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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과도한 신뢰가 혁신을 망친다

알레시오 카스테요(Alessio Castello),프란시스 비도(Francis Bidault) | 62호 (2010년 8월 Issue 1)

다임러-벤츠와 스와치의 합작 개발로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소형차 스마트. 도발적인 디자인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는지, 이 초소형 자동차의 주문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반면, 푸조와 피아트가 공동 개발한 미니밴(푸조 806 및 피아트 율리스라는 이름으로 출시)은 양사의 우호적 관계 속에서 개발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그냥 미니밴, 그 뿐이었다.
 
이런 결과는 우리의 상식이나 대다수 학술 연구 결과와 맞지 않는다. 공통의 비전, 문화적 유사성, 공정성과 공평성, 상호 신뢰에 기반한 우호적인 관계가 성공으로 이어지고, 신뢰를 상실한 허약한 협력 관계는 재앙을 낳는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높은 신뢰를 유지했음에도 혁신에 실패한 사례들은 무수히 많으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파트너십이 오히려 성공한 경우 역시 부지기수다. 인정컨대, 파트너십의 창의성과 혁신성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신뢰 말고도 많다. 하지만 신뢰야말로 가장 핵심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1
 
하지만 신뢰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것은 아닐까? 신뢰가 때론 혁신의 진짜 걸림돌인 경우도 있지 않을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최적 수준의 신뢰’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까?
 
핵심 요소로서의 신뢰 정직하고 기회주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남을 신뢰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대의 태도와 역량이 약속한 대로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가 신뢰의 기반이다.2  예를 들어 욕실 수리를 하는 배관공을 신뢰하는 이유는 그가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 잘 끝내는 데 필요한 역량(지식, 통찰력, 도구, 부품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뢰란 대인 관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겨나기도, 혹은 깨지기도 한다. 조직 사이의 신뢰 관계에서도 신뢰를 구축하고 파괴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양사의 핵심 경영진들이다. 이들이 상대와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신뢰에 의지할 생각이 있는가가 조직 간 신뢰 관계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따라서 경영진 간 신뢰가 돈독할수록, 조직 사이 ‘관계의 질(質)’이 높아진다.3
 
각 기업은 혁신을 목표로 점점 더 타사와의 합종연횡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급사슬의 파트너십 구축, 경쟁 단계 이전의 제휴 등은 아주 흔한 예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외부협력 또는 ‘공동 혁신’ 프로젝트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은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R&D 비용의 상승, 개발 기간 단축, R&D 과제의 유연성 확보, 신규 시장 진출, 매출 증대 등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기 때문이다.4  이 중에서도 특히 기술제휴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기술분야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94%의 응답자가 기술 제휴가 회사 사업 전략을 좌우한다는 데 동의할 정도다.5
 
GP TIP연구소개
 
2명으로 짝지어진 각각의 팀에 200개의 컬러 플라스틱 블록을 가지고 소형 스탠드 형 옷걸이를 주제로 디자인하고 만드는 과제를 주었다. 참가자들에게는 다른 참가자들이 기능 및 심미적 측면에서 결과물의 독창성과 신선함을 평가할 것이라고 알렸다. 특히 모든 참가자가 자신의 작품을 제외한 모든 결과물에 대해 평가하도록 했다. (팀 당 20개의 토큰을 주어 각각의 작품 앞에 비치된 상자에 넣는 방식으로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우리는 점수를 모아서 이를 표로 만들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에게 결과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이 단계에서 참가자 각각에게 가상의 300유로를 주고 이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자기 팀의 다음 번 작품 순위에 베팅하게 했다. 참가자들이 더 진지하게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실험이 끝난 후에는 한 팀을 임의로 정해 베팅한 금액을 실제 돈으로 바꿔 줄 것이라고 미리 알렸다.
베팅 후에는 다시 파트너와 함께 앞의 단계를 반복했다. 이번에는 같은 주제의 작업을 위해 400개의 블록을 주었고, 다 끝난 후 이전처럼 다른 팀의 결과물을 평가하고 투표하게 했다.
참가 인원은 한 번의 실험에 30명 이내로 한정했다. 모두 18회의 실험을 실시했고,총 364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는 직장 경력이 있는 최고 경영자를 위한 MBA 과정 학생들로, 평균 연령은 28.2세였다.
실험에 더해 각 참가자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첫 설문은 실험 수행 전에 실시했다. 이전에 파트너와 함께한 경험(업무, 학업, 여가 등)의 정도, 파트너로서의 신뢰 정도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에 더해 참가자가 일반적으로 남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의 성향을 측정할 수 있는 질문들도 포함시켰다. 두 번째 설문은 실험 후에 조사했는데, 과제 자체와 파트너 간 역할 분담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에도 참가자의 성향, 즉 타인에 대한 신뢰, 개성, 자존심 등에 대한 질문들이 포함됐다. 최종적으로 개인의 신뢰 경향(남을 신뢰하는 성향 및 남에게 믿음을 주는 성향)과 개성을 연계시키기 위해 인구통계학적 정보를 추출했다.
물론 이 실험 방법으로는 참가자 행동의 편향성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참가자 수가 30명으로 제한돼 친소 관계 등 외부 요인에 상관없이 독립적, 객관적으로 최고의 디자인에 투표했다고 확신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편향을 배제하기 위해 외부 참관인으로 하여금 실험 과정에서 만들어진 여러 결과물들을 평가하도록 의뢰 중에 있다.
다소 한계가 있으나, 우리는 이 방법론을 통해 R&D 관리에 관심이 있는 학자 및 공동 개발팀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에 의미 있는 방법론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입장에서 혁신지향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이를 유지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적합한 파트너를 찾아 협상하고, 공통의 목표에 합의하는 일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 다음부터는 두 조직이 매일 단위로 보조를 맞춰 가야 하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6 한쪽 파트너의 말과는 달리 충분히 기여할 만큼의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의사결정 구조상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할 수도 있고 시장 환경이나 기술 동향의 변화에 협력 메커니즘이 제때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파트너십의 50% 내지 80%가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 역시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7
 
