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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배우는 리더십

리더십의 영웅들, 우리 역사에도 많다

정윤재 | 8호 (2008년 5월 Issue 1)
몇 해 전부터 책방에 리더십 코너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웬만한 책방치고 리더십 코너를 만들어놓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리더십은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 역사 속의 왕이나 재상들의 리더십을 다룬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이 출간되기 전만 해도 대부분 리더십 책들은 서양이나 중국 혹은 일본의 인물을 주로 다뤘다. 우리나라 군 간부들의 지휘통솔교범은 미국 육사의 리더십 교과서를 번역한 것이었고, 어린아이들이 존경하는 인물은 링컨이나 에디슨, 혹은 퀴리부인이었다. 그리고 서태후와 오다 노부나가를 말하면서도 아이들과 세종대왕 동상 앞에 가서는 기념사진만 찍고 부리나케 밥 먹으러 갈 뿐 세종대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어른은 거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적어도 두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다.
 
첫째, 그 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리더십 자체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다. 물론 심리학과 경영학, 그리고 군사학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연구가 있었지만 주로 구미의 이론과 사례를 소개하고 적용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역사학이나 정치학 분야에서 리더십은 이상할 정도로 관심 밖의 주제였다. 역사학의 경우, 조선왕조의 패망이라는 부정적 경험 때문에 예술이나 민속, 문화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정치지도자나 그들의 국가경영에 대해서는 적극적 관심을 가지지 못한 듯하다. 정치학을 비롯한 한국 사회과학에서는 구미에서 수입한체계나 구조중심의 분석과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둘째, 우리의 주류 엘리트들은 우리 역사, 인물, 언어, 문화유산을 경멸하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게 했던 일제의 식민사관을 답습했다. 이런 식민사관의 폐해는 지식인 사회뿐 아니라 정치사회에서도 만연해 인물과 리더십에 대한 관심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또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전통과의 단절을 발전 혹은 근대화와 동일시하는 근거 없는 편견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국사 인물 재평가해야
그러나 지금은 리더십도 유행이고 우리의 전통문화도 유행이다. 책방에서도 이 분야의 책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모범적인 리더십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있고 고려시대에 대해선 <고려사>가 있으며, 조선시대에 대해서는 유엔이 정한 세계기록문화유산 중 하나인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더구나 이렇게 보물 같은 책들이 모두 한글로 번역돼 있어 아무라도 읽을 수 있다. 삼국시대의 주목할 만한 리더십은 광개토대왕이나 대조영, 을파소, 김춘추, 장보고, 그리고 김유신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군사전략과 문장으로 30만 당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멸망의 위기를 맞은 백제를 구하기 위해 처자식을 죽이고 황산벌에서 결사항전해 ‘일당천’의 신화를 남긴 계백, 사사로운 일로 부하병사를 때리지 않았고, 상으로 받은 상품을 부하들과 나눈 휴머니스트 흑치상지도 빼놓을 수 없다.
 
진평왕이 사냥과 놀이에 빠진 것을 끊임없이 비판하다가 죽은 이후에도 왕의 사냥길에 묻혀 충간을 그치지 않아 마침내 왕의 마음을 돌이킨 ‘묘간(墓諫)’으로 칭송받은 김후직, 사물과 형세의 본질을 꿰뚫는 판단력을 보여준 선덕여왕 등과 같은 인물도 만날 수 있다. 이어서 고려시대에는 궁예, 왕건, 서희, 윤관, 배중손, 최영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인물들에 대한 자료와 정보가 비록 제한적이지만 이런 문헌들에 기록된 사실들을 뼈대로 하는 각종 문학작품과 영상창작물이 만들어지고 보급되면, 이들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는 한층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왕과 사대부, 그리고 평민 중에서도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창업군주인 태조와 태종은 냉혹한 권력정치의 전형을 보여줬고, 수성군주 세종은 민본정치의 실천적 표본으로 수많은 모범 사례를 남겼다.
 
