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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구슬아이스크림 제조사 동학식품의 성장 비결

‘영하 40도 이하 보관’ 벽 깬 R&D의 힘
제품 다각화-해외 판로 개척으로 이어져

김윤진 | 422호 (2025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유행이 빠르게 변하고 변덕스러운 한국 F&B 시장에서 구슬아이스크림 제조사 동학식품은 1997년 창업해 지금까지도 지속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2009년 창업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리더십 공백이 발생했지만 가정주부였던 아내가 매출 60억 원이던 회사를 이어받아 매출 300억 원에 육박하는 회사로 키웠다. 동학식품의 성장 비결은 다음과 같다.

1. 처우가 열악한 식품업계에서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국내에 희소한 식품공학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보상을 강화하면서 엄마처럼 세심하게 사람에 투자했다.

2. 매출 대비 거액을 생산시설에 투자하면서 중소기업으로는 최상 수준의 위생 유지 및 품질 관리로 롯데, 이마트 등 대기업 제조 및 유통사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만족했다.

3. 외국에서 배운 제조법을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 R&D를 통해 잘 녹지 않는 일반 냉동 기술을 개발해 놀이시설을 넘어 편의점, 학교 등 일상적인 유통망에 침투했다.

4. 아시아 독점 판매권을 취득한 뒤 아이스크림 수출을 본격화하고 독자 개발한 기술을 이전하거나 로컬 파트너와 협력해 현지화하면서 국내를 넘어 14개국 신규 시장을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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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랫동안 주부였고, 이제 처음 사장이 된 터라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2009년 7월 동학식품의 대표였던 남편이 결국 세상을 떠났다. 40대 초반이 되도록 아이 셋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았던 계난경 대표는 하루아침에 경영 일선에 내밀렸다. 그가 처음 직원들 앞에 섰을 때는 이미 회사가 사실상 멈춰 선 상태였다. 병상에 누운 남편의 빈자리가 길어지면서 방치되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연간 60억 원 매출 규모에 직원 50여 명으로 나름 튼실한 중소기업이었지만 주요 의사결정이 중단됐고 대금 결제처럼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리더십 공백을 틈타 호시탐탐 이익을 가로채려 하는 사람, 회사 자금을 노리는 시도도 감지되는 등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남편이 갑자기 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했지만 슬픔에 잠겨 있을 겨를도 없었다. 기댈 곳은 회사의 직원들뿐이었고 믿어달라고 진심에 호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일단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흔들리는 조직을 뭉치게 하려면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식품 업계의 특성상 급여가 낮은 편이었는데 전 직원 임금을 국내 100대 중소기업 평균에 맞게 20~30%가량 인상하고 1월 1일 자로 소급 적용해 일괄 지급했다. 가계 부양은 물론 당장 회사의 존속을 걱정하는 직원들의 근심을 잠깐이라도 덜어주고 회사를 수습하기 위한 파격적인 결단이었다.

월급이 한 번에 큰 폭으로 오르자 “실수로 입금된 줄 알고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고 고백하는 직원들이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노력 역시 직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미봉책일 뿐 장기적으로 금전적 보상은 회사를 망하게 할 것이란 회의론도 나왔다. 하지만 계 대표는 위기 상황에서 직원들이 동요하면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고 보고 결단을 내렸다. 이어 물류 등 일부 사업을 외주화해 소위 ‘고인 물’들을 자연스럽게 외주업체들로 내보내고 변화에 기꺼이 동참할 직원들로 조직을 재편했다.

그로부터 16년. 동학식품은 단 한 번도 임금을 동결하지 않고 선형 성장 궤도를 그려 왔다. 계 대표의 취임 3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한 동학식품은 이제 매출 300억 원에 육박하는 알짜 강소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아시아 총공급자로서 일본, 중국, 대만을 넘어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호주에 이르기까지 14개국 세계 시장으로 수출 길도 넓히고 있다. 유행 주기가 짧고 브랜드 수명이 오래 못 가는 변덕스런 한국 F&B 시장에서 1997년 창업한 구슬아이스크림 회사를 30년 가까이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계 대표의 리더십과 과감한 생산,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 공격적인 국내외 유통 확장 등이 있었다. DBR이 회사의 도약을 이끈 계난경 대표와 계 대표의 남동생이자 해외 판로 개척을 주도하고 있는 계형석 기획부사장으로부터 회사의 성장 비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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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산업의 성장 정체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정면 승부

동학식품의 창업자는 남편이었지만 애당초 구슬아이스크림이라는 사업 아이템의 가능성을 처음 포착해 창업하도록 설득한 사람은 계 대표였다. 1990년대 점차 사양길에 접어든 봉제완구 회사를 이끌던 남편과 함께 1996년 미국 뉴올리언스 테마파크 박람회(IAAPA) 출장을 간 것이 계기가 됐다. 이 박람회는 대형 놀이기구부터 인형과 스티커, 청소기, 먹거리까지 테마파크에서 팔릴 만한 전 세계 상품이 총출동하는 자리였다. 점점 쇠락해가는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며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물색하던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먹거리 코너에 전시된 구슬아이스크림이었다.

