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비과학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대중화되지 못했던 명상이 뇌과학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등 장비의 발달로 점점 이론적 기반을 갖춰나가고 있다. 특히 인간의 뇌가 쓰는 대로 계속 변한다는 신경 가소성 이론은 명상을 통한 인지 훈련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이에 실리콘밸리를 시작으로 각국의 기업도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와 생산성 제고를 위해 인사관리(HR) 목적의 명상 교육을 도입하고 있으며, 개인들도 다양한 앱을 통해 명상 콘텐츠에 접근하고 있다. 명상은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고 주위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리더, 팔로워를 불문하고 직장 동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소통의 촉매제가 된다. 나아가 가치 지향적으로 움직이고 정신건강에 관심이 많은 Z세대를 중심으로 명상이 주목받는 콘텐츠로 떠오르면서 디지털 명상 시장도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는 2007년부터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을 통한 임직원의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관리를 독려하고 있다. 직원들의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을 지킴으로써 업무 만족도와 생산성을 높여보겠다는 발상이다. 이처럼 임직원 헬스케어의 일환으로 도입된 마음챙김 명상은 1970년대 후반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과대학의 존 카밧진 교수가 기존 구루에 의존하던 명상을 기초로 만든 8주간의 표준화된 프로그램이다. 카밧진 교수는 이전까지 ‘비과학적’이라고 인식되던 명상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며 언뜻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명상의 과학화’ 트렌드의 불씨를 제공했고, 명상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구글의 107번째 엔지니어로 알려진 차드 멩 탄이 핵심 프로젝트 외 ‘딴짓’이 허락되는 업무시간의 20%를 활용해 SIY(내면검색, Search Inside Yourself)’란 명상 교육 과정을 개발하면서부터 명상 열풍은 본격적으로 실리콘밸리에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이미 수만 명이 넘는 구글러들이 사내 인기 강좌로 통하는 SIY 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페이스북을 비롯해 인텔, 세일즈포스 등 유수의 기업들도 이를 벤치마킹해 명상 교육을 도입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같은 명상의 인기가 사내 교육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개개인의 스마트폰 속으로까지 침투하고 있다. 평상시에도 모바일 기기로 쉽게 접근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디지털 명상’이 대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9년 2월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명상 앱 ‘캄(Calm)’이 시리즈B 펀딩에서 1000억 원 넘는 투자금을 유치해 이 분야 처음으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인 스타트업)이 됐으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에게 명상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진 명상 앱 ‘헤드스페이스(headspace)’는 전 세계 30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이렇게 기업과 개인들이 명상을 찾는 현상이 더는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 국민이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에도 점점 열기가 번지고 있다. 직장인들의 번아웃을 막기 위한 정신건강 관리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명상이 하나의 정신 단련 수단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혁신의 첨병인 실리콘밸리 IT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명상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국내 기업들도 앞다퉈 관련 교육을 도입하는 추세다. 기세를 몰아 미국의 명상 앱 캄은 2019년 10월 ‘삼성헬스(Samsung Health)’와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고, ‘마보’ ‘코끼리’ 등 토종 앱들도 15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유치한 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탐색 중이다.
그렇다면 명상은 정말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을까. 명상이 궁극적으로 개인의 행복도를 높이고, 기업 생산성 향상과 혁신을 추동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까. 디지털 명상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2013년 차드 멩 탄에게 직접 배운 SIY 과정을 한국에 발 빠르게 소개하고, 2016년 국내 첫 명상 앱 마보를 창업한 유정은 대표를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만났다. 한국의 ‘마음챙김 전도사’로 통하는 유 대표로부터 명상이 어떻게 과학 기술과 결합하고 있는지, 왜 국내 기업과 개인들에게 명상이 필요한지 등을 들어봤다.
명상이 과학적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오늘날 명상은 과학이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히피들이 명상에 심취해 있었는데, 1차 붐 당시만 해도 명상이 비과학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대중화되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명상이 종교적, 신비주의적 색채를 벗고 과학의 영역에 들어오면서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연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실시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같은 과학적 장치가 발달하고, 살아 있는 사람의 뇌의 움직임을 관측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이 명상할 때 어떤 식으로 뇌가 반응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특히 ‘신경 가소성’ 이론의 등장으로 많은 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성인의 뇌가 한번 발달하면 노인이 돼 퇴화할 때까지 그대로일 것으로 믿었지만 이제는 인간의 뇌가 평생에 걸쳐 쓰는 대로 계속 변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곧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의도적인 인지 훈련을 했을 때 뇌 활동과 구조를 바꿀 수 있고, 마음의 고통도 완화할 수 있음을 뜻한다.
마음챙김 명상이란.마음챙김 명상은 주의력을 훈련하는 방법이다. 카밧진 교수는 마음챙김을 ‘의식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현재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 정의한다. 마음챙김 명상을 처음 배울 때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호흡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고, 우리 몸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알려준다. 잠시 호흡에서 주의가 벗어나도 자책하지 않고 ‘아, 다른 길로 샜구나’라는 걸 알아차려 다시 호흡으로 주의를 되돌리는 게 명상의 핵심이다. 이렇게 주의조절능력이 개선되면 사람이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전문 명상가일수록, 훈련시간이 길수록 편도체 같은 원시적인 뇌 영역이 덜 활성화되고 감정을 조절하기 쉽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편도체는 당신을 무시하거나 질책하는 상사처럼 생존이나 안위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를 탐지하고, ‘투쟁(Fight)’ ‘도피(Flight)’ ‘부동(Freeze)’ 등 ‘3F’의 상태로 몰아넣어 합리적 사고를 못하게 만든다. 그런데 뇌과학계에선 마치 헬스장에서 아령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근력을 기르듯 주의를 오롯이 호흡으로 돌리는 일을 반복하면 뇌의 조절 능력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음챙김 명상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가설은 이제 ‘운동하면 신체가 건강해진다’처럼 당연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