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각기 다른 상황에서 중국 한 고조 유방의 참모 장자방, 유비의 참모 제갈공명, 진나라 시인 도연명이 관직에 나가거나 나가지 않음을 결정한 것은 모두 지금 시대에 무엇이 의리를 지키는 길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어떤 지위에 취임하거나 역할을 맡을 때 역시 원칙과 신념을 지키되 상황을 면밀하게 고려해야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세상의 흐름을 읽고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해야 자기 자신을 지키고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다.
1520년(중종 15년) 9월에 열린 별시(別試)에서 임금은 이렇게 물었다. “출처(出處)는 중대한 일이므로 선비라면 마땅히 깊이 성찰하고 행동해야 한다. 옛날 장자방(張子房, 장량)은 한(漢) 고조를 도와 천하를 평정한 뒤 병을 핑계 대고 생식을 하며 적송자(赤松子)11신선으로, 비를 관장하며 염제 신농씨를 보좌한 우사(雨師)로 알려져 있다.
닫기를 따라 노닐었다. 제갈공명은 선주(先主, 유비)의 부탁으로 군대를 일으켰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마쳤다. 도연명(陶淵明)22중국 진(晉)나라의 시인으로 ‘귀거래사(歸去來辭)’가 대표작이다.
닫기은 이익과 영달을 구하지 않고 사직함으로써 스스로를 맑고 깨끗하게 지켜냈다. 이 세 사람의 공명(功名)과 사업은 각기 아주 다른데도 선유들이 말하길 ‘고아한 풍모와 원대한 절개가 서로 같다’고 하였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출처. 벼슬에 나아간다는 뜻의 ‘출’과 자리에서 물러나 은거한다는 의미의 ‘처’를 합쳐 부르는 단어다. 낯설다면 ‘진퇴(進退)’로 대체해도 좋다. ‘진퇴를 분명히 하라’는 말은 한번쯤 들어봤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옛날 선비들은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출과 처, 진과 퇴를 결정해왔다. 지금 이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는지, 군주가 도리를 추구하고 있는지, 군주가 선비를 예우하고 선비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지, 나라와 백성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등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판단은 아무래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출’해야 할지, ‘처’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컨대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하다고 하자. 이에 물들지 않기 위해 은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고통받는 백성을 돕겠다며 관직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준태akademie@skku.edu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김준태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왕의 공부』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