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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아트 인사이트

“생성형 AI가 그린 그림, 예술이 맞나요?”

김민지 | 370호 (2023년 0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오픈AI의 챗GPT 출시 이후 AI를 둘러싼 개발 경쟁만큼이나 여러 논쟁에도 불이 붙었다. 가장 먼저 AI 창작 분야에서 생성형 AI 아트가 예술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AI 학습을 위해 데이터를 무단 도용했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이 오가기도 하고, 기존 아트 종사자들의 일자리 대체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런 작품들이 저명한 미술관에 걸리고 국제 공모전 등에서도 수상하는 영예를 안으면서 AI 아트 출품에 대한 심사 기준 등의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런 논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빅테크들이 연이어 서비스를 내놓자 관련 거버넌스의 부재를 지적하고 개발의 일시적 중단을 촉구하는 공개서한도 발표됐다. 다만 AI 기술의 불안전성과 유해 정보 확산, 정치적 개입, 여론 조작 등의 부작용에 관심을 가지되 논쟁의 배경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이해 상충과 역학 관계도 주시할 필요도 있다.



스타트업 오픈AI의 챗GPT 출시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다양한 변화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취급하는 세계 유명 갤러리에 생성형 AI ‘달리(DALL•E)’를 사용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가 하면 유수의 미술관이 생성형 AI ‘미드저니(Midjourney)’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기존 예술계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자신들의 땀과 시간, 노고가 담긴 창작물을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로 동의 없이 사용해선 안 된다는 유럽 예술가 단체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예술계뿐 아니라 일평균 방문자가 57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도 빅테크 AI 기업들에 무상으로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내줄 수 없다고 발끈하면서 이제부터는 AI 기업들이 레딧 커뮤니티 내 자료를 다운로드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사용할 때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3대 빅테크 기업인 바이두(Baidu)·알리바바(Alibaba)·텐센트(Tencent), 일명 ‘BAT’를 위시한 중국 IT 업계도 챗GPT 출시 이후 이에 대항하는 AI 챗봇을 속속 공개해 AI 기술을 둘러싼 미·중 패권 이슈도 부상했다. AI 시장 선점을 향한 속도전과 함께 무작정 달리지만 말고 올바르게 나아가자는 규제 촉구를 향한 외침이 공존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AI 기술을 둘러싸고 어떠한 움직임이 있는지 사안별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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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작품도 예술이냐, 아니냐


1) 세계 최정상 갤러리에 입성한 AI 아트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가고시안(Gagosian)’은 하우저앤드워스, 데이비드 즈워너, 페이스 등과 더불어 현대미술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갤러리다. 이 네 곳의 슈퍼 갤러리는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시장성을 갖춘 데미언 허스트, 알렉산더 칼더, 쿠사마 야요이, 바버라 크루거 등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가져와 고가에 판매한다. 이 중 가고시안은 1973년 아트 딜러 래리 가고시안이 레오 카스텔리와 함께 연 갤러리로 한 해 매출만 1조 원이 넘는 세계 최대 상업 갤러리로 꼽힌다. 뉴욕, 런던, 파리, 스위스, LA 등 전 세계에 보유 중인 갤러리 수도 총 19개에 달한다.

