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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ential Cases in Books

긴자의 빌딩옥상이 양봉 취적지라고?

서진영 | 130호 (2013년 6월 Issue 1)

 

 

신록과 녹음의 계절이다. 이럴 때 서울 거리를 걷노라면 가끔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 을지로에는…”이라는 가수 이용의서울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그런데 정말 종로에 사과나무가 있을까? 이 노래의 영향 때문인지 서울올림픽 다음해인 1989년에만도 종각 녹지대 등에 88그루의 사과나무 단지를 조성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사과가 거의 익어갈 무렵 사과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서울의 시민의식과 함께. 이후 종로에서 사과나무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런데 지금 다시 사과나무를 심는다면 우리가 가을에 주렁주렁 달린 사과를 맞이할 수 있을까? 이제는 고취된 시민의식이 문제가 아니라 도심에서 사과를 수분(受粉)해 줄(bee)’이 부족해서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수도인 도쿄(東京)라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지식창조기업을 연구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학자인 노나카 이쿠지로는 <생각을 뛰게 하라 : 뜻밖의 생각을 뜻대로 실현시키는 힘(흐름출판, 2012)>에서 화려한 쇼핑의 거리가 꿀벌의 천국이 되는긴자 꿀벌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2005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긴자의 마츠야백화점 뒤편에 들어선 임대 빌딩인 종이펄프회관의 간부 다나카 아츠오(田中渟夫)는 우연히 지인과의 식사에서 이와테현의 어느 양봉업자가 도쿄 빌딩 옥상에서 꿀벌을 키울 장소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이끌려 인심 좋은 다나카는우리 빌딩 옥상을 빌려도 좋다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다나카는 주로 사무실이나 홀, 회의실을 대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며칠 뒤 양봉업자가 긴자에 나타났다. 그는 모리오카시에서 양봉업을 하던 후지와라 세이타(藤原誠太)였다. 메이지 시대부터 내려오는 일본 근대 양봉의 선구자 후지와라 양봉장의 3대손이다. 하지만 함께 옥상에 올라간 순간 후지와라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나왔다.

 

“살아 있는 생물을 키우는 일이니까 제대로 배워두셔야 합니다.” (후지와라 세이타)

 

아니 무슨 날벼락인가? 다나카는 사실 종이펄프회관의 옥상에서 시민활동 정도로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라면 협력한다는 취지였다. 자신이 직접 양봉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꿀벌은 무서워서 못 만집니다.”(다나카 아츠오)

 

후지와라는 꿀벌을 환경지표생물로 활용해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는꿀벌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남 다른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다나카를 설득해나갔다. 후지와라는 다나카를 자신이 양봉을 하고 있는 나가타마을의 정당빌딩 옥상과 자신의 모교인 도쿄농업대학의 사육장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벌통을 열어 다나카에게 꿀벌을 손으로 만져보게 했다. 꿀벌의 어렴풋한 체온이 다나카의 손끝으로 전해졌다. 꿀벌들이 자식을 키우기 위해 벌집을 따뜻하게 덥히고 있었던 것이다.

 

긴자의 꿀벌 키우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고급 쇼핑몰이 가득한 긴자에서 파티셰와 투자설계사, 심리상담사, 변호사 등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였다. 2006년 봄긴파치(ぱち, 긴자+하치(꿀벌)의 합성어)’로 불리는긴자 꿀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328일 택배 상자에 담긴 3만 마리의 꿀벌이 도착했다. 벌집의 입구를 열고 한 시간 뒤 가 보니 꿀벌들은 벌써 뒷다리에 꽃가루를 붙이고 돌아오고 있었다. 일주일 뒤 처음으로 꿀을 채취했다. 벌집을 원심분리기로 걸렀더니 꽃향기가 나는 끈적끈적한 꿀이 흘러나왔고 양도 5∼6㎏이나 됐다. 긴파치 멤버들은 도쿄타워와 시오도메의 고층 빌딩을 배경삼아 벌꿀이 담긴 병을 들고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으며긴자가 벌꿀 생산지가 됐다고 기뻐했다. 긴자는 의외로 양봉에 적합한 장소였다.

 

“꿀벌이 날아다닐 수 있는 거리는 반경 4㎞라고 합니다. 이 범위 내에서 서쪽에는 황궁, 히비야공원이 있고 남쪽에는 하마리큐정원이 있으며 거리에도 많은 가로수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특히 황궁의 정원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내 번화가에서도 농약 사용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꽃이 많고 농약 걱정이 없는 긴자는 꿀벌들이 살기에 매우 좋은 장소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거 다 싶었죠.”

 

4월부터 2개월 반 동안, 주말을 이용해 열두 번에 걸쳐 총 15㎏의 벌꿀을 채취했다. 벚꽃과 백합, 마로니에, 싸리나무, 귤나무, 라벤더 등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꿀은 이곳이 벌을 키우는 데 아주 풍부한 자연환경을 갖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채취한 꿀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긴자는 원래 생산의 거리였다. 다나카는 긴자산 벌꿀을 이용해서 상품을 만들어 보려는 생각을 했다. 양봉 현장인 빌딩 옥상에서 꿀벌을 직접 보여 주고 그 맛을 보여주자 협조하겠다는 가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츠야백화점의 화과자 전문점인 만년당과 청월당에서는 양갱을, 프렌치셰프 미쿠니 키요미의 가게 미쿠니 긴자점에서는 케익을, 고급 과자점 앙리 샤르팡티에의 긴자 본점에서는 마들렌을, 유명 베이커리인 메종카이저에서는 벌꿀을 뿌린 데니슈를 만들어 가게에 진열했다. 모두 좋은 평가와 인기를 얻었다.

