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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selfish Gene

이타적 유전자: 이기심의 신화를 깨자

요카이 벤클러 | 100호 (2012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1년 7-8월 호에 실린 요카이 벤클러의 글 ‘The Unselfish Gene’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1976년,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모든 인간이 기꺼이 협동하며 이기심을 버리고 공동의 선을 향해 나아가는 사회는 나를 비롯한 모두가 원하는 이상향이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만 기댄다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관용과 이타심은 가르쳐야 습득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6년부터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 수학 생물학자 마틴 노왁(Martin Nowak)은 과학잡지 <사이언스(Science)>에 기고한 ‘협력의 진화론’에서 “진화의 가장 놀라운 면모는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협동하도록 만드는 능력에 있다. 따라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외에 ‘자연 협동(natural cooperation)’을 제3의 진화 원칙으로 추가해야 한다”고 적었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이 바뀌기 시작한 까닭은 무엇일까? 진화생물학 이론이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라는 관념에 도전하는 흐름은 심리학이나 사회학, 정치학, 실험 경제학 등의 다른 학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학문에서의 생각이 하나로 모여 인간 행동 및 동기 부여와 관련된 새로운 원리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이기적 이성(self-interested rationality)이라는 믿음이 팽배했다. 정교하게 구축된 합리적 행위자 이론(the rational actor theory)이 인간 행동과 제도, 조직 이론의 근간을 차지했다. 합리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론은 인간 행동을 예측하는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에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상정하고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또한 협력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결국 모두에게 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최악의 모습을 상정해서 사회 구조를 구축해야 다른 사람의 이타심을 악용하려는 이들로부터 사회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2008년 미국의 금융 및 신용 시스템이 붕괴된 후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은 미 상원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효과적으로 활용됐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금융기관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서 주주의 자산 가치를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특히 나는, 충격적인 불신에 빠졌다. 이기적 이성은 지난 40여 년간 비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폭넓은 확신은 협력에 대한 모순되고 잘못된 가정 때문에 생겼다. 이 중 하나는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1651년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 때문이다. 이 책에서 홉스는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정부 통제가 없으면 근시안적인 이기심으로 서로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대안적 해결책으로 제시한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이다. 그는 1776년 저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비용과 편익을 합리적으로 비교해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자유시장에서 이들의 행동은 결국 공공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홉스와 스미스의 처방전은 매우 다르지만 ‘리바이어던’이나 ‘보이지 않는 손’은 모두 동일한 가정을 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기적 이성’ 모델은 보다 많은 학문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를 가장 먼저 표현한 학문이 경제학이다. 1968년 노벨상 수상자 게리 베커(Gary Becker)는 범죄의 이점과 처벌의 대가를 이성적으로 저울질해서 발각될 가능성을 고려해 실행에 옮기는 범죄자의 계산이야말로 가장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처벌을 더 가혹하게 하고 경찰 단속을 강화해야 범죄를 확실히 단속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같은 해 가렛 하딘(Garrett Hardin)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을 제시했다. 이는 누구든 그 숫자에 제한 없이 소를 방목할 수 있는 공유지를 둔 농부들의 이야기다. 놓아기를 수 있는 소 숫자에 제한이 없으면 농부들은 계속해서 가축 수를 늘려간다. 그러다 보면 공유지에 풀이 한 포기도 남지 않게 된다. 하딘은 다른 농부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을 염려한 농부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소 숫자를 늘리면서 공유지를 남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기적 주체인 인간이 공동의 자원을 낭비하지 않도록 규제나 재산권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 하딘의 결론이다.
 