그런데 이처럼 명성이 자자한 가고시안에서 2023년 3월 21일부터 4월 22일까지 연 영화감독 베넷 밀러의 개인전에 AI 아트 작품들이 전시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밀러 감독은 지난 5년 동안 AI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면서 오픈AI의 샘 알트만 대표를 비롯해 AI와 관련된 수많은 인물을 인터뷰했고, 이미지 생성형 AI ‘달리’가 대중에 공개되기 전부터 배타적 사용 권한을 받아 왔다. 이를 활용해 AI가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의 본질과 변화 과정을 고찰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번 개인전이다. 사진의 형식을 빌렸을 뿐 작품 속의 그 어떤 인물이나 대상도 실재가 아니며 AI의 도움을 빌려 창작한 허구다. 가고시안은 밀러가 이 작품을 통해 지각(perception), 실재(reality), 진실(truth)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밀러의 전시는 급증하는 생성형 AI의 인기와 더불어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 즉 일자리나 지식재산권(IP) 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가고시안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전시 설명을 보면 AI를 둘러싼 논쟁적인 이슈들이 거론돼 있다. 넷플릭스 재팬이 인기 애니메이션의 배경 이미지를 제작하기 위해 인간 애니메이터 대신 AI를 사용해 인력 대체 및 고용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 게티이미지가 이미지 생성형 AI인 스테이블 디퓨전을 학습시키기 위해 자사의 컬렉션을 동의 없이 활용했다는 이유로 스태빌리티AI(Stability AI)를 저작권 침해 혐의로 고소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 전시는 AI의 편향성과 허위 정보 생산 등의 이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면서도, 동시에 이미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각 영역을 점령해 나가고 있는 AI의 현재를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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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I 귀걸이를 한 소녀’는 유죄?

이렇게 AI 아트 전시가 화제가 된 것은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네덜란드에서도 최근 저명한 미술관에 AI 이미지가 전시돼 파란이 일었다. 논쟁의 발단은 예술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년)의 대표작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ing)’를 소장하고 있던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미술관이 원작을 네덜란드 국립박물관에 임시 대여한 기간에 진행된 모작 공모 이벤트였다. 네덜란드 국립박물관인 암스테르담의 라익스뮤지엄은 2023년 6월 4일까지 네덜란드 번영기의 아름다운 일상을 묘사한 베르메르 회고전을 열면서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흩어져 있던 28점의 베르메르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당연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빠질 리 없었다.

이에 원작이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마우리츠하위스미술관은 원작을 모티프로 한 패러디와 오마주 공모 이벤트를 시행했다. 그리고 이 이벤트에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신진 작가 율리안 판 디켄(Julian van Dieken)이 이미지 생성형 AI ‘미드저니’로 작업한 그림 ‘빛나는 귀걸이를 한 소녀’를 출품했다. 공모 이벤트에 접수된 3482점의 작품 가운데 판 디켄의 작품을 포함한 5개가 실물 출력본으로 미술관에 걸리는 특전을 받았다. 판 디켄은 개인의 SNS에 “미술관에서 내 작품을 보는 것은 초현실적이었다”고 전하며 명망 있는 미술관에 작품을 선보인 희열과 감탄을 전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예술계는 이 전시회를 두고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작가인 이리스 콤핏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베르메르뿐 아니라 모든 현역 예술가들에 대한 모욕이라 표현했다. 그림 자체도 프랑켄슈타인 같다고 평가절하했으며 무엇보다 AI가 인터넷 사용자의 데이터를 긁어올 뿐더러 다른 작가들의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그러나 마우리츠하위스미술관 대변인 보리스 더 뮌닉(Boris De Munnick)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라면서 AI 아트에 대한 선호는 ‘연령 문제(Age Thing)’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람객의 반응을 언급하며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그림이 더 좋다고 말했지만 젊은이들은 AI를 활용한 작품이 새롭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밝혔다.

과연 ‘연령 문제’인가를 차치하고라도 작품 감상에는 취향이란 요인이 개입하고, 개개인의 가치관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가령, 필자는 판 디켄의 AI 아트에서 등불이 켜진 듯한 귀걸이의 형상이 원작에서처럼 소녀의 신비로운 아우라를 부각시켜 준다고 느꼈다. 그러나 누군가는 AI가 숭고한 예술의 영역에 침범했다는 데 대한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도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가 더해질 필요가 있다. 어떤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는지, AI를 창작 과정에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했는지, 그 방식이 어떻게 새로운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는지에 대한 서술이 필요하다. 창작 시간을 절감해주고 색다른 표현을 가능케 한다는 단순한 차원의 설명이 아니라 창작자의 관점에서 AI란 도구가 어떤 미학적 가치를 부가했는지에 관한 심도 있는 고찰과 해석이 동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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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I 이미지는 사진 아냐” 국제사진전 수상 거부

