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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동남아 넘어 글로벌 허브가 된 싱가포르

글로벌 경쟁 – 고용 유연성 ‘양날의 검’
초기 진입 비용 줄이고 성과에 초점을

권혁태 | 366호 (2023년 0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다이슨, 텐센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거점을 마련하게 된 데는 장기간 우수 기업 유치와 육성에 힘써온 싱가포르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싱가포르는 미·중 관계에서 중립적 노선을 택하는 등 국제 관계에서 안정적이며 다양한 나라와 FTA를 체결해 자유로운 글로벌 활동을 전개하기에도 유리하다. 첨단 기술 및 인재를 육성해 개방형 혁신을 도모하기에도 적합하다. 최근에는 파격적인 면세 혜택으로 패밀리 오피스들의 허브로 자리 잡으며 막대한 자금이 몰리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 정책상 제조, 식량, 친환경 기술 등의 기업이 진출하기에 적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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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경제 안보가 화두가 됐다. 미국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 대한 대중국 제재를 강화한다는 소식들도 전해온다. 대한민국의 제1위 교역국, 중국 경제의 성장 모멘텀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기업들의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이 내수 강화를 목적으로 제공하는 보조금 정책과 다양한 국산 제품 장려 정책에 중국 시장에서 1·2위를 다투던 한국산 제품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최근 10년 사이 시장점유율이 한 자릿수까지 추락하고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2013년 중국 시장 1위(점유율 19.7%)였지만 2021년엔 점유율 0.6%로 10위에 턱걸이했다. 같은 기간 삼성 TV는 6위(7.1%)에서 9위(4.1%), LG전자 OLED TV는 1위(94.2%)에서 4위(6.1%)로 밀려났다. 3위를 지켰던 현대·기아차는 아예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불안정한 거시경제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 재정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된 많은 기업이 ‘구매원 이원화(Dual Sourcing)’ 또는 다원화를 고민하게 됐다. 특히 동남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 집중돼 있던 국내 기업의 생산 기지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이동하고 있다. 소비 시장으로서도 동남아는 향후 10년간 중산층 소득 향상이 예상돼 한국 기업에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점쳐진다.

비단 한국 기업만이 아니라. P&G, 다이슨, 텐센트 등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도 동남아로 본사를 이전하거나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특히 싱가포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유치하고 육성하기 위해 오랜 기간 공을 들여왔다. 쾌적한 경영 환경을 제공하며 다른 동남아 국가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되는 곳이 바로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정부와 싱가포르로 발길을 돌린 다국적 기업들의 전략을 알아보고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공유하고자 한다.


글로벌 허브로 성장한 싱가포르

1. 싱가포르의 중립 노선 외교 정책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해 탄생한 국가로 비동맹 중립 노선의 외교 정책을 채택해왔다. 이를 통해 미·중 간 대립보다는 전략적 신뢰를 바탕으로 미·중 세력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 자국의 성장과 동남아 발전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2. 안정적인 국정 운영 능력

싱가포르는 동남아에서 안정적인 정치 환경을 갖춘 국가 중 하나로도 평가받는다. 싱가포르는 단일당 체제로 보수주의 정당인 인민행동당이 국회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야당으로 싱가포르 노동자당, 싱가포르 민주당, 싱가포르 민주연합 등 많은 정당이 있으나 여당의 장기 집권과 강력한 정권의 힘으로 존재가 미미하다. 정치적 불안을 예방하고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다.

싱가포르의 안정적인 정치 환경은 투자와 경제 성장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경제자유지수와 경제성장률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의 아시아 지역 본부로 자리 잡은 지도 오래다. 다양한 국제기구의 회의와 회담을 주최하고 국제적으로 중요한 회의 장소로 채택되는 등 국제사회에서 큰 신뢰를 얻고 있다.

3. 경영 환경과 인재 육성

싱가포르는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서 높은 수준의 경영 환경을 제공한다. 그 배경에는 경쟁력 있는 세금 제도가 있다. 싱가포르 법인세는 17%로 한국에 비해 최대 8%가량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싱가포르에 법인을 설립할 때 현지인 채용 인건비, 시설·장비 관련 비용, 회계·법률 등 전문 서비스 비용, 지적재산권 관련 비용 등을 일정 비율까지 지원한다.