그러나 생물학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엘리노어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2009년 공유물이 어떻게 수백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지를 입증해서 노벨상을 받았다. 가장 놀라운 사례는 스페인이다. 이곳에서 수천 명의 농부들은 자율적인 관개를 통해 500년 이상 수자원을 관리해왔다. 또 다른 예로 인구가 5만 명 이상인 미국 도시의 75%는 가혹한 처벌이 아니라 경찰과 지역 주민 간 관계를 인간적으로 관리해 범죄를 줄이는 자율 방범 제도를 성공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새로운 경쟁업체가 등장하면서 발생하는 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이기심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서야 한다.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선보인 백과사전 엔카르타(Encarta)는 네트워크화된 정보 경제학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시장 선도업체 MS는 선점 우위와 네트워크 효과를 활용해 강한 입지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결합상품을 만들어 낮은 비용에 유통했다. 수천 달러에 달하는 육중한 브리태니카(Britannica) 백과사전 32권 세트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10년 뒤 브리태니카는 결국 다른 모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브리태니카를 압박한 결정적 제품은 엔카르타가 아니었다. MS는 2009년 엔카르타 판매를 중단했다. 이기적인 이성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업 모델로부터 강한 도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로 위키피디아(Wikipedia)다.
 
매달 3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하며 전 세계에서 7∼8번째로 방문자 수가 많은 웹 사이트 위키피디아가 독특하다고 생각한다면 사용자 협력 기반의 옐프(Yelp)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갓(Zagat)에 물어보거나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포도르(Fodor)에 물어보라. 개방형 소프트웨어의 부상은 그와 유사한 역동성을 불러일으켰다. 15여 년 동안 전 세계 기업들은 웹 어플리케이션에 아파치(Apache)라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왔고 MS의 서버 소프트웨어가 상당한 격차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구글(Google)이나 페이스북(Facebook),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list) 등은 인터넷 사용자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수익을 내는 사업 방식을 찾아냈다. 인간의 이기심을 강조하는 과거 모델로는 예측하거나 실행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들 조직이 일하는 방식은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는 가정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수십 년 동안 경제학자와 정치가, 입법가, 경영진, 엔지니어들은 사람들이 공공·기업·지역 사회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 인센티브와 보상, 처벌을 활용하는 시스템과 조직을 구축해 왔다. 직원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려면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업무 성과를 꼼꼼히 관찰한다. 경영진이 주주를 위해 일하게 하려면 스톡옵션을 지급한다. 의사가 환자를 더 잘 치료하도록 하려면 의료 과실 소송으로 위협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서로 힘을 합하고 협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옳은 일을 하고 공정하게 행동하며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고 자신이 속한 그룹이나 팀을 보살피며 친절에 친절로 보답하는, 예의바른 사람으로 살기 위해 애쓴다. 사회 및 행동 과학 부문의 연구자들이 협력 메커니즘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회의 많은 부문에서 협력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인간이 정말로 협력적이며 이타적(혹은 훨씬 덜 이기적)이라는 증거가 여러 학문 분야에서 발견되고 있다. 아마도 인류는 원래 그리 이기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십수 개의 연구들은 인센티브에 기반한 시스템보다 협력적 시스템이 더 안정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진화 생물학자나 심리학자들은 협력하는 인간 성향을 뒷받침하는 신경학적 또는 유전적 증거를 찾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과거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협력적 개인들과 이들로 구성된 사회가 진화에 훨씬 유리하다는 증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패턴이 발견된다. 인간의 협동적 행동을 실험한 결과, 약 30%에 달하는 다소 많은 소수의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이기적으로 행동했다. 그러나 50%는 조직적으로 또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협력을 택했다. 이들 중에는 조건적으로 협력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친절에는 친절로, 악행에는 악행으로 대응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협력을 택했다. (나머지 20%는 예측이 불가능했다. 이들은 협력할 때도 있고 거부할 때도 있었다.)통제된 환경 속에서 관찰한 집단 중 어느 곳에서도 사람들은 일관적으로 이기적이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보다는 참여와 의사소통, 목적의식과 정체성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 조직은 인간을 단순히 이기적 존재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협력하고 관용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인간의 이기심에 기반해 보상과 처벌을 앞세우는 시스템은 사회적 동기를 지향하는 방식보다 생산성이 낮은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는 인간 행동에 대한 새로운 가정을 토대로 더 나은 사회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성에 대해 달라진 믿음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좀 더 관용적인 모델을 갖도록 허락한다. 물론 우리가 모두 테레사 수녀는 아니다. 그랬다면 테레사 수녀가 유명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인간의 과반수가 기존 이론과 달리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신뢰받을 만하며 자비심을 가진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고 봐야 한다. 이를 인정한다면 악한 모습을 극대화하지 않고도 보다 나은 자신의 모습을 믿으면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
 