구슬아이스크림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찾던 부부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이색 상품이었다. 미국에서도 1996년 갓 출시된 신제품이었고 한국은 물론 미국 외 지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표 브랜드인 ‘미니멜츠’의 창업자와 ‘디핀다트’ 창업자는 생명공학 실험실에서 함께 액화질소를 이용한 급속 냉동 기술을 연구하던 친구 사이였는데 공동으로 아이스크림 사업에 진출했다가 사이가 틀어져 각자 브랜드를 내고 오랜 특허 분쟁을 벌였다.1

계 대표는 브랜드 수명이 짧은 한국에서 구슬아이스크림의 인기가 오래가진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리어댑터 사업자로서 이 아이템을 선제적으로 들여오기만 한다면 몇 년은 충분히 유행할 법한 참신한 상품이라 판단하고 남편을 설득했다. 그런 뒤 디핀다트와 미니멜츠를 차례로 접촉했다. 당시 디핀다트는 시장점유율이 더 높았지만 제조법을 알려주지 않고 수입 유통만 허락한 반면 미니멜츠는 기계를 보내 직접 제조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업종은 다르지만 제조 기반 회사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던 남편과 계 대표에겐 후자가 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이렇게 부부는 미니멜츠와 계약을 맺고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했고 아이스 믹스 원료와 구슬 형태를 만들어주는 성형 기계를 처음 한국으로 들여와 1997년 동학식품을 창업했다. 기존에 하던 완구 사업도 접었다. 그렇게 남편이 나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2001년 5월 안성 공장을 짓기 전까지는 번듯한 공장도 없이 곤지암에 있는 임대 공장에서 첫 생산을 개시했다. 액화질소라는 생소한 냉각제를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고 노하우가 없다 보니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정량의 3배씩을 쏟아붓는 등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다행히 구슬아이스크림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모양의 신제품에 시장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하지만 액화질소를 다루는 공정이 까다로운 데다 영하 40℃ 이하의 특수 냉동고를 갖춘 유원지나 휴게소 등 특수한 장소에서만 판매가 가능한 탓에 접근성이 낮고 가격이 비쌌다. 아이들이 사달라고 떼쓰거나 졸라도 비싼 가격에 엄마들은 선뜻 지갑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1997년 출시 뒤 어느 정도의 인기를 끌고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회사의 매출 역시 60억 원 선에서 정체됐다. 설상가상 대기업에서 경쟁 브랜드 디핀다트를 들여와 유통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이 격화됐고2 첫 판매처였던 놀이동산에도 입점하지 못하게 됐다. 그 와중에 남편의 병세가 악화되고 대표까지 교체되자 동학식품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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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아이스크림 28년 인기 지속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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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주기가 짧은 한국 F&B 시장, 이른바 ‘브랜드 요절’의 시대에 구슬아이스크림이 B2C 빙과류 카테고리에서 3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 온 비결은 무엇일까. 동학식품의 선진적인 생산 및 R&D 역량, 촘촘한 유통망, 리스크 관리 등도 브랜드의 성장을 뒷받침했지만 구슬아이스크림 자체의 매력, 즉 시각적 재미와 추억 소환 효과 등을 빼놓을 수 없다. 만약 제품력이 약했다면 국내외 시장에 빠르게 스며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욱이 2023년 구슬아이스크림 열풍을 이끈 것은 동학식품의 공식 홍보 마케팅보다 유튜브 먹방, 인스타그램 인증 사진 등 SNS를 통한 자발적 바이럴의 결과였다. 계 대표가 꼽는 오랜 인기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추억이 구매로 전환됐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어린 시절 부모에게 구슬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먹지 못하거나 놀이공원에서만 겨우 맛봤던 세대가 성인이 돼 이제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즉 마음껏 소비하지 못했던 세대가 구매력을 갖춘 뒤 ‘내돈내산’으로 되갚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2023년 이후 SNS에서는 여러 가지 맛의 구슬아이스크림 6컵을 대용량 그릇에 층층이 담아 마음껏 퍼먹는 ‘어른의 사치’가 유행을 끌고 관련 콘텐츠가 봇물처럼 올라오기도 했다.