혁신은 본질적으로 위험이 포함된 활동이다. 이를 목표로 공동 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양쪽 파트너가 위험 노출 시 발생할 결과에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위험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경우 다양한 돌발 상황에서의 의무 사항을 기술한 계약서에 주로 의지하게 된다지만, 계약서가 파트너들이 당면하게 되는 모든 난관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신뢰는 ‘경제나 경쟁환경의 변화 또는 회사의 우선순위 변경 같은 문제로 갈등 상황이 빚어졌을 때 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결정적인 원천’이다.8  신뢰는 위험에 노출되고 유연성을 유지해야 하는 모든 유형의 파트너십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공동 혁신 프로젝트에서의 파트너십은 그 이상을 필요로 한다. 바로 지식의 공유다. 혁신 지향의 합작 회사를 만드는 이유는 자사의 지식에 남의 지식을 결합시켜 혼자서라면 만들어 낼 수 없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자사의 기밀 정보와 노하우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의 충분한 신뢰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계약서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사실 계약서는 혁신으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계약서는 정보 흐름을 관리하고 법적 책임 등을 언급하고 있으니 본질적으로는 프로젝트 진척에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의 유압 굴착기 선도업체였던 포클랭과 프랑스의 타워크레인 선도업체였던 포탕 사례를 살펴보자. 이들은 1960년대 서로 간 보완할 수 있는 기술 협력을 통해 소형 크레인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포클랭의 유압 기술과 포탕의 크레인 설계·개발 기술을 합해 경쟁력 있는 기계를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설립된 합작회사 PPM은 혁신에서 뒤져 결국 시장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PPM을 만든 양사의 경영진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다 보니 상호 통제하고 합의 서명하는 결제 방식을 만들었고, 사소한 비용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이를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공동 개발 프로젝트는 몇 년에 걸쳐 지연됐고 성과는 미미했다. 출시되는 제품은 흔해 빠진 모방제품 수준을 넘지 못했다.
 
신뢰가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는가? PPM은 물론 다른 여러 유사 사례를 볼 때, 높은 신뢰 수준이 높은 수준의 혁신 성공을 가져올 확률이 크다는 이론을 도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어찌됐건 서로 신뢰하는 파트너들은 보다 열린 자세를 갖고 있고, 서로에게 힘이 되며, 적대감이 덜하고 경쟁 심리가 약하다. 따라서 창의력을 더 많이 발휘하게 되며 이로 인해 새로운 아이디어도 더 많이 나온다.9  물론 창의력 자체가 혁신은 아니다.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창의력이 더 많이 발휘되면 될수록 깊이 신뢰하는 파트너 관계에서 더 큰 혁신이 나온다고 기대한다. 이는 다시 파트너들의 헌신을 향상시켜 결과적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더 잘 실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준다.
 
그러나 공동 혁신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면밀히 관찰해본 결과, 파트너 간 높은 신뢰가 때로는 혁신을 이루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상용차 및 승용 밴 시장에서 장기간 수익성 있는 파트너십을 유지했던 피아트와 푸조의 제휴 사례가 좋은 예다.
 