싱가포르는 고소득 근로자를 대상으로 세금 혜택과 같은 경제적인 유인책을 제공하기도 한다. 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하며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액 자산가들도 기부, 증여, 상속, 소유 재산, 시세 차익, 배당에 대한 세금이 없어 사업을 하는 데 매력적인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수한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기에도 유리하다. 싱가포르에는 6개의 국립대학, 미국의 예일대와 싱가포르국립대가 제휴해 설립한 예일-NUS대(Yale-NUS College) 등 30여 개의 사립대학이 있다. 이 중 싱가포르국립대와 난양공대는 세계 대학 평가에서 아시아 1, 2위로 평가받을 정도로 경쟁력이 높고 취업률 역시 90% 내외로 매우 높은 편이다.

4. 국가들 간 경제협력과 자유무역협정의 허브

싱가포르는 여러 국가와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무역 및 경제협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중국 FTA, 싱가포르-일본 FTA, 싱가포르-인도 FTA 등이 있다. 국제기구를 통해 다자 간 FTA도 체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1 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2 이 있다. 이는 브렉시트 이후 많은 영국 기업이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기는 발판을 제공했다. 영국이 EU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과 별도의 관세 협상을 하는 동안 싱가포르는 이미 EU와 FTA가 체결돼 있었기 때문에 이로부터 자유롭다. 실제로 영국의 가전제품 제조회사 다이슨은 2019년 1월 본사의 싱가포르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다이슨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필리핀에 생산 공장을 뒀으며 2019년 1월 기준 싱가포르 직원 수는 1100명으로 연구 및 운영 부문 규모를 앞으로도 확장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5. 제조업 장려

싱가포르 통상산업부(MTI)에 따르면 제조업이 2018년 싱가포르 국내총생산(GDP)의 21.4%를 차지했다.3 싱가포르 제조업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성장한 싱가포르 경제의 핵심 산업 중 하나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뛰어난 인프라를 바탕으로 산업변혁지도(Industry Transformation Maps)4 와 같은 4차 산업혁명 중심의 과감한 규제 개혁을 꾀하며 제조업 육성에 노력하고 있다. 싱가포르경제개발청(EDB)의 키렌 쿠마르(Kiren Kumar) 부청장은 “로봇과 자동화 등 싱가포르 제조업계에 첨단 기술의 활발한 도입이 다이슨의 이전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제조업의 원동력은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이 아니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와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한 높은 접근성과 더불어 과감한 정부 지원으로 프리미엄 제품을 만드는 제조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6. 사업가처럼 일하는 싱가포르 정부 관료

싱가포르 정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비재 기업 중 하나인 P&G(Procter & Gamble)의 사업을 분석해 ‘P&G가 싱가포르에 있는 다양한 혁신 기술과 합하면 좋은 결과물도 만들고 신시장 개척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보냈다. 실제 P&G는 2022년 글로벌 스킨, 코스메틱, 케어 부문 본사를 미국 신시내티에서 싱가포르로 이전했다.

2022년 대외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주요 선진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정책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과 싱가포르는 방대한 현금 지원으로 해외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현금 지원은 특히 규모와 익명성으로 유명하다.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 기업에 ‘왜 한국 대신 싱가포르로 갔느냐’고 물었는데 ‘공개되지 않은 지원을 정말 많이 받았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5

P&G의 사례처럼 싱가포르는 정부가 먼저 ‘기업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기도 한다. 싱가포르는 P&G의 투자를 유치한 이후에도 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기업이 원하는 전문가를 정부 주도로 육성하거나 유치했다. 기업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대학 커리큘럼도 바꿀 정도다. 수도권 공대 인원 증설도 쉽지 않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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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로 향하는 글로벌 기업들