둘째, 가격이 합리화됐다. 대량 양산과 유통이 가능해지면서 비용이 줄고 출시 이후 가격이 크게 인상되지 않아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것이다. 특히 한국은 아이스크림의 평균 가격대가 글로벌 주요 시장 평균 대비 저렴한 편이라 똑같은 구슬아이스크림이라도 호주에서는 AUD 6∼7달러, 미국에서는 USD 4.99∼5.99달러로 판매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2500∼3000원 대에 팔린다. 동학식품이 수출 시장을 계속 공략하는 것도 한국에서는 가격 인상폭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셋째, 품질로 차별화했다. 구슬아이스크림은 액체를 급속 냉동해 작은 알갱이로 만들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부피를 키우기 위한 공기 주입(오버런)이 거의 없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생김새이지만 원재료의 열을 빼앗아 급속으로 얼린 것이라 인공적인 첨가물 등이 거의 없고 같은 부피라도 일반 막대나 컵 아이스크림보다 밀도가 높고 풍미가 진하다. 한국 아이스크림 시장은 롯데, 빙그레 등의 익숙한 ‘스테디셀러’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고 F&B 카테고리 내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세계 어디에나 있는 매그넘(유니레버) 등 외산 브랜드조차 고전하는 어려운 시장이다. 가격은 낮은데 유제품 등 원료가 비싸 단가를 맞추기 힘들다 보니 프리미엄 제품의 진입이 어렵다. 그런데 구슬아이스크림은 익숙하면서도 색다르다는 점에서 저가형과 프리미엄 틈새에서 품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여성 CEO에 대한 편견
엄마처럼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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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이후 매 순간이 고비였지만 신임 대표의 발목을 잡은 족쇄는 다름 아닌 여성 CEO에 대한 편견이었다. 제조업체 전반적으로 여성 경영자 자체가 많지도 않았지만 제조 공장을 운영하면서 생산, 연구개발, 유통까지 다 하는 회사를 이끄는 사례는 국내에선 거의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비즈니스 미팅을 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남편은 어디 갔냐”고 묻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여성 사장은 업무 지식이 부족하고 경험도 없을 거라는 통념이 만연했다. 그냥 이름만 빌려주는 대표라 출근도 안 하고 사무실에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이들도 많았다. 계 대표는 “거래처 사장님들조차 처음에는 내게 만나자고도 제안하지 않았고 공장 직원이나 은행 관계자들도 여성 사장과 일한다는 것 자체를 불편해했다”며 “여성이라면 너무 새침하거나 거꾸로 남자에게 지기 싫어 억지로 뻣뻣하게 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 남매를 키운 여성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포용력은 점차 회사 안팎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엄마처럼 통 크게 품어주고 세심하게 소통하자 사람들도 진정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령 취임 이듬해인 2010년부터 매년 연봉계약서를 쓰는 일주일 동안에는 생산직까지 포함해 전 직원과 1대1 면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연봉도 논의하지만 ‘회식하고 싶다’ ‘보너스를 달라’ 등 자잘한 희망 사항부터 개인적인 삶의 고민들까지 허심탄회하게 나누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직원 자녀들의 이름까지 다 외우며 입학 선물을 챙기고 공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격의 없이 부르면서 때때로 인센티브 관광도 보내줬다. 또 10년 이상 근무한 근속 직원들에게는 골드바를 선물하는 등 여성의 섬세함을 살려 한 명 한 명을 알뜰히 챙겼다. 처음 대표직을 맡고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직원들이 떠나지 않고 함께 해준 만큼 매출이 잘 나오는 해에는 성과급 100%를 지급하는 등 확실하게 수익을 공유했다.

특히 국내에 식품공학 인재가 매우 적던 시절부터 직원 처우나 복지를 지속적으로 개선한 것은 향후 연구개발(R&D) 경쟁력으로도 이어졌다. 과거 식품공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던 때에 국내 제조사들은 사람이 식품의 기술력을 좌우한다는 생각조차 잘 안 했다. 그러다 보니 희소한 인재들은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고 투자 마인드를 갖춘 외국계 회사나 향료 회사 등에 취업했다. 하지만 계 대표는 최대한 인재 이탈을 막고 아이스크림 전문가로 육성할 만한 연구원들을 붙잡기 위해 내부 고객인 직원들의 대우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매년 연봉을 최소 3%에서 최대 10%까지 인상했다. 그 결과 자연스레 애사심도 커지는 듯했고 이와 연동해 근속 기간도 올라갔다.