 

소비의 거리 긴자에서 꿀을 생산한다는 소식은 앞 다투어 보도됐다. 꿀을 채취할 때마다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 해외 방송국의 인터뷰가 세계 각국으로 보내졌다. 이런 반응에 누구보다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지역 주민들이었다.

 

“중앙구청 녹지공원과 직원들은 자신들이 심은 가로수에서 벌꿀을 얻은 사실에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처음에는 위험할까봐 걱정하던 상점 운영자들도 방송에서 긴자가 꿀벌이 살 수 있는 깨끗한 환경이라고 보도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긴자 꿀벌 프로젝트는 2년째 되는 해에 민간비영리단체 법인 자격을 취득해 명분도 세웠다.

 

‘양봉을 통해서 긴자의 환경과 생태계를 살리는 동시에 채취한 벌꿀을 이용해서 긴자 거리와 도시의 자연 공생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처럼 이들은 도시와 자연의 공생을 목표로 삼았다. 실제로 꿀벌이 긴자의 하늘을 날기 시작한 뒤 거리의 풍경은 달라졌다. 지금껏 열매를 맺은 적이 없었던 나무들이 꿀벌 덕분에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를 새가 먹으러 오면서 해충도 잡았다. 긴자의 생태계가 서서히 원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긴자 꿀벌 프로젝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2년째 되던 2007, 프로젝트 멤버들에게 꿀벌이 거리에 나타나서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오페레타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프로 성악가들이 직접 출연한 오페레타긴파치 이야기는 종이펄프회관 근처에 있는 홀에서 3일 동안 공연됐다. 큰 화제를 낳았으며 호평이 이어졌다. 스토리가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해 벌꿀 채취량은 290㎏으로 늘어났다.

 

3년째 되던 2008,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긴자의 벌꿀 채취량은 일본의 벌꿀 생산량 약 3500 t 0.01%에 이르렀다. 일본의 양봉업자를 3000명 정도로 볼 때 다나카 일행도 생산자에 해당된다. 채취한 벌꿀로 상품을 제조하는 회원들에게 1인당 회비 1만 엔에 해당되는 벌꿀로 1㎏씩 제공했는데 2년째 되던 해는 이 수입이 무려 200만 엔으로 늘었다. 일본의 농림수산청 통계로는 농산물 판매금액이 연간 50만 엔 이상일 때 판매농가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환경보호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하면 산속의 곰이나 논두렁의 송사리를 떠올린다. 하지만 긴파치 프로젝트는 긴자 꿀벌을 이용해 산골 마을과 도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갔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네트워크가 긴자 지역 내에서도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긴자 사람들은 꿀벌이 놀러갈 수 있는 장소를 넓히자며 자발적으로 빌딩 옥상에 꽃밭과 채소밭 등을 만들었다. 바로긴자 빌딩 정원 만들기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옥상과 지붕을 꽃밭 등으로 만드는 옥상 녹화 사업은 환경의 여러 문제, 특히 물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그린칼라 이코노미(반 존스 지음, 페이퍼로드, 2009)>에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푸른 별 지구에서 물 부족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구에 있는 물 가운데 오직 2.5%만이 담수다. 그나마 대부분은 얼음이나 눈의 형태로 존재한다. 얼어 있지 않은 물은 주로 지하수로 땅속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가 사는 도시 대부분은 콘크리트처럼 물이 스며들 수 없는 재질로 덮여 있다. 비가 내리면 원래 자연 상태에서는 지표면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채워야 하는 물이우수(storm-water)’로 흘러 사라진다. 그 결과 대다수 도시는 빗물이 대수층(帶水層)을 미처 채우기도 전에 지하수를 빠르게 고갈시킨다. 우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도시 녹지화 사업이다. 도시 녹지화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도 포함하지만 방수재 위에 식물을 심고 그것으로 지붕을 덮는 녹화지붕사업도 포함한다.

 

2000년 이후 유럽과 미국 시카고에서는 도시 녹화지붕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녹화지붕은 배수로로 들어가는 물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대기를 정화하며, 건물을 식히면서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고, 지붕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효과가 있다.

 

일본의 긴자에서도 백화점과 쇼핑몰, 구청 결혼식장, NTT 동일본 빌딩 등 옥상 풍경이 녹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꽃밭이 늘어나면서 3년째 되던 해의 벌꿀 채취량은 440㎏으로 첫해의 세 배나 증가했다. 4년째인 2009년에는 더욱 늘어서 800㎏으로 최고를 기록했다. 이러한 지붕 녹화의 장점들에 더해 다나카는 긴자 꿀벌 프로젝트가 긴자의 농촌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꿀벌은 적은 농약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꿀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인간에게도 이롭다. 게다가 꿀벌은 식물의 수분과 생태계의 순환을 돕는다. 자연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긴자에서 양봉을 시작하자 긴자의 녹음이 짙어졌다.

 

일본이 부러웠다. 우리도 2012년 서울시청 옥상과 월드컵공원에서 2만여 마리의 꿀벌을 키우기 시작했다. 2013년 제68회 식목일에는 작곡가 홍난파 선생의 생가(生家)가 있는 월암 공원 등에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매실나무 등 12 763그루를 심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익은 사과를 그대로 두는 높은 시민의식일까? 긴자의 벌꿀 이야기와 시카고의 옥상 정원에서 창조의 지혜를 배웠으면 한다. 바로 우리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지혜가 창조되는창조의 장소로 받아들이는 순간지혜의 생태계(eco system)’가 형성된다. 창조경제와 그린이코노미는 파랑새처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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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진영

    서진영sirh@centerworld.com

    - (현)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
    -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운영 - OBS 경인TV ‘서진영 박사의 CEO와 책’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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