최근 세종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아마도 그가 학문과 경험 양면에서 정상적으로 훈련받은 군주로서 품격과 판단력, 그리고 추진력을 고루 갖춘 정치지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세조, 성종, 선조, 영조, 정조 역시 민생을 돌보고 국가발전을 위해 제도정비와 개혁을 단행했다.
 
특히 정조는 남다른 학문적 열정과 개혁이니셔티브, 그리고 파격적인 인재등용으로 문예부흥을 꾀했다. 최근에는 고종황제와 관련한 새로운 자료발굴과 해석으로 국운쇠퇴기 군주의 리더십에 대한 기존 평가와 편견을 시정하고 한층 균형감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왕조 임금들의 정치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이해가 깊어지면 이것은 그 동안 경시돼온 전통사회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바로잡고, 특히 일제에 의해 멸망당했다고 해서 지식인들에게 홀대받은 조선시대를 우리 역사에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사대부와 민중지도자의 리더십
그리고 조선시대를 관통해 주요 시기마다 적극적으로 일하고 행동한 사대부 정승들과 민중지도자들도 리더십 연구의 주요 대상이다. 우선 왕조 창건의 역성혁명을 이루고도 왕을 비판하는 대간기능을 강화한 삼봉 정도전, 정치란 “가까운 곳의 백성이 혜택을 입어 기뻐하고 먼 곳의 백성은 덕을 사모하여 모여들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평생 넉넉한 유머와 검소한 생활로 중용을 실천하며 관직을 수행한 방촌 황희가 있다.
 
또 애국심 굳은 문신으로서 함경도관찰사로 임명돼 회유와 정벌로 여진족을 제압하고 육진을 설치해 북방국경을 지키는 데 공을 세운 ‘북방의 호랑이’ 절재 김종서도 있다. 그리고 ‘이통기국론’과 ‘시세불일론’에 입각한 ‘경세론’을 참여와 개혁을 통해 실천하고자한 율곡 이이, 임진왜란시 병조판서 겸 도체찰사, 그리고 영의정을 맡으면서 적절한 인재등용과 국방전략으로 나라를 지킨 서애 류성룡도 빼놓을 수 없다.

뛰어난 무용과 판단력, 그리고 군림하지 않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병사와 주민들을 이끌며 금수강산을 왜구로부터 지킨 충무공 이순신, 우리의 지형을 활용하는 게릴라 전법으로 왜군격퇴에 앞장선 최초의 선비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 조국을 침탈하고 백성을 살생한 왜군에 맞서 분연히 집도거병하고 임란 이후에는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 3000명을 구해온 사명대사 유정이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 말기의 부패한 세도정치에 저항하며 민중봉기를 이끈 홍경래, 보국안민 척양척왜를 내세우며 나라를 구하고자 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 일제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 안중근 의사 등도 있다.
 
리더십 유형화보다 중요한 사례발굴
엘리트가 ‘지위중심적(positional)’ 개념인 데 비해, 리더나 리더십은 ‘관계중심적(relational)’ 개념이다. 즉 리더십이란 언제나 공동체 구성원의 삶과 직결된 행동으로, 공동체적 관심사에 대한 책임 있는 대응과 실천으로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 드러난다. 반만년 우리 역사에는 이런 사례가 무수히 많다. 그리고 우리는 해당 인물의 부분적 특징들을 지나치게 강조해 어떠한 리더십으로 섣불리 유형화하기보다 그 동안 경시돼온 무수한 리더십 사례들을 자세히 살피고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잘 팔리고 인기 있다고 자의적이고 섣부른 유형화를 남발하는 것은 또 다른 역사왜곡을 조장할 수 있다.
 
아무쪼록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는 세종대왕의 가르침과 ‘지나간 경험들을 찬찬히 살펴 새로운 것을 알면, 그것으로써 남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는 공자의 충고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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