자신의 자녀 양육 원칙이 ‘최대한 자녀들을 믿고 스스로 할 수 있게 맡긴다’인 것처럼 직원들에게도 권한을 위임하고 각자의 권한 내에서 하는 일에는 최대한 관여하지 않았다. 6명의 각 사업부 수장과 권한을 나눈 것이다. 대표는 재무관리와 국내 영업 및 관리를 담당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수출은 기획부사장이, 생산은 각 공장장이, R&D는 식품공학 전문가인 연구소장이 주도하게 했다. 계 기획부사장은 “가령 기획 부서 채용에 있어서는 함께 일할 당사자인 저의 권한을 50% 이상 인정해주고 대표 의견은 20~30%만 반영할 정도로 확실하게 역할을 분담하고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했다”면서 “이렇게 사람을 믿고 아낌 없이 투자해온 것이 계 대표만의 리더십이자 회사의 성장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밖에서도 거래처와의 술자리나 만남의 기회를 빼지 않고 가졌고 항상 밝게 웃으며 임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경계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던 사람들도 마음을 열었다. 잘 못 치던 골프도 배우고 ‘동학식품 미니멜츠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거래처 사장들을 초대하는 골프 대회 이벤트도 마련하는 등 비즈니스 생태계 내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이렇게 인맥 관리에 공을 들인 덕분에 잇단 우유 수급 불안 등으로 유제품의 공급이 끊길 위기의 상황에서도 거래처들이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지원해줬다. 동학식품 정도 규모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발주 물량이 크지 않고 그렇다고 남은 물량을 재량껏 처리해주기에는 적잖은 규모를 필요로 하기에 수급이 불안할 때는 가장 먼저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이렇게 중간에 끼어 애매해질 수 있는 위치를 계 대표는 잦은 소통과 관계의 힘으로 극복했다.


대기업과 영세기업의 틈새
과감한 설비 투자로 비교우위 확보

이렇듯 경영자의 교체 자체도 큰 변화였지만 위기가 기회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계 대표가 움츠러드는 대신 공격적인 행보로 정면 돌파를 택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정체되고 재무적으로 부담이 큰 상황에서 전 직원 임금을 일괄 인상한 것만으로도 파격이었는데 한발 더 나아가 취임 직후 대출을 일으켜 기존 안성 공장을 거의 허물다시피 하고 새로 짓는 투자를 감행했다. 당시 동학식품의 규모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빚이었지만 멀리 내다본다면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기보다 투자할 시기라고 본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 시장 환경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2009년 취임할 무렵 한국 식품회사들의 화두는 ‘HACCP 인증’이었다. 한국이 선진화되고 식품 안전과 위생이 화두가 되면서 공신력 있는 정부 기관의 인증을 획득해야 품질을 인정받는 분위기가 됐다. 당시엔 필수 인증 사항이 아니었지만 계 대표는 향후 관련 법과 규제가 더 강화될 수 있고 위생 사고가 식품업체의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으니 최신식 공장을 설립하는 것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봤다. 그리고 무모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HACCP 인증에 필요한 투자를 밀어붙이고 기업 부설 연구소도 설립했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실제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엄격해진 위생 규제를 만족하지 못한 식품 공장들의 70~80%가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소위 ‘아이스께끼’ 등 저렴한 빙과류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반면 이렇게 영세하고 비위생적이던 업체들이 없어지자 동학식품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더 단단해졌다. HACCP 인증 덕분에 2010년 3월 에버랜드 입점에 성공했고 틈새시장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확보했다. 구슬아이스크림의 경우 대기업이 진출하기에는 기술 난이도 대비 시장이 협소하고, 영세한 기업이 진출하기에는 공장을 설립해야 하는 등 초기 고정비가 과중해 진입장벽이 높은 품목이었다. 그런 점에서 동학식품이 대규모 시설을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까다로운 위생 기준을 충족한 것은 이후 대기업들과 협업해 제휴 상품들을 잇따라 출시하고 후발 주자의 진입을 차단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롯데제과, 오리온, 연세우유, 설빙 등이 모두 미니멜츠와 협업하는 파트너들이다. 계 대표는 “대기업과 영세 기업 사이에서 틈새시장을 선점한 덕분에 장기간 한 카테고리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롯데 등과 협업하고 이마트, 삼성웰스토리 등과 거래할 수 있는 것도 대기업과 정부 당국의 깐깐한 검사를 통과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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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구슬아이스크림을 생산하려면 액화질소 사용을 위한 배관 설치, 영하 40℃로 내려가는 초저온 냉동 창고, 급속동결용 특수 기계들의 주문 설치 등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동학식품이 전문 기계 업체와 협업해 설계 단계부터 관여해 온 것도 구슬의 모양을 동그랗고 뒤틀림 없이 유지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소량 맞춤형 주문이 필요해 설비 비용이 높다. 하지만 회사는 안성 공장에 이어 2015년 136억 원을 들여 충북 음성 공장을 세계 최대 규모(월 생산량 300t)로 지었다. 5년 상환 조건으로 매출 규모에 비해 큰 투자를 단행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공장을 신축하고 신제품 개발을 위한 설비를 구비한 것이 제품 다각화의 촉매가 됐다.

