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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고피자’ 사례로 본 동남아-인도 진출 전략

현지인 전문가 발굴하고 진심으로 소통
‘K-프리미엄’ 활용 가능한 지금이 진출 적기

임재원 | 366호 (2023년 0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유니콘을 꿈꾸는 오프라인, 소비재 기반의 스타트업이라면 글로벌 진출은 필수다. 국내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는 데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 등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시장은 규제가 엄격하고 상당한 실력자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동남아, 인도 등 아직은 개척의 여지가 남은 시장이 글로벌 진출의 첫발로 적합한 이유다. 특히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동남아에서 ‘엄친아’ 같은 입지를 자랑하는 싱가포르 시장에서의 성공은 다른 동남아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인도 시장에서는 불편한 교통과 인도인 특유의 느긋함으로 빠른 확장이 어렵다.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스타트업이라면 사전에 완벽하게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현지에 먼저 나가보고 분위기를 익혀야 한다. 현지 문화와 산업에 잔뼈가 굵은 현지 전문가를 영입하고 이들이 책임감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속감을 심어주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사진_1._왼쪽


인도에 처음 갔을 때 겪은 문화적 충격을 잊을 수 없다. TV나 인터넷에서 익히 봤듯 도로에는 사람과 자동차, 오토바이, 그리고 소들이 신호등이나 차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뒤엉켜 있었다. 전기나 상하수도 시설도 없이 발전기를 사용하거나 물을 길어다 쓰는 사람도 태반이었다. 하지만 진짜 충격을 받은 이유는 이처럼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본 익숙한 그림 바로 건너편에 존재하는 ‘문명’이었다. 스타벅스, 벤츠 전시장, 롤렉스 매장이 한국에서보다 더 큰 위용을 자랑했고 매장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여태까지 살면서 봤던 것보다 세상의 스펙트럼은 훨씬 더 넓고 인간사의 다양함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가 정말 좁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다른 세상 가운데 서서 아직 많은 사람이 많이 접하지 못한 인도를 내가 먼저 본 것이라면 분명 기회가 있겠다고, 그렇다면 그 기회를 빨리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고피자는 국내 매장이 불과 20여 개이던 2019년, 그렇게 첫 해외시장인 인도로 진출했다. 인도 진출 경험을 바탕으로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해 현재 해외에만 약 50개 매장을 두고 있다. 2023년에는 해외 매장 100호점, 국내 매장 200호점으로 전 세계 매장 총 300호점 돌파를 목표하고 있다. 최근 국내 시장의 작은 규모에 한계를 느껴 거리적, 문화적으로 가깝다고 여겨지는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다. 같은 스타트업으로서 고피자가 조금 먼저 동남아와 인도 시장에 진출한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진출 과정을 복기해본다.

