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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손욱 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이 본 이건희 리더십

“5년 뒤의 세상을 잘 모르겠다면
인재가 신바람 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라”

김윤진 | 309호 (2020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988년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이듬해 제2의 창업 선언을 통해 경영 이념으로 강조한 것은 ‘자율 경영’ ‘기술 중시’ ‘인간 존중’이었다. 이 같은 이념을 제시한 배경에는 조직의 문화(culture)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구성원 개개인을 존중해야만 ‘세기 말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1993년, 삼성의 핵심 관계사의 임원 200여 명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집결시켜 68일간 유럽 산업 현장을 둘러본 것도 모든 경영진이 세계 ‘일류’가 되는 데 필요한 조직문화를 직접 보고 느끼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아날로그 시대를 발로 찬 방향으로 곧장 날아가는 축구공에, 디지털 시대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에 비유하며 변화하는 세상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던 이 회장의 리더십을 돌아본다.



“2000년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그룹 사장단의 5개년, 10개년 계획을 쭉 듣고 난 고(故) 이건희 회장이 이렇게 묻더라고요. 5년 뒤, 10년 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당신들 눈에 보이냐고. 본인은 세상이 어디로 갈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지금 할 수 있는 건 어떤 미래가 닥치든 능동적으로 대응할 인재를 키우고 그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이기도 합니다.”

경기도 용인시 자택 인근에서 만난 손욱(75•사진) 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은 오래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인재와 창의적 조직문화의 힘으로 불확실성의 시대를 돌파할 수 있다고 믿었던 리더”라고 평가했다. 삼성SDI(구 삼성전관) 사장, 삼성인력개발원 원장,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농심그룹 회장 등을 역임한 손 전 원장은 40여 년을 그룹에 몸담으며 창업주 이병철 선대 회장과 이 회장의 핵심 참모로 일했던 삼성 역사의 산증인이다. 1993년 6월 이 회장이 낡은 업무와 사고방식을 버리라며 경영진에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일갈했던 것으로 유명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 삼성전자 비서실 팀장으로 이 회장을 수행하기도 했다. 삼성의 경영 철학이 구축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손 전 원장에게서 이 회장의 리더십은 어땠는지, 그의 행보가 이 시대 기업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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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관리의 삼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 회장이 조직문화를 강조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이병철 선대 회장은 주어진 목표를 향해 전 구성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관리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선친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은 1987년은 삼성에는 위기의 시기였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삼성이 한국에서 압도적 1등 기업이었지만 1980년대 접어들자 재계 순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취업 선호도 등 여러 측면에서 현대, 대우에 밀렸다. 특히 당시 경기에 민감한 저부가가치 기술 위주였기 때문에 1979년 제2차 오일쇼크를 겪으며 심한 타격을 입었고, 2년간은 신입 사원을 아예 뽑지 못했다. 이 회장은 이를 지켜보면서 ‘삼성이 왜 최고의 인재를 뽑고 교육하는데도 계속 뒷걸음질 치는지’를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리더십과 조직문화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더 능동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현대와 대우에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본 것이다.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일할 사람들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관리의 삼성’ 틀을 깨야 했다. 그가 취임 이듬해였던 1988년, 제2 창업 선언을 통해 ‘자율 경영’의 이념을 가장 앞에 내세운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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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이 말한 자율 경영은 무엇이고, 실제 그룹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기본적으로 누구나 시켜서 일할 때는 신바람이 안 나니까, 직원들이 스스로 책임 의식을 갖고 성취하도록 하자는 게 자율 경영의 핵심이다. 그래야 창의력이 발휘되고 능력을 꽃피울 수 있지 않나. 이 선대 회장은 늘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목표를 지시하고, 관리하는 정형화된 시스템대로 움직였다. 이와 달리 이 회장은 사장들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책임을 부여했다. 오직 인재 교육만 직접 챙겼다. 원래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는 호암관이라는 연수원밖에 없었는데, 이 회장이 여기에 ‘창조관’이란 더 큰 연수원을 짓고 직접 인력개발원장으로서 어학코스 등 교육 프로그램을 싹 바꿨다. 아울러 전국에 교육장들을 만들고 창의 교육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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