 
협력의 과학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 일부가 계속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 리 로스(Lee Ross)가 동료들과 함께 미국 대학생 및 이스라엘 전투기 조종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을 보자. 잘 알려져 있듯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게임에서 2명의 죄수는 협력했을 때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상태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2명의 죄수는 자신은 입을 다물고 상대는 나를 고발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결국 협력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실험을 확대하면 실제로 사람들은 게임 이론에서 예측한 것보다 더 많이 협력을 택한다.
 
로스와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절반에게 서로 협력하는 커뮤니티 게임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서로 경쟁하는 월스트리트 게임을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외 다른 변수는 동일했다. 이때 커뮤니티 게임 참가자 중 70%는 협력을 택했고 실험이 끝날 때까지 다른 참가자와 협력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월스트리트 게임에서는 그 비율이 정확히 반대였다.이 게임에서는 70%가 협력을 택하지 않았다. 30%의 사람들은 다른 참가자와 협력하는 모습으로 게임을 시작했다가 다른 사람들이 협력하지 않자 그만뒀다.
 
이 실험은 2개의 시사점을 보여준다. 첫째, 인간이 다 똑같지는 않다. 월스트리트 게임에서는 30%의 참가자들이 협력을 택했고 커뮤니티 게임에서 30%는 자신의 이익만 꾀했다. 둘째, 많은 사람들은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로스는 게임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표본 집단의 40%에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더 나은 결과를 얻고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한 참가자들은 그에 맞게 행동했다. 반면 친사회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 참가자들은 그에 맞게 행동했다. 로스와 연구진은 참가 대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나 조종사 지휘관에게 참가자의 협력 여부를 예측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게임 방식에 기반한 예측이 이들의 예측보다 더 정확했다. 평소에 이기적으로 보였던 사람도 현재 속한 게임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협력 시스템의 조직적 절차나 법적 시스템, 기술적 플랫폼 등을 설계할 때 오직 30%의 사람들에게만 맞게 구성한다면 인간 잠재력의 상당 부분을 외면하는 셈이 된다. 게다가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한 시스템은 행동 관찰과 보상, 처벌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정보 수집 기술에 따라 효율성에 제한을 받는다. 반면 본능적 동기와 자율적 협력을 활용하는 시스템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지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모든 참가자는 스스로를 모니터링하고 자신이 가진 통찰력과 의지를 활용해 과제를 해결할 것이다. 자율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감시가 필요 없다.
 
인간이 협력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진화생물학에서는 처음에 혈연 선택(kin selection) 이론으로 이를 설명했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다른 사람, 다시 말해 형제나 사촌 등을 위해서만 손해를 감수한다고 예측한 이론이다. 진화생물학자 J.B.S. 할데인(Haldane)은 낭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를 설명했다. “형제 2명이나 사촌 8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강물에 뛰어들 수 있다.” 이는 개미나 꿀벌 집단의 협력뿐만 아니라 소규모 가족 집단의 행동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혈연 선택에서 시작된 이론은 유전자로 연결되지 않은 타인 사이에 호의를 호의로 갚는 상호성으로 확장돼 이를 협력의 주요 통로로 삼는다. “네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주지.”
 
그러나 이런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동물의 행동도 있다. 와이오밍(Wyoming) 국립 엘크보호구역(National Elk Refuge)에 사는 코요테와 오소리의 관계다. 과학자들은 이들 동물 집단이 협력해서 다람쥐를 사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몸이 빠르고 활동 범위가 넓은 코요테는 사냥감을 물색한다. 이들은 다람쥐를 찾으면 오소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땅 밑의 사냥꾼이자 함정을 파서 먹이를 잡는 오소리가 사냥감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잡기 위해 땅을 파고 그 안에 누워 기다린다. 다람쥐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오소리를 피해 땅 위로 달아나면 코요테에게 잡히고, 코요테를 피해 땅속으로 파고들면 오소리가 구석으로 몰아간다. 사냥이 끝나면 어느 한쪽만 다람쥐를 먹을 수 있지만 오소리와 코요테의 협력은 계속된다.
 