스타트업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

한국에서 10만 명당 식당 수는 약 1300개로 집계된다. 이 정도 숫자가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쉽게 체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미식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싱가포르나 홍콩의 10만 명당 식당 수가 200개 내외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믿기 어려워할 정도로 국내 외식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다. 해외 사업도 하고 투자 유치도 하며 깨달은 점은 국내 소비자들의 눈이 정말 높고 한국의 트렌드 변화는 그 어느 곳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식당들의 수준을 보면 맛, 메뉴의 다양성, 인테리어, 브랜딩, 마케팅 역량까지 완성도가 상향 평준화돼 있어 마치 오감을 사로잡는 K-팝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렇게 기준이 높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려 끊임없이 좇아가다 보니 국내 외식 산업, 더 나아가 문화 산업의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까지 단기간에 발전하지 않았나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BTS, 블랙핑크를 배출한 국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한국 외식 브랜드 중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는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만 매장을 5000개 이상 보유하거나 시가총액 1조 원이 넘는 브랜드도 없다. 반면 2023년 3월 기준, 전 세계 약 3만8000개 매장을 보유한 맥도날드 미국 본사의 시가총액은 250조 원이 넘는다. 약 1만8000개의 매장을 보유한 도미노피자의 시가총액은 약 18조 원으로 2010년 대비 약 40배 상승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기간, 아마존의 주가는 약 12배, 애플의 주가는 약 15배 정도 상승했다는 것이다. 맥도날드가 국내 햄버거 브랜드보다 200배 이상 맛있거나 도미노피자가 아이폰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글로벌 외식 기업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주식시장에서 이들 기업에 반영된 기대 심리의 근본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다. 피자와 햄버거는 이미 전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개척되지 않은 시장이 존재한다. 이들 시장에 지속적으로 매장을 복사-붙여넣기 형태로 훨씬 더 많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이들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국내 외식업 기업들이 국내에 매장을 1000개씩 보유하고도 주식시장에서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반대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더 이상 매장 낼 곳이 없어지면 성장 속도가 급격히 둔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기업의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외식 사업은 하루에 보통 3번 소비된다는 특수성이 있고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하기에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이 요구된다. 즉, 수요도 공급도 IT 서비스처럼 하루아침에 급격하게 증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고피자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및 소비재 기반의 사업을 하는 많은 국내 기업은 해외시장을 개척해야만 유니콘, 나아가서는 맥도날드와 같은 위대한 기업에 근접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 일본, 중국 아니라 동남아, 인도?

고피자를 창업하고 사람들에게 많이 받은 질문 중에 하나는 “왜 동남아와 인도인가”였다. 질문의 진의를 해석해보면 “왜 익숙한 미국, 일본, 중국이 아니고 동남아, 인도를 택했냐”는 것이다. 이 질문을 내가 좋아하는 축구에 비유하자면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아마추어 선수에게 “왜 프리미어 리그에 가지 않느냐”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과 더불어 미국, 일본, 중국은 시장이 거대한 만큼 텃세(규제)가 심하고 별들의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다. 물론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인지도와 부를 얻겠지만 경력이 5년도 안 되는 아마추어 선수가 그럴 가능성은 꽤나 낮다. 심지어 한번 실패자로 낙인찍히면 그 시장에 재진출하는 것도 매우 어렵고 본국의 커리어에도 큰 타격을 입는다. 손흥민 선수나 김민재 선수처럼 조금 더 작은 리그에서 차곡차곡 경험을 쌓으며 성장하는 것이 시간은 조금 더 걸릴 수 있지만 더 큰 성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조금 더 성적을 낼 수 있는 리그에서 영어도 배우고, 다양한 문화와 음식도 경험하고, 타향살이에도 익숙해졌을 때 빅리그에 도전해보는 것이 안전하게 성공을 이룰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보통 사람들은 동남아 혹은 인도를 두고 미디어에서의 본 모습 또는 한번쯤 관광한 경험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쟁이 조금 덜 치열할 것 같다”는 편견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지만 시장 규모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작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KFC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에만 약 15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다. 인도에도 1500개의 도미노피자 매장이 있는데 5년 내에 1500개를 더 출점한다고 한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다. 도미노피자의 인도 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주빌란트푸드워크(Jubilant Foodworks)는 시가총액이 5조 원에 달한다. 인도나 동남아 번화가에 가면 도미노피자, KFC, 맥도날드, 서브웨이, 버거킹 등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항상 함께 붙어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20년 전부터 꾸준히 투자해왔고 그 결실을 근 10년 동안 빠르게 수확하고 있다. 이러한 땅에 지금이라도 씨를 뿌리지 않으면 늦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남아와 인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출산율이 높아 인구의 중위 연령이 낮고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2023년 한국의 중위 연령은 45세이고, 약 10년 후에는 50세를 넘어선다. 피자는 젊을수록 많이 소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구가 줄어들고 특히 노화되고 있는 한국의 피자 시장, 그리고 젊은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업은 더 작아지는 시장에서 더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대단한 기업들은 언제나 있겠지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챔피언 벨트를 지키기 위해서 들어가는 투자와 노력을 성장하는 중이고 향후 잠재력까지 무한한 시장에 쓴다면 더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세계 인구수 1위를 앞두고 있는 인도의 중위 연령은 27세, 세계 인구수 4위의 인도네시아의 중위 연령은 29세이다. GDP 성장률도 한국보다 최소한 1.5~2배 더 높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서구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매일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해외 드라마를 보고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모 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된 이 지역의 차세대들은 주말마다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할까?

