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13년 봄 호에 실린 하버드 의대 방사선 종양학 부교수 에바 귀난(Eva Guinan), 런던비즈니스스쿨 조교수 케빈 J. 부드로(Kevin J. Boudreau), 하버드 경영대학원 경영학 부교수 카림 R. 라카니(Karim R. Lakhani)의 글 ‘Experiments in Open Innovation at Harvard Medical School’을 번역한 것입니다.
하버드 의과대학(Harvard Medical School)은 혁신 과정을 개방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조직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하버드 의과대학에 소속된 2만 명이 넘는 교수진과 연구진, 대학원생들은 이미 세계 최상급이며 하버드 의과대학은 의학 연구 분야에서도 이미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U.S.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으로부터 연간 약 14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을 정도다.
하지만 2010년 2월, 드루 파우스트(Drew Faust) 하버드대 총장은 하버드대의 모든 교수진, 연구진, 학생 등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e메일을 발송했다. 제1형 당뇨병(Type 1 diabetes)과 관련된 연구 주제를 찾아내기 위해 하버드 의과대학이 주최하는 ‘아이디어 경연대회(ideas challenge)’에 참여할 것을 권고하는 e메일이었다. 결국 2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이디어 경연대회 정보를 공유했으며 총 150개의 연구 아이디어와 가설이 등장했다. 하버드 의과대학은 150개의 아이디어 중 뛰어난 아이디어 12개를 추려낸 후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하는 연구진을 모아 연구팀을 꾸렸으며 12개의 아이디어에 대한 연구 제안서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아이디어 생성 과정을 개방하고 연구 과정을 구성하는 각 단계를 세분화한 목적은 참여자의 숫자와 범위를 늘리는 것이었다.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구원으로 구성된 7개 팀이 혁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아이디어에 노력을 쏟고 있다.
필자들은 본 논문에서 하버드 캐털리스트(Harvard Catalyst) 지도부가 개방성과 분산을 강조하는 방식의 혁신(open and distributed innovation)을 추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하버드 캐털리스트는 실험실에서 연구된 치료법이 환자의 병상으로 좀 더 신속하게 이동하도록 만들고 하버드 의과대학 내의 여러 폐쇄적인 하위 조직들이 이를 위해 협력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필자들은 이 실험을 직접 고안하고 설계한 당사자로서 대규모 엘리트 조직이 ‘혁신 과정을 혁신’하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직접 경험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하버드 캐털리스트(Harvard Catalyst)의 실험
하버드 의과대학 산하의 범대학 임상 중개 과학 센터(pan-university clinical translational science center)인 하버드 캐털리스트는 최근 민간 및 정부 부문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개방형 혁신’을 전통적인 학계에도 적용 가능할지 확인하고자 했다. 내부인들 가운데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개방형 실험을 진행하면 최고의 기량을 갖고 있는 뛰어난 연구진(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소외감을 느낄 가능성이 컸다. 또한 공개적으로 아이디어를 구한다고 해서 연구에 관한 혁신적인 질문을 찾아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하버드 캐털리스트 지도부는 개방형 혁신이 효과적인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버드 캐털리스트는 하버드 의과대학 곳곳에서 활동 중인 공동 연구자들에게 좀 더 신속하게 자원을 할당하는 등 인프라를 공유할 책임도 맡고 있었다. 이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하버드 의과대학은 방대하고 복잡한 기관이었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의료센터의 수가 무려 17개에 달했으며 각 의료센터가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 결과는 대개 개별 센터 내에 보관돼 있었다.
하버드 캐털리스트가 진행한 개방형 혁신 실험의 목표는 비단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참신한 해결방안을 찾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하버드 캐털리스트는 연구 질문을 구체화하는 데서부터 연구 제안을 평가하고 오랫동안 지속된 문제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방법을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학적 실험을 장려하는 데 이르기까지 과학 연구 과정의 모든 측면을 체계적으로 개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확인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하버드 캐털리스트는 전통적인 연구 과정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한편 개방형 혁신을 추구했다.
개방형 혁신의 지도 원칙
지난 몇 년 동안 개방형 혁신 분야에서 진행된 연구를 통해 다수의 참가자들이 갖고 있는 집단적인 에너지와 창의성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경제 원칙 및 혁신 관행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졌다. 이를 위해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오픈 앱 플랫폼, 우승자에게 상금을 수여하는 방식의 경연대회, 크라우드소싱, 크라우드펀딩, 공유 재산과 정보저장고에 대해 널리 분포돼 있는 기여(distributed contributions to shared goods and repositories), 정보 보관소 등 다양한 형태를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개방형 혁신 시스템의 핵심은 수많은 관계자들의 접근을 허용하는 것이다.1
민간 및 정부 부문2 에서 개방형 혁신은 참신한 접근방법3 을 필요로 할 가능성이 큰 비정례적(non-routine)이거나 비전형적인(non-paradigmatic) 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히 커다란 도움이 돼 왔다. (낮은 비용을 투입해 좀 더 정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접근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일라이 릴리(Eli Lilly), P&G, 디즈니(Disney), 미 항공우주국(NASA) 등 다양한 조직들이 조직 경계 밖에 있는 개인과 팀의 지식 및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도입했다.
