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from Creative People : ‘쏘나타 빗방울 광고’ 만든 양수경 이노션 국장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소연(서강대 사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자동차 광고에 자동차 외양은 나오지도 않는다. 시원하게 길을 달리는 장면도, 내부 장치와 성능을 설명하는 단 한마디도 없다. 오직 눈에 보이고 줄기차게 들리는 건 비가 창에 부딪히며 번져 보이는 세상의 모습과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뿐이다. “비오는 날엔 시동을 끄고 30초만 늦게 내려볼 것. 태양 아래서만 진가를 발휘하던 선루프의 전혀 다른 매력을 발견 할테니…”라는 자막이 나오고 선루프에 떨어지는 빗방울 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핵심 ‘카피’가 자막과 내레이션으로 뜬다. “쏘나타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
그런데 이 쏘나타 광고, 분명 화제가 됐다. 5월에 처음 방송전파를 탄 직후부터 광고나 마케팅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의 블로그에 회자되기 시작했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도 평가를 쏟아냈다. ‘새벽공기를 마시기 위해 창문을 연다’는 내용으로 나온 후속광고도 반응은 비슷했다.
비단 화제만 된 게 아니었다. 이 쏘나타 ‘감성캠페인’이 집행된 후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 로열층’이 2배 증가하고 자동차 중형급 태도지수1 는 21.6%(2012년 3월4일 기준)에서 27.3%(2013년 7월13일 기준)로 5.7%포인트 올랐다.
기존 쏘나타 광고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감성광고를 만들어 낸 광고기획사 이노션월드와이드의 양수경 국장을 만나 쏘나타와 같이 오래되고 고착화된 브랜드가 어떻게 브랜드 리뉴얼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반응이 전반적으로 괜찮은 것 같다. 체감하는가.
사실 광고를 만든 우리도 당황스러울 정도다. 브랜드 무게만큼이나 쏘나타 광고라는 게 쉽지가 않다. 실패도 많이 했다. 자동차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자동차 광고를 만들다보니 걱정도 많았다. 그래도 반응이 좋은 걸 보면서 ‘소비자들이 이런 취향의 광고를 좋아할 수도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다. 우리한테도 큰 자극이었다. 공을 들인 만큼, 연구를 한 만큼 소비자들이 알아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광고가 나오게 된 배경은?
쏘나타가 워낙 ‘국민차’ ‘대한민국 대표차’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나쁘게 말하면 ‘주황색 택시차’, 아무나 다 탄다는 의미의 막말로 ‘개나 소나타’ 등으로 불리는 그런 이미지다. 자동차가 가져야 하는 ‘로망’이나 동경이 없는 브랜드가 돼 버렸다. 브랜드 자체도 25년이 훌쩍 넘었다. 물론 그렇게 오래됐다고만 볼 순 없는데 기아차의 K5가 많이 팔린 게 브랜드 위기를 더 가속화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이미지를 가진 K5가 나오면서 광고주(현대자동차)도, 우리도 위기의식을 많이 느꼈다. 쏘나타는 자꾸 늙어가고, 젊은이들은 쏘나타는 안 탄다고 하고….‘ 쏘나타도 젊게 감각적으로 가야 되는 것 아니냐’ ‘세련되게 가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광고를 만들고 브랜드를 키워가는 입장에서 그런 이미지는 탐나는 게 맞다. 늙지 않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고, 젊은 층이 계속 선호했으면 좋겠고. 처음 광고기획을 시작할 때에는 별별 얘기와 안이 다 나왔다. ‘미래의 쏘나타’ ‘SF 쏘나타’ 등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엎어버릴 초강수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더라. 고민 끝에 결론이 나왔다. ‘쏘나타가 가지는 대중적인 느낌과 현대차 대표선수라는 이미지를 죽이진 말되 브랜드 리뉴얼을 해야 한다’였다. 현대자동차의 생각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현대자동차 기업PR 자체가 감성마케팅으로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감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타본 차, 다들 경험을 갖고 있는 차인데 그중에서 가장 감성적인 경험이 뭘까. 비가 내리면 빗소리를 듣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잠시 쉬는 것. 그걸 끄집어내자고 생각한 것이다. ‘비’라는 게 첫 번째 주제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누군가 처마 밑에서 듣던 빗소리, 연인과 이별하고 카페에서 듣던 빗소리….
양수경 국장은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금강기획 등에서 캠페인 플래닝을 담당했다. 2011년부터 이노션월드와이드 캠페인 1본부 1팀장으로 현대자동차 광고를 맡고 있다. 2013년 5월부터 TV와 각종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방영되고 있는 화제의 광고 이른바 ‘쏘나타 빗방울 광고’로 쏘나타 브랜드 리뉴얼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소리’와 ‘공간’을 잡아낸 것인가.
맞다. 남자들은 추억을 혼자 꺼내보거나 잠시 눈물을 흘릴 공간조차 없다고 하더라. 여성들이 더 좋아할 줄 알았던 광고였는데 남성 소비자들의 반응이 더 좋은 건 이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공간의 측면이고, 소리는 ‘빗소리’라는 게 정말 많은 걸 함축하지 않나. 이 광고는 사실 메시지라는 게 별로 없는 특이한 광고다. 소리 자체가 메시지인 셈이다.그렇다 보니 빗소리는 정말 제대로 된 소리를 따왔다. 이미 현대자동차 최고경영진은 에쿠스에서 듣는 빗소리, BMW에서 듣는 빗소리, 아우디에서 듣는 빗소리 등을 다 연구해 놓은 상태였다. 그쪽에서도 한창 감성과 자동차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 나온 광고주(현대차)의 요구는 “절대 가짜 소리를 만들지 말라”였다. 쌀자루로 내는 효과음을 만들지도 말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빗소리처럼 작위적으로 만들지도 말라는 거였다. 진짜로 쏘나타에서 듣는 빗소리를 따오라는 말이었다. 다만 시각적으로는 왜곡이 좀 있다. 아무래도 화면에 담다 보니 빗방울이 떨어져 퍼지는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게 실제 광고에 나오는 장면과 같지는 않다. 오히려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비 오는 장면의 ‘잔상’을 표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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