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2년 4월 호에 실린 아스펜 연구소 CEO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의 글 ‘The Real Leadership Lessons of Steve Job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 2012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shing Corp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파란만장한 삶은 엄연히 기업가적인 창조 신화다. 1976년에 부모님 집 차고에서 애플(Apple)을 공동 설립한 잡스는 1985년에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1997년에 애플에 복귀해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른 회사를 되살려놓았다. 2011년 10월에 세상을 떠날 즈음 잡스는 애플을 세상에서 가장 비싼 회사로 키워놓았다. 그 과정에서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 전화, 태블릿 컴퓨터, 소매 매장, 디지털 출판 등 총 7개 산업의 변화에 기여했다. 이와 같은 혁혁한 공로로 인해 잡스는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헨리 포드(Henry Ford), 월트 디즈니(Walt Disney)와 함께 미국의 위대한 혁신 영웅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성인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잊혀진 지 한참이 흐른 후에도 역사는 이들이 기술과 비즈니스에 어떻게 상상력을 덧입혔는지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필자가 집필한 잡스 전기가 세상에 공개된 후 몇 달 동안 수많은 논객들이 그 글에서 경영에 관한 교훈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제법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중 상당수가(특히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잡스의 성격 중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듯 모가 난 부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잡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잡스의 성격이 비즈니스 운영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잡스는 보편적인 규칙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듯 굴었고 자신의 일상 생활에 접목했던 열정과 집중력, 극단적일 정도로 감정을 중시하는 태도를 자신이 만들어내는 제품에도 똑같이 쏟아부었다. 쉽게 발끈하고 초조해하는 성격은 잡스가 추구했던 완벽주의의 핵심이었다.
전기 집필 작업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던 잡스를 만나 사람들을 거칠게 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질문이 끝나자 잡스는 결과를 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데리고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얼마든지 다른 회사로 옮겨가 최고의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런 다음 잡스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아쉬운 듯한 어조로 다시 말을 시작했다. “우리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 사실 잡스와 애플은 지난 10여 년 동안 아이맥(iMac), 아이팟(iPod), 아이팟 나노(iPod nano), 아이튠즈 스토어(iTunes Store), 애플 스토어(Apple Stores), 맥북(MacBook), 아이폰(iPhone), 아이패드(iPad), 앱 스토어(App Store), OS X 라이언(OS X Lion) 등 현대에 등장한 그 어떤 혁신 기업이 내놓은 것보다 훌륭한 히트작을 수없이 선보였다. (픽사(Pixar)에서 제작한 모든 영화는 두말할 것도 없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병마와 싸우는 동안에는 다정한 아내, 여동생, 4명의 자녀, 오랜 세월 동안 잡스로부터 영감을 얻고 잡스에게 충성을 다해 온 동료들이 그의 곁을 지켰다.
따라서 필자는 스티브 잡스가 주는 진정한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실제로 잡스가 무엇을 이뤄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잡스에게 자신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창조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잡스가 아이패드나 매킨토시라고 답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잡스는 ‘애플’, 회사 그 자체라고 답했다. 잡스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오래 지속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훨씬 힘들고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잡스는 어떻게 그토록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경영대학원들은 지금부터 한 세기는 지난 후에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연구할 것이다. 필자가 잡스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핵심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집중하라(Focus)
잡스가 복귀한 1997년 당시 애플은 십여 종의 매킨토시 제품을 비롯해 수많은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닥치는 대로 생산하고 있었다. 몇 주 동안 제품 검토 과정을 거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잡스가 마침내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만해! 이건 미친 짓이야.” 잡스는 마커펜을 집어 들고서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화이트보드를 향해 걸어간 다음 2x2 매트릭스를 그렸다. 잡스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것”이라고 선언했다. 잡스는 2개의 행 위에 ‘일반인용(consumer)’이라는 단어와 ‘전문가용(pro)’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그런 다음 2개의 열 앞에 ‘데스크톱(desktop)’이라는 단어와 ‘휴대용(portable)’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잡스는 팀원들에게 각 사분면에 해당되는 제품을 하나씩 결정해 총 4개의 위대한 제품에 주력해야 하며 나머지 제품은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직원들은 모두 망연자실한 듯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잡스는 애플이 단 4개의 컴퓨터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애플을 구원했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기업도 마찬가지고, 제품도 마찬가지다.”
잡스는 애플의 문제를 바로잡은 후 매년 브레인스토밍을 위해 ‘최우수 직원 100인’을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아이디어 워크숍을 떠났다. 마지막 날이 되면 잡스는 으레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질문을 던졌다. (잡스는 화이트보드를 무척 좋아했다. 화이트보드를 사용하면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사람들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10가지 일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제안한 내용이 최종 목록에 올라갈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잡스는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간 다음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제안을 지워버리곤 했다. 치열한 토론 끝에 총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목록이 완성되면 잡스는 가장 순위가 높은 3개의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7개 항목을 지워버리고선 선언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3개뿐이지.”
잡스는 집중하는 능력을 타고난데다 선(禪) 수행을 통해 집중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잡스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요인을 가차없이 걸러냈다. 잡스는 법률 문제, 의학 진단 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따라서 잡스의 동료와 가족들은 잡스가 이런 일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애를 쓰다가 잡스의 고집 때문에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잡스는 냉담한 눈으로 상대를 빤히 쳐다보면서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집중하고 있는 일에서 조금도 관심을 옮기지 않겠다며 거부의 뜻을 밝히곤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구글(Google)을 공동 설립했으며 머지않아 구글의 CEO가 될 채비를 하고 있었던 래리 페이지(Larry Page)가 잡스를 찾아왔다. 애플과 구글이 오랫동안 반목한 것이 사실이지만 잡스는 기꺼이 페이지에게 조언을 해줬다. 잡스는 당시 페이지에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집중”이라고 이야기해줬다. 또한 잡스는 페이지에게 구글이 어떤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보라고 제안했다. “지금은 모든 곳에서 구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주력하고자 하는 5개 제품을 꼽으라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나머지는 제거해야 한다. 주력해야 할 대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대로 일을 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구글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로 변해가고 있다. 그것들 때문에 구글이 위대한 제품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제품을 내놓게 된다.” 페이지는 잡스의 조언을 따랐다. 2012년 1월, 페이지는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직원들에게 안드로이드(Android), 구글 플러스(Google+) 등 몇 가지 우선순위에 주력하고 우선순위에 해당되는 것들을 ‘아름답게(beautiful)’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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