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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기업이 도시처럼 100년 넘게 가려면

지속가능성-퀀텀점프 비결은 ‘다양성’
느슨한 결속과 단순한 규칙이 핵심

이재형 | 364호 (2023년 0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기업의 수명은 채 100년을 넘기 어렵다. 하지만 전 세계 대도시들은 대부분 죽지 않고 꾸준히 성장한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도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던 핵심은 ‘다양성’에 있다. 도시는 수많은 다양한 인재가 자발적으로 모여들고 그 안에서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소비하며 끊임없는 혁신을 창출한다. 그러나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고 비즈니스의 목표가 분명한 기업의 경우 도시와 비슷하게 다양성을 창출하고 관리하는 것이 어렵다. 기업은 이 선천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영과 조직 관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해야 한다. 그 패러다임이 바로 ‘존중’이다. 하지만 존중은 단순히 메시지와 프로그램으로 내재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 조직 활동 곳곳에서 존중을 너징(Nudging)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기업은 존중의 전략과 패턴을 문화화함으로써 생존과 성장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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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는 그의 저서 『스케일(Scale)』에서 인간과 동물 주변 조직의 다양한 데이터를 모아 그 성장과 죽음을 분석했다. 그 결과, 거대 중심 도시 대부분이 한번 형성되면 죽거나 축소되지 않고 심지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지속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에 따르면 도시는 때로는 국가보다도 오래 살아남아 길게는 수천 년 이상 생존을 지속해오고 있는 가장 오래되고 확장성이 높은 플랫폼이다.

이에 반해 기업은 어떨까? 애석하게도 기업의 생존과 성장 패턴은 도시와 정반대였다. 제프리 웨스트 팀이 1950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기업 시장의 데이터1 를 모아 분석한 결과 기업은 시간이 갈수록 성장을 멈추고 정체하다가 결국 대다수가 죽었다. 분석에 따르면 기업이 100년 동안 존속하는 경우는 100만 개 중에서 약 45개에 불과하고 200년 동안 존속할 확률은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

왜 도시는 살고 기업은 죽을까? 도시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제프리 웨스트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놓은 답은 ‘다양성’이었다. 그는 어떤 플랫폼이 생존하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창발(emergence)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열역학 법칙에 따라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또 소비하기를 반복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반면 기업은 한계가 있다. 기업도 물론 설립 초기, 당연히 비즈니스 모델과 상품, 서비스의 혁신을 통해 등장하고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기업은 혁신의 패턴을 반복해 만들어내지 못한다. 결국 ‘규모의 경제’와 ‘효율화’에 초점을 두고 조직을 관리하다 또 다른 혁신 기업이나 시장 변화에 의해 생을 마감하고 만다.

도시와 기업의 차이는 여기서 온다. 도시는 열린 구조다. 어떤 혁신이 수명을 다하기에 앞서 다양성에 의한 의도와 우연이 자연스럽게 경쟁해 또 다른 혁신을 생성해낸다. 도시는 기업보다 훨씬 더 분산된 양상으로 돌아간다. 권력이 시장과 시의회에서부터 기업,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구조에 흩어져 있다. 즉, 어느 한 집단이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좋든 나쁘든 사회적 상호작용의 혁신적인 혜택을 이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도시는 분명 비효율적이지만 기업과 달리 끈질기게 살아남아 성장한다.

반면 대부분의 기업은 초기 폭발적 성장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정체되기 마련이다. 성공한 기업이라 할지라도 초기의 어떤 혁신을 통해 급속히 성장한 이후에는 대체로 그렇게 쌓은 시장의 헤게모니를 지키는 전략을 중심으로 조직이 돌아간다. 비용을 가능한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면 이익이 늘어나는데 이를 위해 기업은 으레 조직화의 더 세세한 수준까지 통제를 강화한다. 그 결과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문화가 강화된다. 세세하고 복잡한 규칙과 제약이 쌓일수록 기업 안에서 혁신을 추동하는 다양성과 역동성, 유연성은 떨어지게 되고 그 결과 중요한 변화에 반응하는 능력도 감소한다. 도시와 비교해 기업의 치명적인 결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도시를 닮으려는 기업의 몸부림