지난 수년 동안 연구자들은 간접 상호성 모델, 네트워크화된 상호성, 집단 선택 등의 이론을 동원하며 보다 느슨한 형태의 원격 협력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생물학에서의 새로운 발견이 인간 사회에 직접 적용된 사례가 바로 문화인류학자 피터 리처슨(Peter Richerson)과 로버트 보이드(Robert Boyd)의 유전자-문화 공동 진화 연구다. 이들은 문화적 관습이 진화적 압력에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과 문화는 보다 성공적인 전략을 위해 함께 진화해 간다는 이론을 세웠고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수집했다.
 
2개의 집단이 있다. 한 집단에서는 군 복무가 가치 있는 행동으로 인정받는다. 다른 집단에서는 그렇지 않다. 첫 번째 집단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전투에 참여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목숨을 걸거나 무기를 만들고 정보를 수집하는 재능을 바친다. 그러나 두 번째 집단은 그렇지 않다. 만약 이 두 집단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될 경우 결과는 쉽게 예측 가능하다. 사람들은 유전자 변이를 통해 이 같은 특성이 전파되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더 나아 보이는 상대방의 문화 관습을 모방하면 된다.
 
보이드와 리처슨은 문화가 다른 집단의 관습을 모방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유전자 변이를 통해서도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유전자와 문화가 상호 의존하며 진화하는 것이다. 문화 관습은 그 문화를 채택한 집단의 유전자 개발에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해당 문화로부터 가장 혜택을 많이 받거나 실행을 쉽게 만들어주는 유전적 특질을 우성 유전자로 만든다. 대표적인 생리학적 사례가 바로 성인 락토스(유당) 내성이다. 락토스 소화 능력은 우유를 그대로 마시는 유럽인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지만 유제품 소화를 쉽게 하기 위해 요구르트나 치즈를 주로 소비한 인구 계층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락토스 내성은 유전적 특질이지만 요구르트나 치즈를 먹지 않고 우유를 마시는 문화적 관행에 그 원인을 둔다. 이 같은 관행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아주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협동적 문화의 유전적 구성 요소는 무엇일까?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와 같은 정치적 과학자와 동료 연구진은 투표 결정에 강력한 유전적 요소가 있음을 발견했다. 2008년 <미국정치과학리뷰(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에 기고한 논문에서 이들은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거주하는 일란성·이란성 쌍둥이 400명의 투표 행동을 분석했다. 연구에 참여한 쌍둥이들은 모두 함께 자랐기 때문에 초기 양육 방식, 사회경제적 지위, 가족의 정치적 성향 등의 변수가 다르지 않았다. 연구 결과, 일란성 쌍둥이들은 똑같이 투표를 하거나 하지 않을 가능성이 이란성 쌍둥이보다 높았다. 통계 분석 결과, 투표 행동이 일치하는 이유 중 50% 이상은 유전에 기인했다.
 
도입된 지 고작 100년밖에 되지 않는 ‘투표’라는 근대적 행위가 어떻게 유전적 영향을 받게 되는 걸까? 이는 유전적 현상의 예외라고 봐야 한다. 투표와 관련된 유전자가 그렇게 짧은 시간 내 진화할 수는 없다. 게다가 투표는 이성적 행동 모델에서도 하나의 수수께끼와 같다. 한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1표로 자신이 원하는 정책에 영향을 미칠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러므로 투표장까지 걸어가는 15분 정도의 시간을 포함한 모든 비용은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편익보다 많다. 그런데도 매년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기적인 이성을 위반하면서 투표를 한다.
 
투표하는 성향이 도대체 이타적 협력과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지 모른다. 개인의 행동 성향을 전형화하는 성격이 있다고 하자. 그중 하나가 양심이다. 성격심리학에서 양심은 5대 특징 중 하나다. 양심을 성격 특징 중 하나로 가진 사람은 문화적 맥락에 따라 옳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 투표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비용을 덜 들이면서 본성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제 보이드와 리처슨의 이론으로 돌아가 보자. 수천 년 동안 일부 문화에서는 양심적 행동에 보상하고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이런 문화권에서는 양심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번영했을 것이다. 이들은 바람직한 배우자감으로 인식돼서 자녀도 많이 낳았을 것이다. 이는 그들의 유전자가 남들보다 더 많이 퍼졌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이들이 속한 문화와 사회는 감시와 처벌, 보상 없이도 구성원 간 협력을 보다 쉽게 유지할 수 있다.
 
