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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묻고 신하가 답하다: 중종-권벌

“끝까지 잘하려면 귀를 열어두어야”

김준태 | 297호 (2020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리더가 초심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1507년 중종이 과거시험에서 한 질문이다. 이에 권벌은 “마음의 중심을 잡고 마음을 지켜야 하며, 잘못된 생각이 싹트기라도 하면 즉각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고 답한다. 권력에 취해 오만해지지 말고, 다른 사람의 직언을 일부러라도 경청해 스스로 반성하는 태도를 습관화하라는 조언이다.


‘시근종태 인지상정(始勤終怠 人之常情).’ 처음에는 근면하다가도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라는 뜻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굳은 결심을 하고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해버렸던 일. 잘해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만뒀던 일. 원인이야 다양하다. 나태함 때문일 수도 있고, 자만이나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초심이 흔들려버린 탓이다. ‘첫 마음’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1507년(중종 2년) 증광시(增廣試)1 에서 왕은 바로 이 문제를 물었다. “예전에 『시경』 ‘대아’편을 읽어봤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착하지 않은 이가 없으나 끝까지 착한 이는 드물다.’ 임금이라면 누구나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잘하고 싶을 터이다. 그러나 처음 시작은 잘했더라도 반드시 끝을 잘 맺는 것이 아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자, 내가 왕위에 올랐다고 상상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자리이며, 국가와 백성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는 위치다. 주어진 권력도 막강하다. 당연히 중압감이 크겠지만 포부 또한 남다를 것이다. 역사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는 성군(聖君)이 되겠다고 각오를 다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군주가 처음의 이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폭군이나 무능한 군주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똑똑한 군주들, 그래서 초반에는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도 뒤로 갈수록 흐트러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중종은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당 태종과 현종은 각각 정관(貞觀)과 개원(開元) 연간에 나라를 잘 다스려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태종은 점차 열 가지 폐단이 드러났고 현종은 천보(天寶)의 환란을 초래했다. 이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2 당나라 태종과 현종은 역사에 ‘정관지치(貞觀之治)’, ‘개원지치(開元之治)’라고 기록되는 번영기를 이룩했다.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좋은 인재들을 대거 등용했고, 민생을 안정시켰다. 그런데 후반기에 가서는 여러 과오와 실책을 범했으며 현종 같은 경우에는 나라를 큰 혼란에 빠트렸다.3 왜 그렇게 돼버렸나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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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권벌(權橃, 1478∼1548)4 이 쓴 답안지를 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공자께서 ‘붙잡으면 간직할 수 있으나 놓치면 없어지고,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마음을 붙잡고 놓는 것이 한결같지 않지만 선과 악이 모두 여기서 갈립니다. 마음을 붙잡았기 때문에 시작을 잘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을 잃어버리면 끝맺음을 잘할 수가 없습니다.”

권벌이 인용한 공자의 말은 『맹자』에 나오는데, 여기서 맹자는 놓쳐버린 마음을 잡으라는 뜻의 ‘구방심(求放心)’을 강조했다. 마음은 눈 깜짝할 사이에 놓아져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니 항상 꼭 붙잡고 있어야 하고, 혹시라도 잃어버렸다면 반드시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회의에 오롯이 집중하는가? 아니다. ‘오늘 점심에 뭐 먹지?’ ‘퇴근 후에 어디 갈까?’ ‘아, 오늘 카드 결제일인데’ 하는 생각들로 마음은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찰나의 순간에도 사념이 생기고, 그 사념의 대상은 멀고 가깝고의 거리를 가리지 않는다. 사소한 잡념들로만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마음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면 올바르게 인식하고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감정도 균형 있게 제어할 수가 없다.

또, 사람의 마음은 욕망의 영향을 받는다. 권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찍이 순(舜)임금께서 우(禹)임금에게 양위하면서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다. 정성스럽고 한결같게 중도(中道)를 잡아야 한다’5 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인심은 사사로운 감정을 따르고 욕망을 좇기 쉬운 반면 공공의 도리를 추구하기 어렵습니다. 도심은 도리에 입각한 마음이지만 어두워지기 쉽고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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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태akademie@skku.edu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왕의 공부』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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