그런가 하면 AI를 사용해 만든 사진이 대회 수상작에 선정돼 해당 작가가 돌연 수상을 거부한 사건도 있다. 독일 태생의 사진작가 보리스 엘다크젠(Boris Eldagsen)은 소니와 세계사진협회(WPO)가 후원하는 세계 최대 사진 대회인 ‘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SWPA)’에서 크리에이티브 오픈 카테고리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작품 제목은 ‘전기공(The Electrician)’으로 노년의 여성이 젊은 여성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의미심장하게 어딘가를 응시하는 흑백 이미지다. 작품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영화 포스터 내지는 다큐멘터리 사진과 흡사하지만 사실은 생성형 AI 이미지였다. 그런데 이 작가의 출품 의도는 수상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수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AI 사진에 대한 논쟁을 증폭시키려고 일부러 AI 생성 이미지를 만들어 출품한 것이다. 독일 사진계에서 생성형 AI를 활발히 사용하는 AI 전문가로 꼽히는 엘다크젠은 SWPA를 비롯한 국제사진전이 ‘과연 AI 이미지 출품에 준비돼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작품을 냈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회 수상작으로 선정된 뒤에는 수상을 거부하면서 ‘사진의 영역이 AI 이미지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가?’에 대한 논쟁이 가속화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엘다크젠 본인은 AI 이미지가 사진 작품의 영역에 들어올 수 없다고 바라보는 보수적인 입장에 가깝다. AI 이미지와 사진은 서로 경쟁 상대가 아니며 별개의 실체라는 견해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사진을 사랑하고, AI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 둘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사진은 빛으로 글을 쓰는 것이라면 AI는 프롬프트를 통해 글을 쓰는 것”이기에 연결돼 있지만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엘다크젠은 생성형 AI 사진에 ‘프롬프터그래피(promptography)’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면서 향후 사진과 접목된 AI 아트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지길 고대한다고 밝혔다. 그의 행보는 국제사진전이나 공모전이 AI 이미지 출품작에 대한 심사 기준을 마련하고 대비했는지에 관한 카랑카랑한 질문을 던졌다.


4) 데이터 보호를 향한 예술계의 외침

AI 학습에 본인의 작품과 데이터가 동의 없이 사용되는 문제는 예술가들에겐 생존이 걸려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 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는 미 무역대표부에 보낸 공문에서 음악 생성형 AI 도구가 유명 아티스트 작품과 매우 유사한 음악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협회 회원의 동의 없이 AI 훈련에 음악을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3대 음악 레이블인 유니버설뮤직그룹(UMG)도 유사한 맥락의 주장을 하며 스포티파이와 애플 등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AI가 생성한 음악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는 e메일을 보냈다. AI 훈련 데이터에 자사 아티스트의 음악이 사용되지 않도록 AI 개발자 서버 접속을 차단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이는 생성형 AI가 유니버설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 데이터를 학습해 유사한 풍의 음악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경고 조치였다.

AI 기업으로부터 자신들의 작품과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유럽 예술가 단체(EGAIR, European Guild for Artificial Intelligence Regulation)의 활동도 괄목할 만하다. EGAIR 홈페이지에는 ‘AI 기업으로부터 우리의 예술과 데이터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후원금 기부 링크가 연결돼 있다. 이 단체의 목표는 소수 기업의 이익을 위해 데이터와 지식 재산이 도난당하고 있는 실태에 제동을 걸고 EU의 AI 규제와 데이터 보호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후원 자금은 기업들의 데이터 수집 관행과 관련해 EU 차원의 규제를 시행하는 데 필요한 법적 비용 지원에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EGAIR의 비판처럼 생성형 AI의 품질은 데이터 세트의 품질과 양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때 개개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웹에서 무차별로 스크랩한 데이터가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이 같은 AI 훈련 방식이 개개인의 데이터 소유권과 저작권을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는 제대로 된 규제가 정비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AI 개발, 계속 달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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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I 승자독식을 위한 숨 가쁜 행보