1970년대 말, 이 두 회사는 상용밴의 설계 및 생산을 위해 합작 회사 세벨을 출범시켰다. 세벨의 공동 설계 및 제조 작업을 통해 탄생한 제품은 각각 피아트 두카토와 푸조 J5로 시장에 선보였고, 즉각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세벨은 예상을 뒤엎고 원래 생산 계획의 2배로 생산 능력을 늘려야 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피아트와 푸조는 1988년 세벨노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승용 미니밴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야심이었다. 양사는 지배구조 및 비용과 투자에 관한 일반 경제 원칙은 물론, 핵심 경영진 라인업까지도 세벨과 동일하게 가져갔다. 세벨이 좋은 실적을 거두었기에 어느 것 하나 바꿀 필요성이 없어 보였다.
 
양사는 자신들의 끈끈한 동지애를 공개적으로 과시했다. “우리는 함께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그 아이디어가 피아트에서 나왔는지 푸조에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풍부한 경험을 서로 교환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10  그런데 불행히도 1994년 세벨노드가 내놓은 승용 미니밴(푸조에서는 806, 피아트에서는 율리스로 출시)은 전작 세벨의 상용 밴이 거둔 성공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별한 참신성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 승용 미니밴은 이미 경쟁자들이 잠식하고 있는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누구보다도 풍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이 파트너십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파트너십에 참여한 서로가 깊이 신뢰한다면 자신들의 자원을 합작 회사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높은 수준의 창의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늘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필요로 한다. 서로 깊이 신뢰하는 파트너 사이에서는 이런 긴장감이 감돌 리 없다. 오히려 따뜻하고 경쟁적이지 않은 작업 분위기가 조성될 확률이 높다. 이는 창의적인 해답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작업 분위기와 정반대다. 사실 최근의 연구를 살펴보더라도 R&D팀 간의 상호 신뢰와 창의성이 서로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는 없었다.11
 
신뢰 실험 위에 언급한 사례 연구들은 신뢰 수준이 혁신성과 비례·반비례한다는 논리를 도출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혁신성을 야기하는 다수의 요인 가운데 신뢰 항목만을 따로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들은 일련의 실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15쌍 최대 30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만들어 각 쌍에게 가능한 가장 창의적인 방법으로 대상을 설계하고 제작하도록 지시했다. 실험에 참가한 개별 쌍이 파트너에 대해 다양한 신뢰 수준을 대표할 수 있도록 이미 서로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 파트너를 고르는 한편, 상대방에 대해 뚜렷한 신뢰 수준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기존 경험이 충분한 사람들을 뽑았다. 개별 쌍의 파트너 간에는 최소 상호 신뢰도 차이를 갖도록 하되, 개별 실험 쌍과 쌍 사이의 신뢰 격차가 극대화하도록 특수 알고리듬을 개발해 채택했다. 앞으로 각 쌍이 내놓을 결과물에 대해 파트너들이 어떻게 전망하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베팅 기재도 추가했다(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연구 내용’ 참조).
 
실험을 통해 중대한 사실이 발견됐다. 상호 신뢰도가 높을수록, 파트너십의 창의성도 높아져서 일순간 최대치에 도달하게 되지만, 이 지점을 지나면 다시 하락한다는 사실이었다(‘상호 신뢰의 스위트스폿’ 참조). 이 실험 참가자 개인의 내재적 창의성이 주는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실험에서는 각 개인의 창의성은 고려하지 않고 파트너십에서 발생하는 각 실험 쌍의 창의성만을 고려했다. 각 개인의 창의성과 파트너십의 창의성 간의 차이를 ‘파트너십 효과’라고 명명했다.
 
파트너십 효과와 상호 신뢰간 함수 관계
신뢰 수준이 올라갈수록, 파트너십 효과는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가 하락한다. 신뢰가 아주 높을 때, 파트너십 효과는 심지어 마이너스가 되는 수도 있다.
 
