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영컨설팅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 배워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선 유권자가 보수와 진보, 기존 세대와 신세대로 나뉘었다. 선거 과정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 박근혜 후보는 75%가 넘는 높은 투표율에서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어 향후 대한민국의 5년을 이끌 대통령에 선출됐다. 대선에서 지지했던 후보와 관계 없이 정치권은 물론 국민 모두가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도와야 한다.
박 당선인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 위해선 승리에서 오기 쉬운 과도한 자신감을 경계하고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은 박 당선인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자신감에 넘쳤다. ‘고소영’이나 ‘강부자’ 내각이라는 비판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취임 후 1년이 채 안 돼 당내 분란과 광화문 촛불시위 등으로 위기에 빠졌다. 이 대통령이 임기 내내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은 박 당선인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임기 5년은 광범위한 국정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마이클 델(Michael Saul Dell) 델컴퓨터 회장은 선거 승리의 축배를 들 시간은 1000분의 1초도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NANO Second Celebration). 박 당선인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21세기 창조사회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하고 급변하기 일쑤다.
그렇다면 박 당선인이 역사에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기록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모든 조직의 리더가 성공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 방법 중 하나가 전임자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대통령직도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한국을 이끌어온 모든 대통령은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 그러나 동시에 실패의 쓴맛도 봐야 했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성공에서 배우는 벤치마킹의 효과는 그리 좋지 않다. 성공은 한두 가지 요소로는 창출되기 어렵다. 비전과 전략, 시스템, 역량, 리더십, 상황적합성 등 수많은 요소들이 동시에 효과적일 때 달성된다. 이에 반해 실패는 이 중 한 가지만 문제가 있어도 발생한다. 실패 요인을 미리 파악해서 대비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제임스 마치(James G. March)를 비롯한 조직학습 이론가들은 ‘실패로부터의 학습(learning from failure)’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반면 앨버트 밴두라(Albert Bandura)의 ‘사회학습(social learning)’ 모형에선 모든 경험을 직접해보는 것이 유일한 학습방법은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 간접적으로 배우는 ‘모방적 학습(vicarious learning)’이 직접 학습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 배우는 간접 학습은 성공을 바라는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전임 대통령의 실패 원인 중 박 당선인이 특히 주목해야 할 사항으로 (1) 구체적인 정책보다 역사적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 중심의 리더십 (2) 결과지상주의보다는 절차의 정당성 준수 (3) 일방적인 경쟁이나 협력보다 코피티션(Coopetition)형 정치 등 3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역사의식과 방향성의 실종:
정책보다 21세기형 비전이 우선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 대통령은 가시성 높은 구체적인 정책에 매우 강했다. 그러나 이를 하나로 아우르고 시대정신에 맞게 큰 방향을 보여주는 미래지향적인 비전 제시에는 약했다. 장점이자 한계다.
국민에게 이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책이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서울시장 시절을 포함해 청계천 복원사업, 버스 중앙차로제, 4대강 사업 등 굵직굵직한 정책을 떠올릴 것이다. 이에 반해 이런 다양한 정책들을 통해 보여준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단기적으로 실행가능한 구체적인 정책에 선택과 집중하는 부분에는 강하다. 그러나 이런 모든 정책을 아우르고 통합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에는 취약했다. 이게 한계였다.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 부족한 문제는 이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다수 리더의 공통적인 약점이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 모두에게도 가장 두드러진 한계였다. 선거 때마다 언론과 많은 전문가들은 정책중심의 선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비전중심 선거가 돼야 한다. 정책과 비전은 모두 중요하나 두 가지는 전혀 다르다. 리더의 핵심 역할은 정책보다 비전이다. 비전은 반드시 투철한 역사의식에 기반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미래지향적인 방향이라야 한다.