이 와중에도 빅테크를 중심으로 한 AI 개발 경쟁은 지칠 줄 모르고 가열되고 있다. 일찌감치 오픈AI와 동맹 관계를 구축한 마이크로소프트는 GPT-4를 탑재한 AI 기반 검색 엔진 ‘빙AI(Bing AI)’를 공개했다. 빙AI에 “빙AI와 다른 챗봇을 비교해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넣으면 몇 초 만에 다음과 같은 답이 뜬다. “WePC.com의 기사에 따르면 빙 AI 챗봇은 프로메테우스1 기술 덕분에 더 정확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며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더 많은 제어 및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반면 오픈AI 챗GPT는 더 광범위한 응답을 제공해 빙AI 챗봇만큼 제한적이지 않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실제로 챗GPT를 사용하면 출처가 뜨지 않아 별도로 팩트 체크를 해야 할 수고로움이 동반되는 데 반해 빙AI는 해당 답변의 근거가 되는 언론 기사 및 블로그 등의 출처를 표기하고 상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사실관계가 더 정확하고 오용의 여지가 적다는’ 장점을 확실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아가 MS는 엣지 브라우저 사이드바에 빙 기반의 AI 이미지 생성기 바로가기 아이콘도 추가했다.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Bing Image Creator)는 오픈AI의 달리 모델을 기반으로 자연어 프롬프트에 따른 이미지를 생성한다.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에 “꽃이 만발한 은하계에서 춤을 추는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기입했더니 몇 초 만에 4장의 이미지가 생성됐고 다운로드, 다시 보기 등도 가능했다.

그런가 하면 오픈AI는 ‘챗GPT 플러그인(Plugins)’을 통해 서비스를 넘어 플랫폼으로의 진화 가능성까지 입증하고 있다. 오픈AI는 2021년 9월까지의 데이터를 학습해 정보를 제공하는 챗GPT와 달리 스스로 인터넷을 검색해 답변에 통합할 수 있는 빙AI에 위기감을 느끼고 2023년 3월 개발자 버전으로 외부 웹서비스를 챗GPT와 연동할 수 있는 플러그인 서비스를 내놨다. 기본 소프트웨어에 특수한 기능을 더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해 외부 기업들이 입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외부 서비스를 챗GPT 내부로 끌어들여 애플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처럼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큰 그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동안 외부 서비스가 자사 앱에 챗GPT의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끌어온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현재까지 챗GPT 플러그인에 연결된 서비스로는 익스피디아(호텔·항공권 예약), 인스타카트(장보기), 스픽(언어 교육), 오픈테이블(식당 예약) 등이 있다. 일례로 챗GPT 플러그인에 입점한 호텔·항공 예약 서비스인 익스피디아를 선택하고 여행 계획을 채팅창에 입력하면 곧바로 챗GPT가 일정과 가격 등 관련 정보를 검색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챗GPT가 예약까지 직접 수행할 수도 있다고 한다. 플랫폼 입점 기업은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선 챗GPT의 후광을 입고 자사 서비스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동시에 잠재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동시에 서비스 사용자는 여러 앱을 설치할 필요 없이 챗GPT 생태계에 입성해 개인화 및 맞춤화 AI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2) 구글·메타·아마존의 발빠른 추격