기대했던 대로 상대 파트너에 대한 신뢰와 파트너십에 투자하는 베팅 총액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 관계가 존재했다. 즉, 서로 신뢰하는 파트너 사이에서는 함께 도출한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투자한다고 볼 수 있다. 만일 혁신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열매 맺게 하기 위한 창의성과 헌신의 결합이라면, 합작 사업에서의 혁신성은 파트너들이 헌신하고 각각 창의성이 증대되면서 파생된 이득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혁신성을 한 개인이 파트너와의 협력으로 실현된 창의성으로 얻어낸 투자 이득으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그 가치를 한 개인의 초기 투자(베팅 금액)와 창의성 증가분(개인의 창의성과 파트너십의 창의성 간의 퍼센티지 차이)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만일 300유로를 베팅해서 높은 창의성을 나타낸다면(가령 자신들의 창의성의 두 배), 이들은 대가로 600유로를 얻게 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참가자가 120유로를 베팅했는데 파트너십의 창의성이 하락하면 (가령 자신의 창의성보다 50%가 낮을 경우) 60유로만 돌려 받게 된다. 평균 이익을 상호 신뢰와의 함수 관계로 표현해 본 결과, 또 다른 종 모양의 곡선이 관찰됐다.
 
혁신성과 여러 요소가 결합된 상호 신뢰간 함수 관계
혁신성은 파트너십 효과와 마찬가지로 적정 지점을 지나고 나서는 감소했다. 그러나 적정 신뢰 수준을 지난 혁신성의 가치는 낮은 신뢰 수준에서 실현된 경우보다 높게 나타났다.
 
연구 결과, 예상대로 낮은 신뢰는 혁신에 기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너무 높은 신뢰 역시 혁신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상호 신뢰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혁신성은 증가하지만 일정 지점(신뢰도 지수 기준 9.5)까지만 그랬다. 이 지점을 지나면, 비록 파트너들의 더 큰 헌신으로 인해 비교적 높은 수준에 머물긴 하지만 혁신성은 감소한다. 반면, 상호 신뢰가 아주 높은 경우에 창의성 증가는 부의 상태(창의성 감소)가 될 수 있다. 즉, 혁신성이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적정한 신뢰 수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상이나 그 이하에서 혁신성이나 창의성은 저해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간 정도의 신뢰가 가장 효과적 이러한 특이한 경향은 갈등이 팀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함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 몇몇 경영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긴장감이 집단 역학에 늘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12  사실, 관계적 갈등(가령 다른 팀 구성원들에 대한 개인적 경멸에서 비롯될 수 있다)은 성과에 극히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업적 지향적 갈등은 집단의 목표와 행동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와 깊이 있는 분석을 낳기 때문에 장점이 크다고 한다. 우리의 실험 결과에 비춰볼 때, 낮은 신뢰도는 관계적 갈등을 불러일으키지만 높은 신뢰도는 업적 지향적 갈등의 감소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참가자들은 관계적 갈등을 경험했으며, 이로 인해 효율적으로 함께 일하는 데 이르지 못했다. 반면, 높은 수준의 신뢰와 서로를 신경 써주는 분위기를 가진 집단에서는, 각 개인이 지나칠 정도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게 돼 파트너의 아이디어를 쉽게 수용했다. 그 결과 역동적인 업적 지향적 갈등의 양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집단에서는 창의적인 긴장감이 낮게 나타나고 파트너십 효과 역시 감소할 것이다.
 
신뢰는 성실성과 믿음직함, 상호 배려가 서로 결합된 것이다. 각각의 요소는 창의성과 혁신성 안에서 다른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는 성실성과 믿음직함이 집단의 문제에 공동 대응하고 혁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다른 한편으로, 상호 배려, 즉 상대방에 대한 공감도가 과잉 수용성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파트너의 아이디어, 판단, 행동에 대해 공공연히 문제 의식을 드러내기보다 파트너의 기분을 맞추는 걸 선호한다.
 
르노 에스페이스를 예로 들어보자. 르노 에스페이스는 거의 20년 동안 유지된 대단히 성공적인 파트너십의 산물이었다. 르노 에스페이스는 지난 1990년대 유럽에서 나온 가장 혁신적인 자동차로 손꼽힌다. 에스페이스는 르노와 마트라 오토모빌(현재는 라가데레 계열사)의 제휴에서 비롯됐다. 이들 기업의 CEO들은 서로 우호적인 관계였다고 한다. 그러나 르노 측 기술 개발 및 제품 관리 팀에서는 마트라의 승용차 개발 능력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트라의 기존 모델인 바게라, 뮤레나, 란초가 한결같이 시장에서는 그저 그런 반응을 얻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르노 측에서는 마트라 아이디어의 신선함을 좋아했지만, 설계 능력에는 회의적이었다.13
 
르노의 유능한 마케팅 팀원들은 고객이 점점 모듈식 인테리어를 좋아한다(소비자들이 직접 실내 시트를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러한 소비자 취향에 부합하는 마트라의 미니밴 아이디어가 채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마케팅 팀에서는 마트라가 최소한의 품질 기준을 통과할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할 수 없었다. 르노 마케팅 임원들은 에스페이스를 승용차로 효과적으로 판매할 수 없게 될까 봐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바닥을 평평하게 설계하도록 주문했다. 만일의 경우 배달용 밴으로 개조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마트라 측 개발자들은 경주용 자동차까지 설계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이러한 타협안에 불만을 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페이스는 점차 유럽 시장에서 동종 차종 가운데 선두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르노와 마트라는 생산능력을 계속해서 늘려야 했고, 많게는 초기 생산량의 600% 증산에 나서기도 했다.