제프리 웨스트 연구팀의 기업 분석 데이터는 2009년까지로 끝이 난다. 아마도 그 패턴을 극적으로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2009년 이후 십수 년 동안 전 세계에 불어닥친 인공지능(AI),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트렌드, 더욱 심화된 불확실성의 강화 앞에서 눈에 띄는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과 성장 패턴의 변화가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창업 사관학교 싱귤래리티대(Singularity University)는 디지털, 인공지능 등을 기반으로 등장한 기술 기업 중 기하급수적으로 지속 성장하는 조직(Exponential Organization)이 이미 존재하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정도 다분히 수사적이지만 적어도 이들이 제시한 사례 기업들의 성장 과정이나 속도를 보면 무시할 것은 아니다. 향후 기업이 지금까지의 물리학적 근거를 뛰어넘어 지속가능하고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를 예측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예견된 죽음’에 대담하게 도전장을 내민 기업들이 어떤 속성과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를 탐색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대도시의 속성을 상당 부분 닮아 있거나 의식적으로 닮으려 하는 모습이 보인다.

승리한 도시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양한 인재에 투자해 그들을 자발적으로 유입시킨다. 권위적인 계획과 인위적인 질서보다는 경험적인 상호작용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자연적 질서를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것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적응해 간다. 소위 ‘파괴적 혁신’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도시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구글, 아마존과 같은 기업의 특징을 살펴보자. (그림2)

먼저, 이들 기업은 창업자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원초적인 중앙집권적 권력을 스스로 분산시키려고 노력한다. 조직을 조직 내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완결성 있는 소규모 조직으로 쪼개어 권력을 위임하려 한다. 세세한 규칙과 규율보다는 맥락이 담긴 느슨한 ‘원칙’을 기반으로 조직 구성원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 행동할 수 있도록 한다. 조직 내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확장하려고도 한다. 때로는 조직 밖에서 인재를 유입시켜 혁신을 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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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구글로 출발해 현재 알파벳이라는 모회사를 통해 일종의 구글 ‘연합’을 구성하고 있다. 알파벳은 구글을 포함, 구글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자회사와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구글과 연대하는 신사업 부분의 자회사로 구성돼 있다. 이들 각각은 때로 서로를 돕지만 동시에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그 연합의 수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즉, 알파벳은 거시적인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는 각기 다른 첨단 조직이 연합해 협력하면서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각 단위 기업의 운영 역시 ‘다양성’을 강조하며 그 다양성을 통해 끊임없는 혁신을 이루려 한다. 조직 내 직무상의 전문성, 인지적 다양성, 성별 및 인종의 인적 다양성 등을 강조한다. 2017년부터는 이를 보다 능동적으로 관리하고자 ‘최고 다양성 책임자(Chief Diversity Officer)’ 포지션을 신설,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구글과 같은 기업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서 성장하는 방식은 도시가 ‘권위적인 질서’ 대신 ‘경험적인 질서’를 추구하는 것과도 매우 유사하다. 이들 기업의 발전 형태는 권위적인 명령과 질서를 바탕으로 계획된 정교한 설계도를 그대로 구현하는 형태가 아니다. 이들은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을 때 그것을 시범 버전으로 만들어 소규모의 잠재적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그 실험과 경험 과정에서 제품은 폐기되거나 정식으로 론칭된다. 이렇게 소개된 제품은 끊임없는 고객 피드백과 추가 실험의 반복을 통해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때로는 전혀 계획하지 않은 결과를 수용해 전혀 다른 제품과 서비스로 피벗(Pivot)하기도 한다.

제프리 웨스트가 도시의 생존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주 인용한 미국 도시학자 제인 제이컵스는 “도시에 고스란히 겹쳐 놓을 수 있는 논리 따위는 전혀 없다. 도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며, 도시계획은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계획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들에게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소위 혁신 기업이 강조하는 핵심적인 키워드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 ‘제품-시장 맞춤(Product-Market Fit) ’등과도 맞닿아 있다. 즉, 도시를 시장으로 치환해 이를 다시 인용해 보면 이 말은 현대 기업에 고스란히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시장에 고스란히 겹쳐 놓을 수 있는 논리 따위는 전혀 없다. 시장을 만드는 것은 고객들이며 전략-계획의 초점은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계획이 아니라 바로 고객들에게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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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은 다양성과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의 생존 전략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어떤 조직의 지속가능하고 기하급수적인 성장의 핵심은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 해도 이를 기업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기업의 태생은 도시의 태생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도시가 권력이 분산된 구조라면 기업은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구조다. 도시에 사는 수많은 개인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발산되며 치열히 경쟁하며 적자 생존하는 구조라면 기업에서 다양한 욕망은 궁극적으로 정제되고 정리돼 발현돼야 제품 및 서비스 생산이라는 기업의 본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시적 성장의 핵심인 권력의 분산과 다양한 욕망의 분출은 인위적으로 관리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다양성과 역동성을 자극하고 창출하며 관리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매우 어렵다.