이처럼 정부 주도하에 쾌적한 경영 환경을 조성한 싱가포르로 눈을 돌리는 기업은 다이슨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싱가포르에 대한 투자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노피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백신 공급을 늘리기 위해 싱가포르 투아스파크에 4억 유로(5600억 원) 규모의 백신 생산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 시설은 백신 종류에 관계 없이 최대 4개의 백신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디지털화된 모듈로 구성될 예정이다. 그간 싱가포르에는 영국의 제약사 GSK가 유일하게 백신 공장을 갖고 있었었는데 작년 4월 사노비의 백신 공장 설립 발표와 함께 그해 5월 독일 바이오엔텍(BioNTech)이 싱가포르에 완전 자동화 mRNA 백신 생산 공장을 두기로 발표했다. 아시아 1위 제약사 일본의 다케다 또한 자사의 싱가포르 바이오 공장 옆에 1400만 달러를 들여 추가로 연구실과 사무실 공간 등을 구축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에 따르면 화이자, 노바티스, 애브비, 암젠 등의 글로벌 제약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생산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30년간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의 규제기관 실사에서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의 진출만 가속화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중국 IT 기업들의 피난처로도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관련 기업들이 미국, 유럽, 인도 등에서 잇달아 퇴출 압박을 받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고 IT가 발달한 싱가포르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메신저 앱 위챗의 모회사인 텐센트는 싱가포르에 동남아 지역 허브를 설치하고 게임 등 일부 사업군을 아예 싱가포르로 이전했다. 동영상 공유 앱인 틱톡의 모기업인 바이트댄스 역시 싱가포르 법인을 동남아뿐 아니라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하고 있다. 핵심 엔지니어들은 싱가포르로 자리를 옮겼으며 결제 서비스와 전자상거래 등 사업을 위해 200명 이상을 채용했다.


벤처와 금융 혁신

이처럼 다국적 기업들뿐만이 아니라 스타트업의 진출도 가속화되고 있다. 자금 조달이 이뤄지고 좋은 투자 기회를 위해 자금이 더욱 몰리며 금융 서비스가 고도화되는 등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2022년 싱가포르의 벤처캐피털(VC) 투자는 총 651건이고 한화로 12조 원 이상의 투자가 집행됐다. 동남아시아 내의 모든 VC 투자 거래의 56%를 차지할 정도다.

금융의 혁신은 게임 체인저급으로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2020년 시행한 가변자본기업(VCC, Variable Capital Companies) 제도는 펀드 운용 회사의 설립과 운용 비용 조건을 낮추고 과감한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과거 룩셈부르크와 아일랜드, 케이맨제도에서 얻을 수 있던 혜택을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옮겨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펀드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는 VCC 제도는 시행 1년 만에 160개의 VCC가 설립되는 효과를 거뒀다.

전 세계 부호들의 자산 역시 싱가포르로 몰리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아시아 자산가 유치를 넘어 전 세계적인 부호의 패밀리오피스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부의 계승과 보존을 위해 많은 부를 축적한 설립자 가문에서는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한다. 패밀리오피스는 크게 싱글 패밀리오피스와 멀티 패밀리오피스로 나뉜다. 싱글 패밀리오피스는 한 자산가에게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한 자산가와 그 가족에게 최적화된 자산 관리, 투자, 승계 계획 수립 및 실행, 신탁 자산 관리, 위험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멀티 패밀리오피스는 여러 자산가의 자산 관리를 목적으로 여러 자산가를 유치해 운영하는 형태이다. 이들은 여러 자산가의 자산을 총괄해서 관리하며 자산가들 간에 정보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최근 싱가포르에는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 세계적인 투자자이자 헤지펀드 대가인 레이 달리오와 같은 글로벌 거물급 자산가들의 패밀리오피스 설립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사례가 있다.

이처럼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싱가포르에 주목하는 이유 역시 낮은 세금, 우수한 치안, 패밀리오피스 유치를 위한 현지 정부의 인센티브 등 기업 친화적인 제도 때문이다. 팬데믹과 저금리, 저성장 등 또한 패밀리오피스 설립 붐을 촉진했다. 유동성이 풍부한 경제 환경에서 자산 운용에 한계를 느낀 부호들과 상속을 위한 대책을 필요로 하는 자산가들의 수요가 싱가포르로 몰리는 것이다.

