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운명의 문을 여는 64가지 비밀번호

317호 (2021년 0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주역은 전 세계 모든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운명 해설서이다. 주역의 원리와 운명의 사이클을 활용하면 이미 정해졌다고 느껴지는 운명도 통제할 수 있다. 천지비괘는 상하 간의 소통이 꽉 막힌 상태를 의미하는데 천지비괘를 뜻하는 숫자 ‘111000’의 1과 0의 위치만 바꿔도 소통이 매우 원활한 상태를 의미하는 지천태괘(000111)가 된다. 같은 논리로, 상사나 부하 직원에게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는 것 같은 간단한 소통의 시도만으로도 운명을 180도 바꿀 수 있다.



쾅쾅쾅쾅. 운명은 장중하게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고 입장한 운명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변주되면서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인간은 불안한 눈빛으로 운명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옷매무새를 고쳐 매고 경건한 자세로 운명을 마주한다. 그리고 싸운다. 운명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한 인간은 환희의 송가를 부른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은 고난에 찬 운명을 극복한 인간 베토벤의 삶을 음표로 옮겨놓은 것이다. 음표는 운명의 행로를 나타내는 기호이고, 그 음표의 연결과 흐름으로 삶이라는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된다. 주역의 64괘도 운명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괘마다 다양한 운명의 변주들이 배열돼 있다는 점에서 주역의 효는 ‘운명교향곡’의 음표와 그 시니피에가 같으며, 괘와 효들의 집합적 구성과 상호작용으로 운명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주역은 한 편의 교향곡과도 같다.

주역 64괘는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의 문을 여는 일종의 비밀번호와 같은 것이다. 비밀번호가 숫자의 조합으로 구성돼 있듯 주역의 괘도 숫자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다만 0과 1 두 숫자의 조합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도어록이나 통장 계좌의 비밀번호와는 조금 다르다. 0은 수축의 성질을 가지는 음(陰)의 상태를 기호화한 것으로 ‘--’으로 표시한다. 그리고 1은 팽창의 성질을 가지는 양(陽)의 상태를 기호화한 것으로 ‘-’으로 표시한다. 111000이라는 숫자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비밀번호를 가진 괘가 64괘 가운데 어떤 괘인지 알아보자. 이미지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이 된다. ䷋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위에 놓이고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아래에 놓이는 복합 괘로 이 괘를 주역에서는 천지비괘라고 읽는다. 초심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주역에 어느 정도 숙달된 연구자들은 111000이라는 비밀번호를 보면 이것이 천지비괘임을 쉽게 짐작해낼 수 있다. 다른 괘들도 마찬가지다. 주역 64괘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중천건괘는 양효가 여섯 개 중첩돼 있으므로 111111이라는 비밀번호를 갖고 있고, 그다음에 나오는 중지곤괘는 음효가 여섯 개 중첩돼 있으므로 000000이라는 비밀번호를 갖고 있다. 이 비밀번호들을 누르고 입장하면 그곳에서 기다리는 운명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운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나에게 좋은 상황으로 운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123

운명의 세 가지 특징

주역에서 말하는 운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이 특징들이 수천 년간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역의 비결이자 매력이다. 첫째는 객관성과 보편성이다. 주역은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된 과학적인 운명 해설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관적 판단에 의한 편견이나 오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주역은 나(我)라는 개인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이라는 보편적 실체를 근거로 운명을 해석한다. 그래서 계층이나 계급, 빈부, 인종을 초월해서 보편타당하게 적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 사건이 자신에게 좋고 이로우면 길하고 그렇지 않으면 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역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하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대한 주역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다. 자연의 법칙과 순리에 맞으면 길한 것이고, 그것에 역행하면 흉한 것으로 본다. 나치즘이나 파시즘같이 특수한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집단이 오래갈 수 없듯 만일 주역이 특정 세력이나 정파에 유리하게 설계됐으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주역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철학적으로 볼 때 가장 민주적인 이념 체계이기도 하다.

둘째, 탄력성과 주기성이다. 주역은 사람의 운명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사람의 운명도 변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주역의 점괘는 비관론이나 숙명론으로 흐르지 않으며 처한 상황에 따라 운명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해와 달이 규칙적으로 뜨고 지는 것처럼 주역은 사람의 운명에도 일정한 사이클이 있다고 본다. 중지곤괘부터 시작해서 64괘의 비밀번호를 2진법 체계로 죽 나열하면 다음과 같은 사이클이 나온다. 000000, 000001, 000010, 000011, 000100… 그리고 마지막에는 111111이 돼 64괘의 사이클이 완성된다. 수학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주역의 이러한 원리를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괘 이름으로 나열하면 중지곤, 지뢰복, 지수사, 지택림, 지산겸… 중천건이 된다. 라이프니츠가 주역 64괘를 보고 자신이 1679년 발견한 2진법 원리와 그 체계가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던 것도 주역의 이런 과학성과 주기성 때문이다.