기업의 생존과 성장, 혁신의 실마리가 ‘다양성’에 있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기업이 본래의 본성을 거슬러 얼마나 효과적이고 지혜롭게 도시의 엔진과 유사한 다양성을 창출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업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통제’ 중심의 경영 패러다임을 뒤집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통제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경영 패러다임이 바로 ‘존중’이다.

존중은 그 자체로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존중의 가장 직관적인 의미는 첫째, 타인이 가진 고유의 존엄(Dignity)과 가치(Worth)를 인정하고 그들의 인식과 주장을 귀 기울여 듣는 태도를 말한다. 통제 중심 경영의 핵심은 표준화다. 사람 역시 가능한 표준화해 오차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관점 안에서 조직 개개인의 존엄과 가치는 인정되기 어렵다. 오직 ‘표준’이라는 평가 기준이 있을 뿐이다. 존중의 두 번째 의미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기반으로 협력과 신뢰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통제 중심의 문화는 저신뢰 체계다. 믿지 못하기에 관리와 통제, 채찍과 당근을 기반으로 구성원을 표준화하고 경쟁시키는 것에 초점을 둔다. 이런 문화 아래서는 협력과 신뢰가 자리 잡기 어렵다. 세 번째 존중의 의미에는 협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동의 규범을 만들고 이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태도가 포함된다. 통제의 규범은 명령과 복종이라는 수직적인 질서다. 반면 존중의 규범은 대화와 논의, 자발적인 실천과 같은 수평적 질서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존중에는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 존중은 어원적으로 ‘잠시 멈춰 다시 보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기업 경영에서 잠시 멈춰 다시 보고 생각하는 것은, 다시 말해 조직과 조직에 속한 개인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맥락,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즉 ‘메타인지’를 하는 것이다.

조직에 이러한 존중을 어떤 식으로든 내재화한 기업은 전통적인 기업보다 생존과 성장 가능성이 더 높다. 딜로이트의 한 연구 보고서2 에 따르면 존중의 패러다임을 가진 기업은 일반 기업보다 재무적 성장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2배 높고, 혁신적이고 민첩한 의사결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6배, 더 나은 비즈니스 결과를 창출할 가능성이 8배 높다. 이에 따르면 존중의 문화는 개개인성을 가진 구성원이 조직과 동료로부터 가치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며 이는 더 높은 참여와 생산성을 이끈다. 존중의 문화는 서로 다른 개인과 동료, 조직 간의 장벽을 낮춰 공동의 목적과 공동체 의식을 자극한다. 또한 차별이나 폭력과 같이 조직 커뮤니티를 무너뜨리는 부정 요인의 발현을 예방해준다.

‘존중’의 시스템 구축하기: ‘존중’의 7가지 핵심 전략과 패턴

사실 이미 많은 기업이 다양성과 존중을 조직에 확산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기업에 존중을 내재화하기 위해서는 단발성 프로그램이나 캠페인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직 차원에서 존중에 대한 사고와 행동이 반복적으로 발현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유기적인 시스템, 즉 문화를 구축해 존중의 문화가 회사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해야 한다.

피터 센게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는 『학습하는 조직(The Fifth Discipline)』에서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이 구성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거나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요인의 상호작용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 역시 “조직 행동은 조직이 어떤 목적을 어떻게 ‘선택 설계(제도화)’ ‘너징(nudging)’하는가에 따라 때로는 똑똑한 방향으로, 때로는 멍청한 방향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업이 존중의 가치를 조직에 내재화하고자 한다면 조직 전략과 원칙, 리더십, 시스템, 프로세스 등 기업을 구성하며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핵심 요인들을 파악해 존중을 너징하는 방향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은 조직을 이루는 1) 주체(리더, 개인, 조직)와 2) 각 주체 간의 관계와 소통, 그에 따라 이뤄지는 3) 의사결정과 행동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성과를 창출하는 시스템이라 볼 수 있다. 이 각각의 카테고리에서 존중의 문화를 가진 기업이 전통적인 통제 기업에 비해 어떤 차별적인 전략과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조망할 수 있다면 효과적이고 실질적으로 조직의 문화를 구축하고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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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조직