하버드가 미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60개의 임상 중개 과학 센터 중 하나로 뽑히기 위해 지원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개방형 혁신에 대한 하버드 의과대학의 관심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버드의 주된 동기는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미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임상 실험 자금을 지원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버드 캐털리스트의 수석 연구원 리 네이들러(Lee Nadler) 박사와 경영진은 국립보건원이 제시한 원대한 목표를 적극 수용했다. 국립보건원이 제시한 목표는 인간의 건강과 관련된 연구 부문에서 위험도가 높고 영향력이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기관 및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한 부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를 한데 모으는 것이었다.
2008년 5월, 하버드 캐털리스트는 국립보건원으로부터 5년간 1억175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며 하버드대, 하버드 의과대학, 하버드 의과대학과 연계된 학계 의료 센터로부터 750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연구원을 교육해 훈련시키고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며 과학 부문에서 등장한 관련 있는 제안에 새로운 자금 지원 메커니즘을 제공하는 용도로 이 자금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환자의 침상으로(혹은 반대 방향으로) 연구 내용을 좀 더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하버드 커뮤니티 구성원들을, 얼마나 깊숙이 참여시켜야 할지는 명시돼 있지 않았다. 방대한 규모의 과학 기반 엘리트 연구 조직 내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개방형 혁신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까?
개방형 과학에 개방형 혁신 적용하기
민간 부문의 R&D 활동과는 반대로 학계 과학 연구의 중요한 특징은 개방성이다.4 학계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은 다른 동료 과학자들의 평가를 받는 저명한 저널에 논문을 발표해 명성을 쌓는다.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널에 발표된 논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문은 제외시키되 타당하고 중요한 과학 이론과 근거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연구비 지원 여부를 결정할 때는 과거의 연구 실적, 활동 중인 분야 내에서 각 연구자가 쌓은 신뢰도, 제안된 연구의 잠재적인 효과 및 실행 가능성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최고 수준의 과학 저널에 실리는 논문은 전체 논문 중 10%도 채 되지 않으며 연구 제안서 가운데 연구비를 지원 받는 건 10∼20%도 채 안 될 정도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5
학계의 과학 연구 과정은 상업 부문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연구에 비해 좀 더 개방적인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 시스템의 논리 자체는 여전히 폐쇄적이다. 다시 말해서 소수의 사람들이 혁신을 위한 노력의 방향을 결정하고 혁신을 실행할 책임을 맡고 있다.과학 연구팀 내에서 활동할 구성원을 모으고 팀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은 대개 책임 연구원이다. 팀의 구성원이 결정되고 나면 과학팀은 먼저 어떤 가설을 탐구할지 결정한다. 책임 연구원과 공동 연구원들의 훈련 수준, 교육 수준, 전문성에 따라 연구 질문과 가설이 결정된다. 전문가 회의를 토대로 동료 과학자들이 정한 우선순위와 연구비 지원 요청 상황도 연구의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다음, 동료 과학자들로 구성된 검토 패널은 각 제안이 연구비를 제공하는 개인 혹은 조직의 요구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며 연구비를 지원받기에 적절한지 평가한다. 연구팀은 실제로 실험을 진행해 우수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찾아낼 경우 또다시 동료 검토를 요청한다. 동료 검토를 통해 연구의 우수성이 입증되면 실험 결과를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계가 진행하는 과학 연구의 결과물은 개방적이지만 연구에 투입되는 요소와 연구 과정은 폐쇄적이며 연구에 참여하는 대상이 주로 특정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로 제한된다.이로 인해 연구팀이 연구 과정 내의 모든 단계를 수행하는 완전 통합 혁신 시스템이 탄생한다. (그림 1)
노출 범위를 확대하려면 단순히 장애물(법적 장애물, 정보 관련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투자(마케팅, 메시지 전달 등)를 해야 한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로 외부인이 새롭게 노출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들 수 있다. 이런 류의 비용을 낮추려면 좀 더 규모가 작고 간단히 해결 가능한 문제를 명확하게 명시하고 수많은 관계자와의 상호 작용을 장려하기 위해 인프라와 플랫폼을 지원해야 한다.
하버드 캐털리스트는 개방형 혁신이 제1형 당뇨병에 관한 연구 과정의 매 단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파악하고자 했다. 아이디어 생성 단계에서부터 아이디어 평가 및 자금을 지원할 아이디어 선별, 다양한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을 상대로 연구팀 참여를 고려하도록 권고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개방형 혁신이 모든 단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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