적인 한파로 인해 전기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나 재생에너지가 발전한 전기 공급량이 이 수요를 뒷받침해주지 못해 재난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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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발전량이 많은 낮 시간대는 전기가 남아돌아 출력 제한이 발생하지만 낮 시간대를 전후한 전력 피크 시간대에는 오히려 천연가스 발전으로 전력을 보충해야 한다. (그림 1)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값비싼 신재생에너지를 버린 직후 다시 온실가스(특히 메탄가스)가 배출되는 천연가스 발전소를 가동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모순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천연가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아진 상황에서는 천연가스 발전에 의한 피크 대응은 경제성 측면에서도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력 사용이 공급 능력의 최고치에 이르는 ‘첨두부하(peak load)’ 때 천연가스 발전소의 역할을 대체하고 신재생에너지의 출력 제한을 해소할 수 있는 친환경 기술로 발전용 ESS가 가장 적합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차세대 발전소로서의 ESS

기본적으로 ESS는 직접 전력을 생산할 수는 없고, 신재생에너지든 화석연료든 다른 발전원이 생산한 전력을 저장한 뒤 다시 꺼내서 사용하는 기술이다. 일종의 커다란 배터리인 셈이다. 이 때문에 ESS가 과연 발전소라고 불리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매우 오랜 역사를 가졌고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ESS에 발전소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바로 양수발전소다. 양수발전소는 잉여 전력이 발생했을 때 펌프를 이용해 상부 저수지로 물을 끌어 올리고, 다시 전력이 필요한 시점에 상부 저수지의 물을 하부 저수지로 옮기면서 터빈을 돌려 발전을 한다. 배터리와 같이 전기화학적 반응이 아닌 중력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전력을 저장하는 전형적인 ESS의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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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직접 전력을 생산하지 않는 양수발전 설비를 발전소라고 지칭해 온 이유는 전력 수급을 조절하는 입장에서는 전력 설비가 대규모의 전력을 공급할 수만 있다면 그 전력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화석연료 발전소 역시 석탄 또는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ESS는 전기에너지를 시간차를 두고 다시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이므로 큰 의미에서 모두 발전의 범주에 포함된다. 국내에서는 원자력, 석탄 화력, 천연가스와 같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대규모 발전소는 전력 거래소가 중앙집중식으로 운영하고 있고, 이를 중앙 급전 발전기라고 부른다. 전력 거래소의 전력 시장 운영 규칙에 의하면 일반적인 중앙 급전 발전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설비 용량이 20㎿를 초과해야 한다. ESS의 경우 2017년 전력 시장 운영 규칙의 개정을 통해 중앙 급전 발전기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최대 방전 용량이 10㎿를 초과하고 최대 운전 시간이 2시간 이상인 설비부터 중앙 급전 발전기로 등록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와 같은 법 규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에 설치된 중앙 급전 방식의 ESS는 한 대도 없다. 국내에 설치된 모든 ESS는 개별 소유자들이 운영하는 비중앙 급전 방식 발전기에 해당한다. 국내에 중앙 급전 방식의 ESS가 아직 없는 것은 그간 적합한 대용량 ESS 기술의 부재, 전력 시장에서의 시급성 불충분, 관련 운영 규칙의 부재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다행히 2023년 1월에 발표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올해 제주도부터 중앙 급전 ESS가 국내에 도입될 예정이어서 본격적인 ESS 발전기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SS가 대안이 되려면

배터리 방식의 ESS 발전소가 필요로 하는 조건들은 일반적인 화석연료 방식의 발전소가 필요로 하는 특성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발전용 ESS는 수십~수백 ㎿ 출력의 석탄 화력 또는 천연가스 발전소를 대체해야 하므로 그 출력을 이와 같은 고출력으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발전소는 1~2시간의 발전 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수 시간에서 수십 시간까지 연속 발전이 가능해야 하므로 대용량의 에너지 용량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정격 출력으로 4시간 이상 방전이 가능한 ESS를 장주기(long-duration)라고 부르고 4시간 이하의 것을 단주기(short-duration)라고 부른다. 발전용 ESS는 긴 발전 시간이 필요한 발전소의 특성상 전형적인 장주기 ESS를 필요로 한다. 배터리 방식의 발전용 ESS가 우선적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발전 분야는 천연가스 발전이 될 것이다. 천연가스 발전의 경우 화석연료 발전 중 발전 단가가 가장 높기 때문에 ESS로 대체 시 경제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도 가장 유리하다.