1) 리더십: 수평적 리더십의 양과 질을 높여야

기업 경영을 잘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좋은 의사결정을 하고, 좋은 실천을 반복하며, 지속가능하게 생존하는 것이다. 좋은 의사결정과 실천은 결국 좋은 리더십으로부터 나온다. 그 때문에 우리가 조직에서 어떤 새로운 문화를 구축하거나 변화시킴에 있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인 주체는 리더다. 과거 전통적인 통제형 질서에서 리더에게 실질적으로 강조됐던 역량은 구성원에게 정답을 제시하고, 이를 강력하게 이끄는 것이었다. 이런 문화에서 리더는 구성원들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이를 통해 빠르고 질서 있는 행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 때문에 구성원은 다양성이 존중되기보다는 표준화, 규격화된 틀에 끼워 맞춰져야만 했다.

하지만 존중의 문화에서 리더십은 ‘수평적 권위’를 추구한다. 존중의 시스템 속 리더는 정답을 제시하는 능력보다 정답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구성원의 자발적인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내는 조율자로서의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때문에 존중의 문화에서 요구되는 리더십 역량의 핵심이자 차별점은 ‘소프트 스킬’이다. 리더가 업무상 관계를 맺는 이해관계자들의 업무 맥락과 특성에 대한 다양성을 이해하고 그 가운데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충돌과 갈등을 조율할 줄 아는 역량이 요구된다.

수직적 권위와 수평적 권위의 결정적 차이는 실수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수직적 질서상에서 리더에게 실수는 치명적이다. 리더가 실수를 하는 것은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는 권위의 실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중이 기반이 되는 수평적 권위에서 실수는 개선의 기회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을 요청할 줄 안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은 저서 『취약성의 힘(The Power of Vulnerability)』에서 “이 시대의 리더는 취약성을 인정하는 리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다시 말해, 리더가 스스로 “내가 못할지도 모르니 도와달라”는 말로 조직 구성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실제 기업 경영에 잘 활용하고 있는 예가 아마존이다. 아마존이 주장하는 고객 집착, 주인 의식, 학습과 호기심, 높은 눈높이, 동의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맞설 용기 등 14가지의 리더십 원칙은 특정 리더의 덕목이 아니라 아마존을 구성하는 아마조니언(Amazonians) 모두가 결정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 때문에 이 리더십 원칙에는 능동적인 팔로워십에 대한 원칙도 포함돼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은 ‘의견은 다르지만 해보자’는 문화 조성을 위해 리더십을 강조한다. 리더는 다양한 견해를 충분히 듣고 조직 나름의 의사결정을 위한 프레임워크, 프로세스를 거친 후에 결정을 내리고 직원들이 이를 따르도록 촉구할 줄 알아야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존중의 전략을 실천하는 기업은 리더십 포지션이 양적으로도 증가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점이다. 흔히 수평의 문화를 강조하면 중간관리자 등 리더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 기업가이자 컨설턴트 톰 디마르코는 “다양성의 존중과 이를 통한 조직의 혁신을 위해서는 각 조직을 연결하는 조율자로서의 리더 계층이 더욱 두터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3 다양성이 존중된다는 것은 곧 개성의 충돌과 균열도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평적 권위에 따른 권력의 탈중앙화는 권한을 위임받아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공식, 비공식 단위 조직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연결하고 조율, 리드하는 리더십 역할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리더는 존중의 문화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고, 없어져서도 안 된다. 요구되는 리더의 요건과 역할, 리더십의 성격이 변할 뿐이다.

