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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튼스쿨 MBA 따고 귀국한 안철수 의장 인터뷰

“실패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라”

DBR | 16호 (2008년 9월 Issue 1)
나는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 재미와 보람을 느낄 만한 일인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 세 가지만 봅니다. 1995년 컴퓨터 백신을 만드는 게 좋아 의사직을 그만둔 것처럼 이번엔 벤처업계 전반을 살려야겠다 싶어 최고경영자(CEO)를 그만두고 MBA를 했습니다.”
 
2005년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고 MBA 공부를 하겠다며 돌연 미국으로 떠났던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겸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3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난 5월 귀국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경영학석사 학위를 들고서다. 9월부터 카이스트 경영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해 강의할 예정인 그는 수업 준비와 초청강연 등으로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살고 있다.

국내외 경제가 불안하고 벤처산업이 침체돼 있는 지금, 한국에 필요한 기업가정신에 대해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CEO 자리를 내놓고 40대 중반의 나이에 갑자기 MBA 공부를 결심한 이유는.
 
내가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이던 2004년, 세후 순익 100억 원 돌파를 앞둘 정도로 우리 회사는 잘 됐지만 국내 벤처업계 전반은 침체돼 있었다. 내가 벤처업계에 뭔가 공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MBA행을 결심했다.

또 하나는 창업자들의 경험과 지식이 사회적 자산이 되는 ‘창업자의 선순환구조 모델’을 국내에 만들고 싶었다. 미국은 한 기업을 성공시킨 창업자가 새로운 기업을 잇달아 만들거나 벤처캐피털리스트, 교수, 정치가, 행정가가 되어 사회 각 분야에 자신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경험을 전수한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기업이 잘 되면 창업자가 계속 자기 회사에만 머물러 있거나 기업이 망하면 함께 추락해 재기를 못한다.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져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와튼스쿨에서 세부 전공으로 창업경영학(entrepreneurial mana -gement)을 했다.”
 
기업가정신’이 뭐라고 생각하나. 경제 불안과 벤처산업 침체가 계속되는 한국에서 기업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기업가정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업을 만드는 데 여러 위험 요소가 수반됨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벤처기업 창업자에 대해 위험을 좇는 사람(risk taker)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기업가가 하는 일은 전부 위험 관리(risk management)다. 어떻게 하면 사업의 불확실성과 위험 요소를 줄이고 성공확률을 높이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쇠퇴하고 있다. 창업이 줄면서 국가의 경제 성장 동력이 꺾이고 있다. 사업 기회(opportunity)가 안 보이고, 성공할 경우 주어질 보상(return)이 적으며, 성공 확률이 낮은 데다 실패할 경우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창업을 막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실패 위험이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위험도가 크니 당연히 창업을 주저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가정신 쇠퇴로 이어진다.
 
기업의 실패 위험을 높이는 요인은 세 가지다. 이를 깨닫고 실패 위험을 낮추는 방안을 찾는 것이 현재 기업가들에게 남겨진 숙제다. 첫째, 기업가 스스로의 실력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중소 벤처기업은 전문성이 떨어진다. 일을 열심히 안 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처럼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이나 보고 배울 선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자신의 부족한 점을 스스로 깨닫고 열린 마음으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둘째, 기업을 돕는 산업 인프라가 부족하다.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 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털, 돈을 빌려 주는 금융권, 다양한 분야의 전문 아웃소싱 업체, 정부 제도 등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우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인프라가 잘 돼 있다. 이곳에서는 기업가가 최선을 다했고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는 데도 사업에 실패했다면 주주들이 모여 사업 전반을 검토한 뒤 회사를 접는다. 그 회사의 CEO는 사업 실패 경험을 소중한 경험으로 삼아 계속해서 사업에 도전해 언젠가 성공하게 된다.
 
반면에 한국은 대표이사에 대한 연대보증제 때문에 기업이 빚을 다 갚지 못할 경우 대표이사가 빚을 떠안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대표이사가 회사를 접지 못하고 무리하게 끌고 간다. 손해가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당장 현금을 충당하는 데 급급해 덤핑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산업 전반이 초토화된다. 끝내 기업이 망하면 대표이사는 금융사범이 되어 재기하기 어렵다. 사업에 실패할 경우 이렇게 패가망신할 정도인데 누가 사업을 시작하겠나.
   

셋째, 산업구조가 대기업 위주로 돼 있어 벤처기업은 수익을 내기 어렵다. 벤처기업이 성장하려면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벤처기업이 부가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대기업의 인력파견업체 수준으로 전락해 그게 어렵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개선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선 기업가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길러야 한다.”

한국에서도 애플의 아이팟 같은 혁신적인 제품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스타 벤처기업가가 나올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의 괴짜 같은 퍼스널리티가 기업의 경쟁력이 됐다. 튀면 배척받는 환경에서는 결코 잡스 회장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여러 분야가 융합하며, 탈권위주의가 확산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경영환경을 따져보면 아직은 암담하다.
 
아이팟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았다. 온·오프와 볼륨 버튼이 없어 전혀 MP3플레이어 같지 않았다. 아이팟은 디자인만 아는 디자이너라면 결코 만들 수 없다. 엔지니어링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다. 그게 바로 컨버전스다. 여러 분야를 융합시킬 수 있는 조직만이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잡스 회장은 디자인을 먼저 한 뒤 엔지니어에게 디자인에 맞춰 제품을 만들라고 한다. 엔지니어들이 현재의 기술로는 어렵다고 해도 봐주지 않는다. 무조건 그렇게 만들라고 엔지니어를 닦달하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게 되고, 수많은 특허가 나온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튠이라는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보통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부속물 수준에 머무르는데 잡스 회장이 소프트웨어 가치를 아주 중요하게 인식했기에 아이튠이 탄생했다.”
 
기업 조직원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임원인 CLO가 되겠다는 목표를 여러 차례 밝혔는데.
 
선진국의 주요 기업들에서는 이미 최고학습책임자(CLO)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국내 기업들은 아직 사내 교육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내가 하고 싶은 CLO는 한 기업에만 국한되는 직책이 아니다. 벤처산업 전반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기 위해 조언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여러 감투를 쓸 수 있다. 이 가운데 하나로 대학교수를 택했고, 안철수연구소뿐 아니라 여러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러닝센터를 운영할 수도 있다. 조직 전반의 교육 및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대한 조언은 물론 경영자나 직원 개개인으로부터 커리어 목표를 듣고 그 목표를 이루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알려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CLO 활동을 통해 앞에서 얘기한 국내 벤처업계를 살리겠다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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