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Leader Interview: 개리 데이비스 영국 맨체스터경영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진선(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박 별(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임승희(서강대 국문학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계속되면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 환경이 달라지면서 기업들의 생존 방식도 변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유통기업 브랜드 관리 분야의 대가로 통하는 개리 데이비스(Gary Davies) 영국 맨체스터경영대학원 교수는 “경기침체기라고 해서 모든 기업이 도산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어떤 기업에는 지배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규모를 키우거나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를 만나 저성장 시대를 새로운 성장 기회로 만드는 전략을 들었다.
저성장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가.
고성장 시대에는 많은 회사들이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고성장 시대에서 저성장 시대로 넘어가면 시장이 양극화된다. 무엇이든 특별한 장점을 지닌 기업들은 살아남겠지만 한계기업들은 버티지 못하고 도산한다.
경기 불황이라고 해서 성장 기회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기업들은 이 시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불황기에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이다. 규모를 키우면 원가가 절감된다. 협상 파워가 커지고 시장 지배력이 확대된다. 규모가 큰 기업들은 환경이 변해도 생존할 수 있다. 둘째, 틈새시장(niche market)을 확보하는 것이다. 특화된 고객이나 상권을 가진 기업들은 살아남는다. 어중간한 기업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주 크거나 작아도 특화된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사례와 함께 6가지 키워드를 소개하겠다. 우선 ‘강력한 개성’이다. 영국 기업인 버진(Virgin)을 보자. 이 기업은 항공부터 은행까지 400여 개의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삼성과 비슷하지만 기업 간 관계가 그렇게 밀접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 400여 개의 서로 다른 사업체가 모두 Virgin이라는 동일한 이름을 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업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동일한 브랜드를 지닌다. 리처드 브랜슨이라는 CEO의 강력한 개성을 토대로 그 브랜드 가치를 공유한다. 이 기업에서는 CEO가 곧 브랜드다. 괴짜 CEO는 그 자체로 강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기업 개성이 강하면 로열티 강한 고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스피드’다. 잘 알려져 있는 스페인 기업 자라(ZARA)를 들 수 있다. 일반적인 의류업체는 4개의 시즌을 기준으로 신상품을 생산하고 배치하지만 자라는 시즌을 8개로 구분해서 빠른 로테이션을 추구한다.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싣고 각 국가로 옮기는 배 안에서 라벨(label) 다는 작업을 할 정도로 시간을 줄여 상품 교환 속도를 파격적으로 끌어올렸다.
세 번째는 ‘소비자 몰입’이다. 세계 가구업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케아(IKEA)를 예로 들 수 있다. 소비자가 직접 조립해야 하는 대신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이케아에서 경험하는 소매 경험(retail experience)이 일반적인 가구업체들과 다르다. 사람들은 이케아 매장을 방문하기 위해 2∼3시간 운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영국만 해도 고작 12개 매장으로 전역을 커버한다. 일단 매장에 들어간 소비자는 3∼4시간 또는 그 이상 빠져나오지 못하고 구경하며 계속 구매한다.
네 번째는 ‘프리미엄 포트폴리오’다. 루이비통 모엣 헤네시(LVMH) 그룹을 들 수 있다. 이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기업이다. 어느 상황에서나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이 사치품을 살 만한 위치가 된다는 점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저성장 시대라고 다를 것은 없다. 모두 어려운 상황이지만 자신은 구매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는 이런 상황에 오히려 더 커진다. LVMH는 많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이 사들이고 있다. 패션, 코스메틱, 가방, 신발 등 카테고리 안에서도 4∼5개씩 세부 브랜드를 지닌다. 전체 브랜드 개수는 50개 정도 될 것이다.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면 일부 브랜드 성과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타격이 크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 포트폴리오가 우수한 셈이다. 앞으로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다. 한국의 LVMH 시장은 영국과 비교해 4분의 1 수준이다.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섯 번째는 ‘저가 시장 공략’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웅가(Wonga)가 있다. 저소득 계층은 대부분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단기 대출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Wonga다. 이른바 Pay day loan company다. Wonga 사이트를 방문해 온라인으로 대출을 신청하면 20분 만에 최대 300파운드(한화 약 50만 원)를 빌릴 수 있다. 물론 이자율이 매우 높다. 연율로 계산할 경우 이자율은 4000%에 달한다. 하지만 돈이 급한 사람이라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을 것이다. 이 회사는 저신용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단기 대출 서비스를 개발해 큰 성과를 거뒀다.
또 다른 예로 알디(ALDI)를 들 수 있다. 독일에서 출발한 유통업체다. 이 회사는 상품을 매우 저렴하게 제공하는 대신 선택의 폭을 줄였다. 예를 들어 테스코에서 우유를 사려고 한다면 10가지도 넘는 브랜드 중에 가격과 질을 따져 구매할 수 있다. 알디에는 오직 한 가지 종류의 우유뿐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매우 싸다.
여섯 번째는 ‘인터넷’이다. 2011년 영국 소비 중 12%가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쇼핑에서 더 이상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빠르고 쉽게 쇼핑하기를 선호한다. 초기 온라인 쇼핑은 배송이 큰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배송 문제가 그다지 크지 않다. 영국에서 온라인으로 신발을 고르면 비슷한 신발 2켤레와 함께 총 3켤레를 보내준다. 하나를 고른 후 2개는 반송하면 되는 식이다. 빠른 배송과 우수한 서비스 덕분에 온라인 쇼핑 비율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영국 패션 소매업체 중에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기업은 ASOS다. 이 기업의 오프라인 매장은 크지 않다. 사람들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입한다. 혹은 온라인에서 구입한 후 오프라인에서 받아갈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큰 기업과 작지만 특화된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중간급 기업들에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무엇인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혜택을 누릴 수 없고 특화된 시장을 갖지 못한 기업이라면 마진이 점점 줄고 결국 파산하게 될 것이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중 몇몇은 대기업에 팔릴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은 점점 더 커지려고 하니까 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나쁜 소식일 수 있겠지만 주주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중간 규모 기업의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라면 매각 과정에서 주가가 크게 오를 수 있다. 파산하는 것보다는 팔리는 편이 낫지 않은가.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큰 리스크다. 뛰어난 경영진이 엄청난 혁신을 일으킨다면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급변하는 상황에 살아남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평가한다면.
2년 전 방한했을 때와 비교하면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나 브랜드 이미지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사실 유럽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질은 그저 그렇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8년 전 소니 임원 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들에게 가장 큰 라이벌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델이라고 답했다. 삼성은 경쟁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특히 삼성이 그렇다. 최근 2년 새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인지도가 급격히 좋아졌다. 삼성은 디자인과 마케팅 모두 잘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첼시를 후원하면서 마케팅을 하는데 이는 새로운 시장에 들어갈 때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영국 특유의 English Humor를 적절히 구사하기도 한다. 한류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젊은 층은 물론 나와 동년배인 사람들도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골퍼들을 응원하며 한국 영화에 관심을 갖는다. 이제는 한국 기업을 프리미엄급으로 분류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저성장 시대를 맞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무조건 다른 기업을 사야 한다. 러시아, 남미, 중국 등 지금 전 세계에 싸게 나온 회사가 매우 많다. 특히 자금 조달 비용이 굉장히 낮다. 3%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면 모든 투자자들이 사려고 달려들 것이다. 기업 내부에 보유하고 있는 자금도 많다. 여유 자금으로 가능한 많이, 다른 회사를 사들여야 한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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