싱가포르에서의 실패와 반전

사실 싱가포르만 놓고 본다면 위에서 이야기한 맥락과는 맞지 않는 시장이다. 서울보다 작은 국토 면적에 인구 또한 600만 명 정도로 시장이 작고 이미 경쟁도 치열해 점포를 늘려 나가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다만 동남아 국가들의 ‘엄친아’ 같은 지위를 지닌 싱가포르에서의 성공은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

고피자는 싱가포르에서 자리를 잡으며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주변 국가에서 많은 제안을 받았다. 가장 큰 이유는 동남아 국가에서 큰 의사결정을 할 만한 자산가나 고위 임원진이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거나 자녀들 유학을 이유로 왕래가 잦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싱가포르는 많은 국내 및 해외 기업이 진출하는 허브이자 테스트 베드이지만 경쟁이 치열한 만큼 실패하는 기업도 다수다.

이러한 실패 가능성에도 고피자가 싱가포르에 진출한 이유는 개인적인 배경이 미친 영향이 컸던 게 사실이다. 싱가포르에서 대학도 나오고 첫 직장 생활을 하며 4년 반 이상 자취를 했던 경험이 이 시장에 도전할 용기를 줬다. 싱가포르 거주 당시 피자를 시킬 때마다 원치 않는 1+1으로 주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가격도 싸지 않아 약 3만 원이나 냈는데도 1시간을 기다려 배달을 받는 경우가 흔했다. 당시에는 그냥 툴툴거리며 넘긴 불편함이었지만 고피자를 창업하고 동남아로 진출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다시 한번 싱가포르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내가 느낀 불편함을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는지, 우리의 해결책이 경쟁력 있을지, 내가 가장 빠르게 검증해볼 수 있는 시장이라 생각했다. 너무 작은 국가기도 해서 어떤 쇼핑몰이 잘되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도 요긴했다. 나라가 작은 만큼 조금만 상승세를 타도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고 ‘대박’을 낼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2020년 3월, 고피자는 시리즈 A 투자를 마치고 약 40억 원의 자금을 확보한 상태였다. 새내기 창업자에게는 체감상 어마어마한 자금이었기에 자신 있게 대표적인 쇼핑몰 몇 곳에 큰 매장 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큰 기대와는 다르게 첫 단추를 끼우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월세가 기본으로 2000만 원 수준에 보증금과 인테리어까지 합치면 매장 하나 출점하는 데 거의 5억 원이 필요했다. 한국에서도 매장 하나를 낼 때 1억 원 이상 써본 적이 없는 스타트업이 싱가포르에선 연간 7억~8억 원을 매장 하나에 투자해야 하다니. 도저히 엄두가 안 나 쇼핑몰 쪽은 얼씬도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 전 세계적으로 ‘공유 주방’ 사업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투자사를 통해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공유 주방 업체로부터 ‘동시에 5개 매장을 오픈하자’는 매력적인 제안을 받게 됐다. 공유 주방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매장 판매 대신 배달 판매가 주가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공유 주방 월세는 400만~500만 원 수준으로 일반 매장을 내는 것보다 훨씬 쌌고 이에 초기 투자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고피자의_싱가포르_템페니즈원점_(1)


