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 수단을 활용하는 지경학(Geo-economics) 시대가 도래했다. 기존의 첨단 기술 제조를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의존하던 미국은 제조업 강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국 중심의 공급망 내재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둘러싼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은 중국 소재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큰 도전이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고려할 수 있는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전기차 시장뿐만 아니라 에너지 저장 장치(ESS)와 같은 친환경 기술 시장 등 미국 내에서 새롭게 확대되는 시장에 주목해 제품과 기술을 다변화한다.
2. 동남아 지역을 공급망 기지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소비 시장으로서 공략하는 등 새로운 지역 진출을 가속화한다.
3. 차세대 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개발 및 산업화로 장기적인 기술 우위를 확보한다.
지경학 시대의 부상
2018년 통상 분쟁에서 시작된 미·중 갈등이 5G, 반도체, AI 등으로 확산되면서 첨단 기술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반도체, AI 등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및 기술 제재는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이에 중국은 자국이 보유한 희토류 등의 원자재에 대한 수출 통제법을 제정하면서 전략적 무기화로 미국에 맞서고 있다. 이처럼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 수단을 활용하는 지경학(Geo-economics) 시대가 도래했다. 경제 및 기술 안보가 기존의 국가 안보 개념과 동일시되면서 글로벌 주요국의 기술보호주의 및 자국우선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지경학 시대의 부상으로 우리 기업은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선 기업이 현재 직면한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관련 대응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술 생태계, 공급망,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우리 기업이 직면한 도전과 기회 요인을 분석해야 한다.
지경학 시대, 기업의 도전
1. 미국의 대중국 기술 통제 심화와 통상 환경 리스크 확대
최근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기술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중국에 대한 기술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네덜란드 기업 ASML가 생산한 극자외선(EUV, Extreme Ultra-Violet) 노광 장비11짧은 파장으로 세밀하게 회로를 새기는 장비로 7나노 이하의 초미세 공정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임
닫기의 대중국 수출 통제에서 시작된 반도체 기술 제재는 2022년 10월 미국 반도체과학법에 따라 수출 통제 항목이 추가적으로 발표되면서 제재 범위가 확장됐다. 미국은 중국 내 특정 반도체22로직 반도체 16/14㎚ 이하, NAND 128단 이상, DRAM 18㎚ 이하
닫기 제조 시설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통해 규제를 확대해 나가는 모습이다. 해당 조치로 인해 중국 내 제조 시설을 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등은 최첨단 미국산 장비를 활용하기 어려워졌으며 생산 시설 확장에도 제약이 생겼다. 다행히 최근 미국은 한국, 대만 반도체 기업에 대해서는 수출 통제를 1년간 유예한다고 밝혀 아직까진 큰 영향이 없지만 향후 중국 내 생산 시설 확장과 추가 투자에 있어 우리 기업은 상당한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조은교ekcho@kiet.re.kr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 부연구위원
필자는 중국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을 거쳐 산업연구원 글로벌산업실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보고서로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우리의 대응 전략: 반도체·인공지능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블록화에 따른 중국의 전략과 우리의 대응』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블록화 전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