2) 구성원: 개인에서 관계로 인재 관리 초점이 변해야

표준화를 강조하는 통제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조직 관리의 초점은 ‘개인’에게 맞춰져 있다. 기업은 스스로 설정한 표준에 맞춰 근면하게 일할 ‘손과 발(Doer)’을 강조하는 한편 이들을 완벽히 통제하고 이끌 수 있는 ‘머리(Thinker)’ 역할을 할 소수의 슈퍼스타를 찾아 특권을 준다. 조직에서 다양성과 개개인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개인도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할 수 있는 ‘Thinker’이자 ‘Doer’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조직의 관리 초점을 개인에게 두고 슈퍼스타와 그가 창조하는 성과만을 강조한다면 조직 구성원은 서로에게 상호 경쟁적, 비협력적인 태도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효율 중심의 항공 업계에서 지난 50여 년간 혁신적이고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 회사의 성공 비결에는 ‘존중의 문화’가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핵심 인재상은 ‘팀 플레이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관계와 조율과 같은 소프트 스킬 역량을 갖춘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고객 서비스 직군뿐 아니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유지 보수 및 파일럿 직종의 채용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기준이며 평가 체계에도 반영된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교육 및 인사 정책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조직 전체 프로세스에 대한 학습을 통해 자신의 업무와 타 업무와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관계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스웨스트는 개인에게 집중해 역할을 나누고 그들 간의 경쟁을 통한 효율을 촉발하는 대신 개인과 개인을 잇는 관계에 집중한다. 서로가 중복되는 부분에서 조율을 통해 협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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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직: 소규모 엔드 투 엔드 조직으로의 재편

통제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이상적인 조직은 의사결정과 기획을 하는 엘리트 조직과 현장의 실행 조직을 명확히 분리하는 것이다. 전통 기업의 경영전략실과도 같은 중앙통제 조직은 강력한 권한과 권위를 바탕으로 일선 현장 조직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통제해 왔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이렇게 머리와 손발이 분리된 조직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일선 현장에서 급박히 돌아가는 변화의 세부 맥락을 거대하고 권위적인 중앙통제실이 기민하게 파악하고 의사결정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명이 있는 곳에는 늘 조직이 있다. 그리고 서로 돕는 협력적인 네트워크가 창출될 때 조직의 생존율은 단독으로 움직일 때보다 높아진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생존은 규모와 의사결정 패턴과 관계가 깊다. 일단 규모가 너무 크면 생존이 힘들다. 하지만 소규모 집단이 모여 있더라도 의사결정과 행동이 분리돼 있으면 생존이 어렵다. 집단이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은 소집단이 여러 개 존재할 때 높아지고 몇 개의 거대한 집단이 존재할 때는 잘 작동하지 못한다. 즉, 뭉치되 작은 규모로 뭉치고, 스스로 의사결정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느슨하게 연결하는 조직 전략이 존중과 협력에는 유리하다.

최근 많은 기업에서 시도되고 있는 애자일 조직이나 셀 조직과 같은 개념은 이런 맥락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경우다. 이런 기업들은 쉽게 말해 소규모 다기능 조직을 추구한다. 다양한 역할의 전문가들이 소수로 모인, 업무 준비와 추진에서부터 완결된 결정까지 독립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엔드 투 엔드(end to end) 팀을 조직의 기본 단위로 하는 구성이다. 글로벌 1위 뮤직 스트리밍 기업으로 급부상한 스포티파이나 직원 1인당 생산성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회사 슈퍼셀, 글로벌 1위 OTT 기업 넷플릭스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련의 회사들에 ‘작게 뭉쳐 완결성 있게 일하는’ 방식은 일을 위한 새로운 기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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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소통

4) 관계: 강한 결속보다는 느슨한 결속에 초점을 맞춰 문화를 관리해야

조직 내 구성원 간의 관계와 결속의 강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많은 사람이 강한 결속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족 같은 기업, 끈끈한 팀워크 등 지금까지 강한 결속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조직의 신뢰에 유용한 결속의 정도는 느슨한 결속이다. 마틴 노왁 하버드대 생물학 교수는 『초협력자(SuperCooperators)』에서 “인간 사회에 신뢰가 뿌리내리고 그 조직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은 개인과 개인이 직접적으로 돕고 결속하는 강한 결속의 관계에서 개인이 다른 타인을 조건 없이 돕는,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느슨한 결속의 관계로 전환할 때”라고 말한다. 강한 결속은 사적인 영역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느슨한 결속은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존중의 문화’다. 느슨한 결속은 네트워크 이론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사회 연결망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미국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는 ‘약한 결속의 강함(The Strength of Weak Ties)’이라는 논문을 통해 느슨한 결속이 강한 결속에 비해 조직의 창의성과 생산성에 있어 유리하다는 주장을 했다. 강한 결속을 가진 집단의 구성원은 높은 개인적 응집력 때문에 유사한 정보만을 공유함으로써 정보 중복이 높은 반면 약한 결속을 가진 집단의 구성원은 그들이 속한 또 다른 네트워크상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 공유 및 확산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5) 소통: 감정을 이해하고 의미하는 대로 소통하는 정서적 문화 구축 필요