MS의 진격에 대응하며 구글이 출시한 대화형 AI 서비스 ‘바드(Bard)’는 2023년 4월 중순부터 한국에서도 실험적인 서비스를 개시했다. 바드는 구글의 초거대 언어모델(LLM, Large Langauge Model)인 ‘람다(LaMDA, Language Model Dialogue Applications)’를 기반으로 한다. 허나 구글은 바드에 탑재한 LLM을 람다보다 고도화된 학습이 가능한 팜(PaLM)2로 교체했다. 팜2는 작년 4월 선보인 팜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100개 이상의 언어를 학습할 수 있고 실시간 정보를 기반으로 답변을 제시해 복잡한 작문과 수학 연산, 프로그램 코딩, 최신 정보 제공 등에서 향상된 생산성을 보일 전망이다. 챗GPT가 최신 정보 및 사실 관계 파악에 있어 가지던 문제점을 바드가 개선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글은 바드를 전면 공개한 연례 개발자회의(I/O)에서 영어 다음으로 한국어와 일본어로 바드와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향후 지원 언어를 40개까지 확대할 예정인데 그 첫 주자로 한국과 일본을 꼽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인터넷 강국이면서도 구글 검색이 1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시장을 일종의 바드 성능 향상을 위한 시험대로 삼은 것이란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빠르게 이용자 반응을 살피면서도 오류 발생 시 상대적으로 파장이 적을 수 있는 국가를 선택한 것이란 의미다. 물론 이는 구글이 직접적으로 밝힌 이유는 아니며 일각의 추측일 뿐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구글의 AI 챗봇 바드가 챗GPT의 한계를 뛰어넘는 생산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한국 시장이 직접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메타버스에 몰입하다가 개발자마저 퇴사자 명단에 올리는 등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은 메타 역시 AI에서 새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피드에 NFT와 같은 디지털 자산을 게시할 수 있게 하는 기능도 종료했다. 그 대신 메타는 일단 사진과 동영상에서 이미지를 분할 추출해주는 AI 모델 ‘SAM(Segment Anything Model)’을 공개했으며 그림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주는 AI 도구 ‘애니메이티드 드로잉’도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현재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FAIRAnimatedDrawings를 입력하면 메타 AI를 사용해 어린아이의 그림이 걷고 뛰고 춤추도록 만든 포스팅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AI 관련 메타의 행보가 메타버스 사업에까지 이익을 가져다줄지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향후 메타버스가 확장되면 그 안에 생성 AI를 활용한 콘텐츠가 얼마든지 삽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메타버스와 AI의 결합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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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른 빅테크에 비해 AI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아마존도 이런 우려를 일축하듯 ‘우리는 아마존다운 방식으로 해나갈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곧이어 아마존은 모든 기업이 자체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 있도록 AI 개발 접근 문턱을 낮추는 것을 회사의 목표로 선언했다. 경쟁사보다 AI 도구를 더 효율적이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업용 클라우드 서비스 ‘베드록(BedRock)’을 출시해 AI 개발을 민주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단단한 기반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록에서는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AWS) 사용자가 복수의 LLM을 사용해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고도화할 수 있다. 텍스트 생성 AI 시스템을 이용해 기업들이 쉽게 자체 AI를 개발 및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기업이 LLM을 만들기 위해서는 훈련에만 수십억 달러가 소요되며 최소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존의 베드록은 기업의 현실적인 비용 문제와 필요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AWS 사용자라면 챗GPT처럼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는 ‘타이탄 텍스트(Text)’, 검색을 통해 이용자의 맞춤형 설정을 지원하는 언어모델 ‘타이탄 임베딩스(Embeddings)’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챗GPT가 대중적인 AI 서비스라면 아마존의 베드록은 기업 고객을 위한 AI 서비스라는 데 차별점이 있다.


3) AI의 여름을 위한 일시적 개발 중단?