20세기 산업사회는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낮았다. 나가야 할 방향이 명확했기 때문에 구체적 정책에만 초점을 맞춰도 괜찮았다. 그러나 극도로 불확실한 21세기 창조사회에선 비전의 부재가 치명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비전은 파도에 흔들리는 배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등대의 역할을 한다. 좌우로 흔들어대는 거친 파도 때문에 앞으로 똑바로 나갈 수 없더라도 등대의 빛이 뚜렷하면 결국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따라서 비전은 21세기 창조사회와 같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정책은 추구하는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라는 기술적인 방법론이다. 반면 비전은 궁극적으로 나가고자 하는 미래의 방향성이다. 비전이 10년이나 20년 뒤의 미래라면 정책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실천해야 하는 방법이다. 즉 비전이 ‘왜(why)’와 ‘어디로(where)’의 문제를 다룬다면 정책은 ‘어떻게(how)’와 ‘무엇(what to do)’을 이야기한다. 정책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비전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선거에 나서는 정치지도자는 정책보다는 비전 경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책은 선거로 선출되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역량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스태프인 전문 관료나 지식 기술자들의 영역이다.
정책이 아무리 정교해도 비전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국가를 이끌어 나갈 뚜렷한 미래 비전에 대한 제시 없이 세부 정책의 나열에만 함몰된 기술자형 정치지도자는 매우 위험하다. 국가 전체의 미래 비전과 같은 큰 꿈을 이루려면 한두 가지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다. 수많은 방법이 일관성 있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수많은 정책들이 결과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미래의 궁극적인 꿈이 비전이다. 비전은 개별 정책이 왜 중요하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준다.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등의 문제가 있음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문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리더십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바로 ‘경제성장을 통한 조국 근대화’라는 출중한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달성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관리자나 보스와 달리 리더의 핵심 역할은 구성원에게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함께 실천하도록 이끌고 나가는 것이다. ‘리드(lead)’라는 단어가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고 뜻하듯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 조직이나 사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비전이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는 미래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탁월한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인 ‘이념’이 사회를 여러 대립 집단으로 갈라놓는 데 반해 꿈으로서의 비전은 갈라진 사회를 다시 통합한다. 가치관과 입장은 달라도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공동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때 갈등관계는 자연스럽게 협력관계로 전환된다. 그래서 사회의 역량과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좋은 비전은 과거-현재 추세와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퀀텀점프적 변화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미래 창조의 꿈을 담고 있어야 한다. 또 미래의 불확실성을 꿰뚫고 나가는 등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역사발전의 방향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와 투철한 시대정신에 기반한 미래지향적 방향이어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 비전은 투철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에 적합한 미래지향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듣기에 아무리 좋은 비전이라도 역사의식이 결여된 시대착오적인 꿈이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즉 비전은 미래라는 역사 속에 우리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므로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의 맥락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결코 통시적으로 일반화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20세기 산업화 시기라면 좋은 정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창조사회의 비전으로는 부적절하다. 시대착오적인 내용이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 누구도 21세기의 시대적 특수성과 역사의식을 강조하지 않았다. 박 당선인도 수많은 개별적 정책 공약들을 제시했으나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통합적 미래 비전은 명확하지 않았다. 21세기 창조사회적 시대정신에 맞는 미래지향적 비전의 제시가 시급하다.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공약 대부분은 양극화 문제의 해결을 통한 기존 사회 통합 위기 극복이 핵심이었다. 기존 문제의 해결과 새로운 미래의 창조는 다르다. 21세기 창조사회는 모든 면에서 20세기 산업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존 강점을 지키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강점과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원래 학문적 관점에서의 창조경제론은 이런 21세기적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제시된 박 당선인의 창조경제 공약은 21세기 시대정신보다는 단순히 정보, 통신, 방송 등 특정 산업이나 기술에 치중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박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제시한 모든 정책 공약들을 21세기 창조사회의 맥락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21세기적 역사의식에 기반한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해야 전임자의 비전 부재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비전은 단순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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