마크 브래킷 미국 예일대 교수 연구팀이 직장인 약 1만5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미 직장인의 약 3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시간은 근무시간의 50%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불쾌한 감정을 유발한 원인의 대부분은 일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 동료,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리더, 무례한 동료 등 다른 조직 구성원들과의 관계, 소통과 관련돼 있었다. 4 미국 심리학회는 직장 동료나 상사와의 긴장감이나 부담감처럼 직장에서 느끼는 불안이 돈과 건강 문제를 제치고 스트레스의 1등 원인이라고 밝혔다. 5 그런데 이렇게 감정의 문제가 명백함에도 통제 조직은 이를 관리하고 돕는 시스템이 없다. 애초에 감정의 배제가 전제된 운영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일터와 삶에서 감정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는 정작 감정의 동물인 인간이 스스로를 성숙하게 관리하고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존중의 문화는 조직과 그 구성원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지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할 때 조직은 비로소 조직에 흐르는 다양한 균열과 갈등, 고통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시걸 바르세이트 와튼스쿨 교수와 올리비아 오닐 조지메이슨대 경영학 교수는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기고를 통해 “일부 기업이 정서라는 요소를 경영 방침에 명시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펩시코와 사우스웨스트항공, 홀푸드마켓, 자포스는 모두 사랑과 배려를 자신들의 기업 가치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이들은 조직 내 감정과 정서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신과 감정, 소통과 관련한 조직 내 문제를 다각적으로 지원한다.6

마크 브래킷 예일대 아동연구센터 교수는 기업은 감성 역량을 강화해야 하며 조직 학습의 필수 과정으로 조직 구성원과 리더의 감정, 정서 관리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브래킷 교수는 조직이 관리해야 할 감성 역량을 5가지 요소(RULER)로 설명했다. 첫째, 감정을 인식(Recognizing)하는 역량이다. 자신의 생각, 에너지, 신체 변화나 타인의 표정, 몸짓, 목소리의 변화를 알아차려 어떤 감정이 생겨났음을 아는 것이다. 둘째, 감정을 이해(Understanding)하는 역량이다. 감정의 원인을 파악하고 감정이 생각과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는 것이다. 셋째, 감정에 이름 붙이기(Labeling)다. 이는 감정적 경험을 잘 설명하는 정확한 용어를 찾는 것이다.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면 스스로에 대한 인식 능력이 높아지고 사회적 의사소통을 할 때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넷째, 감정을 표현(Expressing)하는 역량이다. 현재 상황, 함께 있는 사람들 등 전체적인 맥락에 맞춰 감정을 표현해야 할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아는 것이다. 다섯째, 감정을 조절(Regulating)하는 역량이다. 이는 개인적, 직무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 반응을 관찰해 불편한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바람직한 방식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의사결정과 행동

6) 규칙: 세세한 규칙보다 단순한 원칙

이론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는 “동물, 식물, 생태계, 도시, 기업은 서로 전혀 다르고 고도로 복잡하지만 그 밑바탕에 공통적인 개념 구조와 단순한 원리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하고 공통적인 구성 요소가 오히려 모든 생명체의 기반과 다양성을 만든다는 것. 기업 조직에서 이에 상응하는 것이 단순한 기본 원칙들이다. 동시에 이런 단순한 공통 원칙을 중심으로 통제를 완화해 조직 구성 주체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강화하면 기업 내 소규모의 독립적인 자율 조직이 많아지고, 이들은 기업 내 혁신의 출현을 앞당긴다. 작은 자율적 조직이 새로운 구성 요소와 상호작용을 더 많이 일으킬수록 조직에 더 많고 풍부한 문제해결 방안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 전략과 패턴을 적극 적용한 대표적 기업 중 하나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조직 안팎에서 모두 인간의 개개인성, 다양성에 주목한다. 비즈니스적으로 소비자 개개인의 들쭉날쭉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콘텐츠의 다양성과 이를 적시에 추천, 제공하는 기술이 핵심이지만 동시에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프로세스를 넘어선 사람(People over Process)’7 이라고 규정한다. 강력한 기술 기반 서비스 기업인 넷플릭스가 조직 운영에서 강조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단순한 문화 원칙과 맥락이다. 넷플릭스는 이를 담은 ‘컬처 데크(Culture Deck, 문화 기술서)’를 기반으로 조직 구성원의 주체적 판단과 행동을 독려한다. 동시에 동료 간의 ‘느슨한 연결, 그러나 높은 수준의 동맹(highly aligned, loosely coupled)’8 을 너징한다.