석탄 화력 또는 천연가스 발전과 같은 일반적인 화석연료 발전소의 평균수명은 40~50년이다. 일반적인 신재생에너지의 평균수명은 20~30년이다. 따라서 발전용 ESS 역시 이러한 수명과 수준을 맞춰 운영할 수 있도록 긴 수명을 가져야 경제성을 가질 수 있고, 전력 수급 계획을 세우기에도 용이하다. ESS 운영 기간 동안 방전 용량의 감소 없이 균일한 발전량이 보증되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처음에는 대용량 발전을 약속해 놓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량이 급감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발전용 ESS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발전소에 대한 전력 구매 계약이 15~20년간의 장기간에 걸쳐 일정한 계약 용량을 보장하는 것으로 체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 4월 리튬이온배터리의 화재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ESS 보증수명제’를 도입했는데 이에 따라 배터리 제조사는 전력을 공급하기로 한 기간 동안 배터리가 균일한 에너지 용량을 내도록 보증해야 한다.

또 발전소로서 ESS는 전력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충·방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리튬 이온배터리는 완전 충전 또는 완전 방전에 근접한 용량에서 사용하면 배터리 수명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 사용하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뒤 배터리 수명이 급격히 줄어든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플로배터리는 수명의 저하 없이 충·방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바나듐플로배터리와 철-크롬 플로배터리가 대표적인 장수명 배터리 기술로 꼽힌다.

어떤 발전소든 한 번 지으면 대개 수십 년을 운영하는 만큼 ESS 발전도 마찬가지로 초기 투자비뿐만 아니라 운영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화석연료나 원자력으로 만드는 전기가 훨씬 저렴하겠지만 점차 발전소용 ESS 배터리의 기술 개발과 규모의 경제를 통해 ESS 발전 전기 단가도 낮아질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신재생에너지의 설비 비용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만큼 ESS에 담게 될 잉여 신재생에너지 전력 단가도 매우 저렴해져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를 발전소로 쓴다고 할 때 일반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아마 화재로부터의 안전성일 것이다. 발전소로서의 ESS는 높은 수준의 안전성과 친환경성이 확보돼야 한다. 최첨단 기술은 아니지만 양수발전이 특별한 문제 없이 오랜 기간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화재로부터 안전하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배터리 내부에 유기계의 전해액을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화재로부터 안전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아예 물과 같은 성질의 전해액을 사용하는 것이다. 바나듐플로배터리 역시 물과 같은 성질의 전해액을 사용하고 있어 화재 우려가 없다.


국내외 ESS 시장의 현재와 미래

미국과 같이 신재생에너지가 많이 보급된 선진국들은 이미 ESS를 활용해 전통적인 발전소들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미국 내에서도 신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의 보급량이 1위인 캘리포니아는 2020년에 세계 최초 및 세계 최대 규모의 발전소급 ESS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북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8개의 지역발전 사업자들이 공동 구매 형태로 500㎿/4GWh의 ESS 사업을 공고했는데 이는 방전 시간이 8시간인 전형적인 장주기 ESS로, 매년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내 천연가스 발전소를 대체하는 것이 이 사업의 주목적이다.

북부 캘리포니아는 2020년 8월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한 전력 부족으로 수일간 순환 정전 사태를 겪은 적이 있는데 이때의 뼈아픈 경험으로 전 세계에서 장주기 ESS 도입에 가장 앞선 곳이 됐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또 2021년 6월, 8시간 이상의 방전이 가능한 1GW 규모의 장주기 ESS를 2026년까지 도입할 것을 선언하면서 이를 위해 총 3억8000만 달러 규모의 장주기 ESS 분야 보조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이 보조금은 비(非)리튬계 ESS 기술만 받을 수 있도록 해 이제 막 상업화 단계로 접어든 다양한 비리튬계 ESS 기술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했다.