쇼핑몰 월세 수준을 알게 돼서 이미 눈이 높아진 탓이었을까? 덜컥 매장 5개를 계약했다. 과감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엄청난 실패였다. 아무도 고피자라는 브랜드를 모르는 상태에서 배달 앱을 통해서만 주문이 발생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헛된 희망이었다. 매출은 미미한데 매장은 5개나 되고, 고정비는 고스란히 들다 보니 첫 달에만 거의 5000만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매장 오픈에 필요한 주방 기물과 가스 공사, 초도 물품 등으로 투자한 금액까지 고려하면 싱가포르 진출 첫 달에만 거의 4억 원의 현금을 써버렸다. 엄청나게 큰 투자금이라고 생각했는데 10%를 한 달 만에 소진해버리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제2의 고향이라 생각했던 싱가포르가 마치 배신이라도 한 듯 냉정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해외 진출 이후 자금이 각 국가로 분산되다 보니 투자 잔고가 전체적으로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격적인 팬데믹이 시작됐고 패기 있게 싱가포르 시장을 점령해보겠다고 현지 파견을 자원한 해외사업팀장은 약 3개월간 타지에서 자택 격리만 당하다가 퇴사를 선언했다. 진출 3개월 만에 약 5억 원을 소진하고 더욱 심각해지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생각과 ‘지금 관두면 정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생각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일단은 해외사업팀장의 퇴사 직전에라도 현지 사람을 찾는 게 필요했다.

이전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까지 닥치는 대로 연락을 돌리며 추천을 받던 차에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사업을 축소하던 현지의 한 외식 대기업 사정을 듣게 됐다. 여기서 임원이었던 현지인을 소개받게 됐다. 팬데믹 탓에 출장이 어려워 줌으로 면접을 진행했고 싱가포르 지사장으로 발령을 낸 뒤에도 18개월간이나 직접 얼굴 한번 보지 못했지만 그는 곧 혁혁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기존의 공유 주방 지점들을 철수시키고 푸드코트 운영 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싱가포르 극동쪽 템페니즈(Tampines) 지역에 약 3평짜리 푸드코트 매장을 발굴해 왔다. 월세가 200만 원 이하였는데도 공유 주방처럼 배달이 가능했고 동네 주민 위주의 상권이었기에 팬데믹에도 간간히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렇게 고피자의 진짜 첫 번째 매장이 된 템페니즈 원(Tampines ONE) 푸드코트 매장은 약 2개월 만에 작지만 소중한 수익을 안겨줬다. 그 이후 비슷한 형태의 푸드코트를 4개 더 오픈하며 쌓은 자신감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초대형 쇼핑몰인 선택시티(Suntec City) 쇼핑몰에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할 수 있었다. 이 매장도 성공을 거두자 비로소 싱가포르의 거의 모든 쇼핑몰에서 입점을 제안해왔다. 이에 2022년까지 20개 매장을 출점한 데 이어 현재는 창이국제공항 등에도 입점해 어엿한 현지 법인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내가 잘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인에 좋은 인재를 모셔오고 비록 줌 등 온라인 툴을 통해서나마 자주 소통을 진행한 것밖에 없다. 이 경험을 통해 해외사업은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현지인이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진심이 통하는 인간적인 소통을 지속하는 것이 현지에서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차원이 다른 인도

많은 기업이 동남아 시장과 인도 시장을 두고 저울질할 것이다. 고피자는 두 시장을 모두 겪어봤다. 잘 안다는 착각과 높은 비용으로 고전했던 싱가포르와 달리 고피자가 2019년에 첫 진출한 인도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시작부터 고전했다. 공항에 내려서 숙소까지 우버를 타고 가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만큼 불편한 비포장도로와 신호등의 부재는 삶의 질 저하에 큰 영향을 줬다. 숙소에 돌아와서 씻을 때도 양치는 꼭 생수를 써야 했고 밤새 빵빵거리는 차 소리에 귀를 막다 보면 그냥 ‘있는 것’ 자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였다.