7) 계획: 계획하지 않은 것을 포용하는 능력 필요

통제의 문화에서 기업의 전략은 곧 정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기업의 성공 전략은 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는 산업의 미래, 혁신의 기회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예견하지 못한다. 전략이라는 단어는 전쟁 용어에서 비롯됐는데 본래 의미는 ‘정밀한 계획’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 처음 이를 정의한 프로이센 왕국의 군사 사상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에 따르면 전략은 “우연성 넘치는 전장에서 생존과 승리를 위한, 유연성과 탄력성을 생명력으로 하는 계획”9 이다.

존중의 문화를 좇는 기업에서 전략은 정밀한 계획이 아니다.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고 틀릴 수 있다는 지적 겸손함 가운데에서 수립되는 가설이다. 동시에 계획하지 않은 것을 포용하는 계획이다. 인텔의 CEO 앤디 그로브가 OKR(Objective & Key Result)이라는 목표 관리 기법을 창안하며 강조한 핵심 역시 유연함에 있다. OKR에서 목표는 정답이 아니라 가설이다. 조직의 리더와 구성원은 이 가설을 실험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유연하게 목표를 조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설을 검증하고, 수정하고, 때로는 실패하는 과정에서 배움을 얻는 것이다.

이런 포용적인 계획과 그 안에 깃든 존중의 문화는 때때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리기도 한다. 협업용 메신저 기업 슬랙이 대표적 예다. 슬랙은 원래 게임 회사로 출발했다. 시장의 기대를 받으며 많은 투자를 유치했지만 수년간의 개발 끝에 출시한 게임이 1년 반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투자금을 태운 18개월 동안 15개 이상의 게임 아이디어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존중의 문화는 살아 있었다. 게임 서비스를 중단했을 때 이 회사는 일방적인 중단 대신 ‘종말의 기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소수의 남은 사용자와 함께 게임 종료를 애도했다.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 직원들을 위해 경영진이 직접 다른 회사에 이력서와 추천서를 보내 모두를 재취업시켰다. 이 과정을 지켜본 투자자들은 남은 투자액 550만 달러(약 60억 원)를 돌려받지 않겠다면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내놓은 새로운 피벗 아이디어를 지지해줬다. 2013년 클라우드 웹 기반의 기업 전용 메신저 슬랙은 그렇게 탄생했다.

존중의 문화는 우리의 불완전함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21세기의 가장 흥미진진한 발전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에 관한 개념 확장에서 비롯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술이 사람을 돕고 이를 통해 사람이 좀 더 자유를 얻고 개개인성을 존중받는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 조지 오웰은 한 에세이에서 “인간성의 핵심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며…(중략) 결국엔 생애에서 패배해 부서질 각오가 돼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대 물리학, 뇌과학, 사회생물학, 행동경제 등에서 검증된 최신 이론들이 인간을 둘러싼 복잡한 세계와 인간 행동에 대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진실은 ‘불완전한 인간’ 그 자체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존중은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포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부족함, 불완전함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모든 조직 시스템에는 우리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반영돼야 한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 하지만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뿐이다.
  • 이재형 | 엠지알브이(MGRV) CHRO, 이사

    필자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휴먼컨설팅그룹(HCG) 수석 컨설턴트를 거쳐 인공지능 스타트업 수아랩(현 코그넥스 코리아)과 핀테크 스타트업 어니스트펀드의 조직/인사를 총괄했다. 현재는 코리빙(Co-Living) 브랜드 맹그로브(Mangrove)를 운영하는 임팩트 비즈니스 기업 MGRV의 피플 그룹을 리드하고 있다. 저서로 『초개인주의: 가장 인간다운 인간, 조직, 그리고 경영에 대하여(한스미디어, 2022)』, 공저로 『네이키드 애자일: 경영의 눈으로 애자일 바로보기(미래의 창, 2019)』가 있다.
    re.jae@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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