국내 플로배터리 1위 기업인 에이치투는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캘리포니아 ESS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발전 공기업인 한국동서발전과 함께 완공 시 미국 최대 규모가 될 20㎿h 규모의 플로배터리 발전소 프로젝트를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미국 내 최대 규모인 일본 쓰미토모전기의 8㎿h 플로배터리 대비 2.5배 규모로 2024년 완공되면 향후 본격적인 미국 진출 시 중요한 트랙레코드가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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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탄소중립에 동참을 선언한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장주기 ESS 도입을 매우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은 태양광과 연계한 중소 규모의 단주기 ESS가 위주였지만 최근에는 발전소급 장주기 ESS 위주의 사업이 많아졌고, 크게 발전 사업자와 송배전 사업자의 두 가지 영역에서 추진되고 있다. 먼저, 발전 사업자가 주로 참여하게 될 중앙 급전 장주기 ESS 사업은 정부가 올해 초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밝힌 2036년까지 22.6GW의 장주기 ESS 도입 계획이 그 핵심 원동력이다. 특히 현재 신재생에너지의 출력 제한으로 인해 도입이 매우 시급한 제주도 지역에 대한 총 160㎿의 장주기 ESS 도입이 향후 3년간 이뤄질 예정이어서 국내 장주기 ESS 시장의 본격적인 개화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장주기 ESS 도입부터는 기존에 리튬이온배터리 일색이었던 ESS가 다양한 기술이 포함된 ‘ESS 믹스’ 형태로 전개될 예정이다. 다만 ESS 믹스의 추진이 자칫 외산 ESS 기술의 잔치로 전락해 국내 장주기 ESS 산업 육성과 수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플로배터리 ESS는 장주기 ESS 기술 중 이미 상업화 단계로 접어들었고, 또한 국내 산업 생태계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돼 높은 수준의 국산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볼 때 향후 국내 중앙 급전 장주기 ESS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발전소급 장주기 ESS 시장의 두 번째 축인 송배전 사업자(한국전력)도 세계 최대 규모인 8.2GW의 해상풍력 발전소가 들어서는 서남해 지역을 위한 장주기 ESS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한전은 대규모 해상풍력의 도입에 따른 인근 송배전망의 병목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 가용한 세 가지 주요 ESS 기술인 리튬이온배터리, 바나듐플로배터리, 나트륨황배터리 도입을 검토하고 있음을 2021년 발표한 바 있다.

에이치투는 상용화된 장주기 ESS 기술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2 에이치투는 지난달 세계적인 규모에 해당하는 연간 생산 능력 330㎿h 규모의 플로배터리 전용 생산 공장을 충남 계룡시에 준공해 본격적인 국내외 장주기 ESS 시장에 자체 기술로 개발한 고유의 플로배터리 ESS인 에너플로(EnerFLOW)를 공급할 준비를 마쳤다. 에이치투는 현재까지 총 562억 원을 투자받았는데 총투자액 중 400억 원 이상이 벤처 투자의 빙하기였던 지난 2년간 이뤄졌다. 이러한 투자금의 대부분이 기후 기술과 ESG 관련 자금이라는 점은 플로배터리가 갖는 기후 기술로서의 중요성을 대변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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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신기술 시장 확대를 위한 정책 필요성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고 전기차에 매우 적합한 리튬이온배터리와 달리 대용량, 장주기, 장수명, 안전성 등이 요구되는 발전용 ESS 분야는 전혀 다른 에너지 시장인 만큼 새로운 방식의 비리튬계 배터리 기술이 요구된다. 새로운 배터리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이에 맞는 육성 제도와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정부가 지난 1월에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무려 22.6GW의 장주기 ESS를 2036년까지 도입하겠다고 명시한 것은 탄소중립과 이를 통한 에너지 신산업 육성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까지만 해도 장주기 ESS라는 단어가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는데 이번 제10차 계획부터는 장주기 ESS라는 구체적인 에너지 신산업 기술 분야와 향후 도입 규모까지 정확히 숫자로 제시된 것이다. 이러한 명확한 시장 규모를 정책적으로 제시한 것은 민간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 및 시장 진입에 매우 좋은 여건을 마련해 준다. 이와 더불어 기존 제도 및 정책과 달리 이번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ESS 구현을 위한 기술을 비리튬계 배터리를 포함한 다양한 신기술의 가능성을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신재생에너지 및 ESS 분야에서 가장 선도적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이미 지난 2021년 발표한 주정부 차원의 1GW 장주기 ESS 도입 법안에서 비리튬계 ESS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국내의 배터리 기술 다변화 움직임은 다소 늦은 감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의 장주기 ESS 도입 계획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 결코 작은 규모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선도적인 정책 추진이 국내 에너지 신산업 육성과 수출 증대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 추진 과정에서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배터리 기술이 시장에 적극 도입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리튬이온배터리에만 국한됐던 국내 관련 제도와 정책들을 신속히 정비해 비리튬계 배터리를 이용한 국내 발전용 ESS 시장이 육성되고 이를 통해 전 세계 장주기 ESS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도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이고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길고 거대한 과정 속에서 국내 에너지 신산업이 성장하고, 또한 새로운 기후 기술 기업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 한신 | 에이치투(H2) 대표

    한신 대표는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매디슨에서 석사 학위를, KAIST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 국내 최초의 바나듐플로배터리(VRFB) 기술 벤처기업인 에이치투를 설립해 6개국에 총 31㎿h 규모의 상업용 VRFB ESS 사업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신기술실용화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했고, 올해 미국 클린테크(Cleantech)그룹이 선정한 ‘APAC 클린테크 25’ 기업에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APAC 클린테크 25’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설립한 벤처 투자 기관 ADB벤처스가 후원하는 저명한 기후 기술 관련 상이다.
    shinhan@h2ae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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