성격적 특성은 부분적으로 유전된다. 이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꽤 있다. 수년 전, 토마스 부처드(Thomas Bouchard)와 매트 매귀(Matt McGue)는 쌍둥이와 입양, 그리고 이들의 심리적·성격적 차이를 가져온 유전적 영향력을 폭넓게 조사했다. 이들은 외향성과 신경증, 친화성, 개방성 등의 성격적 특성이 평균 42∼57% 정도 유전되는 반면 가정환경처럼 영향력이 클 것으로 생각되는 요인들은 사실 성격과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점을 밝혔다.
 
협력 유전자에 관한 생물학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사물의 원리를 밝히는 권위 있는 목소리, 즉 과학의 힘을 빌려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공감 능력이 있다고 말만 하면 감상적으로 들릴 뿐이다. 그러나 타니아 싱어(Tania Singer)와 같은 과학자들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사진을 이용해 여성의 뇌에 전기 쇼크를 줬을 때 3군데에서 불이 들어오고 파트너의 뇌에 전기 쇼크를 줬을 때 앞서 불이 들어왔던 3군데 중 2군데에 불이 들어온다고 말하면 우리는 공감을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이 아니라 물리적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현상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신경물리학자 지아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다. 그는 우리의 뇌가 고통과 근육 운동뿐 아니라 순수한 감정까지도 반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리촐라티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실험 참가자에게 메스꺼움을 표현하는 사람의 표정을 보여줬다. 그러자 참가자의 뇌는 마치 그 자신이 역겨운 냄새를 맡는 것과 같은 반응을 나타냈다. 우리는 인지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는’ 능력을 가졌다.
 
신경과학은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과 협력할 때 뇌 속의 보상 기제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증거다. 케빈 매카베(Kevin McCabe)와 동료 연구진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믿을 때 보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제임스 릴링(James Rilling)의 연구팀은 컴퓨터를 사용할 때와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반응하는 뇌의 부위가 다름을 보였다.
 
행동생물학에 대해 알아갈수록 유전자와 문화 간 상호 작용이 더 분명해진다. 타인을 신뢰하는 능력은 협력의 필수 요소다. 여기에는 생물학적 요소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신뢰 능력 또한 유전적 성향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동물 실험을 통해 뇌 호르몬 옥시토신이 들쥐의 신뢰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연구진은 일부일처제인 프레리 들쥐(prairie vole)와 파인 들쥐(pine vole)를 일부다처제인 산 들쥐(mountain vole)와 평원 들쥐(meadow vole)에 비교했다. 그 결과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들쥐는 뇌의 많은 부위에 고밀도의 옥시토신 수용체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상대를 신뢰하는 파트너십은 옥시토신 수용률이 높은 뇌를 가진 동물 사이에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후에 연구진은 사람의 코에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뿌려주면 파트너를 신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직까지는 이 같은 산발적 연구 결과를 일관성 있게 이어주는 명확한 모델이 없다. 이 글에 소개된 내용도 아직 하나의 이론으로 연결되지 않은 유추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각각의 연구 결과는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이들은 유전과 환경, 인간 사이의 상호 작용에 따라 다수의 사람들이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와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주장했던 이타적 존재일 것이라는 기본 틀을 제공한다. 이들은 유전학과 fMRI 결과를 새로운 증거로 제시하면서 수세기 동안 지속된 루소와 홉스의 논쟁 혹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사이의 치열한 싸움을 현대로 끌어왔다. 지난 10년간의 양상을 보건대 루소가 홉스보다 우위에 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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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카이 벤클러

    - 하버드 법학 대학원 기업 법학 연구소 교수
    - 버크만 인터넷 사회 센터(Berkman Center for Internet and Society)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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