끙끙 앓으면서도 ‘이곳에서 발붙이고 버텨내기만 해도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가 생기겠다’라는 독기를 품게 됐고 법인까지 설립했으나 첫 매장 장소를 찾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기업 단지 내에 팝업 매장 같은 자리였다. 하룻밤 만에 공사를 뚝딱 완성했던 한국 백화점 내 팝업 매장과 비슷한 규모라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매장 하나 완성하는 데 약 4개월이나 걸렸다. 10㎡(약 3평) 규모의 매장 하나 내는 데 총 10개월이나 걸린 셈이다. 서울 강남에서는 하루에 10개 이상의 미팅도 가능했던 것과 달리 인도에서는 3개 이상 진행하기도 어려웠다. 상대적으로 느긋한 국민성, 불편한 교통, 비효율적인 행정 절차 탓에 한국과 같은 효율을 기대하면 스트레스만 커진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경험들이 이어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인도 사람들의 특성도 명확히 배울 수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 또는 ‘아니요’라고 명확히 대답하거나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꺼린다. 한 현지 사업가는 “우리 조상들이 영국 식민지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몸에 밴 관습”이라며 “할 수 없다고 하거나, 주인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거나, 잘못을 인정하면 심한 처벌이나 사형을 당했기 때문에 순간을 모면하거나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해석이 100% 맞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인도인들의 비즈니스 태도 형성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고피자는 인도에서 약 1년을 꾸역꾸역 버티다가 회사의 운명을 바꿔준 은인을 만나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파견한 직원들을 불러들여야 할 상황에서 극적으로 현지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인 카페커피데이(Café Coffee Day)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마헤시 레디 지사장을 만난 것이다. 그에게 당시엔 아무것도 아니었던 고피자 인도 지사를 맡아 달라고 열심히 설득했고 끈질긴 구애 끝에 결국 고피자에 합류했다. 그는 팬데믹 기간 동안 고피자를 철저히 현지화했고 인도 전역에 커피 매장을 2000개 이상 내본 경험을 살려 싸게 나온 좋은 매장들을 발 빠르게 계약했다. 레디 지사장의 네트워크, 쇼핑몰과 조건을 협상하는 방식, 업체를 잘 구슬려 매장 공사를 45일 만에 완성하는 ‘기적’을 발휘한 능력들 역시 현지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는 ‘짬밥’에서 비롯됐다. 필자는 매출이 전혀 나오지 않았을 때도 인도 법인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매주 정기 회의를 통해 결속력을 다졌으며, 레디 지사장의 가족사도 살뜰히 챙기면서 정서적 유대감을 쌓아 나갔다.

현재 인도 법인은 팬데믹이 잠잠해진 시점인 2021년 6월 이후 2년 연속 60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와는 너무 다른 시장이지만 ‘사람이 만사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도 시장 진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됐다.


고피자_CGV_그랜드_인도네시아점


새로운 시장에서의 초대

망해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게 시작하고,
함께 시행착오를 겪을 좋은 사람을
찾아 매장을 하나씩 키워 나간다.

인도와 싱가포르를 겪으며 고피자 나름대로의 해외 진출 철학을 세울 수 있게 됐다. 가장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시장으로 진출하게 됐는데 놀랍게도 이번엔 투자금을 들이지 않았다. 바로 국내 기업인 CGV의 인도네시아 법인에서 직접 고피자 운영을 제안해온 것이다. 현재 약 5개월째 운영 중인데 오히려 한국보다 더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3월 고피자 직영으로 오픈한 플래그십 매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이란