이렇게 문을 연 음성 공장은 동학식품의 수출 기지가 됐다. 2010년 아시아 지역 독점 판매권을 따낸 이후 일본,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으로 시장이 점차 확대됐지만 선제적 투자 덕분에 늘어나는 수요도 감당이 됐다. 동학식품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의 이슬람교인을 공략하기 위해 ‘할랄인증’도 획득하는 등 지속적인 비교우위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막상 이슬람교인 대상 수출을 본격화하려다 보니 이슬람 신자 직원도 한 명 고용해야 하고 흙을 섞어 세정(CIP, Clean-in-Place)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있지만 이런 빗장을 하나씩 풀면서 수출길을 확대하는 중이다.


영하 40℃ 이하 보관의 벽
R&D로 뛰어넘고 신규 판로 개척

대규모 설비를 확충한 뒤 동학식품은 매년 매출의 평균 10%, 최대 15%까지 연구개발(R&D)에 쏟아부으며 구슬아이스크림 유통의 병목으로 꼽히던 기술적 장애물을 하나씩 해소해 나갔다. 미니멜츠 제조 초기에는 미국의 기술을 습득해 흉내 내는 수준에 그쳤지만 계 대표의 진두지휘 아래 자체 개발을 본격화한 것이다. 안성 공장 시절부터 함께해 온 공장장, 연구소장 등이 주축이 돼 R&D를 이끌었으며 동종 업계 대비 높은 보상으로 식품공학 인재들을 유치해 연구소의 역량을 키웠다. 이런 독자적인 연구개발 투자 덕분에 미국 본토에 역수출하거나 본사가 유럽 시장에서 고전할 때 역으로 기술자들을 동학식품 공장에 보내 견학시키고 한국의 최신식 기계를 도입할 정도가 됐다. 계 대표는 “미국 창업자도 지속적인 R&D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 온 동학식품을 깊이 신뢰하고 가족끼리 친분도 두터워졌다”며 “최근 프라이빗하게 연 본인의 환갑 파티에도 초청할 만큼 관계가 돈독하다”고 말했다. 2009년 이후로는 미국 미니멜츠가 초기 계약서에는 몇 년 단위로 인상하기로 돼 있었던 브랜드 로열티도 올리지 않고 무기한 동결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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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인 R&D 성과는 2015년 개발된 ‘슬로우 멜츠’다. 영하 18℃ 이하의 일반 냉동이 가능한 이 제품의 개발은 신규 판로 개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원래 구슬아이스크림은 구슬 형태를 유지하려면 영하 40℃ 이하에서만 보관할 수 있어 특수 냉동고를 갖춘 시설에서만 시판할 수 있었다. 이에 회사는 편의점, 마트 등 일상적인 판로를 개척하려면 일반 냉장고에서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물론 그동안 특수 냉동고를 갖춘 유통망에 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 대기업의 진입이나 후발 주자 추격을 저지하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했기에 고민되는 지점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유통이 제조를 지배하는 시대’3 가 올 수 있고 편의점과 아이스크림 할인점 등 일상적인 유통망에 침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내다본 동학식품은 느리게 녹는, 말 그대로 ‘슬로우 멜츠’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4년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영하 18℃ 이하 보관을 가능케 하는 원료 조성물 개발에 성공했고 특허를 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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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냉동 유통이 가능해지자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 신규 채널을 뚫기가 한층 수월해졌고 2015년에는 CU, GS25, 세븐일레븐 등 주요 편의점에 입점했다. 경쟁사도 영하 40℃ 이하 보관의 벽을 극복하기 위해 특수 포장 용기를 도입하는 등 부분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하지만 미니멜츠가 먼저 진출해 관련 시장을 선점한 뒤였다.

박차를 가해 홈쇼핑에서도 아이스크림 최초 완판 기록을 세웠다. 또한 판로를 넓히기 위해 영화관, 스키장 같은 여가시설은 물론 초·중·고등학교 급식과 군매점(PX) 등 기존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채널까지 개척했다. 계 대표는 “놀이공간에서만 판매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편의점부터 학교, 군대까지 진출한 ‘역발상’이 사세를 키우는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급식용 식자재는 지역별 총판·대리점을 통해 유통되는데 학교 급식 디저트류에 구슬아이스크림이 들어가면 영양사 평가가 올라가곤 했다. 이에 대리점 수요도 크게 늘었다. 최근에는 쿠팡 등 이커머스 채널로도 유통망을 넓혔다.