AI 개발 경쟁이 격화될수록 이렇게 폭주하는 상황이 과연 인류에 이로운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23년 3월 22일 AI의 책임 있고 윤리적인 발전을 촉구하는 비영리단체 ‘퓨처 오브 라이프 인스티튜트(Future of Life Institute, FLI)’가 ‘거대 AI 실험 일시중지 공개서한(Pause Giant AI Experiments: An Open Letter)’을 발행한 것이 신호탄이 됐다.1 이 서한에는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이마드 모스타크 스태빌리티 AI 창업자, 얀 탈린 스카이프 창업자,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저자 등 저명한 인사 1000여 명이 서명해 화제가 됐다. 5월 11일 기준 서명인은 2만7565명에 달한다. 서한의 요지는 ‘모든 AI 연구소에 GPT-4보다 강력한 AI 개발을 최소 6개월간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는 AI 개발의 전면 중단을 의미한다기보다는 AI 위험 관리를 위한 준비를 하자는 논조를 담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AI 기술이 초래할 여러 문제에 대한 중차대한 결정을 선거로 선출되지도 않은 일부 기술 기업가에게 일임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강력한 문장도 포함돼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첫 문단에 ‘아실로마 AI 원칙(Asilomar AI Principles)’2 이 인용돼 있다. 고(故) 스티븐 호킹 박사와 일론 머스크, 알파고 개발자이자 딥마인드 CEO인 데미스 허사비스 등 2000여 명의 인사가 지지 서명을 남긴 이 원칙은 2017년 1월 FLI가 미국 캘리포니아 아실로마에서 발표한 23개 항의 AI 윤리 헌장이다. 최근 몇 달 동안 빅테크를 비롯한 AI 개발사 간 경쟁은 AI 윤리에 대한 고려나 관리 및 제어 시스템 구축 없이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이 헌장의 취지에 반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공개서한은 모든 AI 연구소가 GPT-4보다 더 강력한 인공지능 시스템의 학습을 최소 6개월 동안 즉시 중단해야 하며 그동안 AI의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가 엄격하게 감독하는 고급 AI 설계 및 개발을 위한 일련의 공유 안전 프로토콜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AI 개발자는 정책 입안자들과 협력해 강력한 AI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AI를 전담하는 새롭고 유능한 규제 당국, 고성능 AI 시스템과 대규모 연산 능력 풀에 대한 감독 및 추적, 출처 및 워터마킹 시스템, 강력한 감사 및 인증 생태계, AI로 인한 피해에 대한 책임, 기술적 AI 안전 연구를 위한 강력한 공공 자금, AI가 초래할 극심한 경제적, 정치적 혼란에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갖춘 기관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서한의 마지막 문단은 ‘서두르다 준비되지 않은 채 멸망하기보다 AI의 장기적인 여름을 즐기자(Let’s enjoy a long AI summer, not rush unprepared into a fall)’로 마무리된다.

FLI가 AI 개발 6개월 유예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같은 맥락의 또 다른 요청이 공개됐다. 미국의 기술 윤리 그룹인 ‘인공지능 및 디지털 정책 센터(CAIDP, Center for AI and Digital Policy)’가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에 GPT-4 상용화 중단을 요청하며 제소한 것이다. CAIDP 역시 비영리단체로서 기술이 기본권, 민주적 제도, 법치를 바탕으로 광범위한 사회 통합을 촉진하고 더 나은 사회,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CAIDP의 주장도 FLI 공개서한의 내용과 비슷하다. GPT-4가 편향성을 띠고 기만적이기 때문에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갖추기 전까지 GPT-4를 포함한 LLM 판매 중단과 GPT의 추가 상용 버전 출시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연방거래위원회가 챗GPT 관련 조사에 실제 돌입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오픈AI CEO 샘 알트만이 트위터를 통해 “가장 성능이 뛰어나고 잘 정돈된 모델이지만 이 역시 여전히 잘못된 정보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담담히 인정했듯이 AI 편향성과 거짓 정보 확산 등의 이슈에 대한 사회적 규제 마련 및 공론화의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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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개발 중단 논란의 숨은 역학