주역에서는 운명에 내재된 이러한 사이클을 잘 활용하면 화를 복으로 만들 수 있고, 흉을 길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베토벤은 젊은 시절 청력을 잃었다. 음악가에게 청력의 상실은 치명적이다. 그 때문에 베토벤은 자신의 운명을 비관해 한때 자살을 결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베토벤은 각고의 노력으로 청력 상실이라는 단점을 내부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으로 바꾸었다. 베토벤이 ‘운명교향곡’과 ‘합창교향곡’ 같은 불후의 명곡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강인한 믿음과 의지 덕분이었다.

천재 미술가 미켈란젤로의 운명에도 절체절명의 시련이 있었다. 탁월한 재능 때문에 교황의 신임을 받게 된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성당에 천장화를 그릴 기회를 잡는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를 시기한 궁중화가 브라만테의 농간으로 천장화를 미켈란젤로에겐 낯선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야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잡은 기회가 오히려 족쇄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에게 닥친 위기를 더 큰 기회로 만들었다. 오더가 떨어진 순간부터 밤을 새워가면서 프레스코 기법을 마스터한 미켈란젤로는 4년의 세월을 쏟아부은 끝에 서양미술사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천장화를 완성시킨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곡절 있는 운명의 변주 속에서 탄생했다.

셋째는, 뚜렷한 가치 지향성이다. 주역의 효사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한자 중 하나가 정(貞)과 부(孚)라는 글자인데, 정은 곧고 강인한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뜻하고, 부는 신뢰할 만한 의사결정, 행위 등을 의미한다. 주역에서는 어떤 행동이나 의사결정이 정(貞)하고 부(孚)하면 길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렇지 않으면 흉한 것으로 판별해 사람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가치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의 결과가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나 국가에까지 확장된다고 말함으로써 공동체적 윤리의 기준까지 제시한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방식도 그러했다. 애당초 돈을 벌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모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기술 혁신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개척한다는 곧은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기업을 시작했다. 그들의 의사결정과 행동 양식은 정(貞)하고 부(孚)했다. 돈과 명예는 그 결과 따라온 것이었다. 돈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번 돈을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했다.

124


결정의 기회비용을 줄이는 주역의 원리

주역을 통해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원리를 익히면 ‘내 이럴 줄 몰랐다’라든가 ‘진즉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와 같은 후회를 줄일 수 있다. 주역은 의사결정에 대한 기회비용을 줄여준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간단한 비밀번호의 조작만으로도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천지비괘를 예로 들어보자. 천지비괘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위에 놓이고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아래에 놓이는 복합 괘로 상하 간에 소통이 꽉 막힌 상태를 의미한다. 조직 생활을 하면서 위아래의 소통이 막히면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업무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이럴 경우, 작은 계기 하나가 필요하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아침 출근길에 만난 직장 상사나 부하 직원에게 건네는 간단한 인사말 한마디가 꽉 막힌 소통을 뚫어줄 수도 있다. 주역의 원리도 그러하다. 천지비괘의 비밀번호 111000을 0과 1의 위치를 바꾸는 간단한 조작으로 000111로 만들면 전혀 새로운 상황이 연출된다. 000111은 위에 있던 하늘이 아래로 내려가고 아래에 있던 땅이 위로 올라가는 괘 모양인데 주역에서는 이를 지천태괘라 부른다. 태(泰)는 소통이 매우 원활하게 잘 이뤄지는 태평성세를 상징한다. 간단한 조작 하나로 운명이 180도 바뀐 것이다.

니체는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베토벤은 음악을 통해 인간의 해방과 인류의 화합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뚜렷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베토벤은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로맹 롤랑의 표현처럼 베토벤은 운명의 정복자, 고통의 정복자였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기복 없이 평탄한 운명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험한 운명을 만나더라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최고 영예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 것에 있지 않고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에 있다.”

주역의 64괘는 캄캄한 암흑 속에서 길을 잃고 쓰러졌을 때 빛이 되고 힘이 돼주는 비밀의 열쇠다. 삶에서 최고의 영예를 바라는가? 주역과 친구가 돼라.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