폭발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로노와 마트라는 효과적인 균형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경쟁자들이 앞다퉈 유사 제품을 만들게 할 정도로 혁신적인 콘셉트를 시장에 제시할 수 있었다. 르노-마트라 파트너십 안에 존재하던 긴장감과 낮은 신뢰 문제는 결과적으로 파격적 해법을 낳았고, 그 결과물로 나온 독특한 디자인의 자동차는 오랫동안 시장에서 성공을 구가했다.
 
경영진에 주는 메시지 연구 결과, 혁신을 목표로 한 합작 프로젝트가 헌신적이고 신뢰하는 분위기 속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거둔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각 기업은 합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이 조성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상호 신뢰가 구축되는 일도 피해야 한다.
 
투자자나 경영진 수준에서만 신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창의성을 위해 조직된 집단이 혁신적인 성과물을 내어놓기 위해서도 신뢰는 꼭 필요하다. 따라서 혁신 지향적 합작 파트너십을 시작하는 경영자라면 다음과 같은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새로운 파트너 또는 팀으로부터 혁신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신뢰가 쌓이고 그로 인해 개방적이고 협동적 행동이 이뤄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 공동 혁신 프로젝트에 관여된 팀이 초기부터 신뢰를 구축하도록 도와준다. 최소한의 신뢰 수준이 형성되게 하려면 FAcT-Mirror Method(공포, 매력, 유혹 세 가지 감정에 기반해 대인 관계상 벌어지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문제를 기술하는 방법)와 같은 신뢰 구축 활동을 채택해 볼 수 있다.14
- 분열을 막고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상호 신뢰 수준을 모니터링한다. 경영자들이 신뢰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좋아지든 나빠지든 운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명확한 경고 시스템을 포함한 적절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 건전한 비판이 오가는 적정 수준의 신뢰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신뢰 수준이 너무 높아지면 팀에 목표와 우선 순위를 다시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집단 사고가 지나치게 형성되지 않도록 경영진에 알려주는 세심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 신뢰도가 지나치면 위험해질 수 있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너무 지나치지만 않다면 창의성 면에서 긍정적인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단지 최적 구간인 중간-높음 사이의 구간에서 얻은 결과보다는 낮을 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2009년 말), 다임러-벤츠와 스와치가 공동 개발한 경차 스마트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휘발유 가격이 인상되고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어찌나 열렬한지, 프랑스 함바흐에 있는 스마트 제작 공장은 최대로 가동되고 있을 정도다. 초기의 판매 부진과 전문가들 사이의 비웃음을 딛고, 스마트는 마이크로 카 개념을 시장에 분명하게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에서도 경차 경쟁에 뛰어들고 싶다면 이 트렌드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나중에 혁신 분석가들은, 자동차 산업의 역사 속에서 이 부분을 논하며, 스와치의 최고경영자(CEO) 니콜라스 하이예크(2010년 사망-역주)와 메르세데스-벤츠의 수장이었던 헬무트 베르너 둘 중 누가 마이크로 카 트렌드의 주역이었는지 따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혁신의 원동력에 대한 우리의 연구 결과, 혁신의 진짜 주역은 이 둘 중 누구도 아니다. 오히려 두 기업, 그리고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각각의 팀 사이에 존재했던 팽팽한 긴장감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의 주역이다. 두 파트너로 하여금 새로운 콘셉트와 디자인을 탐색하도록 해 획기적인 자동차 스마트를 탄생시켰으니 말이다.
 
함께 하는 창조 작업에서 신뢰는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신뢰를 피하는 일은 훨씬 더 좋은 일이다.
 
 
편집자주 이 글은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SMR) 2010년 여름호에 실린 프란시스 비도, 알레시오 카스테요의 글 ‘Why Too Much Trust Is Death to Innovation’을 번역한 것입니다.
  • 알레시오 카스테요(Alessio Castello) 알레시오 카스테요(Alessio Castello) | Alessio Castello is adjunct professor of management at the Institut d’Administration des Entreprises, l’Universite de Nice, in Nic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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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is.bidault@esm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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