1) AI 스타트업 창업 추진하는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방송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딥마인드를 차례로 비판하면서 자신이 제3의 선택지인 AI를 만들 것이라고 선포했다. 세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샘 알트만과 일론 머스크의 사이는 우호적이지 않다. 일전에 머스크는 오픈AI 창업에 가담했으나 2018년 이사직에서 사임하고 투자 지분을 모두 처분한 바 있다. 당시 머스크가 테슬라의 AI 연구와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내 의견을 반영해 오픈AI와의 관계를 끊은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오픈AI가 MS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을 때 머스크는 오픈소스를 추구하는 오픈AI가 영리 목적으로 변질됐다고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최근 일론 머스크 트위터에 ‘X’라는 한 글자가 올라왔다. X가 무엇인지 특별한 언급도,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다. 하지만 이후 그가 오픈AI와 맞붙을 AI 스타트업 창업을 추진하며 ‘X.AI’란 이름의 회사를 세우고 네바다주에서 법인 등록을 마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머스크는 AI 개발 필수 부품이자 병렬 연산에 특화된 반도체인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천 개도 확보한 상태라고 하며 트위터 법인도 신설 법인인 ‘X 법인’으로 흡수 통합했다. 기존 트위터 서비스는 존속되고 있지만 이제 회사로서의 트위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머스크는 폭스 뉴스의 ‘터커 칼슨 투나잇쇼’에 출연해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최고의 진실 추구 AI인 ‘트루스(Truth)GPT’란 이름으로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는 ‘최대의 진실 추구(Maximum Truth-seeking) AI’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인류 전멸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세상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두는 AI를 개발할 것이라는 화두도 꺼냈다. 좌파 성향의 전문가들이 챗GPT를 프로그래밍했으며 이들에 의해 AI 챗봇이 거짓말을 하도록 훈련됐다고 비판하며 챗GPT가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에 대해서는 “나와 가까운 친구였고 내가 그에게 AI의 안전 문제에 관해 얘기했지만 그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구글의 목표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라고 불리는 인공 범용 지능, 인공 초지능(Artificial Superintelligence)이지만 그것은 좋은 잠재력뿐 아니라 나쁜 잠재력도 있다”고 지적했다. 초지능 AI의 여론 조작 가능성 등의 위험성도 역설했다.

하지만 이런 공격은 머스크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AI 개발 6개월 중단 촉구 서한에 서명한 것도 본인의 AI 스타트업 설립을 전제로 향후 경쟁사가 될 오픈AI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AI의 부작용을 우려해 개발을 저지한 것이라기보다는 본인의 AI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챗봇을 개발할 때까지 오픈AI의 개발 속도를 늦추기 위한 일종의 여론전을 펼친 것이라는 분석도 신빙성이 있다.