2012년 11월에는 기존 구슬아이스크림 수십 배 크기의 빅구슬 제품인 ‘미니멜츠 빅’을 개발하는 등 제품도 다각화했다. 신제품의 출시는 자체 R&D보다는 미국과 제휴한 기술을 기반으로 경쟁하는 디핀다트와의 차별점이 됐다. 동학식품에 따르면 이 빅구슬 기계는 유럽 공장에 수출됐다. 또한 과일 셔벗을 기반으로 한 빅구슬 제품은 6~7개 컨테이너를 채울 분량으로 호주에 수출돼 현지 대형마트 체인 ‘울워스(Woolworths)’ 냉동 디저트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하며 추가 발주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6년에는 로봇팔을 이용한 자동판매기(bending machine)를 도입해 마트 등 대형 마켓에서 판매 사원이 없어도 매출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기존에는 구슬아이스크림을 벌크(대용량 통) 형태로 보관하고 직원이 손으로 퍼 컵에 담아주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인건비와 관리비가 치솟고 늦은 영업시간까지 운영할 경우 야근수당까지 지급해야 하니 수익을 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벌크 형태 아이스크림을 컵에 담아주면 포장에 드는 부자재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어 경제적인데 인건비가 이 같은 효과를 상쇄했던 것이다. 이에 동학식품은 몇 년에 걸친 노력 끝에 로봇팔 자동판매기에 대한 KC 안전 인증을 받아내 좁은 공간에서도 구슬아이스크림 컵을 무인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인증 과정은 까다로웠지만 터치패드를 누르면 뚜껑이 열리고 로봇팔이 원하는 맛을 집어 올리는 등 작동 방식이 눈길을 끌면서 소비자 호응을 높일 수 있었다.


치열해진 국내 F&B 경쟁
해외 진출과 현지화로 활로 모색

만약 동학식품이 미니멜츠를 국내에서만 팔았다면 한국 내 내수시장 판권만을 가진 경쟁사와 격차를 벌릴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구슬아이스크림 브랜드 두 곳이 모두 자체 생산 공장을 두고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이스크림 단가는 낮은데 제조에 필요한 원료는 다 수입해야 하고 유제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이다. 한국에만 머물렀다간 성장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동학식품은 2011년부터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외국에서 들고 온 아이스크림을 다시 수출한다는 발상부터 생소했지만 일단 한국과 시장이 비슷한 일본, 중국을 시작으로 도전했다. 구슬아이스크림이 국가를 불문하고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매력과 품질을 갖춘 제품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리 유통만 한다 해도 냉동창고 설치부터 상당한 초기 투자가 이뤄져야 했다. 제조 기반으로 성장한 중소기업이기에 노하우가 부족한 상황에서 해외 유통 사업을 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현지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는 물류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에 해외시장 진출을 총괄해 온 계형석 기획부사장이 수시로 시장을 다니면서 시장에 맞는 전략을 펼쳤다.

특히 지리적으로 멀고 한국과 환경이 다른 동남아 시장의 벽은 더 높았다. 1년 내내 여름 날씨인 만큼 영하 18도 이하에서 보관할 수 있는 슬로우멜츠 외에는 판매가 어려웠고 물류 여건도 한국보다 열악했다. 이에 동남아 진출의 첫발을 떼기 위해 동학식품은 액화질소 수급 조건과 도로망 등 인프라를 꼼꼼히 살핀 뒤 태국에 공장을 짓고 현지 파트너에게 생산을 맡기기로 했다. 태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 산업으로 식품 사업을 육성하는 데다 글로벌 굴지의 기업들도 다수 진출해 있어 다른 인접 국가에 비해 유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 전용 기계 임대, 일반 냉동에 필요한 원료 조성물 등 기술 이전을 지원하고 세세한 노하우까지 파트너 업체에 전달했다. 이렇게 현지 이해도를 높여가며 물꼬를 튼 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과도 차례로 계약을 성사시켰다.

계 부사장은 “아이스크림 배합비부터 공정 동선까지 하나하나 태국 업체에 컨설팅을 해줬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예상보다 판매 개시 시점이 지연돼 이제야 매출을 내기 시작했다”면서 “다만 앞으로는 태국에서도 생산량에 비례해 수익을 나누고 라오스, 캄보디아 등으로도 확장할 계획이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의 매출이 점차 가시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동남아 소비자의 입맛을 잡기 위해 두리안 구슬아이스크림처럼 한국에는 없는 제품도 만들었고 싱가포르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입점할 때는 테마에 맞게 여러 가지 맛을 섞는 등 현지 맞춤 전략도 고안했다. 또한 아이스크림이 잘 녹는 기후를 고려해 유제품보다는 셔벗 제품을 늘렸다.