한편 싱가포르와 경쟁적 위치에 있는 다른 금융 중심지인 홍콩은 중국의 새 보안법 이슈 여파로 인해 부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강행으로 격화된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홍콩 통제 강화와 미·중 갈등 심화를 우려한 일부 운용 회사들은 이미 싱가포르로 자산을 옮겼다.

싱가포르 패밀리오피스는 최소 200억 원 이상의 자산을 관리하며 2022년부터는 10% 이상을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나 싱가포르 회사에 투자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싱가포르에 몰린 자금들이 싱가포르 상장사와 비상장사에 더욱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기업의 싱가포르 진출

2023년 4월부터, ‘현대자동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 센터(Hyundai Motor Group Innovation Center in Singapore, 이하 HMGICS)’가 본격 가동한다. HMGICS는 혁신적인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하는 개방형 연구 기지로 차량 주문부터 생산과 차량 인도, 시승과 각종 서비스 등 모빌리티와 관련한 핵심 기술들을 연구한다. 싱가포르 서부 주롱 산업단지에 들어선 약 3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부지 4만4000㎡(약 1만3000평), 연면적 9만㎡(2만7000평), 지상 7층 규모로 세워졌다. 아이오닉 5를 시작으로 연간 약 3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건물 옥상에는 고속 주행이 가능한 총길이 620m의 고객 시승용 ‘스카이 트랙’,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이착륙장, 친환경 에너지 생산을 위한 태양광 패널 등이 설치된다. 건물 외부는 유니크한 디자인에 다양한 기능을 더해 싱가포르 도심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각인될 것이다.

현대차가 싱가포르에 HMGICS를 구축하는 이유는 동남아의 물류와 금융, 비즈니스 허브로서 강점을 활용하고 개방형 혁신을 도모하기에 최적의 입지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 트렌드에 대한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새로운 문화에 개방적이며 IT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높아 동남아 내에서 최고의 신기술 테스트베드로 평가받는다. 현대차그룹은 HMGICS를 통해 싱가포르 현지 대학, 스타트업, 연구기관 등과 긴밀한 협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세계 유수의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난양공대(NTU) 등과 공동 연구소를 운영하고 미래 신산업 분야 산학 과제도 수행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아세안 자동차 시장은 현지 생산 체제를 이미 구축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차종이 시장점유율 78% 이상을 차지한 독과점 상황이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2040년까지 내연기관차 0%를 목표로 최근 전기차 보조금을 약 2000만 원까지 지급하고 현재 160개 수준인 충전 인프라를 2030년까지 2만800개 확보하겠다는 등 각종 전기차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HMGICS는 미래의 모빌리티 전초기지로서 동남아 전기차 신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싱가포르 시장과 정책의 안정성, 기업 친화적 정책, 우수한 인적자원, 자유로운 무역 환경 등을 토대로 사업을 펼쳐나갈 기회는 전기차 시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재 싱가포르 정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어떤 기회들을 활용할 수 있을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조업 현재 제조업은 싱가포르 경제의 20% 수준을 차지하고 있고 통상산업부는 2030년까지 제조업을 50% 성장시키려는 중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 그 일환으로 최고의 글로벌 기업 유치, 첨단 제조 분야에서의 규모 역량 강화, 산학 협력 등을 도모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도 주목해볼 만하다.