혹시 글로벌 진출을 계획 중인 스타트업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현지로 직접 날아가 보는 것’이라 강조하고 싶다. 가보기도 전에 한국에서 아무리 많은 시장 조사를 하고 전략을 짜도, 막상 그 나라에서 현장을 보고, 현지 전문가를 만나고 나면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많은 사람이 규제에 대해 걱정하는데 대부분의 초기 기업은 규모가 작아 규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동남아나 인도의 경우 규제가 너무나 다양해서 사실상 완벽한 선제적인 준비는 어려운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일단 시작하고 부딪힐 때마다 하나씩 풀어가며 체득하는 것이 더 ‘스타트업’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해야 할 일은 물리적으로 새 시장을 뚫는 데 시간이 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끈기 있게 버티는 것이다. 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전부 무언가 ‘굴러간다’는 느낌을 받는 데 거의 1년이 꼬박 걸렸다. 그 시간이 최대한 조급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작게 시작하고, 작은 규모라도 버티다 보면 좋은 사람이나 파트너를 만날 기회는 계속해서 생긴다. 그런 확신이 드는 사람이 왔을 때 짧은 시간 내에 친구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엔 진심 어린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고 그에게 믿음이 생겼다면 투명한 프로세스 내에서 그가 과감히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해줘야 한다.

경영대에서 배운 글로벌 기업 전략 중 하나는 ‘표준화’였다. 어떤 시장에서도 통일성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글로벌 브랜드를 키우기 용이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동남아 KFC에 가면 치킨과 흰쌀밥이 함께 나오고, 인도 맥도날드에는 빅맥이 없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보려는 의지가 없다면 해외 진출은 영원히 요원한 꿈이 될 것이다.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에 이르기까지 감사하게도 K-컬처가 전 세계적인 위용을 떨치고 있는 지금이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상황이다. 실제로 지금 동남아와 인도에서 ‘코리안 프리미엄’은 하루만 그 나라에 있어 봐도 체감할 수 있다. 비록 미국, 일본, 중국처럼 모두가 선망하는 시장은 아닐 수 있어도 현재 미래 성장 가능성은 그 어느 곳보다 높은 곳이 동남아와 인도다.

고피자는 ‘더 피자 에브리웨어 컴퍼니(The Pizza Everywhere Company)’라는 비전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피자 매장을 보유한 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올해 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을 넘어 더 많은 해외 국가로의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때마다 완전히 새 출발을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해외 진출 전략은 작게라도 뭐든 시작할 수 있는 용기, 그 나라의 문화와 사람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진심, 끈기 있게 노력하는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마음가짐만 있다면 모든 분야에서 ‘월드클래스’가 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한국 기업들의 승산은 매우 높다고 자신한다. 오늘도 남들이 가지 않는 시장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을 창업가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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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피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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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피자는 ‘피자계의 맥도날드’를 꿈꾸며 2016년 푸드 트럭 한 대로 창업했다. 어릴 때부터 피자와 햄버거를 좋아하던 임재원 대표는 어느 날 문득 ‘왜 햄버거는 먹고 싶을 때마다 먹을 수 있는데 피자는 그러지 못할까’라는 새삼 의아한 불편함을 느끼게 됐고, 피자는 햄버거보다 ‘비싸고’ ‘오래 걸리고’ ‘남겨서’라는 3가지로 그 불편함을 세분화했다. 1년 가까이 그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니 결국엔 피자를 만드는 방식이 어렵고 오래 걸려 한 번 만들 때 크고 비싸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리 방식의 한계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임 대표는 피자를 햄버거처럼 빠르고, 싸게, 혼자서 먹을 수 있게 만드는 푸드테크 기반의 오퍼레이션 혁신을 중심으로 고피자를 성장시켰다. 그 결과 법인 설립 5년 만에 약 4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2023년 1분기 기준 한국, 싱가포르, 인도, 인도네시아 등 5개국에 약 180개 매장을 운영하며 한 달에 약 40만 명의 고객을 만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1
  • 임재원 | 고피자 대표

    필자는 싱가포르경영대(SMU)에서 학사 과정을, 카이스트 경영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2016년 푸드 트럭 한 대로 고피자를 창업했다. 포브스 선정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30인 수상, 중소기업벤처부 아기유니콘 선정에 이어 ‘2022 벤처창업진흥 유공포상’ 대통령 표창, ‘2022 대한민국 푸드앤푸드테크대상’ 장관상, ‘제59회 무역의 날’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jay@gopizz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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