물론 이렇게 현지화를 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지만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를 만족시킨 저력과 기술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계 부사장은 “원래 미국에서 판매되는 미니멜츠는 유지방 함량이 최소 14%가 넘어 풍부한 맛을 내는데 워낙 칼로리에 민감한 한국의 젊은 세대는 함량이 8%가 넘어가면 꺼린다”면서 “이처럼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의 기호를 맞춰 왔기 때문에 대륙별, 나라별로 다른 입맛이나 요구에도 잘 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DBR minibox Ⅱ

급속동결 강자, 다양한 식품 확장 구상


계 대표는 동학식품을 ‘구슬아이스크림 회사’를 넘어 ‘급속동결 식품 회사’로 정의한다. 오랜 자체 R&D로 국내에서 액화질소 냉매를 이해하고 급속 냉동 목적으로 설계된 전용 설비들을 갖춘 몇 안 되는 회사인 만큼 이 기술을 과일이나 채소, 건강기능식품 등 다양한 분야로도 확장할 여지가 크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동학식품의 핵심 기술인 ‘IQF(Individual Quick Freezing)’는 무엇이든 초저온에서 급속 냉동시켜 원재료의 품질과 성분을 그대로 유지해준다. 가령 프로바이오틱스도 IQF 기술로 냉동시키면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인력과 자본이 한정돼 있어 기존 제품의 영업과 수출에 주력하다 보니 신규 카테고리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기가 여의치는 않다. 하지만 이런 기술을 유산균 업체 등에 판매해 수익을 거두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신제품도 구상 중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지금은 펫 전시회나 애견 카페 등에서 급속 냉동기술을 기반으로 선보인 반려견 대상 아이스 디저트 ‘멍미’ 를 주력으로 영업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종합 동결 식품 회사로의 도약 과정에서 시도해본 사업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다. 공급자가 생각하는 ‘좋은 제품’이 반드시 시장 반응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가령 액화질소를 활용해 즉석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주는 질소 아이스크림 기계를 출시했지만 높은 가격 탓에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맛도 뛰어나고 일본으로부터 200대 선주문을 받아 판매했으나 결과적으로 시장 안착에 실패한 것이다. 액화질소로 인한 위험을 없애기 위해 안전장치를 이중으로 넣고 비숙련자도 쉽게 다루도록 자동화하는 과정에서 설계가 복잡해지고 기계 값이 올라간 것이 패착이었다. 계 부사장은 “공급자 관점에서 안전과 품질만 생각했는데 시장과의 궁합이나 사용자 니즈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하지만 이때 실패한 기술이 집약돼 이후 신제품 출시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충분한 기술력 없이 우후죽순 등장한 다른 질소 아이스크림 업체들도 반짝 이목을 끌다가 결국 직원들의 숙련 부족과 안전사고 문제로 자취를 감췄다는 설명이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매출 10% R&D 투자… 제조기술 내재화 통해 유통 채널 확장


이동민 강릉원주대 해양바이오식품학과 교수 dongminlee@gwnu.ac.kr


과거 놀이동산에서만 볼 수 있었던 구슬아이스크림이 최근 자주 눈에 띄고 있다. 유년기 추억에 이끌린 소비자뿐 아니라 알록달록한 외관과 독특한 식감으로 ‘인스타그래머블’한 매력이 부각되며 소매점은 물론 외식업계에서도 주요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니멜츠 구슬아이스크림을 20여 년간 국내에서 제조·판매해 온 동학식품과 그 성장세 역시 자연스레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동학식품의 성장세를 ‘레트로 열풍’에 편승한 결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시적 유행만으로 동학식품이 시장에서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배경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들이 구축해 온 제조 기술 내재화 역량에 주목해 어떻게 동학식품이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게 됐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동학식품의 제조 기술 내재화 역량: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의 핵심


동학식품은 2006년 미국 미니멜츠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도입하며 구슬아이스크림 사업을 시작했지만 단순 수입·유통에 그치지 않고 국내에 독자적인 제조 설비를 구축했다. 초기에는 본사의 공정을 그대로 따르는 수준이었지만 여기에 계속해서 머물렀다면 제조 기술이 동학식품의 핵심 역량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동학식품은 매년 매출의 약 10%를 R&D에 재투자하며 기술을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획득한 기술을 흡수해 자사 기술로 내면화하는 ‘기술의 내재화 역량’을 축적해온 것이다.

