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충고를 외면한 周 여왕의 몰락

김영수 | 42호 (2009년 10월 Issue 1)
입에 쓴 좋은 약
 
“좋은 약은 흔히 입에 쓰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그것을 먹으라고 권한다. 그래야 병에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한비자> ‘외저설’ 좌상
 
충고는 좋은 약과 같아 듣기에는 거슬리나 행동에는 유익하다. 충고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해주므로 허심탄회하게 경청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리더라면 특히 그렇다. 타인의 충고를 수용하는지 여부는 리더의 포용력과 리더십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역사상 충언, 직언, 충고를 듣지 않거나 무시하다 낭패를 본 리더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반면 마음을 열고 충고를 흔쾌히 받아들인 리더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귀에 거슬리는 충고를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충고를 잘 받아들인 리더만이 성공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중국 상(
)나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주()는 충신 비간(比干)이 나라의 멸망을 걱정하며 목숨을 걸고 직언하자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7개나 있다고 들었다”면서 진짜인지 보겠다며 비간의 심장을 도려냈다. 결국 주는 주()나라 무왕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불에 뛰어들어 자결하고 상나라는 망국의 운명을 맞이했다.
 
춘추시대 오()나라의 충신 오자서(伍子胥)는 오 왕 부차(夫差)에게 여러 차례 월()나라의 야심을 경계하라고 충고했다. 이전의 승리에 도취돼 있던 부차는 간신 백비의 이간질과 주색에 빠져 오자서의 충고를 무시한 것은 물론 그에게 자결을 강요했다. 그 결과 20년 동안 절치부심 재기한 월나라의 공격을 받아 오나라는 망하고 부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왕도, 부차도 모두 지략을 겸비한 대단한 리더들이었다. 이들은 출중한 능력으로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끝내는 망국의 화를 면치 못했다. 위기의 조짐을 간파한 충직한 신하들의 충고와 백성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탄압했기 때문이다. 리더십에서 충고를 받아들이는 열린 가슴과 포용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충고를 외면하고 언론을 탄압한 여왕
서주(西周) 왕조의 제10대 왕이었던 여왕()은 기원전 9세기 무렵 30년 동안 왕위를 지키면서 나라를 이끌었다. 그러나 자신이 총애하는 소인배를 기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몰두하다 결국은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대부 예량부(芮良夫)는 일찌감치 이런 위기 상황을 예견하고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왕실이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영이공은 이익을 독점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 닥쳐올 큰 재앙은 모릅니다. 무릇 이익이란 만물과 천지자연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독점하면 그 피해가 커집니다. 천지만물은 모든 사람들이 같이 나누어 써야 하거늘 어찌 독점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초래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큰 재앙에 대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왕을 이끌면 왕이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무릇 왕이라는 사람은 이익을 개발해 위아래로 공평하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신과 인간, 그리고 만물이 모두 알맞게 이익을 얻게 하고, 행여 원망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중략) 지금 왕께서 이익을 혼자 독차지하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필부가 이익을 독차지해도 도적이라 부르거늘, 왕이 그렇게 하면 왕을 따르는 사람이 적어집니다. 영이공을 기용하시면 틀림없이 낭패를 볼 것입니다.”
 
예량부의 충고는 간곡하고 현실을 직시한 말이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충정에서 우러나온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왕은 듣지 않고 끝내 영이공(榮夷公)을 경사(卿士)로 중용해 정권을 장악하게 했다. 영이공이라는 소인배를 최측근으로 앉힌 여왕의 행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포악해지고 교만해졌다. 이에 나라 사람들이 왕을 비방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소공(召公)은 “백성들이 그런 통치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여왕은 버럭 화를 내며 이웃 위()나라 무당을 불러다 비방하는 자들을 감시하게 하여 보고가 올라오면 죽였다. 비방하는 사람은 줄어들었고, 제후들은 조회하러 오지 않았다. 이에 고무된 여왕이 더욱 엄하게 단속하자, 사람들은 감히 말은 못하고 길에서 만나면 눈으로 서로의 마음과 뜻을 나눴다. 여기서 저 유명한 ‘도로이목(道路以目)’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여왕은 소공을 불러다 비방하는 자들의 입을 완전히 막았다며 의기양양해 했다. 그러자 소공은 다시 간곡히 충고했다. 이 대목은 역사상 신하가 통치자에게 올린 가장 유명한 충언의 하나로 기록될 만한 명문이다.
 
“그것은 말을 못하게 막은 것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보다 더 심각합니다. 막힌 물이 터지면 피해가 엄청난 것처럼 백성들 또한 이와 같습니다.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길을 터주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말을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천자가 정무를 처리하면서 공경과 일반 관원들에게 시를 써서 내게 하고, 악관에게는 노래를 지어 올리게 하고, 사관에게는 앞 시대의 정치를 기록한 사서를 바치게 하고, 악사에게는 잠언을 올리게 하며, 장님에게는 낭송하게 하고, 눈먼 자에게는 음악 없는 시를 읊게 하는 것입니다. 백관들은 솔직하게 충고하고, 백성들은 간접적으로 여론을 전달하고, 가까이 있는 시종들은 간언을 살피는 데 힘을 다하고, 종친은 왕의 잘못을 살펴 보완해주고, 악사와 사관은 음악과 역사로 천자를 바르게 이끌며, 원로대신들은 이런 것들을 가려내 종합합니다. 그런 다음 왕이 이를 참작하면 정치는 어긋나지 않고 잘 실행되는 것입니다.

가입하면 무료

인기기사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