2) 미·중 패권 이슈로 번지는 논란

여기에 AI 중단 개발이 중국의 이권만 불릴 것이란 염려도 있다. 에릭 슈밋 전 구글 CEO는 AI 개발 6개월 중단에 반대하며 기술 개발 속도가 빠른 중국에 모든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이 AI 플랫폼과 양자과학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면서 AI 개발 중단 논쟁을 미국과 중국의 패권 이슈로 바라본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2030년 AI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걸 목표로 하고 AI를 경제 및 안보 측면에서의 전략 기술로 삼고 있다. 챗GPT 출시 이후 BAT를 위시로 한 중국 IT 업계도 대항마를 속속 공개하고 있다. 2023년 3월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는 ‘지식 통합을 통한 향상된 표현’을 의미하는 AI 챗봇 ‘어니봇(Ernie Bot)’을 공개했다. 바이두의 리옌훙 최고경영자(CEO)는 어니봇이 챗GPT에 겨우 한두 달 뒤처진 수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음 달인 4월에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1000개 질문으로부터의 진실’이라는 뜻을 가진 AI 챗봇 ‘퉁이치안웬(Tongyi Qianwen)’을 일부 기업 고객에 제한적으로 선보였고, 연례행사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밋 2023’에서 이를 시장에 전격 공개했다. 텐센트도 ‘훈위안에이드(HunyuanAide)’란 이름의 AI 챗봇 개발 계획을 밝혔고, 중국 최대 AI 스타트업인 센스타임(Sense Time)은 자사 초거대 AI 언어모델 ‘센스노바(SenseNova)’를 적용한 AI 챗봇 ‘센스챗(SenseChat)’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의 AI 규제 움직임은 유독 흥미롭다. 중국은 생성형 AI에 사회주의 가치를 심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실제로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발표한 생성형 AI 서비스 관리 방안 초안에는 “생성형 AI가 만든 콘텐츠가 핵심 사회주의 가치를 반영해야 하며 국가 통합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앞으로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개발된 AI가 같은 사안에 대해 제각각의 주장을 펼치며 이데올로기 논쟁을 벌이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염두에 둔 행보다. 2023년 3월 로이터통신에 보도된 바이두의 어니봇 사례를 보면 ‘국가 통합을 저해하는 콘텐츠를 금지하는’ 당국의 지침에 서비스가 부응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어니봇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평가나 1989년 톈안먼 사태, 신장 지역 소수민족 위구르족 등의 질문을 던지면 “LLM AI로서 그런 질문에 답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며 답변을 거부한다고 한다. 이처럼 중국의 AI 서비스 공급업자들은 생성형 AI의 훈련에 사용되는 데이터의 중국 내 합법성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알고리즘 설계와 데이터 훈련 시 차별을 방지하고 허위 정보의 생성을 방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제품 출시 전에 보안 평가를 당국에 제출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이용자가 실명과 관련 정보를 제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런 중국의 ‘AI 굴기’를 보면 슈밋이 왜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지 수긍할 수 있다. 물론 슈밋이 무제한 AI 개발 진행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리더가 적절한 안전장치를 만들고 연구자 역시 AI의 부정적 측면을 완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업계의 양심과 책임이 기능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정치인의 개입도 필요하다고 말했으나 현 미국 정부의 어설픈 대응에 대한 염려도 피력했다. ‘정부 내에 AI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그가 진단한 원인이다.


3) 사회 각계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

AI 기술의 불완전성, AI가 가짜 뉴스 유포 및 유해 정보 확산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등의 각종 윤리 문제가 제기되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챗GPT를 비롯한 AI 기술을 규제할 수 있는 입법 검토에 들어갔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및 모회사 알파벳 CEO는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기술 발전 속도와 우리가 사회적으로 생각하고 적응할 수 있는 속도가 불일치한다”며 사회가 AI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또한 AI 기술의 영향을 일찍부터 걱정하기 시작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낙관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AI 규제나 남용을 처벌하는 법의 제정이나 AI의 안전한 활용을 위한 국가 간 조약을 만드는 일은 기업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AI 개발에 엔지니어뿐 아니라 사회과학자, 윤리학자, 철학자 등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뜨거운 논쟁 한복판에서 바람직한 해법을 모색하려면 AI 기술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검토해야 한다. 비단 AI 업계 관계자들만 이 몫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와 공학자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다를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의 다채로운 관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의견을 표출하기에 앞서 AI 기술 관련 전문적인 지식과 사실관계를 공부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각자의 지식과 이해의 깊이에 차이가 있더라도 AI 기술이 촉발하는 변화의 시기에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필수적이다. AI 기술이 특정 개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바꿀 수 있는 무서운 파급력을 가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김민지 | Art&Tech 칼럼니스트

    필자는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과학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15년간 예술 관련 강의 및 진행 활동을 해왔으며 미래 교육 및 문화예술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근무했고, 경제방송에서 ‘김민지의 Art & Tech’ 앵커로 활동한 바 있다. 저서로는 『NFT Art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예술(2022, 아트북프레스)』이 있다.
    artandtechmi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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