즉 동학식품 사례는 기업의 자원과 역량이 경쟁우위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자원기반관점(Resource-Based View, RBV)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타대 경영대학의 제이 바니와 윌리엄 헤스털리가 주창한 RBV이론에 따르면 기업이 보유한 자원이나 역량이 네 가지 항목-가치(Valuable), 희소성(Rare), 모방의 어려움(Costly to Imitate), 조직의 활용 여부(Exploited by Organization)-에 모두 해당될 때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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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치가 있는가(Valuable?): 기업이 해당 역량이나 자원을 통해 효율성과 효과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항목이다. 동학식품이 제조 기술을 내재화하는 역량은 단순히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이는 회사가 차별화된 결과를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동력이다. 동학식품은 ▲영하 18℃ 이내의 일반 냉동 환경에서 유통이 가능한 ‘슬로우멜츠’ 기술 ▲기존보다 더 큰 입자의 ‘빅구슬’ 제품 등을 개발해왔다. 이는 제품 접근성 개선, 소비자 경험 차별화 등의 다양한 가치를 창출했다.

2) 희소한가(Rare?): 동일한 시장에 해당 역량이나 자원을 갖고 있는 경쟁 기업이 얼마나 적게 있는지를 보는 항목이다. 구슬아이스크림 제조는 일반적인 냉동 공정이 아닌 영하 40℃ 이하의 특수 급속동결 기술이 요구되는 전문 영역이다. 동학식품처럼 R&D에 집중 투자해 독자적인 응용기술을 개발하고 미국 본사에 역으로 기술을 전수할 정도의 역량을 갖춘 기업은 극히 희소하다. 특히 해당 기술을 운영할 수 있는 가능한 인력, 시설, 경험을 모두 갖춘 조직 단위로 보면 경쟁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3) 모방하기 어려운가(Costly to Imitate?): 해당 역량이나 자원을 획득하거나 개발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드는지를 판단하는 항목이다. 동학식품이 보유한 제조 기반 기술의 내재화 역량은 단순히 장비와 공정만으로 모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당 역량은 수년간의 지속적인 R&D 투자, 반복적으로 진행해온 제품 개발 등으로 쌓아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구슬아이스크림이라는 협소하고 제한된 카테고리 안에서 내재화가 이뤄졌기 때문에 경쟁자가 단기간 내 동일한 수준의 역량을 모방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4) 조직에 의해 실현되는가(Exploited by Organization?): 해당 역량이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조직이 구성돼 있는지에 대한 항목이다. 동학식품의 기술 내재화 역량은 R&D 부서를 넘어 조직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R&D 부서가 개발한 기술을 생산 부서가 구현하고, 영업 부서는 이를 바탕으로 B2C(편의점, 마트, 온라인)뿐 아니라 B2B(학교 급식, 군부대 등) 영역으로 확장하며 기술을 수익화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하고 있다.


제조 기술 내재화 역량을 바탕으로 한 유통 전략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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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구슬아이스크림 시장은 초저온 보관이 필수적이었기에 놀이동산 등 전용 냉동고가 들어갈 수 있는 특정 유통채널에만 공급하는 선택적 유통 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소비자에게는 희소한 경험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유통 채널이 제한돼 제품 접근성이 낮다는 한계를 가졌다. 그러나 ‘슬로우멜츠’ 기술의 도입으로 일반 냉동 보관이 가능해지면서 동학식품은 유통 전략을 전환할 수 있었다. 일상적인 유통 인프라에서도 제품이 안정적으로 보관·판매될 수 있게 되면서 편의점, 대형마트, 온라인 등으로 채널이 확장된 것이다. 특히 학교 급식, 군부대 등 B2B 채널에도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슬로우멜츠 기술뿐 아니라 공급 조건에 맞게 제품을 수정할 수 있는 제조 기술 역량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변화다. 이는 제조 기술에 기반해 유통 채널을 확장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동학식품은 단순히 ‘레트로 감성’을 활용한 기업이 아니다. 제조 기술을 전략적으로 발전시켜 경쟁우위를 확보해왔다. 또한 이런 역량은 제품 포트폴리오 다양화 및 유통 채널 확장으로 연결돼 단순한 생산 수단이 아닌 전사적 전략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다. 더 나아가 동학식품은 자사 정체성을 ‘급속동결 식품 전문 기업’으로 규정하고 앞으로 제조 기술을 다양한 식품군에 적용해 제품 다변화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본 사례는 모방이 쉽고 진입장벽이 낮은 식품 산업에서 기술 내재화가 어떻게 기업의 정체성과 시장 확장성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며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참고문헌
Barney, J. & Hesterly, W. (2006). Strategic management and competitive advantage. Pearson/Prentice Hall


필자는 고려대 식품공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산 단계에서의 농식품의 가치가 구매 및 소비 단계로 잘 이어지지 못하는 점에 주목해 농식품 산업 및 마케팅 전략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푸드트렌드 No.4 집밥2.0』 『2024 푸드트렌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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