농업 및 식량 기업 싱가포르식품청은 첨단 기술을 적용해 생산성 및 자원 효율성이 높은 농식품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목표로 국내 영양소 요구량의 30%를 충족하고자 하는 국가 식량 안보 전략으로 현지 식량 생산력 확대가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곡류 기반 비유제품, 간편식, 식물성 식품, 대체육, 배양육 등의 대체식량 생산 및 판매 분야가 유망하게 떠오르며 싱가포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싱가포르는 식량의 90% 이상을 수입하므로 높은 식량 대외 의존도를 줄이는 것 역시 시급한 문제다. 식량 생산이 가능한 면적은 싱가포르 토지 면적의 1% 미만에 불과해 농지를 위로 쌓을 수 있는 실내 수직 스마트팜 수요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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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기술 기업 싱가포르 정부 역시 친환경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신재생 에너지 확대, 빌딩 에너지 효율화, 저탄소 스마트 시티 구현 등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다. 탄소 배출 절감, 친환경 모빌리티, 녹색금융, 식량 안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안선 관리 기술, 쓰레기 절감과 처리 기술 등도 유망한 기술로 꼽히고 있다. 특히 2040년까지 내연기관 차량을 전부 퇴출시킬 예정인데 싱가포르의 차량 등록 인증제도가 10년 단위로 운영되기에 2030년부터는 모든 신차가 청정에너지로 작동해야 한다. 2025년부터는 디젤 자동차 및 택시 판매가 중단되기 때문에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친환경 차량 시장과 관련 산업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정부 정책을 기반으로 친환경 건설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관련 기술력을 가진 기업에 기회가 있다. ‘육상 교통 마스터 플랜 2040’에 따라 싱가포르 내 교통 시스템에 대한 지속적인 건설 및 관련 조달 프로젝트 또한 계속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트위터, 애플, 넷플릭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등 많은 글로벌 IT 기업이 동남아 시장 진출의 전략 거점으로 싱가포르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5G망 도입과 디지털 트윈,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신기술로 도시 국가를 운영하며 건강, 주거, 교통, 에너지 등을 시민들이 직접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마트네이션 정책으로 국가 전체의 디지털화가 촉진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가 활성화되며 사이버 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져 보안 기업의 수요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패밀리오피스 한국의 베이비붐세대의 은퇴가 2021년부터 가속화된 만큼 패밀리오피스의 지속성과 신성장 동력에 대한 니즈가 확대되고 있다. 패밀리오피스의 영속성과 글로벌 진출들을 고려하는 기업들은 싱가포르를 전초기지로 고려해 보길 추천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 내에서 설립한 패밀리오피스가 관리하는 국내외 투자 기구와 펀드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패밀리오피스에서 발생한 거의 대부분의 투자 이익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준다. 기존의 단순한 자산 관리를 넘어 가업 승계, 사회공헌, 문화예술 영역으로 확장해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고 동남아 진출을 기반으로 글로벌 유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싱가포르 시장이 주는 기회를 잡고자 할 때 유의해야 할 점들도 있다. 비교적 작은 내수 시장과 규모, 높은 물가,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 글로벌 기업 간 경쟁 등이다. 다국적 기업과 글로벌 자금의 진입으로 비용이 상승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초기 진입 비용을 줄이고 투자 대비 성과를 극대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또한 싱가포르 노동시장은 매우 유연해 이직률이 높아 핵심 인재들을 채용하고 고용을 유지하기 어렵다. 물론 고용과 해고가 유연한 점은 기업이 활용하기 나름이다. 이처럼 우수한 현지 인력 채용과 유지에 노력이 필요하고 엄격한 규제와 노동법에 어긋나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

2011년 필자가 처음 싱가포르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할 때만 해도 싱가포르는 홍콩이나 도쿄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은 오피스에 불과했고 숙련된 시니어 인력도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금융시장과 거래 규모 면에서도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작았고 이웃한 중국 역시 호황기였다.

싱가포르에서 자산운용사를 운영한 지 5년 차에 접어드는 2023년 현재는 10여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의 수준이다. 정부가 오랜 기간 발전을 위해 준비했던 정책들이 홍콩 시위 사태, 중국 봉쇄, 미·중 갈등 등 각종 국제적 리스크와 만나며 잠재력을 터뜨린 것이다. 현재로선 글로벌 시장에서 싱가포르만 한 대안이 없어 한동안 이런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지금, 싱가포르에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 권혁태 | 권혁태 파인벤처파트너스 대표

    필자는 캐나다 퀸즈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골드만삭스 일본 및 싱가포르 오피스에서 일했다. 이후 싱가포르 금융통화청(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에 등록된 금융 투자회사인 파인벤처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시장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스타트업이 있는 동남아, 미국, 중국, 한국 회사들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며 글로벌 진출을 돕고 있다.
    ht@pinev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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